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보림사(寶林寺)<1>

왕마구리 2015. 2. 21. 15:51

◀ 녹색 건강휴양촌 정남진 장흥(長興)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부터 동남쪽에 이르는 경계는 고지대로 화순, 보성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득량만이 접하고 안양, 용산, 대덕,회진면 등 4개 면과 관산읍은 해안선에 연해있어 고흥군, 완도군과 경계를 이룬다.

북부에서 서남쪽 경계는 산악지대로 영암, 강진군과 경계를 이루고 용반들, 부산들, 한들평야 등 동북쪽의 보성강 유역과 남부의 득량만에 흐르는 대소하천 유역에 평야가 산재해 있다.

북동쪽으로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지나며, 유치면의 삼계봉(503.9m)을 거점으로 동남으로는 장평면의 봉미산, 벽옥산(479.2m) 등에 연결되고, 중앙으로는 유치면의 가지산(509.9m), 용두산, 보성군과 경계인 장흥면의 제암산(807m), 안양면의 사자산(666m), 곰치산 등에 연결되어 있다.

서남으로는 유치면의 민들고랑(479.9m), 국사봉(613.3m), 부산면의 수인산(516.2m), 용산면의 부용산(609m), 관산읍의 천관산(723.1m)과 양암봉(464.9m)으로 연결되어 남북 일대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강진군의 3대 하천의 하나인 탐진강은 영암군 금정산에서 발원하여 유치, 부산, 장흥에 이르기까지 대소 20개 하천이 합류되어 장흥군에서 예양강(일명 금강)이라고 하고 사인암에 이르러 영암강 월출산에서 발원한 금강천과 합류하여 강진만으로 흐른다. 강 유역에는 용반, 부산, 한들 등의 비옥한 평야가 전개되어 있어 농산물이 풍부하여 장흥군의 명산품의 하나인 은어가 여름철에 서식하고 있다.

기타 대소 하천들 중 동북쪽 장평면의 9개 하천은 보성강으로 흘러들고, 남쪽의 남상천의 16개 하천은 득량만으로 흐르고 있다.

정남진은 정동진이 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에 위치한 나루라는 유래를 가진 것에 착안하여 장흥군에서 발굴한 지역브랜드로서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내려오면 도착하는 해변이며 북쪽의 가장 추운 지방인 중강진과 일직선상에 있다.

그 좌표점은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에 표시되어 있다.

 

이번 장흥 여행은 남쪽 끝 서울의 정남쪽에 위치하여 이동거리가 멀고,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지정된 천관산 산행이 포함되어 있어 2박3일로 실시가 되었다. 첫째날 숙소는 다음 날 천관산 산행을 위해 산행들머리와 가까운 산림청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정하였으며, 장흥의 관광명소 등의 탐방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둘째날 늦은 시간이라도 장흥 탐방을 1박2일으로 마치고 떠날 예정이었으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징흥의 별미인 징흥삼합(득량만의 키조개와 새조개, 표고버스, 그리고 한우 쇠고기 구이)을 맛보기 위해 장흥읍내로 이동, 숙소를 정하고 토요시장에서 저녁에는 삼합, 다음 날 아침은 3대곰탕 등의 별미를 즐기고 나머지 관광명소를 탐방하였다.

 

사흘간의 장흥탐방이라 관광명소만 탐방하지 않고 먹거리 탐방으로 둘째날에 '장흥삼합'으로 저녁식사를 하였고, 세째날 아침식사로는 '3대곰탕',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관산읍 '천관다원(T.061-867-7811)'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차인 '청태전(떡차)'를 음미하고 사흘간의 장흥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 호남 5대 명산 천관산의 자생차! 청태전 」

우리 고유의 전통차로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장흥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유일한 차이며 떡차의 일종이고 고려시대에 전국 19개소 다소(茶所) 중 13개소가 장흥에 존재했을 만큼 장흥은 차산업이 성행했던 지역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장흥차의 품질이 으뜸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경세유표, 가오고락과 임하필기에 장흥의 떡차(청태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자생찻잎을 정통제다법으로 제다한 청태전은 만든 직후 녹차의 성질을 지니고 있으나, 6개월여의 숙성과정을 거쳐 담백하고 독특한 맛과 아름다운 향을 품은 부드러운 발효차이다. 중국의 보이차와 비교가 되곤 한다.

 

 

장흥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보림사와 천관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천관산은 테마별 분류 '100대명산'에, 그리고 기타 관광명소들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보림사에는 다수의 국가지정문화재를 포함하여 많은 중요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어 두 편에 나누어 소개를 하는 등 총 6편으로 게재를 하게 된다.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1>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2>

- 정남진 장흥(長興) Ⅱ편 : 신라시대 창건된 고찰! 천관사(天冠寺)<2>

- 정남진 장흥(長興) Ⅲ편 : 호남의 5대 명산! 천관산(天冠山)

- 정남진 장흥(長興) Ⅳ편 : 장흥의 천년기념물들! 옥당리 효자송과 삼산리 후박나무

- 정남진 장흥(長興) Ⅴ편 : 장흥의 문화재들! 장흥향교, 사인정 및 방촌리 석장승

 

 

【 일 정 표 】2015년 2월 12일(목)-14일(토) 2박3일

                             ◈ 첫째날(2/12) 오후 : 보림사

                             ◈ 둘째날(2/13) : 천관산 산행-장흥 방촌리 석장승-장흥 옥당리 효자송(천연기념물)-장흥 삼산리 후박나무(천연기념물)-정남진오산도전망대

                             ◈ 세째날(2/14) : 장흥향교-사인정-탑산사-장흥존재고택(위계환가옥)-장흥죽헌고택(위성룡가옥)-천관사

 

◀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1> ▶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더불어 동양 3보림의 하나! 

 

【 보림사 소개 】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가짓ㄴ 계곡에 위치한 천년고찰이다.

원표대덕이 터를 잡은 759년에는 초암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듯하며, 860년경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하여 선종 도입과 동시에 멘 먼저 선종이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졌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자세하지 않지만 인종 때 왕사인 원응국사 학일이 잠시 머물렀고, 송광사의 6세 국사 원감국사 충지(1226~1293), 각진국사 복구 등 대선사들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어 선맥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14년(1414)에 실시한 사찰정리 때 장흥지역의 자복사로 지정되어 법등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후 효종8년(1657)에는 국가 수호사찰이 되었으며, 영조2년(1726)부터 나라의 보호를 받았다.

그 뒤 끊임없는 중창과 중수를 거쳐 옛 보림의 모습은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의 대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공비들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며, 도주하면서 불을 놓아 대웅전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고 천왕문, 사천왕, 외호문만 남았다.

 

 

불타버린 대웅전은 서향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팔작지붕의 큰 건물이었다. 외관과는 다리 내부는 2층까지 통해서 한 방으로 만들고, 중앙 단상에는 금동석가여래상과 양협시불을 안치하였는데, 구조 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수한 건물이었으며, 이후 주민들은 대적광전을 다시 지어 대웅전에 있었던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적광전과 천왕문, 영각, 요사채 등이 있다. 사천왕문 안에 봉안된 사천왕상은 정조4년(1780)에 조성된 국내 목각상의 대표적인 것으로, 최근 중수하여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나, 복장 속의 비장품은 도굴꾼들에 의하여 망가진 상태로 방치되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44호인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 2점의 국보와 8점의 보물, 그리고 13점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가 남아 있어 역사의 흐름과 한국 불교미술사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보림사에는 선승들이 즐겨 들었던 작설차가 특산품으로 전한다.

 

◈ 보림사의 문화재들

1)국가지정문화재(국보)

 -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 : 국보 제44호

 -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국보 제117호

2)국가지정문화재(보물)

 - 보림사 동승탑 : 보물 제155호

 - 보림사 서승탑 : 보물 제156호

 - 보림사 보조선사탑 : 보물 제157호

 -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 보물 제158호

 - 월인석보 권제25 : 보물 제745-9호

 - 금강경삼가해 권제1 : 보물 제772-3호

 -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권9-10 : 보물 제1252호

 -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 보불 제1254호

3)전라남도 유형문화재

 - 장흥 전 의상암지 석불입상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1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계초심학인문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고봉화상 선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금강반야론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대전화상 주심경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8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몽산화상 육도보설 2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불설 삼십이장경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0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육경합부 6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1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언해판화 관계 불서 16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2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진언의식 관계 불서 84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3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선존불서 47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

 -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경전불서 40점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 보림사 비자림산림욕장 및 가지산 등산안내도

 

보림사는 천년고찰이지만 당우들이 한국전쟁 당시 모두 불타버려 옛 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목조사천왕상 등 조각품과 승탑, 탑비, 석탑 및 석등 등 석조물, 사천왕상 복장유물인 많은 고서적류 등 많은 문화재가 전해지고 있는 사찰이다. 현존하는 건물들은 옛 자료들을 참고하여 일부 복원하여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많은 문화재들이 현존하는 관계로 보림사의 문화재들을 2편으로 나누어 아래와 같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1>에서는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국보 제44호), 동,서 승탑, 보조선사탑, 그리고 보조선사탑비 등 석조 문화재들을 소개하고,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2>에서는

보림사 남,북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보림사 목조사천왕과 현존하는 당우들, 그리고 목조사천왕상에서 출토된 복장유물과 전적류 등을 소개하기로 한다.

 

♧ ♧ 장흥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長興 寶林寺 南,北 三層石塔 및 石燈)

*국보 제44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번지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이 봉안되어 있는 대적광전 앞 뜰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2기의 석탑과 1기의 석등이다. 남북으로 세워진 두 탑은 구조와 크기가 같으며, 2단으로 쌓은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 보림사의 남(사진 左),북(사진 右) 삼층석탑

 

기단은 위층이 큰데 비해 아래층은 작으며, 위층 기단의 맨윗돌은 매우 얇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 쌓았으며, 각 층 몸돌에 모서리기둥을 새겼는데, 2,3층은 희미하게 나타난다.

 

 

 

                 ▲ 보림사의 남,북 삼층석탑 기단부(사진 上左)와 석탑 앞 배례석(사진 上右)

                    보림사의 남,북 삼층석탑 몸돌(사진 下左)와 지붕돌(사진 下右)

                     (두 탑의 구조가 동일하므로 좌측 남탑만 소개)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계단형으로 5단씩이고, 처마는 기단의 맨윗돌과 같이 얇고 평평하며, 네 귀퉁이는 심하게 들려있어 윗면의 경사가 급해 보인다. 탑의 꼭대기에는 여러 개의 머리장식즐을 차례대로 가지런히 올려 놓았다.

 

                 ▲ 보림사의 남,북 삼층석탑 사이에 위치한 석등

 

석등 역시 신라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네모꼴의 바닥돌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8각의 아래받침돌을 얹고, 그 위에 가늘고 긴 기둥을 세운 후, 다시 윗받침돌을 얹어 불을 밝혀주는 화사석을 받쳐주도록 하였다.

 

 

 

                 ▲ 보림사의 남,북 삼층석탑 중간의 석등의 넓은 지붕돌(사진 上)

                    보림사 석등의 받침돌(사진 下左)와 화사석(사진 下右)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만 창을 뚫어 놓았고, 그 위로 넓은 지붕돌을 얹었는데 각 모서리 끝부분에 꽃장식을 하였다. 석등의 지붕 위에는 여러 장식들이 놓여 있다.

남탑 높이 5.4m, 북탑 높이 5.9m, 석등 높이 3.12m이다.

이들 석탑과 석등은 모두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탑의 머리장식은 온전하게 남아 있는 예가 드물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탑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석탑은 통일신라 경문왕10년(870)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고, 석탑과 더불어 석등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림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된 승탑이 3개가 있다.

보림사로 들어가는 입구 우측 '보림사 산림욕장' 표지석 뒷편 산자락에 총 8기의 부도탑이 모셔져 있는 부도전의 최상부에 위치하고, 8기 중 최고 큰 규모를 자랑하는 「보림사 서부도」,  보림사 안내소가 있는 주차자에서 2차선 도로 따라 약 700여m를 올라간 후 '보림슈퍼' 입간판과 '봉덕'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 길을 따라 계곡을 좌측에 끼고 올라가 봉덕교를 건너 약 150여m 지점에 ┣자 갈림길.

도로를 버리고 우측 시멘트 포장길을 따르면 좌측으로 1기의 부도탑, 그리고 약 50여m 떨어진 우측에 또 하나의 부도탑 등 2기의 부도탑으로 이루어진「보림사 서승탑.

그리고 경내 명부전 뒷편 비자림군락지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보조선사탑과 보조선사탑비가 있다.

특히 보조선사탑에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공비들이 전투를 벌렸던 흔적인 총알자국이 남아 있다.

 

                 ▲ 보림사 입구 동 승탑이 있는 부도전

 

 

 

                 ▲ 보림사 입구 동 승탑이 있는 부도전의 주인을 알 수 없는 승탑들

 

♧ ♧ 장흥 보림사 동 승탑(長興 寶林寺 東 僧塔)

*보물 제155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산10-1

 

 

보림사 동쪽 숲 속에 있는 여러 승탑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승려의 사리를 두는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기단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각 부분이 8각으로 깍여져 있다.

 

                 ▲ 보림사 동 승탑의 기단부

                 ▲ 보림사 동 승탑 탑신의 자물쇠가 달린 문짝 문양

                 ▲ 보림사 동 승탑의 지붕돌

 

3단으로 된 기단의 맨아랫단과 맨윗단에는 8잎의 연꽃잎을 둘러 새기고 각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가운데는 8각의 기둥을 낮게 두었다.

탑신은 한 면에만 자물쇠가 달린 문짝을 새기고, 지붕돌은 다른 부분에 비해 좁고 낮은 편이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중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위아래를 나누어 장식하였는데, 그 완전함만큼이나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윗부분이 높게 이루어진 반면,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이 작고 낮아 안정감이 떨어진다. 잘 정돈된 구조가 돋보이며 머리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도 이 승탑의 소중함을 더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졌으면서도 고려 전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승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 장흥 보림사 서 승탑(長興 寶林寺 西 僧塔)

*보물 제156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봉덕신길62-1

보림사 서쪽에 있는 승탑 2기로, 보림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2기의 승탑 중 오른쪽에 서있는 승탑

 

하나는 전체적으로 8각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네모반듯한 바닥돌 위로 3단의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탑신과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아래받침돌에는 2겹의 연꽃무늬를 새기고, 두껍고 넓은 가운데받침돌은 모서리마다 구슬을 꿰어놓은 듯한 기둥을 조각해 놓아 독특한 모습이다. 윗받침돌은 아래받침돌과 그 크기와 넓이가 비슷하며, 8장의 연꽃잎을 새겨 두었다.

 

 

 

                 ▲ 보림사 서 승탑 2기 중 오른쪽에 위치한 승탑의 기단부(사진 上)

                    몸돌의 자물쇠와 문고리가 조각된 문짝 문양(사진 下左)와 지붕돌(사진 下右)

 

탑신의 몸돌에는 한쪽 면에 문짝 모양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와 문고리 2개를 본떠 조각해 두었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꽤 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살짝 들려있다.

 

-2기의 승탑 중 왼쪽에 서있는 승탑

 

또 다른 승탑도 역시 전체적으로 8각의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기단의 모습이 위에서 말한 승탑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가운데받침돌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고, 윗받침돌이 오른쪽 승탑보다 얇고 넓다는 점이 다르다.

 

 

 

                 ▲ 보림사 서 승탑 2기 중 오른쪽에 위치한 승탑의 대부분 깨어진 지붕돌(사진 上)

                    몸돌의 자물쇠가 달린 문짝 문양(사진 下左)과 기단부(사진 下右)

 

탑신의 몸돌 한 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대부분 깨어져 있어 그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위의 승탑이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지나치게 장식적인데 비해, 이 승탑은 우아하긴 하나 장식성이 떨어져 전체적으로 위축된 것처럼 보인다.

2기 모두 마무리 수법이 같으며, 만들어진 때는 고려 중기로 짐작된다. 머리장식은 모두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1941년 사리를 두는 장치가 도굴되어 1944년 다시 만들어 놓았다.

 

♧ ♧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長興 寶林寺 普照禪師塔)

*보물 제157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산10-2

 

 

보림사 경내에 있는 사리탑으로, 보조선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탑은 바닥돌부터 지붕돌까지 모두 8각으로, 통일신라 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기단의 아래받침돌에는 구름무늬를 매우 입체적으로 조각하였고, 가운데받침돌은 아래위로 띠를 두른 약간 배가 부른 모습이다.

 

 

                 ▲ 보림사 보조선사탑의 기단부(사진 左)와 사천왕상과 문짝 모양이 새겨진 탑신의 몸돌(사진 右)

 

                 ▲ 보림사 보조선사탑의 다른 부분과 질감이 다른 석재를 사용한 지붕돌(사진 上)

                    보조선사탑의 손상된 부분(사진 下)

 

8개의 큰 연꽃조각 위에 놓여진 탑신의 몸돌은 앞,뒷면에 문짝 모양을, 그 양 옆에는 사천왕상을 새겼다. 두터워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서까래를 표현해 놓았고, 윗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파여져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완전한 모양은 아니지만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보륜(바퀴모양의 장식), 보주(연꽃봉우리모양의 장식) 등이 차례로 놓여 있다.

 

 

                 ▲ 보림사 보조선사탑 탑신에 나있는 한국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들

 

탑신의 몸돌이 지붕돌에 비해 지나치게 커 보이고, 지붕돌의 질감이 달라서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다. 일제시대 때 사리구를 도둑맞아 쓰러졌던 것을 복원한 바 있는데 이때 일부분이 손상되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보조선사(804~880)는 어려서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흥덕왕2년(827)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다. 희강왕2년(837) 중국으로 건너 갔으나 문성왕2년(840)에 귀국하여 많은 승려들에게 선을 가르쳤다.

현안왕3년(859) 왕의 청으로 보림사 주지가 되었으며, 7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은 그의 시호를 '보조선사'라 하고 탑 이름을 '창성'이라 내리었다.

 

                 ▲ 보림사 보조선사탑비와 보조선사탑

 

♧ ♧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長興 寶林寺 普照禪師塔碑)

*보물 제158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산10-2

 

 

 

보림사 경내에 있는 보조선사 지선의 탑비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는 거북받침돌의 머리가 용머리를 하고 있어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나운 모습이며, 등 뒤에는 육각형의 무늬가 전체를 덮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구름과 연꽃을 새겨 장식해 두었다.

 

                 ▲ 구름과 용의 모습이 조각된 보림사 보조선사탑비의 머릿돌

 

                 ▲ 보림사 보조선사탑비의 기단부인 거북받침돌

 

비몸돌에는 보조선사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김영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7행의 선자까지는 김원이 해서체로, 그 이하는 김언경이 행서체로 썼다. 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의 모습을 웅대하게 조각하였고, 앞면 중앙에 '가지산보조선사비영'이라는 비의 명칭을 새겼다.

통일신라 헌강왕10년(884)에 세워진 총 높이 3.46m의 비로, 각 부분이 완전히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 또한 커 당시 조형수준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