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軍威)를 찾아서 ▶
이번 군위 방문은 당일 탐방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고유의 사상인 화랑도와 함께 민족의 주체성을 일깨우고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일연스님의 삼국유사가 탄생된 곳인 국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 아래 인각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근간을 밝힌 삼국유사와 함께 일연선사의 역사적 발자취와 함께 경주 석굴암 보다 100년을 앞서는 군위삼존석굴 등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고장이기 때문에 이 두 곳의 유적지 탐방. 그리고 일제시대 때 지어진 화본역과 1000년 세월에도 10리의 야트막한 돌담과 고택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서는 대율리 한밤마을(일명 돌담마을)을 탐방하게 되었다.
이 네 곳의 탐방지를 방문하며 이동 경로나 주변에 산재해 있는 명소 나 문화유산인 학소대, 지보사, 김수환추기경 생가, 덕림사, 대율리 석불입상 등도 함께 탐방을 하였다. 그러나 화본역 인근 폐교된 산성중학교를 활용하여 60~70년대의 거리와 생활광경 등을 재현하여 꾸며 놓은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부모와 함께 찾은 많은 어린이 탐방객들로 복잡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입장료(\2,000)를 받고 있어 탐방을 포기하였다.
이번 군위 방문은 하루 동안의 탐방이었지만 나름대로 내실있는 탐방이었으며, 경북 군위편은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를 찾아서'란 명제로 관광명소별로 나누어 총 5편으로 작성을 한다.
【 군위(軍威) 소개 】
경상북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서간 70.4km, 남북간 56.2km로 남북이 짧고 동서가 길다. 지세는 곳곳에 산악의 기복이 심하여 평탄치 못하다.
남쪽에는 팔공산이 자리하여 대구광역시와 접경하면서 산맥이 동서로 긴 성벽과 같이 뻗어 있고 그 산줄기가 동으로 뻗어 청송군 및 영천시와 군계를 지어 분수령을 형성하고 있다.
군위군 중앙을 관통하는 위천은 군위군의 극동인 고로면 학암리에서 발원하여 북단인 소보면 사리리를 지나 의성군 비암면에서 쌍계천과 합류하여 낙동강 본류로 흐르고, 위천 지류인 남천은 팔공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부계,효령 양면을 거쳐 효령면 병수리에서 위천에 합류되며, 하천유역의 양안에 농경지가 형성되어 군위,소보,효령,의흥 등의 평야지대는 관개가 용이하고 토질은 사양토로 비옥하여 농경에 적합하다.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나 평균기온이 여름에는 23.9ºC이고, 겨울에는 영하 1.2ºC정도로서 한서의 차가 심하며, 산악에는 수목이 적어서 기후의 난화조절이 잘 되지 않고 하기에는 한밭과 수해가 잦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여담국, 소등붕국 등 부족국가를 형성하였고, 삼국시대 신라초에는 노동면혁(여두멱 이라고도 함)으로 불리었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6년(757) 전국에 9주를 설치할 때 군위현, 효령현, 부림현으로 하여 승선군(현 선산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 현종9년(1018)에 군위현, 효령현, 부림현(부계현으로 개명)이 상주목에 속했고, 의흥군은 안동부에 속하였다. 인종21년(1143)에 다시 군위현, 효령현, 부계현이 상주목에서 일선군으로 환속되었으며, 공양왕2년(1390) 효령현이 군위현으로 이속되었으며, 부계현은 의흥군으로 각각 통합하여 감무를 두었다.
조선 태종13년(1413)에는 의흥군을 의흥현으로 격하하고, 고종32년(1896)에는 다시 군위현과 의흥현이 군으로 승격되고, 고종33년(1897) 8월 4일 훈령 제35호로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 군위군과 의흥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부,군,면의 통폐합에 따라 의흥군을 군위군에 8개면을 관할할 때 의성군 소아면(현 인곡,양지,낙전,가암,석산,학암) 일부가 군위군 고로면에 편입되었으며, 1915년 1월 1일 의성군 소문면(현 용대)이 군위군 군위면에 편입되었다.
광복이후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성군 금성면 광현1,2,3동이 군위면에, 선산군 산동면 도산1,2동이 소보면에 편입되어 8개면 177개동이 되었다.
1979년 5월 1일 군위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7개면이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행정개편을 거쳐 2012년 2월 28일 현재 1읍, 7면, 180리가 되었다.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Ⅰ편 : 경주 석굴암보다 앞서 세워진 석굴사원! 제2 석굴암 군위삼존석굴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Ⅱ편 : 민족역사의 1번지! 인각사(麟角寺)와 삼국유사(三國遺史)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Ⅲ편 :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작고 아담한 간이역! 화본역(花本驛)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Ⅳ편 : 천년을 이어온 전통과 정겨운 돌담을 간직한 곳! 대율리 한밤(돌담)마을
-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Ⅴ편 : 기타 탐방 명소들! 지보사와 김수환추기경 생가
【 일 정 표 】2014년 5월 5일(월) ◈ 지보사-김수환추기경 생가-인각사와 학소대-화본역-덕림사 화본리오층석탑-대율리 한밤마을(돌담마을)
◀ 제Ⅴ편 : 기타 탐방 명소들 ▶
세 가지 보물을 지녔다는 지보사!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 김수환추기경 생가
【 지보사(持寶寺) 】
경상북도 군위군 상곡리 선방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존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경북 영천시 소재)의 말사이다.
문무왕13년(673)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부터 맷돌, 가마솥, 청동향로 등 세 가지 보물을 지니고 있었다 하여 지보사라 불렀다. 맷돌은 아무리 갈아도 물만 부으면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 절대 닳지 않고, 가마솥은 사람 열 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컸으며, 청동향로는 오색으로 만들어진 귀한 향로였다고 한다. 그러나 창건이후 근대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며, 보물의 행방 또한 알길이 전혀 없어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 지보사로 들어가는 나락교(사진 左)와 돌계단길(사진 右)
1942년에는 천오와 동허 스님이 중수하였고, 1972년에는 만오 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대웅전과 2층 누각, 요사채가 있으며, 현판으로는 순조26년(1826)에 만든 지보사등촉계창설기와 효종6년(1655)에 만든 헌답기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682호인 지보사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의 하대면석에는 각 면마다 두 마리의 사자가 조각되어 있고, 상대면석에는 빼어난 팔부신중이 조각되어 있다.
▲ 지보사의 대웅전(사진 上), 2층 누각(사진 中), 부도전(사진 下)
"4대강 사업 같은 무모한 짓을 당장 중단하고, 정부는 진실로 정부답게 '정의의 길'로 가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수많은 생명을 살상하고 국민 혈세를 탕진하는 4대강 사업과 같은 일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자연을 보듬고 보살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4대강 사업 즉각 중단 폐기하라."는 유지를 남기고 2011년 5월31일 소신공양하신 문수 스님이 상주하던 절이다.
◀ 4대강 사업 중단의 유지를 남기고
2011년 5월31일 소신공양 하신
지보사의 문수 스님
♧♧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軍威 持寶寺 三層石塔)
*보물 제682호(1980년09월1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상곡길 233
지보사 경내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높이는 4.2m이며,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아담하고 단정한 탑이다.
기단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구성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고, 기둥 사이에는 무늬를 새겼는데, 아래층에는 사자 모양의 동물상을, 위층에는 팔부중상을 새겨 넣었다.
▲ 기단 아래 층에 새겨진 사자 모양의 동물상과 위층에 새겨진 팔부중상
▲ 1층 몸돌에 새겨 둔 감실 문양
기단을 이루고 있는 돌들이 모두 높아서 다소 우뚝해 보인다. 기단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별도의 관돌을 삽입하여 윗돌을 괴도록 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새겨두어 부처님을 모시는 방(감실)을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별도의 돌을 얹어 구성한 것으로, 밑면에 새겨둔 4단의 받침이 두꺼워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많이 깎여나가고 훼손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을 느끼게 하지만, 조각 수법이 화려하고 외양이 단정한 고려 전기의 우수한 작품이다.
【 김수환추기경 생가(金壽煥樞機卿 生家) 】
*소재지: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번지
2009년02월16일 선종하신 김수환(스테파노, 1922~2009)추기경께서 다섯살 되던 해 이사와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소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사시던 곳이다.
추기경의 집안은 원래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의 양반 가문으로 충청도 땅에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기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의 집안이다. 조부이신 김요한 공은 광신 김씨로 병인박해 때 연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옥중순교했고, 조모 강말손 여사는 남편의 순교 후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갖은 고생에도 교우들의 뒷바라지를 성심으로 하였으며, 당시 유복자로 추기경의 부친이신 영석(요셉)이 태어났다.
김영석은 경상도 사목을 담당하던 김보록 신부(대구교구 설립자)의 일을 도왔으며, 동학난을 만나 경상북도 칠곡 장자동 옹기골로 피신하게 된다. 이때 뮈뗄, 김보록 두 신부의 중매로 대구의 유명한 신자 집안인 달성 서씨 서용서 회장의 딸 중하(마르띠나)와 혼인을 하였다. 이 분인 김수환추기경의 어머니이다.
그 후 왜관 평장목, 김천 지대골의 옹기굴, 대구 남산동을 전전하던 추기경의 부모는 칠곡 신나무골과 선산을 거쳐 1922년 4월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슬하에 6남2녀를 두었는데, 군위에 들어온 해인 1922년 5월8일(음력)에 낳은 막내가 바로 김수환추기경이며, 추기경은 외가에서 태어났다.
추기경이 8살 되던 해 아버지는 해수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었으며, 어려운 형편에서도 이 초가에서 공소를 열었다.
추기경은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지금 대구 카톨릭대릐 전신인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이 집에서 형인 동한(카롤로) 신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신앙과 꿈을 키웠으며, 생전에 가끔 이 집을 찾아와 어린 시절을 회상하였다. - 생가 앞 안내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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