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자연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밀양 제Ⅴ편:풍류와 시정이 넘치는 우리나라 3대 명루! 영남루 일원

왕마구리 2014. 11. 6. 00:50

◀ 자연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밀양(密陽) ▶

 

【 밀양(密陽) 소개 】

경상남도 북쪽에 위치한 밀양은 면적 799.01㎢이며, 2읍, 9면, 5동의 행정구역으로 이루어진 인구 108,289명(2013년10월 현재)의 시이다.

삼한시대 변한 지역으로 신라 경덕왕16년(757) 밀성군, 고려 성종14년(995) 밀주군, 조선 태조원년(1392) 다시 밀성군으로 불리어지다가 태조3년(1394) 밀성부가 되었다.

태종15년(1415) 밀성도호부, 고종32년(1895) 대구부 밀양군,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 1931년 4월1일 밀양군 밀양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9년1월1일 밀양시로 승격되었다.

밀양시는 발길 닿는 곳마다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3대 명루인 영남루(보물 제147호)에서 재약산 사자평, 얼음골(천연기념물 제224호)에 이르기까지 빛나는 문화유산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 밀양 8경(사진 출처:밀양시 홈페이지)

- 영남루 야경 -          

 

- 시례 호박소 -

  

 

- 표충사 사계 -         

 

 - 월연정 풍경 -

 

- 위양못 이팝나무 -                                  - 만어사 운해 -

 

- 종남산 진달래 -       

 

- 재약산 억새 -

 

▣ 밀양의 3대 신비(사진 출처:밀양시 홈페이지)

 

- 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천연기념물 제224호)

 

 

- 국난이 있을 때 땀흘리는 표충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 두드리면 종소리 나는 만어사 경석(천연기념물 제528호)

 

여름 휴가철이 끝나가는 8월 중순 8월15일~17일 연휴기간을 이용하여 1박2일간 밀양 탐방을 실시하였다.

이동거리가 긴 관계로 1박2일간의 일정으로 밀양시 관광명소 전체를 탐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밀양 중부권과 동부권의 중요 관광지 몇 곳을 선택해 탐방을 실시하였다.

탐방한 관광명소는 아래와 같이 탐방 순서대로 총 7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자연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밀양 Ⅰ편 : 억겁의 세월이 빚은 작품! 시례 호박소(詩禮 臼淵)

자연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밀양 Ⅱ편 : 사명대사 호국성지! 사시사철이 수려한 표충사(表忠寺)

자연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밀양 Ⅲ편 : 우리나라 고대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뒷받침해주는 전통사찰! 만어사(萬漁寺)

자연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밀양 Ⅳ편 : 90년 만에 옛 모습을 되찾은 밀양관아

자연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밀양 Ⅴ편 : 풍류와 시정이 넘치는 우리나라 3대 명루! 영남루(嶺南樓) 일원

- 자연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밀양 Ⅵ편 : 조선 전기 대표적 별서정원! 월연대(月淵臺) 일원

자연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밀양 Ⅶ편 : 이축선 전학후묘 병렬식의 특이한 건물배치! 밀양향교(密陽鄕校)

 

【 일 정 표 】2014년 8월 16일(토)~17(일)

◈ 첫째날(08월16일) : 시례 호박소-표충사-만어사

◈ 둘째날(08월17일) : 밀양관아-영남루일원(영남루, 아랑각, 무봉사)-밀양향교-월연정

 

 

제Ⅴ편 : 영남루 일원(嶺南樓 一圓) 

풍류와 시정이 넘치는 우리나라 3대 명루! 영남루

태극나비의 전설이 남아있는 천년 고찰 무봉사

정절을 기린 사당! 아랑각

 

                 ▲ 밀양 영남루

 

밀양강변 영남루 일원에는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중의 하나로 손꼽이는 영남루를 비롯하여,

한국가요계의 거목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생가,

단군을 비롯한 창국 8왕조(고구려,백제,신라,부여,가야의 시조왕과 발해 고왕,고려 태조, 그리고 조선 태조)의 위패를 모신 천진궁,

영남루 앞뜰에 꽃으로 피어난 석화군락,

옛 영남사의 부속 암자였던 태극나비의 전설이 남아있는 천년 고찰 무봉사,

아랑의 정절을 기리는 아랑각 등이 있다.

 

♧♧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

*보물 제147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내일동)

 

 

 

 

 

영남루가 처음 창건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신라 경덕왕때 신라의 5대 명찰의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14년(1365)에 밀양부사 김주가 그 전부터 있었던 작은 누각을 철거하고 규모를 크게 하여 개창하였다고 하며, 현재의 건물은 순조34년(1834)에 실화로 불타 버린 것을 현종10년(1844)에 이인재 부사가 재건한 것으로 평양의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꼐 3대 명루로 일컬어지고 있다.

 

 

                 ▲ 밀양 영남루 누마루에서 바라본 밀양강 주변 전경

 

영남루는 밀양강에 임한 절벽 위 경치 좋은 곳에 깨끗한 밀양강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높은 누각에 올라 바라보는 주변의 경치 또한 수려하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서 간격을 넓게 잡은 높다란 기둥을 사용하였으므로 누마루가 매우 높으며 그 규모가 웅장하다. 좌우에 날개처럼 부속건물이 있어서 층계로 연결된 침류당이 서편에 있고, 능파당이 동편에 이어져 있다.

 

                 ▲ 영남루와 층계로 연결된 서편의 침류당

 

누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기둥사이는 모두 개방하여 사방을 바라보며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으며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귀면을 나타낸 화반을 하나씩 배치하였다.

안둘레의 높은 기둥위에 이중의 들보를 가설하고 천장은 지붕빝이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화려한 단청과 다양한 문양조각이 한데 어우러진 누각에는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의 명필가들의 시문현판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 1843년 당시 이인재 부사의 아들 이증석(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쓴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서예가로부터 불가사의한 필력으로 지칭되고 있다.

 

 

                  ▲ 밀양강변의 영남루 전경

 

『 영남루 경내의 볼거리들 』

♧ 천진궁(天眞宮)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1974년12월28일 지정)

 

 

영남루 경내에 있는 건물로 원래 이곳은 원래 밀양부 객사의 부속 건물이었던 요선관이 있던 자리이다.

효종3년(1652)에 지었으며 공진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조15년(1739)에 다시 지었으며, 헌종10년(1844)에 크게 수리하였다.

1952년 단군봉안회가 생기면서 단군, 삼국의 시조왕, 고려 태조(재위 918~943)의 위패를 모시면서 대덕전이라 하였으나, 1957년에 천진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1층이고,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목조로 된 기와집이다. 기둥 위에는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기단은 낮은 2기단으로 앞면에만 문이 있고, 나머지 3면은 벽으로 되어 있다.

최근에 원래의 문틀에 2중의 문을 덧대어 달았는데, 기법이 미숙하여 기둥의 높이를 전통적 비례에 비해 높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 천진궁에 봉안된 단군과 창국 8왕조의 시조 위패

 

현재 국조 단군이래 창국 8왕조의 시조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중앙 수좌에는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그 동쪽 벽에는 부여, 고구려, 가락, 고려 시조왕의 위패를, 서쪽 벽에는 신라, 백제, 발해, 조선 시조 위패를 차례로 봉안하고 있다.

매년 봄, 가을에 유림기관인 단군숭녕회 주관으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제향))

○ 춘계제향 : 음력 3월15일 어천대제(御天大祭)~단군이 세상에 탄신한지 216년만에 다시 하늘로 오른 날

○ 추계제향 : 음력 10월3일 개천대제(開天大祭)~단군이 세상에 탄신한 날

 

♧ 석화(石花)

영남루가 있는 무봉산 일대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흔히 부귀화로 지칭되는 모란과 해당화 무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암반이 풍화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나는 신비한 현상이다.

 

                  ▲ 영남루 앞 마당의 석화

 

국화꽃 모양의 군을 이루고 있는 영남루 앞뜰의 석화는, 특히 비온 후에 그 자태가 선명하고 아름다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석재의 재질이 연한 납석으로 자연적인 영향에 의해 쉽게 부식 또는 훼손되어 보존에 어려움이 있다. 

 

 

                  ▲ 아랑각 정순문 옆의 고목

 

♧♧ 아랑각(阿娘閣)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호(1983년07월20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내일동)

 

 

 

                  ▲ 아랑각의 사당 건물인 아랑사(사진 左)와 외문인 정순문(사진 右)

                  ▲ 아랑사에 봉안된 아랑영정

 

아랑각은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미모가 뛰어난 밀양부사의 외동딸 윤동옥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윤동옥은 유모의 꾀임에 빠져 영남루에 달구경을 갔다가 통인 주기에게 정조를 강요당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아랑전설은 우리나라 고전 소설 중에서 가장 오래됨 것으로 장화홍련전을 탄생시킨 모태가 된다.

이 지방 사람들은 아랑의 넋을 위로하고 뭇여성의 본보기로 삼고자 해마다 4월16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아랑영정은 1963년 10월9일 육영수 여사가 봉안한 것이다.

 

                  ▲ 아랑사 앞에서 바라본 정순문 후면과 앞을 흐르는 밀양강

 

♧♧ 무봉사(舞鳳寺)

신라시대 5대 명사 중 하나인 영남사의 부속 암자로 법조라는 고승이 창건하였다는 설화와 함께 신라 혜공왕(재위 765~780)이 법조로부터 받은 불은을 갚기 위해 가람을 짓고, 무봉암으로 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문헌상의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

 

                  ▲ 무봉사 대웅전

 

강 언덕에 우뚝 솟은 영남루와 밀양강과의 조화로 그림같은 풍경을 지닌 운치있는 사찰로 지닌 운치있는 사찰로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았으며 경내에 소재한 보물 제493호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이 유명하다.

밀양의 지세가 봉황이 춤추는 형국이라 하여 무봉사로 이름하였다 전한다.

 

                  ▲ 영남루에서 무봉사로 들어가는 길

 

                  ▲ 무봉사 경내에서 바라본 밀양강 일대

 

 

▣ 무봉사 태극나비 전설

어느 날 춘삼월도 아닌 음력2월에 갑자기 한 무리의 나비가 떼를 지어 날아와 무봉산을 뒤덮으며 몇일 동안 날아다니더니 갑자기 흔적도 없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무봉사를 감싸고 날아 다녔던 나비의 날개에는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이상하게 여겼고, 그런 일이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가 건국되면서 어지럽던 사회가 마침내 태평성대를 맞게 되니, 가끔 이 태극나비가 무봉산에 나타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라에 경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 초에는 이 나비를 보호하라는 왕명과 함께 국성접(國成蝶)이라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비는 조선조 500년과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한번도 나타나지 않다가 1945년 8월 15일 오후 3시경 태극나비 한 마리가 무봉사 법당에 날아들었다고 한다.

 

 

                  ▲ 무봉사 경내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

                  ▲ 무봉사 경내로 들어서는 두번째 문인 무량문

 

♧ 무봉사 석조여래좌상(舞鳳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493호(1969년06월24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영남루1길 16-11(내일동)

 

 

무봉사는 영남루의 전신인 영남사의 부속 암자로 전해오고 있으나 문헌상의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고 다만 이 불상과 광배의 조각수법과 양식이 신라통일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됨에 따라 신라시대의 명찰로 전해지는 영남사의 유물로 추정된다.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불이다. 불고 97cm의 상호가 원만한 석가여래좌상으로서 나발 위의 육계가 큰 편이도, 두 눈썹 사이에 백호를 끼었으며, 길상좌로 가부좌를 하고 항마촉지의 수인을 하고 있다.

광배석은 불상과 같은 재질의 화강석으로 된 보주형광배인데, 상부가 앞쪽으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구부러져 있고 당초문, 연화문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다. 광배의 뒷면에는 연화좌 위에 약사여래좌상을 양각하였는데 소발의 머리에 상호는 원만한 편이나 많이 마멸되어 이목구비의 인상이 뚜렷하지 못하다.

이 불상의 특징으로는 채색을 한 흔적이 잇어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