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軍威) 제Ⅳ편:대율리 한밤마을

왕마구리 2014. 6. 5. 19:42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軍威)를 찾아서

 

이번 군위 방문은 당일 탐방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고유의 사상인 화랑도와 함께 민족의 주체성을 일깨우고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일연스님의 삼국유사가 탄생된 곳인 국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 아래 인각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근간을 밝힌 삼국유사와 함께 일연선사의 역사적 발자취와 함께 경주 석굴암 보다 100년을 앞서는 군위삼존석굴 등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고장이기 때문에 이 두 곳의 유적지 탐방. 그리고 일제시대 때 지어진 화본역과 1000년 세월에도 10리의 야트막한 돌담과 고택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서는 대율리 한밤마을(일명 돌담마을)을 탐방하게 되었다.

이 네 곳의 탐방지를 방문하며 이동 경로나 주변에 산재해 있는 명소 나 문화유산인 학소대, 지보사, 김수환추기경 생가, 덕림사, 대율리 석불입상 등도 함께 탐방을 하였다. 그러나 화본역 인근 폐교된 산성중학교를 활용하여 60~70년대의 거리와 생활광경 등을 재현하여 꾸며 놓은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부모와 함께 찾은 많은 어린이 탐방객들로 복잡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입장료(\2,000)를 받고 있어 탐방을 포기하였다.

이번 군위 방문은 하루 동안의 탐방이었지만 나름대로 내실있는 탐방이었으며, 경북 군위편은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를 찾아서'란 명제로 관광명소별로 나누어 총 5편으로 작성을 한다.

 

                  ▲ 대율리 한밤마을의 돌담

 

【 군위(軍威) 소개 】

경상북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서간 70.4km, 남북간 56.2km로 남북이 짧고 동서가 길다. 지세는 곳곳에 산악의 기복이 심하여 평탄치 못하다.

남쪽에는 팔공산이 자리하여 대구광역시와 접경하면서 산맥이 동서로 긴 성벽과 같이 뻗어 있고 그 산줄기가 동으로 뻗어 청송군 및 영천시와 군계를 지어 분수령을 형성하고 있다.

군위군 중앙을 관통하는 위천은 군위군의 극동인 고로면 학암리에서 발원하여 북단인 소보면 사리리를 지나 의성군 비암면에서 쌍계천과 합류하여 낙동강 본류로 흐르고, 위천 지류인 남천은 팔공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부계,효령 양면을 거쳐 효령면 병수리에서 위천에 합류되며, 하천유역의 양안에 농경지가 형성되어 군위,소보,효령,의흥 등의 평야지대는 관개가 용이하고 토질은 사양토로 비옥하여 농경에 적합하다.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나 평균기온이 여름에는 23.9ºC이고, 겨울에는 영하 1.2ºC정도로서 한서의 차가 심하며, 산악에는 수목이 적어서 기후의 난화조절이 잘 되지 않고 하기에는 한밭과 수해가 잦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여담국, 소등붕국 등 부족국가를 형성하였고, 삼국시대 신라초에는 노동면혁(여두멱 이라고도 함)으로 불리었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6년(757) 전국에 9주를 설치할 때 군위현, 효령현, 부림현으로 하여 승선군(현 선산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 현종9년(1018)에 군위현, 효령현, 부림현(부계현으로 개명)이 상주목에 속했고, 의흥군은 안동부에 속하였다. 인종21년(1143)에 다시 군위현, 효령현, 부계현이 상주목에서 일선군으로 환속되었으며, 공양왕2년(1390) 효령현이 군위현으로 이속되었으며, 부계현은 의흥군으로 각각 통합하여 감무를 두었다.

조선 태종13년(1413)에는 의흥군을 의흥현으로 격하하고, 고종32년(1896)에는 다시 군위현과 의흥현이 군으로 승격되고, 고종33년(1897) 8월 4일 훈령 제35호로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 군위군과 의흥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부,군,면의 통폐합에 따라 의흥군을 군위군에 8개면을 관할할 때 의성군 소아면(현 인곡,양지,낙전,가암,석산,학암) 일부가 군위군 고로면에 편입되었으며, 1915년 1월 1일 의성군 소문면(현 용대)이 군위군 군위면에 편입되었다.

광복이후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성군 금성면 광현1,2,3동이 군위면에, 선산군 산동면 도산1,2동이 소보면에 편입되어 8개면 177개동이 되었다.

1979년 5월 1일 군위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7개면이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행정개편을 거쳐 2012년 2월 28일 현재 1읍, 7면, 180리가 되었다.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Ⅰ편 : 경주 석굴암보다 앞서 세워진 석굴사원! 제2 석굴암 군위삼존석굴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Ⅱ편 : 민족역사의 1번지! 인각사(麟角寺)와 삼국유사(三國遺史)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Ⅲ편 :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작고 아담한 간이역! 화본역(花本驛)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Ⅳ편 : 천년을 이어온 전통과 정겨운 돌담을 간직한 곳! 대율리 한밤(돌담)마을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Ⅴ편 : 기타 탐방 명소들! 지보사와 김수환추기경 생가

 

【 일 정 표 】2014년 5월 5일(월) ◈ 지보사-김수환추기경 생가-인각사와 학소대-화본역-덕림사 화본리오층석탑-대율리 한밤마을(돌담마을)

 

제Ⅳ편 : 대율리 한밤(돌담)마을 

천년을 이어온 전통과 정겨운 돌담, 그리고 고택이 있는 곳!

 

행정구역상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동인 한밤마을은 율리, 율촌, 일야, 대야 라고도 불리는데, 구전에 의하면 서기 950년경 신천강씨가 살던 이곳에 홍란 이란 선비가 이주해 오면서 대야 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1390년경 홍로 선비가 밤 '夜'자가 좋지 않다고 대율로 고쳐 부른 후 오늘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의홍현 소속이었으마,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위군 부계면이 되었다.

한밤 이란 순수한 우리 말 지명으로 잘 알려진 이곳은 부림홍씨 집성촌으로 영천최씨, 전주이씨 등이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현제 약 250가구 중 홍씨는 1/3도 안된다고 한다. 팔공산 줄기에 둘러 쌓여 있는 분지형 마을로서, 마을 형국을 '옥녀산발형'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선비들이 즐겨 찾고 생활하던 이 마을은 옛 정취의 고가옥과 재실마을의 자연석 돌탑, 숯과 제방 등 문화유적이 산적해있는 전통문화마을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 돌담길이다.

어른 허리에서 가슴 높이 사이의 돌담은 정겨운 리듬으로 이어지고, 돌단 위로 그리 크지도 않은 산수유 열매가 붉게 불 탄다.

 

 

 

 

1000년 세월에도 전통가옥과 10리의 돌담이 옛 모습대로 보존된 한밤마을 입구 3,300㎡가 넘는 수백년 된 소나무들의 풍광이 그림같은 솔숲과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32년 중창되어 현재에 이르는 마을의 대소사를 치루던 대청, 마을 한 가운데에 위치한 석불입상, 250여년 전 건립 당시 의흥현 최고의 가옥으로 상매댁, 쌍백당으로 불리는 남천고택과 부림홍씨 종가집 등이 있다.

 

 

 

                  ▲ 대율리 한밤마을의 10리 돌담길

 

「 10리 돌담길 」

1930년 큰 홍수 때 산사태로 마을에 쓸려 온 팔공산 계곡의 강돌들로 담을 쌓기 시작한 것이 대율리 한밤마을을 아름다운 돌담마을로 만들었다,

엄청난 돌을 버릴 수 없어 고민하던 중 자연스럽게 돌담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돌담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 대율리 한밤마을의 돌담 

                  ▲ 대율리 한밤마을 남천고택(상매댁) 뒷담의 노송 2그루

 

꾸밈없이 1000년을이어 온 집들과 마을 입구 대율초등학교 앞에 200년이 넘는 소나무, 돌담 사이의 고색창연한 이끼와 담쟁이 등 마을 곳곳의 소담하고 정감있는 풍경들이 역사와 함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 군위 대율리 대청(軍威 大栗里 大廳)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1991년05월14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

 

 

 

                  ▲ 대율리 한밤마을의 대청, 정면 모습(사진 上)

                     대청의 측면 모습(사진 下左)과 현판들(사진 下右)

 

조선 전기에 지어진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으며, 지금의 것은 인조10년(1632)에  다시 지어 학교처럼 사용되었다.

효종2년(1651)과 숙종32년(1705)에 각각 중수된바 있으며, 1992년에 완전 해체, 보수되었다. 이때에 기와와 부식재가 교체되었고, 기단도 보수되었다. 이 마을 전통가옥들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율리 전 지역이 사찰터였고 이 대청은 대종각 자리였다고 한다.

 

 

 

                  ▲ 대율리 한밤마을의 대청의 상부가구(사진 上)

                     대청의 우물마루(사진 下)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서쪽 퇴간에만 간주가 서 있다. 현재의 바닥에는 전부 우물마루를 깔았고 사면이 개방되어 있지만, 중창 당시에는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옆에 방을 둔 형태로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기둥은 둥글고 누처럼 생긴 집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조선 중기 건축물로서 기둥위에 초익공의 수법이나 포대공 등에서 나름대로 특징을 보이고 있다.

현재는 마을의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 군위 대율리 상매댁(軍威 大栗里 上梅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7호(1991년03월1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68

 

 

 

부림 홍씨의 집성촌인 대율리에 있는 주택으로 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이다. 쌍백당이라고도 불리는데 250여년 전에 9세조 고려문하사인 경재 홍선생의 후손인 홍우태 선생의 살림집으로 세웠다고 전한다.

 

 

                  ▲ 대율리 상매댁의 사랑채인 쌍화당(쌍백당)

 

현재 건물은 그 뒤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 대청 상부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그 시기는 현종2년(1836)경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독특한 배치 형태인 '흥(興)'자 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나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어 현제는 'ㄷ'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 사당이 남아 있다.

 

 

                  ▲ 대율리 상매댁의 2층 구조의 다락방이 설치된 안채

 

안채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헛간,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청 위에는 다락을 두어 과일 등을 보관하기도 하고 여름철에 피서의 용도로 쓰기도 하였다.

쌍백당이란 당호를 갖고 있는 사랑채는 2칸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앞면에만 원기둥을 두고 난간을 둘렀다.

사당은 별도의 담장으로 구성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그 예를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독특한 배치 형태이나 일부가 훼철되어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운 점이다. 또한 대청 위에 다락을 두거나 헛간 위에 다락을 둔 특이한 형태도 눈여겨 볼만한 구조로, 조선 후기에 보이는 실용주의 개념을 건축에 도입한 예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 대율리 상매댁 입구(사진 左)와 대문 안의 안내문(사진 右)

 

KBS '1박2일' 촬영지였으며, 현재 민박과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어 손님 외에는 출입을 연격히 금지하고 있다.

 

♧♧ 군위 대율리 석불입상(軍威 )

*보물 제988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691

 

 

전통문화마을인 '한밤마을'의 한 가운데 위치한 개인 소유의 작은 절인 대율사의 단칸 보호각인 용화전에 모셔진 통일신라시대 석불입상이다.

자연석의 둥근 대좌 위에 높이 2.65m인 이 불상은 광배는 떨어지고 없으나 불신은 잘 보존되어 있다.

민머리 위에 있는 낮고 넓은 머리(옥계), 둥근 얼굴, 아담한 눈과 입, 어깨까지 내려진 긴 귀 등에서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손끝이 위로 향하도록 펴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몸쪽으로 하여 가슴에 대고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팔목에 새겨진 옷주름은 곧게 서 있는 긴 하체와 함께 당당하지만 경직된 인상을 풍긴다. 다소 딱딱한 면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얼굴 등을 통해 세련되고 당당한 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