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한국의 서원

경북 북부 나드리 : 역사와 자연의 소리를 찾아서...유교문화의 본향! 안동 병산서원

왕마구리 2014. 3. 29. 14:55

 

빼어난 산수와 아름다운 옛 전통문화가 조화롭게 살아 숨 쉬는 경북 북부유교권은 우리 유교문화의 보고이자 친환경 웰빙여행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수려한 산과 계곡, 질 좋은 온천과 드넓은 동해 바다가 있어 어느 계절에도 다양한 레포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경상북도 북부지역은 안동시, 영주시, 상주시. 문경시,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 예천군, 봉화군, 울진군 등이며, 이번 경북 북부 나드리는 1박2일 일정으로

상주시의 화달리 삼층석탑 및 전사벌왕릉, 경천대

예천군의 회룡포, 용문사, 초간정과 초간정원림, 금당실송림, 예천권씨초간종택, 그리고 개심사지 오층석탑

안동시의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등의 명소들을 방문하였다.

이번 탐방지는 각 지역별로 구분하여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일 정 표 】2014년 2월 20일(목)-21일(금) 1박2일

    ◈ 첫째날(2/20) : (상주)화달리 삼층석탑 및 전사벌왕릉-경천대-(예천)회룡포

    ◈ 둘째날(2/21) : (예천)용문사-초간정 및 초간정원림-예천금당실송림-예천권씨초간종택-개심사지오층석탑-(안동)하회마을-병산서원

 

역사의 향기와 전통의 숨결이 살아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安東)

경상북도 북단에 위치한 안동시는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재를 고르게 보유한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의 고장으로 문화적 편향성을 가지지 않고, 시대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는 고장이다.

염상도사가 BC57년에 창녕국을 세웠다고 전해지는 안동은 신라시대는 고타야군, 고창군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안동부로 승격되면서 처음 안동으로 불리었다.

이후 명종27년(1197) 안동도호부, 신종7년(1204)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복주목으로 바뀌고 공민왕10년(1361) 홍건적의 난 이후 다시 안동대도호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안동대도호부로 병마절도부사를 두었으며, 고종33년에 안동군이 되었고, 1931년 안동읍, 1963년 안동시로 승격되어 안동군과 분리되었다가 1995년 1월에 안동시,군이 통합되어 전국에서 가장 넓은 기가 되었다.

삶의 생생한 모습을 간직한 목조문화재가 많아 옛 선인들의 생활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관계로 다양한 민속문화가 삶 속에서 계승되어 오고 있다. 불교와 유교, 기독교 등 한국 문화사의 정신철학도 안동의 문화를 꽃 피워 안동문화의 이해는 곡 한국문화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며, 동양의 정신세계를 체험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동시는 아시아태평양회원도시간 상호협의를 통한 관광진흥발전과 도시간 네트워크 강화를 위하여 2000년 설립된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TPO)에 가입하여 안동의 전통유교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으며, 2004년 10월 27일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도시(전세계 59개국 95개 도시)로 가입하므로서 안동의 우수한 역사와 전통 문화적 가치를 세계인들에게 보다 폭 넓게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위치한 회원 도시(세계유산도시기구 OWHC 전세계 86개국 239개)로 구성된 유네스코 협력기구에 2006년 10월 2일 가입하였고,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2007년 7월 31일 등재됨으로 정회원 도시로 아시아에서 7번째로 승격, 가입되었다.

세계보편문화이며 각 문화의 특징을 드러내는 문화도구인 '탈' 관련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안동의 화회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 기반을 통해 안동이 세계 탈문화를 선점, 선도하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국제문화교류의 거점으로 인지시켜 나가기 위해 세계탈문화예술연맹을 안동시는 2006년 9월 29일 창립하였고,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5개, 보물 39개, 중요무형문화재 2개, 사적 2곳, 천연기념물 7개, 명승 2곳, 중요민속문화재 28개, 등록문화재 1개 등 총 86점과 경상북도 도지정문화재인 유형문화재 69개, 무형문화재 5개, 기념물 20개, 민속문화재 53개, 문화재자료 70개 등 총 216점이 폭 넓게 산재해 있어 지난 해 7월9일~10일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일부 문화재들을 탐방하였고, 이번 경북 북부 나드리를 계기로 안동을 재 방문하여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하회마을'과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 탐방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탐방한 안동의 명소들은 아래와 같이 3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한국의 역사마을!  안동하회마을(安東河回마을) : (Ⅰ편)탐방코스 내 국가지정문화재들

- 한국의 역사마을!  안동하회마을(安東河回마을) : (Ⅱ편)기타 국가지정문화재들 

- 유교문화의 본향  병산서원(屛山書院)

 

◀ 유교문화의 본향! 안동 병산서원(安東 屛山書院) 

 

【 안동 병산서원(安東 屛山書院)

 

*사적 제260호(1978년03월3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서애 류성룡(1542~1607)을 기리는 서원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며 풍산 류씨의 교육기관으로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이었던 것을 선조5년(1572)에 류성룡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겼다. 1607년 류성룡이 타계하자 정경세 등 지방유림의 뜻을 모아 광해군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위패를 봉안하였다.

인조9년(1629)에는 셋째아들 수암 류진을 추가로 배향했으며, 철종14년(1863) 임금으로부터 '병산(屛山)'아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으로 보수했고, 강당은 1921년, 사당은 1937년에 각각 다시 지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고종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만대루를 지나면

 

                      ▲ 만세루에서 바라본 입교당

 

강학공간으로 기숙사였던 동,서재, 강당인 입교당이 있다. 동재 뒤편으로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고직사(주사)이고 입교당 서쪽 뒤편에 목판과 유물울 보관하던 장판각,

입교당 동쪽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제향공간인 사당으로 들어가는 대성문, 위패를 모신 사당인 존덕사, 내삼문 동쪽에는 전사청 등의 건물이 있다.

 

                   ▲ 강당인 입교당에서 바라본 만대루와 병산

 

열려있는 복례문 앞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거나, 서원 안에서 만세루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면 어디하나 막힘이 없이 탁 트여있어 건물과 건물 밖의 자연이 하나인 듯 느껴진다.

조선 중기 서원정신이 한창 부흥하던 시기에, 소수서원, 도산서원 등의 초창기 서원건축양식을 충실히 계승하여 지은 건물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점에서 '한국 서원건축의 백미'로 한국건축사에서 의미가 큰 유적이다.

2011년 07월 28일 고시로 '병산서원'에서 '안동 병산서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주차장 앞에서 바라본 병산서원 전체 전경

                   ▲ 복례문 앞에서 바라본 병산서원

 

『 류성룡(柳成龍) 』

본관이 풍산으로 명종19년(1564) 사마시를 거쳐 도승지,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도제찰사로서 군무를 총괄하고, 그 후 영의정이 되어서는 성곽 수축, 화기 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썼으며, 훈련도간을 설치하여 군대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선조31년(1598) 북인들의 탄핵으로 한때 관직을 삭탈당하고 향리에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썼다. '서애집', '징비록' 등의 저서를 남겼다.

선조37년(1604) 호성공신이 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 도학, 글씨, 문장, 덕행으로 이름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영남지역 유생들의 추앙을 받았다.

 

『 풍수지리로 본 병산서원 』

병산서원은 앞의 병산(안산)이 너무 높고 급하여 강물이 빨리 흐르고, 땅의 기운이 쌓일 틈이 없이 계속 밀려 내려가므로 이런 터에서는 재물이 쌓일 틈이 없어 살림집의 입지로는 부적합하다.

그러나 공부를 빨리 마치고 사회에 진출해야하는 교육시설로는 안성 맞춤인 터가 된다. 인적이 드물어 학문수양에 방해가 없으며, 앞으로는 뛰어난 경관이 펼쳐져 엄격한 서원의 규율과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숨구멍이 트여있는 그런 곳이기에 서원의 터로서는 적합한 곳이다.

 

 

 

♧♧ 병산서원 내 건물들

♧ 강학영역

 

                   ▲ 강당인 입교당

 

 

 

 

 

 

 

 

*** 입교당(立敎堂)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강학당으로, 수업을 받던 교실이다.

입교당은 중앙은 가르침을 받는 강학당, 동쪽으로는 명성제, 서쪽에는 경의제로 모두 3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라는 뜻의 입교당은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병산서원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 입교당 후면과 동,서재 측면

 

                   ▲ 동재와 서재

 

*** 동재와 서재

임교당과 만대루 사이 마당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져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건물로 당시 학문에 열중하던 유생들의 기숙사이다.

 

                   ▲ 장판각

 

*** 장판각(藏板閣)

서원에서 펴낸 책을 인쇄할 때 쓰이는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 만대루

 

*** 만대루(晩對樓)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으로 행사 때 유생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대강당이다. 200여명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한 장대한 이 누각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굽이도는 강물의 형상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건축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병산서원에서 가장 알려진 건물로서 건축과 조형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이다. 이곳 만대루에서 병산을 바라보면 시를 읊거나 가야금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 중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宣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층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다.

 

 

                   ▲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 엎,뒤 전경

 

*** 복례문(復禮門)

병산서원의 정문.

'복례문에는 '내가 이곳에 들어가기 전 예를 지킨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지금은 주사의 왼편에 있는 문을 통해 서원에 출입하고 있다.

 

                                          ▲ 제향영역 안내도

 

♧ 제향영역

제사를 지내는 공간과 이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 사당공간으로 들어서는 내삼문인 대성문

 

내삼문을 들어서면 서애 류성룡과 그의 세째아들 수암 류진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가 있다. 류진이 추가로 배향된 것은 현종3년(1662)이다.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며, 위엄을 갖추어야 하기에 내삼문의 좌,우로는 담장을 둘렀다. 경사진 지형에 서원을 짓고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을 배치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 이다.

 

                   ▲ 사직사와 경계를 이루는 동재 뒷담장과 협문

 

또한 강학공간은 선비 정신에 따라 검소하고, 단아하게 꾸민데 비해 제향공간은 단청도 하고 태극문양으로 장식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9월 초정일(음력 1일~10일 사이의 날 중 천간이 정(丁)으로 된 날)에 향사를 지낸다.

 

                   ▲ 존덕사

 

*** 존덕사(尊德祠)

서원내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애 류성룡 선생과 셋째아들인 수암 류진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다.

 

                   ▲ 전사청

 

*** 전사청(典祀廳)

제사를 지내기 전날에 제수를 보관하고 있던 곳으로, 평상시에는 제기와 제구를 보관한다.

사당과 같은 울타리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사원의 전사청은 별도의 담장을 두르고 내삼문의 동쪽에 있다.

 

 

 

                   ▲ 고직사

 

*** 고직사(주사)

서원의 맨 오른쪽에 위치한 병산서원 '지킴이'의 거처이다.

 

                   ▲ 머슴뒷간

 

*** 뒷간(부록)

서원의 화장실.

'양반뒷간'과 '머슴뒷간'이 있는데 외형적으로 큰 격식의 차가 있다. 달팽이 모양을 닮은 '머슴뒷간'은 '통시'라고도 불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