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경북 북부 나드리 : 역사와 자연의 소리를 찾아서... (예천)초간정 원림과 초간정

왕마구리 2014. 3. 12. 02:14

빼어난 산수와 아름다운 옛 전통문화가 조화롭게 살아 숨 쉬는 경북 북부유교권은 우리 유교문화의 보고이자 친환경 웰빙여행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수려한 산과 계곡, 질 좋은 온천과 드넓은 동해 바다가 있어 어느 계절에도 다양한 레포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경상북도 북부지역은 안동시, 영주시, 상주시. 문경시,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 예천군, 봉화군, 울진군 등이며, 이번 경북 북부 나드리는 1박2일 일정으로

상주시의 화달리 삼층석탑 및 전사벌왕릉, 경천대

예천군의 회룡포, 용문사, 초간정과 초간정원림, 금당실송림, 예천권씨초간종택, 그리고 개심사지 오층석탑

안동시의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등의 명소들을 방문하였다.

이번 탐방지는 각 지역별로 구분하여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일 정 표 】2014년 2월 20일(목)-21일(금) 1박2일

    ◈ 첫째날(2/20) : (상주)화달리 삼층석탑 및 전사벌왕릉-경천대-(예천)회룡포

    ◈ 둘째날(2/21) : (예천)용문사-초간정 및 초간정원림-예천금당실송림-예천권씨초간종택-개심사지오층석탑-(안동)하회마을-병산서원

 

인정 많은 충효의 고장! 예천(醴泉)

소백준령의 높은 산줄기가 감싸고 낙동강, 내성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으로 인심이 순박하고 살기좋은 고장으로, 1300여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한 충효의 고장이다.

역사와 전통에 걸맞게 조상들의 숨결이 깃든 많은 문화유적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청정자원이 산재해 있다.

예천은 삼국시대에는 수주,

고려시대에는 보주, 양양으로 불리다 조선 고종33년(1896) 경상북도 예천군이 되었다.

 

이번에 탐방한 예천의 명소들은 각 관광명소별로 아래와 같이 6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回龍浦) 

- 문화유산의 보고! 천년고찰 용문사(龍門寺)

-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룬 초간정 원림(草澗亭 園林)과 초간정(草澗亭)

- 십승지의 송림! 금당실 송림(金塘室 松林)

- 영남 사대부가의 별당식 기와집! 예천권씨초간종택(醴泉權氏草澗宗宅) 

- 갑석이 전하는 석탑의 비밀! 개심사지 오층석탑(開心寺址 五層石塔) 

 

◀ 초간정 원림(草澗亭 園林)과 초간정(草澗亭)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룬 명승지!

                  ▲ 초간정과 초간정 원림으로 지정된 초간정 일대

 

【 예천 초간정 원림(醴泉 草澗亭 園林)

*명승 제51호(2008년12월26일 지정)

*면적:12,979㎡

*소재지: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번지 등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오랜 관직생활과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한 초간정이란 정자가 있는 일대를 말한다.

맑은 계곡과 푸른 송림 사이의 암석위에 위치한 초간정을 통해 조선시대 사림의 은일생활과 무위자연을 바탕으로 하는 선조들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명승지로,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는 등 경관적 가치가 크다.

 

【 예천 초간정(醴泉 草澗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5호(2013년04월08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용문경천로 874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세운 것으로 심신을 수양하던 정자이다.

권문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백과사전류인 '대동운부군옥' 20권을 지어 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남겨 놓았다.

초간정 정자는 조선 선조15년(1582)에 처음 지었고, 선조25년(1592) 일어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4년(1612)에 고쳐 지었지만 인조14년(1636)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선생의 원고 등을 보관하기 위해 고종7년(1870)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초간정은 사주문을 통해 들어가며 뒤쪽과 오른쪽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자연 기단위에 주초를 놓고 네모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앞면 왼쪽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고 나머지 4칸은 통간의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4면에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으면서 초간정사의 현판이 정자 앞 늪에 파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졌는데, 신기하게도 늪에서 오색무지개가 영롱하여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파보았더니 현판이 나왔다고 한다.

 

 

                  ▲ 초간정 현판과 절벽 암석에 새겨진 '초간정'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 초간정 들어가는 사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