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경북 북부 나드리 : 역사와 자연의 소리를 찾아서...(예천)개심사지 오층석탑

왕마구리 2014. 3. 12. 13:44

빼어난 산수와 아름다운 옛 전통문화가 조화롭게 살아 숨 쉬는 경북 북부유교권은 우리 유교문화의 보고이자 친환경 웰빙여행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수려한 산과 계곡, 질 좋은 온천과 드넓은 동해 바다가 있어 어느 계절에도 다양한 레포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경상북도 북부지역은 안동시, 영주시, 상주시. 문경시,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 예천군, 봉화군, 울진군 등이며, 이번 경북 북부 나드리는 1박2일 일정으로

상주시의 화달리 삼층석탑 및 전사벌왕릉, 경천대

예천군의 회룡포, 용문사, 초간정과 초간정원림, 금당실송림, 예천권씨초간종택, 그리고 개심사지 오층석탑

안동시의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등의 명소들을 방문하였다.

이번 탐방지는 각 지역별로 구분하여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일 정 표 】2014년 2월 20일(목)-21일(금) 1박2일

    ◈ 첫째날(2/20) : (상주)화달리 삼층석탑 및 전사벌왕릉-경천대-(예천)회룡포

    ◈ 둘째날(2/21) : (예천)용문사-초간정 및 초간정원림-예천금당실송림-예천권씨초간종택-개심사지오층석탑-(안동)하회마을-병산서원

 

인정 많은 충효의 고장! 예천(醴泉)

소백준령의 높은 산줄기가 감싸고 낙동강, 내성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으로 인심이 순박하고 살기좋은 고장으로, 1300여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한 충효의 고장이다.

역사와 전통에 걸맞게 조상들의 숨결이 깃든 많은 문화유적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청정자원이 산재해 있다.

예천은 삼국시대에는 수주,

고려시대에는 보주, 양양으로 불리다 조선 고종33년(1896) 경상북도 예천군이 되었다.

 

이번에 탐방한 예천의 명소들은 각 관광명소별로 아래와 같이 6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回龍浦) 

- 문화유산의 보고! 천년고찰 용문사(龍門寺)

-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룬 초간정 원림(草澗亭 園林)과 초간정(草澗亭)

- 십승지의 송림! 금당실 송림(金塘室 松林)

- 영남 사대부가의 별당식 기와집! 예천권씨초간종택(醴泉權氏草澗宗宅) 

- 갑석이 전하는 석탑의 비밀! 개심사지 오층석탑(開心寺址 五層石塔) 

 

◀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醴泉 開心寺址 五層石塔) 

갑석이 전하는 석탑의 비밀!

 

 

【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醴泉 開心寺址 五層石塔)

*보물 제53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남본리 200-3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개심사 절터에 있다.

탑의 상층 기단 갑석에 고려 현종원년(1010)에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높이 4.3m,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우고 그 정상에 상륜을 올린 일반적인 형식의 석탑이다.

 

 

 

아래층 기단은 4면마다 둥근 테두리 선을 새기고 그 안에 머리는 짐승, 몸은 사람인 12지신상을 차례로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면을 나눈 다음 그 안에 팔부중상을 새겨 놓았다. 팔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모습을 새겨 놓은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기단의 맨 윗돌은 그 윗면에 몸돌을 받치기 위한 연꽃무늬의 괴임돌을 놓았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양식의 한 특징이다.

 

 

사리나 법경을 봉안하는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에는 문고리 모양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 인왕상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모두 4단씩의 받침을 깎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어 탑 전체에 경쾌함을 실어 준다.

 

"갑석이 전하는 개심사지 오층석탑의 조성 과정"

상층 기단 덮개돌 밑에 새겨진 "통화27년 경술년(統和二十七 庚戌年)"이라는 석탑기에 의해 석탑의 건립년대를 알 수 있다.

 

 

 

고려 현종원년(1010) 2월 1일 탑을 세우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여기 동원된 사람은 승려를 비롯해 지역(현재의 예천군과 의성군)의 불교도 1만여 명이었으며, 호족들에 의해서 군사조직까지 참여했다. 예천의 호장인 임씨가 공사의 총감독이라고 할 만한 '동량'을 맡았고, 군사의 장비와 수레, 소 천마리도 힘을 보탰다.

이듬해인 1011년 4월 8일에 개심사지 오층석탑이 완성되었다. 탑에는 지방의 호족과 지방민이 힘을 합쳐 세웠다는 시록문이 있는데 고려 초기의 지방 행정과 군사조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정연한 비례가 아름다눈 고려 전기를 대표하는 탑이다.

개심사는 고려 전기에 창건된 절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