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 건강휴양촌 정남진 장흥(長興) ▶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부터 동남쪽에 이르는 경계는 고지대로 화순, 보성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득량만이 접하고 안양, 용산, 대덕,회진면 등 4개 면과 관산읍은 해안선에 연해있어 고흥군, 완도군과 경계를 이룬다.
북부에서 서남쪽 경계는 산악지대로 영암, 강진군과 경계를 이루고 용반들, 부산들, 한들평야 등 동북쪽의 보성강 유역과 남부의 득량만에 흐르는 대소하천 유역에 평야가 산재해 있다.
북동쪽으로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지나며, 유치면의 삼계봉(503.9m)을 거점으로 동남으로는 장평면의 봉미산, 벽옥산(479.2m) 등에 연결되고, 중앙으로는 유치면의 가지산(509.9m), 용두산, 보성군과 경계인 장흥면의 제암산(807m), 안양면의 사자산(666m), 곰치산 등에 연결되어 있다.
서남으로는 유치면의 민들고랑(479.9m), 국사봉(613.3m), 부산면의 수인산(516.2m), 용산면의 부용산(609m), 관산읍의 천관산(723.1m)과 양암봉(464.9m)으로 연결되어 남북 일대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강진군의 3대 하천의 하나인 탐진강은 영암군 금정산에서 발원하여 유치, 부산, 장흥에 이르기까지 대소 20개 하천이 합류되어 장흥군에서 예양강(일명 금강)이라고 하고 사인암에 이르러 영암강 월출산에서 발원한 금강천과 합류하여 강진만으로 흐른다. 강 유역에는 용반, 부산, 한들 등의 비옥한 평야가 전개되어 있어 농산물이 풍부하여 장흥군의 명산품의 하나인 은어가 여름철에 서식하고 있다.
기타 대소 하천들 중 동북쪽 장평면의 9개 하천은 보성강으로 흘러들고, 남쪽의 남상천의 16개 하천은 득량만으로 흐르고 있다.
정남진은 정동진이 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에 위치한 나루라는 유래를 가진 것에 착안하여 장흥군에서 발굴한 지역브랜드로서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내려오면 도착하는 해변이며 북쪽의 가장 추운 지방인 중강진과 일직선상에 있다.
그 좌표점은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에 표시되어 있다.
이번 장흥 여행은 남쪽 끝 서울의 정남쪽에 위치하여 이동거리가 멀고,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지정된 천관산 산행이 포함되어 있어 2박3일로 실시가 되었다. 첫째날 숙소는 다음 날 천관산 산행을 위해 산행들머리와 가까운 산림청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정하였으며, 장흥의 관광명소 등의 탐방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둘째날 늦은 시간이라도 장흥 탐방을 1박2일으로 마치고 떠날 예정이었으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징흥의 별미인 징흥삼합(득량만의 키조개와 새조개, 표고버스, 그리고 한우 쇠고기 구이)을 맛보기 위해 장흥읍내로 이동, 숙소를 정하고 토요시장에서 저녁에는 삼합, 다음 날 아침은 3대곰탕 등의 별미를 즐기고 나머지 관광명소를 탐방하였다.
사흘간의 장흥탐방이라 관광명소만 탐방하지 않고 먹거리 탐방으로 둘째날에 '장흥삼합'으로 저녁식사를 하였고, 세째날 아침식사로는 '3대곰탕',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관산읍 '천관다원(T.061-867-7811)'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차인 '청태전(떡차)'를 음미하고 사흘간의 장흥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 호남 5대 명산 천관산의 자생차! 청태전 」
우리 고유의 전통차로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장흥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유일한 차이며 떡차의 일종이고 고려시대에 전국 19개소 다소(茶所) 중 13개소가 장흥에 존재했을 만큼 장흥은 차산업이 성행했던 지역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장흥차의 품질이 으뜸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경세유표, 가오고락과 임하필기에 장흥의 떡차(청태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자생찻잎을 정통제다법으로 제다한 청태전은 만든 직후 녹차의 성질을 지니고 있으나, 6개월여의 숙성과정을 거쳐 담백하고 독특한 맛과 아름다운 향을 품은 부드러운 발효차이다. 중국의 보이차와 비교가 되곤 한다.
장흥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보림사와 천관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천관산은 테마별 분류 '100대명산'에, 그리고 기타 관광명소들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보림사에는 다수의 국가지정문화재를 포함하여 많은 중요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어 두 편에 나누어 소개를 하는 등 총 6편으로 게재를 하게 된다.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1>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2>
- 정남진 장흥(長興) Ⅱ편 : 신라시대 창건된 고찰! 천관사(天冠寺)<2>
- 정남진 장흥(長興) Ⅲ편 : 호남의 5대 명산! 천관산(天冠山)
- 정남진 장흥(長興) Ⅳ편 : 장흥의 천년기념물들! 옥당리 효자송과 삼산리 후박나무
- 정남진 장흥(長興) Ⅴ편 : 장흥의 문화재들! 장흥향교, 사인정 및 방촌리 석장승
【 일 정 표 】2015년 2월 12일(목)-14일(토) 2박3일
◈ 첫째날(2/12) 오후 : 보림사
◈ 둘째날(2/13) : 천관산 산행-장흥 방촌리 석장승-장흥 옥당리 효자송(천연기념물)-장흥 삼산리 후박나무(천연기념물)-정남진오산도전망대
◈ 세째날(2/14) : 장흥향교-사인정-탑산사-장흥존재고택(위계환가옥)-장흥죽헌고택(위성룡가옥)-천관사
◀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2> ▶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더불어 동양 3보림의 하나!
【 보림사 소개 】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가짓ㄴ 계곡에 위치한 천년고찰이다.
원표대덕이 터를 잡은 759년에는 초암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듯하며, 860년경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하여 선종 도입과 동시에 멘 먼저 선종이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졌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자세하지 않지만 인종 때 왕사인 원응국사 학일이 잠시 머물렀고, 송광사의 6세 국사 원감국사 충지(1226~1293), 각진국사 복구 등 대선사들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어 선맥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14년(1414)에 실시한 사찰정리 때 장흥지역의 자복사로 지정되어 법등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후 효종8년(1657)에는 국가 수호사찰이 되었으며, 영조2년(1726)부터 나라의 보호를 받았다.
그 뒤 끊임없는 중창과 중수를 거쳐 옛 보림의 모습은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의 대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공비들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며, 도주하면서 불을 놓아 대웅전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고 천왕문, 사천왕, 외호문만 남았다.
불타버린 대웅전은 서향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팔작지붕의 큰 건물이었다. 외관과는 다리 내부는 2층까지 통해서 한 방으로 만들고, 중앙 단상에는 금동석가여래상과 양협시불을 안치하였는데, 구조 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수한 건물이었으며, 이후 주민들은 대적광전을 다시 지어 대웅전에 있었던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적광전과 천왕문, 영각, 요사채 등이 있다. 사천왕문 안에 봉안된 사천왕상은 정조4년(1780)에 조성된 국내 목각상의 대표적인 것으로, 최근 중수하여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나, 복장 속의 비장품은 도굴꾼들에 의하여 망가진 상태로 방치되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44호인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 2점의 국보와 8점의 보물, 그리고 13점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가 남아 있어 역사의 흐름과 한국 불교미술사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보림사에는 선승들이 즐겨 들었던 작설차가 특산품으로 전한다.
◈ 보림사의 문화재들
1)국가지정문화재(국보)
-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 : 국보 제44호
-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국보 제117호
2)국가지정문화재(보물)
- 보림사 동승탑 : 보물 제155호
- 보림사 서승탑 : 보물 제156호
- 보림사 보조선사탑 : 보물 제157호
-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 보물 제158호
- 월인석보 권제25 : 보물 제745-9호
- 금강경삼가해 권제1 : 보물 제772-3호
-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권9-10 : 보물 제1252호
-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 보불 제1254호
3)전라남도 유형문화재
- 장흥 전 의상암지 석불입상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1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계초심학인문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고봉화상 선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금강반야론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대전화상 주심경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8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몽산화상 육도보설 2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불설 삼십이장경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0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육경합부 6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1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언해판화 관계 불서 16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2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진언의식 관계 불서 84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3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선존불서 47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경전불서 40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보림사는 천년고찰이지만 당우들이 한국전쟁 당시 모두 불타버려 옛 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목조사천왕상 등 조각품과 승탑, 탑비, 석탑 및 석등 등 석조물, 사천왕상 복장유물인 많은 고서적류 등 많은 문화재가 전해지고 있는 사찰이다. 현존하는 건물들은 옛 자료들을 참고하여 일부 복원하여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많은 문화재들이 현존하는 관계로 보림사의 문화재들을 2편으로 나누어 아래와 같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1>에서는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국보 제44호), 동,서 승탑, 보조선사탑, 그리고 보조선사탑비 등 석조 문화재들을 소개하고,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2>에서는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보림사 목조사천왕상과 현존하는 당우들, 그리고 목조사천왕상에서 출토된 복장유물과 전적류 등을 소개하기로 한다.
♧ ♧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長興 寶林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국보 제117호(1963년02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의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로 만든 불상으로, 현재 대좌와 광배를 잃고 불신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불상의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2년(858) 무주장사(지금의 광주와 장흥)의 부관이었던 김수종이 시주하여 1년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시주자인 김수종이 불상을 헌납한 장선사는 바로 선종9본산의 하나인 보림사문파를 연 보조국사이므로, 이 불상은 선사상과 화엄사상의 융합에 의하여 만들어진 비로자나불상임을 알 수 있고 이후 크게 유행하는 비로자나불상의 시조격이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헌안왕3년(859)에 불상이 완성되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어서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서 불상편년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9세기 후반기 철불 유형의 확실한 첫 예이자 새로운 양식의 선구적인 걸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달걀형의 얼굴에는 약간 살이 올라 있다. 오똑한 콧날, 굳게 다문 입 등에서 약간의 위엄을 느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다소 추상화된 모습이다.
통일신라시대(8세기)의 불상에 비해 긴장감과 탄력성이 줄어들었고,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 앞에서 U자형으로 모아지며, 다시 두 팔에 걸쳐 무릎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옷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지만 탄력을 잃은 모습이다. 이런 형태의 표현은 신라 불상에서 보여주던 이상적인 조형감각이 후퇴하고 도식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9세기 후반 불상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은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이 작품을 만든 연대가 확실하여 당시 유사한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걸쳐 유행한 철로 만든 불상의 첫번째 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봉안된 대적광전
♧ ♧ 장흥 보림사 목조사천왕상(長興 寶林寺 木造四天王像)
*보물 제1254호(1997년06월12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상을 세워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동방 지국천왕과 북방 다문천왕이, 왼쪽에는 남방 중장천왕과 서방 광목천왕이 위치하고 있다.
동방 지국천왕은 호화롭게 장식된보관을 쓰고 분노한 표정을 하였으며, 복장은 갑옷과 천의를 입고 있다. 건장한 체구에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왼손은 칼끝을 받쳐들고 있다.
북방 다문천왕은 높직한 보관을 쓰고 미소를 띤 인자한 모습으로 선비형의 눈썹과 긴 턱수염에서 부드러운 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비파를 들고 있으며, 발 아래에는 힘에 겨운 듯 고통스러워 하는 악귀가 왼쪽 다리를 받쳐들고 있다.
남방 중장천왕으 굳게 다문 입과 함께 근엄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고,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무엇인가 쥐고있는 듯한 자세만을 취하고 있다. 당당해 보이는 신체는 수호신으로서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서방 광목천왕은 부릎뜬 눈에 입을 벌리고 소리지르는 듯한 위엄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에는 깃발을 잡고 왼손에는 무엇인가 들고 있었던 모습인데 보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사천왕상 대부분이 중국식 갑옷에 각기 다른 상징물을 들고 있으며 발 밑에는 악귀를 밟는 형태상의 특징을 갖는다. 또한 무장한 분노상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보관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귓바퀴를 돌아 어깨 위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자비로운 보살상의 모습이 추가되고 있다. 보림사의 사천왕상은 이러한 특성을 가장 앞서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적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조성시기는 천왕문에 걸린 목판과 '보림사중창불사기록'에 의하여 중종10년(1515)에 조성되고 이후 2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림사 사천왕상은 현존하는 천왕문 목조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라 할 ㅜ 있으며, 각 부의 조각이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기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 ♧ 장흥 전의상암지 석불입상(長興 傳義湘庵址 石佛立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1호(1998년02월05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원래 전라남도 장흥읍 제암산 중턱에 있는 의상암 절터에 있던 것인데, 1975년 장흥교도소 앞으로 옮겨졌다가 1994년부터 보림사로 옮겨 미타전에 모셔져 있다.
몸 뒤의 광배와 목 부분에 약간의 파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게 표현되었고 입은 작지만 입술은 두꺼운 편이고 눈은 반쯤 떠있는데 얼굴은 계란형이다. 귀는 길게 늘어뜨려져 있으며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가슴 위까지 U자형 주름을 이루고 있다. 양 팔에 걸쳐진 옷자락은 물결 모양의 주름을 만들면서 무릎까지 길게 드리워졌다. 왼손이 훼손되었지만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미타여래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원만한 얼굴, 높은 머리묶음, 상체의 옷주름 등으로 보아 9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높이는 1.83m이다.
▲ 장흥 전의상암사지 석불입상이 봉안된 보림사 미타전
『 장흥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문화재들 』
♧ ♧ 월인석보 권25(月印釋譜 券二十五)
*보물 제745-9호(1997년06월12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년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28년(1446) 소헌왕후 심씨가 죽자 세종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세조)에게 명하여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곧 '석보상절'이다. 세종29년(1447)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석보는 완질이 현재 전하지 않으므로 전권의 수량은 확인할 수 없다.
월인석보 권25의 편찬 체제는 먼저 '월인천강지곡'을 배열하고 이어 여기에 해당하는 '석보상절'의 내용을 해설형식으로 실었다. 그렇지만 '월인석보' 편찬 때 기존의 '석보상절'의 내용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 아니라 이를 수정,보완하여 여러 경전에서 내용을 첨삭하여 싣고 있다.
이 권25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권의 2장과 일부가 탈락되어 있다. 전체 분량 2/5에 해당되는 전반부는 2~4수로 추정되고, 후반부는 '월인천강지곡' 577~583까지의 7수와 '석보상절' 권24의 내용을 중심으로 싣고 있다.
'월인석보'의 총 권수는 24권 혹은 25권으로 추정되어 왔는데 이번에 권25가 새로이 발견됨에 따라 '월인석보'가 전체 25권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조선전기 한국불교 및 문헌학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맞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 금강경삼가해 권1(金剛經三家解 券一)
*보물 제772-3호(2002년08월05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 '금강경오가해' 중 송나라 야보와 종경, 그리고 조선 전기의 고승인 기화 3인의 주석을 뽑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성종13년(1482)에 세조의 비인 자성대왕대비의 명에 의하여 본문의 큰 글씨는 정축자로, 풀이 부분의 중간 끌씨와 작은 글씨는 을해자로 찍어낸 활자본이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워 찍어낸 것을 말하며, 정축년에 찍어낸 것을 정축자본, 을해년에 찍어낸 것을 을해자본이라고 한다.
책 끝부분에 있는 한계희와 강희맹의 글에 의하면, 세종의 명을 받아 문종과 세조가 번역을 하였으나 교정을 마치지 못했던 것을 자성대비가 고승 하조에게 다시 교정하게 하여 300부를 찍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경의 간행이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왕실사업으로 계승되었다는 점과 함께 한글의 표기형식이 혼용되어 있어 한글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권9~10(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 券九~十)
*보물 제1252호(1997년06월12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자비도량참법은 경전을 읽으면서 죄를 참회하는 불교의식집을 말하며, 이를 수행하면 영험을 받을 수 있어 죄가 없어지고 복이 생긴다고 한다. 나아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구제하여 극락으로 인도함으로써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공덕 기원의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자비도량참법'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착오가 생기고 잘못 전해지자 여러 곳ㅇ들이 다시 바르게 교정한 것으로, 10권 가운데 권 9와 10이다. 나무에 새겨 찍어낸 목판본으로 2권이 한 책으로 되어 있다.
세종29년(1447)에 김구덕의 아들과 명빈 설월헌인 등이 태종, 원경왕후, 소헌왕후 그리고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새긴 것을 세조8년(1462)에 간경도감(세조7년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다시 찍어 낸 것이다.
이 책은 이와 유사한 판본의 간행연대 추정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조선초 불교의식 연구와 간경도감의 성격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 장흥 보림사의 전각들 』
♧ 한국전쟁에서도 불타지 않고 남은 장흥 보림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들
▲ 보림사 외호문
▲ 보림사 사천문
♧ 기타 전각들
▲ 보림사 대웅보전과 명부전
▲ 보림사 대웅보전(사진 左)과 명부전(사진 右)
▲ 보림사 조사전과 미타전
▲ 보림사 조사전(사진 左)과 범종각(사진 右)
▲ 보림사 요사채(사진 上)
보림사 앞마당의 우물(사진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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