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
과거로부터 배우고 익혀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곳!!!
▲ 입산봉 둘레길에서 바라본 김녕과 월정리
제주는 '제주도 지질공원'(2009년 지정)과 '국가지질공원'(2012년12월 지정)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2010년 10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어 제주 천혜자원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제주는 화산섬으로써 뛰어난 경관뿐만 아니라 약 180만 년 전부터 1천 년 전까지의 화산활동의 흔적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어 학술적으로도 연구가치가 매우 높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섬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경관이 아름다운 한라산, 만장굴, 성산일출봉, 서귀포층, 천지연폭포, 중문대포주상절리대, 산방산·용머리해안, 수월봉 등의 9곳이 핵심지질명소로 지정되어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GGN)에 가입되었다.
아울러 2014년 3월 우도, 비양도, 선흘곶자왈이 핵심지질명소로 추가돼 총 12곳으로 늘어나게 됐다.
지질공원이란 인공적으로 조성해 울타리로 들러싼 공원이 아니라, 지질적 특징이 뛰어나고 가치가 높은 지역을 선정해 그 명소를 활용하는 등 행위제한을 최소화하고 혜택은 극대화하면서, 자연의 보호와 활용을 조화롭게 하며 지역 경제발전에 기여하고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지질공원의 특징은
-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장소 로서
- 적당한 크기와 범위를 가지고 있으며,
- 자연,인문,사회,역사,문화,전통 등이 결합되어 있으며,
- 지역주민의 경제적 이익과 지속 가능한 발전전략이 수립된 공원이다.
「 제주도 핵심 지질명소 」
1. 제주의 중심. 한라산
1950m 높이의 남한 최고봉.
한라산은 제주의 화산 활동과 더불어 성장한 화산체로 순상화산의 정상에 성질이 다른 두 종류의 용암으로 이루어진 분화구가 놓여 있는 복합화산체이며, 그 독튿한 지형, 지질이 이루는 생태계 또한 특이하다.
고도에 따라 한대, 온대, 난대 등 식물의 수직분포가 뚜렷하고, 90여 종이나 되는 다양한 특산식물을 품고 있기도 하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의 구상나무 숲과 극지고산식물의 다양성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가치를 자랑한다.
▲ 만장굴 세계 최대 용암석주(사진 左), 용암유선(사진 中), 용암표면 밧줄구조(사진 右)
2. 용암이 흐른 거대한 길. 만장굴
총 길이가 7.4km에 달하는 만장굴은 부분적으로 다층 구조를 지니는 용암동굴로, 주 통로는 폭이 18m, 높이가 23m에 이르는 세계적인 규모의 동굴이다. 특히 지구상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동굴 내부의 형태와 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만장굴은 동굴 중간 부분의 천장이 함몰되어 3개의 입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입구는 제2입구이며, 1km만 탐방이 가능하다.
3. 물·불·바람·의 하모니. 성산일출봉
높이 180m의 성산일출봉은 약 5천 년 전 얕은 바다에서 지하의 뜨거운 마그마와 물이 만나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분출된 화산재가 쌓여 형성되었다.
본래는 육지와 떨어진 섬이었으나 파도에 의해 침식된 퇴적물들이 해안으로 밀려들어와 쌓이면서 일출봉과 제주도를 이어 놓았다.
이곳의 해 뜨는 장면은 영주십경 중 첫번째로 꼽히며, 성산일출제에는 새해의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성산일출봉(사진 左)과 중문대포주상절리(사진 右)
4. 바다에 두른 용암 병풍. 중문대포주상절리
주상절리대는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대포동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약 2km에 걸쳐 있다.
기둥형태의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수직으로 쪼개짐이 발생하여 만들어지는데, 대체로 5~6각형의 기둥형태로 만들어진다. 특히 이곳 주상절리는 중문의 옛 이름인 '지삿개'를 따서 '지삿개 주상절리'라고도 부른다.
제주도에는 이곳 외에도 예래동 해안가. 안덕계곡, 천제연폭포, 산방산 등에서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
5. 세월 따라 상류 쪽으로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천지연폭포
서귀포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천지연폭포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연못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높이 22m의 기암절벽 아래로 하얀물기둥을 이루며 떨어지는 폭포수의 웅장함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대표적인 폭포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폭포에는 천연기념물인 무태장어와 담팔수 나무를 비롯, 구실잣밤나무, 송엽란, 산유자나무 등 각종 희귀식물이 분포되어 있다.
▲ 천지연폭포(사진 左)과 서귀포층(사진 右)
6. 100만 년의 기록. 서귀포층
서귀포층은 천지연폭포 입구에서 서쪽 해안가 절벽을 따라 약 1.5km에 걸쳐 드러나 있다.
서귀포층은 약 180만 년 전 지하에서 상승한 마그마가 물과 만나 격렬하게 반응하여 화구 주변에 화산분출물이 쌓이고, 파도에 의해 깎이고, 다시 분출물이 쌓이기를 반복하면서 생긴 약 100m 두께의 지층으로, 제주도 지하에 넓게 깔려 있는데, 일부가 솟아올라 있어 땅 위에서 관찰할 수 있다.
◀ 산방산
7. 80만 년을 품은 거대 용암돔. 산방산
산방산은 해발 395m의 거대한 조면암질 용암돔으로 약 80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화산지형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낸 웅장한 지형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8. 80만 년 전 탄생의 흔적. 용머리해안
산방산 아래쪽에 자리 잡은 용머리해안은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자세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머리는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로 한라산과 용암대지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 일어난 수성화산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응회환이다.
▲ 용머리해안(사진 左)과 수월봉(사진 右)
9. 세계 지질학자들이 꿈에 그리는 세계 최고의 화산학 로드. 수월봉
제주도 서부지역 고산리에 위치한 수월봉은 높이 77m의 작은 언덕형태의 오름으로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월봉은 약 18,000년 전 지하에서 상승하던 마그마가 물을 만나 강렬하게 폭발하며 뿜어져 나온 화산재들이 쌓이면서 형성된 응회환의 일부로, 이곳에 새긴 지층구조는 수월봉의 화산활동은 물론 전 세계 응회환의 분출과 퇴적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서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수월봉에는 현재 3가지의 지질트레일 코스(수월봉 엉알길, 당산봉 트레일, 차귀도 트레일)가 있으며, 시간대에 따라서 마을 주민에 의한 지질해설도 들을 수 있다.
▲ 우도
10. 누운 소의 모습. 우도
우도는 제주도의 79개 부속도서 중 제일 큰 섬이나 제주시에 속하는 4읍 3면 중 가장 작은 면이다.
소가 드러누웠거나 머리를 내민 모습과 같다고 하여 우도라 이름 지었다. 우도 해안에 발달하는 해빈으로는 우도 홍조단괴 해빈과 하고수동 해빈 및 검멀레 해빈이 대표적이다.
비양도 ▶
11. 협재해수욕장 앞 그림같은 섬. 비양도
비양도는 원형에 가까운 타운형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유인도 705개 중 394번쨰로 큰 섬이다.
섬 중앙 해발 114.4m의 비양봉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해발 약 30m 이하의 완만한 경사를 갖는 용암순상지가 넓게 발달해 있다.
▲ 선흘곶자왈
12. 희귀식물의 보고. 선흘곶자왈
선흘곶자왈은 원래 동백나무가 많다 하여 동백동산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나 동백나무 외에도 다양한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2011년 3월 14일에는 국내에서 15번째로 0.56㎢ 면적이 람사르보호습지에 등록되었다.
◀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제Ⅰ편 : 드르빌레길(김녕어울림센터~월정리사무소) ▶
바당밭, 빌레왓을 일구는 동굴 위 사람들의 이야기길!
마을의 뭍을 가로지르며 걷는 길!!!
▲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탐방중 만나게 되는 세기알해변(사진 上)과 성세기해변(사진 下)
지질트레일 중 수월봉, 산방산·용머리해안에 이어 2014년 10월 25일 세번째로 개통된 지질트레일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제주의 지질 명소의 하나인 만장굴 지구와 인연을 맺고 있는 마을인 구좌읍 김녕과 월정리 일대를 걷는 코스이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만장굴을 비롯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거문오름용암동굴계에 속하는 용암동굴 무리가 이 마을의 지하 세계에 뻗어 있어, 이들 용암동굴과 연관된 지형·지질을 살펴보고 감상하며, 그 지형·지질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느껴보고자 개설된 것이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이다.
그러나 만장굴은 탐사가 허용된 1km 구역의 입구는 마을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어 코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 김녕·월정마을 발 아래를 지나는 거문오름용암동굴계 』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10~30만년 전에 해발 454m의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으로부터 지표를 따라 13km쯤 떨어진 해안까지 흘러가는 동안 만들어진 여러 개의 용암동굴이며, 현재까지 발견된 동굴만 해도 오름에서 가까운 순서로 선흘수직동굴, 벵뒤굴, 북오름동굴, 대림동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남지미동굴 등이다. 이 동굴계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동굴은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그리고 당처물동굴이다.
이중 가장 규모가 큰 용암동굴은 만장굴로서 이 동굴의 길이와 규모는 세계적이다. 만장굴과 김녕굴은 길이뿐만 아니라 통로의 규모면에서 세계적이다.
또한 뻥뒤굴은 드넓은 평야 곧 평대를 뜻하는 제주토박이말처럼 드넓은 지대에 형성된 동굴이라는 뜻이다. 동굴 내부는 2층, 3층 구조에다가 수많은 가지굴들이 살하좌우, 사통팔방 등 여러 갈래로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미로형 동굴로서 사계에서 가장 복잡한 통로의 형태를 보인다. 대부분의 용암동굴은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다양한 규모와 형태, 지형, 그리고 동굴생성물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경관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동굴은 제주도 해안 저지대의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이다.
이들 동굴 내에는 용암동굴 내에서는 흔히 볼수 없는 석회질 동굴생성물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들 동굴 생성물의 규모, 형태, 분포 및 밀도는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라 평가된다. 특히 종유석, 석순, 석주, 휴석, 커튼, 동굴산호 등 아주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잘 보존된 이 동굴들은 전 세계적으로 용암동굴 내의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2차 동굴생성물이 가장 발달된 동굴로 평가된다.
당처물동굴은 규모가 매우 작은 동굴이지만. 이 동굴 내에서 발견되는 석회질 동굴생성물은 세계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용천동굴의 큰 규모와 석회질 동굴생성물은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제주도의 동굴은 학술, 문화, 산업 및 관광 자원의 면에서 매우 중요하고, 수많은 측화산 및 용암동굴은 지구의 화산 생성과정 연구에 있어 큰 학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 가운데 직접 만나볼 수 있는 동굴은 만장굴 7.4km의 일부인 1km구간 뿐이다. 다른 동굴들은 탐사가 힘들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훼손될 우려가 많기 때문에 동굴과 인간 서로의 안전을 위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생물다양성보전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산 관속식물의 약 절반이 제주도에 자생하며 약 200여종의 한국 특산종이 분포한다. 또한 한국의 멸종위기종 및 보호야생종의 약 1/2이 제주도에 분포한다. 제주도 정상부에는 빙하시대에 남하했던 한대성 식물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저지대와 섬의 난림대에도 많은 고유종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한라산은 생태계의 보고로서 식물 총 1,565종과 동물 1,179종이 자생하고 있다.
2007년6월27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열린 제31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주도는 수많은 측화산과 세계적인 규모의 용암동굴, 다양한 희귀생물 및 멸종위기종의 서식지가 분포하고 있어 지구의 화산 생성과정 연구와 생태계 연구의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의 아름다운 경관과 생물, 지질 등은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만장굴 : 최대 폭 18m, 높이는 23m로 세계에서도 규모가 큰 동굴로 꼽힌다.
현재 조사된 동굴의 길이는 7,416m, 길이만으로는 세계 11위의 동굴이다. 이 가운데 공개된 구간은 1,000m로 전체 길이의 1/7밖에 되지 않지만, 용암종유, 용암선반, 용암석순, 용암유석, 용암산호, 용암표석, 용암발가락, 용암기포, 용암산호, 밧줄구조, 홈구조, 용암 두루마리 등 용암동굴이 보여줄 수 있는 온갖 지형과 구조, 동굴생성물 등 내부 경관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특히 이 구간에서의 압권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는 높이 7.6m의 용암석주이다.
전 세계에 수많은 용암동굴이 있지만 만장굴처럼 내부의 형태와 지형, 동굴생성물이 잘 보존된 용암동굴은 드물다. 만장굴의 가치가 빛나는 이유이다.
만장굴은 마을 사람들이 굴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변이 밀림지대나 다름업어 버려지다시피한 땅이었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1947년 당시 김녕초등학교 교사 부종휴 교사가 제자들로 구성된 '꼬마탐험대'와 함께 동굴 내부 탐사에 성공하면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 김녕굴 : 김녕사굴이라고도 부르는데, 동굴 형태가 마치 커다란 뱀이 살아서 꿈틀거리며 구불구불하게 뻗어나가는 모양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뱀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굴안에 커다란 구렁이가 살고 있었는데, 해마다 어린 처녀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온갖 변괴를 부려 흉년을 들게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종10년(1515) 제주 판관으로 부임한 서린이라는 19세의 젊은이가 마을사람들을 오랫동안 괴롭히던 그 구렁이를 물리쳐, 김녕굴 주변에 서린을 기리는 빗돌인 '제주판관서린공사적비'가 세워져 있어 전설이 마치 진짜였었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길이는 800m, 원래 만장굴과 이어져 있었는데 천장이 허물어져 무너지면서 분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녕굴은 만장굴보다 훨씬 오래 전에 발견된 동굴로 조선 숙종 떄인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기록한 화첩인 '탐라순력도'에도 김녕굴을 방문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 넉넉하고 편안한 마을! 김녕 」
제주시 구좌읍 12개 마을 중의 하나로 마을 이름 김녕(金寧)에는 '넉넉하고 편안한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1만년 전 신석기시대 초기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김녕리의 전체 면적은 19.93㎢ 정도로 넓은 편인데 경작지는 4.1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찌기 삶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청정한 해안과 풍부한 용천수를 지녔기 때문이다. 반농반어를 생업으로 하는 김녕리는 용암동굴 위에 자리를 하고 있다.
김녕이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현촌을 설치했다는 기록으로, 고려시대 충렬왕26년(1300) 제주도를 동,서로 나누고 16개의 현촌을 설치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김녕현촌'으로 지금의 구좌읍 지역에서 현촌이었던 곳은 김녕뿐이었다.
당시 이들 현촌을 크게 대,중,소로 나누고 각 현촌에 호장 등을 두어 관리했다고 하는데, 김녕현촌에는 현사를 두어 호장 3인이 100여년 동안 마을을 자율적으로 운영하였다. '김녕정사'라는 교육기관도 설치했는데, '정사(精舍)'는 유능한 학자가 마을의 자제들에게 학문을 가르티기 위한 학당이다. 김녕정사는 명월현에 있던 월계정사와 더불어 동학,서학으로 일컬어졌다. 조선 초기 특히 제주목에서는 월계를 서재로 삼고, 김녕을 동재로 삼아 향교의 유생들을 나누어 글을 읽게 했다.
조선시대의 김녕은 제주섬 방어의 중효한 마을 이었다. 조선 초기에 변방의 방어를 위해 구축한 군사행정구역인 방호소와 수전소가 설치되어 군사 등이 주둔하며 번갈아 지켰다.
공무 여행자들의 숙식을 위한 원(院)도 설치되었다. 김녕원은 숙종5년(1679)까지 있었다고 한다.
「 반달을 닮은 마을! 월정 」
제주시 구좌읍 12개 마을 중의 하나로 마을 이름 월정(月汀)에는 '아름다운 반달을 닮은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최근에 발견된 용천동굴 안에서 7세기 말에서 8세기 말까지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확인된 것으로 미루어 적어도 탐라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여겨지는 월정리의 전체 면적은 6.67㎢ 정도로 넓지 않으며, 경작지는 2.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옛 이름은 '무주'로, '무주포'와 '무주촌'이 등장하는 옛 문헌에 따르면 무주포는 16세기쯤부터 자주 이용했던 포구였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월정리 일대에 본격적으로 마을이 이루어진 시기는 16~17세기쯤인 것으로 보인다.
'무주'라는 이름이 '월정'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은 1910년대 초반이다.
【 걷기일자 】 2015년 6월 1일(월)
【 지질트레일코스 】((드르빌레길))김녕'동성동'버스정류장→김녕어울림센터→세기알해변→도대불/정자쉼터→조간대/'사랑당'조형작품→청굴물&제주돌집→게웃샘굴&게웃샘물→김녕초등학교→건강빌레정원/제주시 동부보건소→김녕본향당/김녕중학교→1132번지방도 일주도로→동부농업기술센터/┫자갈림길→2차선포장도로/┫자갈림길↔궤내기굴&궤내기당→입산봉 입구→1132번지방도 일주도로/김녕교회→신산동복지회관→성세기당&조른빌레길→2차선포장도로→성세기해변 입구→→구좌체육관→동부소방서 김녕119지역센터/┫자갈림길→구릉지 산길입구→진벌레길→월정밭담길/2차선포장도로 '진벌레정'정자쉼터→'산담이야기'해설포인트→용천동굴&당처물동굴 해설포인트→월정리입구/┳자삼거리-(월정리마을길)→월정리사무소/월정리복지회관→월정리해변
<<참고>>김녕·월정 지질트레일 : 총14.60km
김녕어울림센터-(0.05km)-세기알해변-(0.20km)-도대불-(0.20km)-조간대-(0.16km)-청굴물-(0.34km)-게웃샘굴과 게웃샘물-(0.35km)-건강빌레정운-(0.30km)-본향당-(0.60km)-궤내기굴과 궤내기당-(0.30km)-입산봉-(1.40km)-성세기당&조른빌레길-(1.20km)-김녕 밭담길-(1.80km)-진빌레길-(0.30km)-월정 밭담길-(0.20km)-산담이야기-(0.30km)-용천동굴 호수&당처물동굴 해설포인트-(1.50km)-월정리사무소&무주포와 한모살-(0.80km)-해신당-(1.50km)-투물러스(용암언덕)-(0.80km)-환해장성-(0.30km)-두럭산-(1.60km)-김녕성세기해변-(0.40km)-김녕어울림센터
【 코스거리 】 약 9.20km
【 소요시간 】 총 3시간 53분 소요(휴식:41분+입산봉둘레길 탐방 37분 포함)/실제 지질트레일 걷기시간 : 2시간 35분 소요
【 날 씨 】 맑 음
【 코스탐방 】
코스의 총 길이는 14.6km이며, '마을의 뭍을 가로지르며 걷는 길'인 '드르빌레길' 약 9.2km와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인 '바당빌레길' 약 5.4km로 나뉘어지는데, 두 개의 코스로 이루어진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을 걷다보면 두 마을의 드르빌레와 바당빌레를 고루 만나 볼 수 있다.
그리고 길에 따라 마을에 따라 다른 듯 펼쳐지고 이어지는 풍경과 독특한 사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드르'는 '들', '바당'은 '바다'를, '빌레'는 '넓적하게 퍼진 암반'을 일컷는 제주 방언이다.
▲ 김녕 '동성동'버스정류장 옆 지질트레일 출발점 가는길 이정표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은 2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제Ⅰ편 : 마을의 뭍을 가로지르며 걷는 길! 드르빌레길(9.2km)
- 제Ⅱ편 :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 바당빌레길(5.4km)
▲ 하도어촌계펜션
운영중인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해맞이해안로에 위치한 '하도어촌계 펜션(http://www.hadobada.co.kr/ T.064-783-1994)' 에서 서둘러 펜션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내놓고 세화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동회선 시외버스(#701번)를 이용, 약 15분 후 동성동 정류장에 하차,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출발점인 김녕어울림센터로 이동하여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드르빌레길' 탐방을 시작한다.
드르빌레길은 김녕마을길을 지나 입산봉을 거치고, 진빌레길을 사이에 둔 김녕밭담길과 월정밭담길을 따라 월정마을길로 이어진다.
가옥들이 이마를 맞댄 듯 가깝게 모여있는 김녕마을길은 정다운 골목풍경으로 눈길을 끌고, 바람 많은 갯마을의 독특한 울담구조를 눈여겨 볼 만하고, 유난히 풍부한 천연샘물 용천수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입산봉에 오르면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밭담길을 걷노라면 주어진 자연환경 속에서 일구어온 삶의 역사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진빌레길에서는 암반 투성이인 채 날 것 그대로 유지해온 빌레지대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월정밭담길에서는 용암동굴 위로도 지나게 되어 두 발 아래 지하에 자리하고 있을 거대한 용암동굴을 상상하면 걸음걸음이 짜릿해짐을 느끼게 된다.
드르빌레길은 월정마을길에서 마무리되는데, 월정마을 역시 김녕마을처럼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이 거센 바람과 지형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성된 돌담들이 김녕마을과는 살짝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월정마을길을 빠져나가면 눈부신 월정해변으로 드르빌레길은 끝이 나고, 바당빌레길이 시작된다.
▲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출발점인 김녕어울림센터가는 '동성동'버스정류장 옆 길
13:54=>김녕 '동성동'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우측 해안으로 진행되는 길이 있고 입구에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출발점 가는 길' 푯말이 보인다.
해안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50여m를 들어가면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출발점인 김녕어울림센터 건물이 자리를 하고 있다.
▲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출발점인 김녕어울림센터(사진 上)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출발점인 김녕어울림센터 앞 대형 안내도(사진 下)
13:55~14:00=>김녕어울림센터/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출발점&도착점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출발점인 어울림센터 앞에는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대형 안내도가 있다.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탐방 코스에는 총 23곳의 지질트레일 포인트가 있으며, 오늘 진행하게 될 제1구간 '드르빌레길'에서는 그 중 17곳의 지질트레일 포인트를 거쳐 월정리사무소에서 탐방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세기알해변' 안내도와 세기알해변
바닷가를 향해 계속 50여m를 더 진행하면 ┳자 해안도로인 (1)세기알해변에 이르게 된다.
지질트레일 해설판이 있는 세기알해변은 해수욕장과 빨간 등대가 있는 포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주올레 제20코스(김녕서포구~제주해녀박물관 구간으로 16.50km)와 만나는 곳이다.
▲ 세기알해변에서 바라본 덩개해안
좌측으로 포구를 지나 해안길을 따르면 포구가 끝나는 곳에 '세기알포구에서 바라본 덩개해안' 안내판과 '해녀' 해설판이 있고, 그 좌측으로 정자 쉼터와 제주의 옛 등대인 (2)도대불이 있다.
「 별빛을 닮았을 민간 등재! 도대불 」
'도대불'은 제주도 민간등대이다. 등명대라고도 불리는데, 김녕마을 어부들과 해녀들은 모두 '도대불'이라 부른다. 김녕마을 도대불이 위치한 곳은 '매동산'이라 부르는 곳이다.
도대불이란 이름은 돛처럼 높은 대를 이용해 불을 밝혔다는 '돛대불'에서 온 말이라고도 하고, 뱃길을 밝히는 뜻의 도대(道臺)불이라 하기도 하고, 일본어인 '도우다이'에서 온 말 같다고도 한다. 그 어원이 어쨋거나 도대불은 바닷가 마을 포구마다에 하나씩 있었는데, 모양은 원뿔모양, 원통모양, 사다리꼴모양, 상자모양, 표주박모양 등 저마다 다르다.
김녕마을의 도대불은 원래 상자모양이었는데 1960년경 태풍으로 허물어져 버려서 1961년 지금의 원뿔모양으로 다시 세웠다. 아담해 보이지만 높이 307cm, 상단 넓이 120cm, 하단 넓이는 335cm로 제법 규모가 크다. 제주에 남아 있는 도대불 가운데 가장 세련된 자태를 지니고 있다. 상단에는 불을 켜기 위한 도구를 보호하는 시설을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가운데에는 등불을 놓기 위한 대가 박혀 있었고, 집 형태의 등불 보호대가 있었다고 한다. 나무기둥을 박아 만든 정사각형 모양의 나무틀 사면에 유리를 끼우고 한 쪽에는 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등대 역할이 그렇듯 도대불 역시 바다로 나간 배들의 밤길을 안전하게 유도하는 길잡이 시설이다. 도대불의 등불은 해질 무렵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이 켰다가 아침에 들어오는 어부들이 껐다고 하며, 배가 나가든 안 가든 매일 밤 불을 밝히는 도대불도 있었다고 한다.
불을 밝히는 연료로는 생선기름을 쓰기도 하고 솔칵(송진이 많이 박힌 소나무 옹이를 일컷는 제주코박이말)을 쓰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석유를 사용했다.
제주의 도대불은 1970년까지 쓰이다가 전기가 보편화되면서 불빛을 거둬버렸다. 김녕마을 도대불 역시 1972년 마을에 전기가 가설되면서 더 이상 불을 밝히지 않게 되었다.
도대불은 이제 유적으로 남았지만 그 분위기가 여전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캄캄한 밤바다에서 별빛 같은 도대불을 길잡이 삼아 포구로 돌아왔을 작은 어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도대불 위로 내려앉은 별빛을 보며 하루를 정리했을 어부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시멘트 포장의 해안길을 따르면 (3)조간대.
이를 지나면 '사랑당' 조형물(14:15)이 나타난다.
「 조간대(潮間帶) 」
조간대는 밀물일 때에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일 때에는 드러나는 해안선 사이의 부분을 말한다.
완만한 빌레지대가 바다속까지 질펀하게 퍼져있는 바당빌레길의 해안은 썰물때면 드넓은 조간대가 펼쳐지곤 한다. 조간대는 해양생태계에서도 환경변화가 심한 곳이어서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은 여름철의 뜨거운 햇살과 건조, 그리고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를 잘 적응한 종들이다.
제주조간대는 해양생물이 높은 밀도로 서식할 뿐만 아니라 생물종 다양성이 풍부하다. 그민큼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 푸른 빛의 전설! 사랑당 」
소원을 비는 '신당'을 마을에 만드는 '제주의 당 신앙'에서 실마리를 잡았다는 공공예술품이다.
우산이 펼쳐진 것 같은 철제 구조물에 미세조류가 담긴 작은 병들이 달려 있다. 천장에 매달린 푸른빛의 병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등불을 밝힌 것처럼 보인다. 미세조류는 아직 시험 연구중인데, 나중에 상품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랑당'은 김녕마을의 한 청년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이른바 '푸른빛의 전설'이다.
옛날 김녕마을에 사는 한 청년이 밤마다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짝이는 푸른 비늘을 가진 아름다운 인어를 만났는데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한다. 그 뒤로는 인어를 만나기 위해 날마다 바다로 나갔다.
어느 날 청년이 바다에 빠지자 인어가 나타나 청년을 구해 성세기해변으로 데리고 갔고,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 더욱 게세어졌고 인어는 파도에 부서지고 말았다. 그때 인어의 푸른 비늘이 흩뿌려지며 바다를 푸른 빛으로 수놓게 되었다. 이때부터 김녕마을의 바다가 반짝이는 푸른 빛을 띠게 되었다. 그뒤로도 청년은 인어를 그리워하며 매일 바다로 나갔고, 바람이 불 때마다 반짝이는 푸른빛이 나타나 청년을 감싸며 지켜주었다.
청년과 푸름 비늘의 인어이야기가 조형물 '사랑당'에 걸리면서, 김녕바다의 푸른빛을 받아 '사랑당'에 기원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 푸른빛이 바로 미세조류가 담긴 채 작고 동그랗게 매달린 병들이다.
바람부는 날, 사랑을 소원하면 '사랑당'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분주해 질 것 같다.
▲ 청굴물입구의 이정표(사진 左)와 제주돌집(사진 右)
'김령로1길' 마을길을 따라 가면 ┣자 삼거리(14:18~14:21).
좌측에 '제주돌집'이 자리하고 있고, 우측 골목 끝에는 (4)청굴물이 자리를 하고 있다.
「 그리움 가득한 물통, 청굴물 」
청굴물은 바닷가에 자리한 샘물이다.
둥그런 물통과 물통으로 가는 길이 커다란 설치작품처럼 느껴진다. 그 길은 썰물 때는 걸어서 물통으로 가는 길이지만 밀물 때는 바다 한 가운데 섬으로 변하니 그렇게 느껴진다. 입구에 세워진 공덕비와 기념비가 1971년에 이곳을 정비했음을 알려준다.
청굴물은 특히 차갑고로 소문났던 용천수이다. 5분만 앉아있어도 온몸에 한기를 느낄 정도이어서, 여름철만 되면 김녕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마을에서도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여들어 주변에 이삼일씩 머물면서 물을 맞고 가곤 했다고 한다.
물통 주변도 온통 추억의 장소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모습이지만 주변 바위틈에서 보들레기 고망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보들레기'는 '베도라치'를, '고망'은 '구멍'을 일컷는 제주토박이말이다.
'보들레기 고망낚시'는 1m도 안 되는 가느다란 철사 끝에 그 절반 길이의 낚싯줄을 매달아 돌 틈 '고망'에 집어넣고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철사가 눈에 띄게 휘어질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낚아채면 장어처럼 미끈거리는 보들레기가 낚싯바늘에 주둥이가 꿰인 채 달려 나왔다고 한다.
이래저래 추억이 가득한 청굴물은 샘물 역할만 하는게 아니었다. 집안의 경조사를 알리고, 농사정보를 교환하고, 동네의 현안문제를 의논하고, 심지어 청춘남녀의 혼사 얘기가 오가기도 하는 소통의 장소였다.
청굴물의 물길은 마을 안으로 25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게웃샘물'과 이어져 있다고 한다. 게웃샘물이 흘러 해안에서 용출하는 지점이 청굴물인 것이다.
▲ 김녕마을길 ┳자 갈림길에서 좌측 마을길(사진 左)
┣자 갈림길에서 우측 마을길(사진 右)
직진 길 따라 계속되는 돌담 사이 마을길(김녕로19길). ┳자 삼거리에서 좌측 마을길을 따르다, 나무 1그루 있는 ┣자 갈림길에서 '김녕로15길'인 우측의 마을길로 들어가면 (5)게웃샘굴과 게웃샘물이 있다.
▲ 마을 안 게웃샘굴 입구
「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게웃샘물' 」
게웃샘물은 마을 안에 있는 샘물이다. 게웃샘굴이라는 용암동굴 속 바위틈에서 솟아 바닷가 청굴물까지 이어진다.
'게우'는 전복창자, '게웃'은 전복창자처럼 한쪽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이르는 제주토박이말이다. 이 동굴이 해녀들이 많은 김녕마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 보여서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마을 어른들에 의하면 이 부근을 지나다 물소리가 나서 파보니 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며, 마셔보니 맛이 좋아서 계단을 만들고 먹는 샘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용천수의 찬 기운이 시원하게 올라오고, 굴 오른쪽으로 허리를 굽히면 천정과 가까워지며 밝아진다. 천정위로 들어오는 빛이 동굴 안 샘물위로 쏱아져, 청정한 동굴내부를 드러낸다. 지상과 다름없이 다양한 식물들이 동굴 안에서도 자라고 있다.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까지 주변 200여 가구에서 이 물에서 의존해 살았으며, 한 때 김녕초등학교에서도 이 물을 운반해다 먹었다고 한다. 당시 학교 잡무를 돌보던 '소사'가 물지게로 학생 400명이 마싷 물을 날랐다고 하며, 쉬는 시간이면 교무실 앞 물항아리로 학생들이 몰려들어 줄을 섰다고 한다. 하지만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 물을 마실 수 있는 학생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물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게웃샘물은 차갑기로 유명하여, 자리물회를 만들 때는 반드시 이곳 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게웃샘물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물'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 샘물이 마르지 않고 오래오래 동굴 안을 흐르길 바라는 마음이리라.
14:28~14:30=>게웃샘굴과 게웃샘물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해설판이 있고, 주변은 철제난간 보호막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길을 따라 게웃샘굴로 내려가 굴 속을 흐르는 게웃샘물을 확인해 보고 올라와 마을길을 이어가면 정면으로 김녕초등학교가 자리한 ┳자 삼거리(14:31). 좌측으로 학교를 끼고 올라가면 정면으로 '김녕킹마트'가 자리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사거리에 이르게 된다.
'김녕초등학교' 버스정류장가 있는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김녕킹마트' 뒷편에 자리한 '제주시 동부보건소' 내로 들어가면 건물 옆으로 (6)건강빌레정원이 있다.
건강빌레정원 입구에는 지질트레일 이정표(출발점기준 1.3km/종착점까지 13.3km)가 설치되어 있다.
「 맨발로 느껴보자, 빌레의 숨결! 건강빌레정원 」
제주시 동부보건소 뒤뜰에 보자마자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평평하고 매끈하게 굳은 암반이 덩어리째로 널려 있다.
현무암질 용암은 표면이 매끄러운 '파호이호이(pahoehoe)용암'과 뾰족뾰족해 발 딛기 힘들 만큼 거칠고 험한 '아아용암'으로 구분되는 두 얼굴의 암석을 만든다. 이 빌레정원의 암반은 바로 파호이호이용암의 작품이다.
파호이호이용암이 낮은 지형으로 흘러 들어가면 용암호를 만들게 된다. 용암호에 고인 용암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출렁거려 용암 표면이 커다란 판 조각으로 갈라지기도 한다. 용암호를 비롯해 투물러스, 밧줄구조, 거북등절리, 용암동굴 등이 파호이호이 용암의 대표적인 특징인데, 이곳 빌레정원에서 밧줄구조와 거북등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파호이호이용암은 경사가 완만한 곳으로 널리 멀리까지 빨르게 흘러가 굳으면서 넓은 평지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게 이루어진 지형을 제주에서는 '빌레'라고 부른다.
드레빌레길 코스에서 빌레를 눈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은 많아도 성큼 맨발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이곳 건강빌레정원에서 수십 만 년 전 어느 날부턴가 널따란 바위로 굳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빌레용암의 오랜 숨결을 느껴 볼 수 있는 곳이다.
▲ 건강빌레정원의 지질트레일 이정표
14:36~14:38=>건강빌레정원/제주시동부보건소
건강빌레정원을 빠져나와 2차선 포장도로를 좌측에 두고 인도를 따라 진행을 한다.
▲ 건강빌레정원지나 본향당으로 가는 ┣자 갈림길(사진 上)
김녕본향당 입구(사진 下)
┣자 삼거리(14:40)에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시멘트 포장길을 따르면 김녕중학교 앞(14:43~14:47)에 이르게 되는데, 좌측에 (7)김녕본향당 해설판과 본향당이 자리를 하고 있다.
▲ 김녕중학교 전경(사진 上)
김녕중학교 담장안의 곤덕비와 소나무숲 쉼터(사진 下)
우측 김녕중학교 돌담 안에는 학교 발전에 기여한 분들을 기리는 공덕비와 소나무숲 쉼터에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좌측 본향당에는 신목으로 삼고 있는 보호수인 당산목 팽나무(고유번호:13-3-3-2-19, 1982년10월 지정/수령 130년/수고 8m, 나무둘레 3m)가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여신을 지켜주는 마을, 김녕본향당 」
오래된 큰 마을답게 김녕에는 당이 많다. 알려진 것만해도 큰당, 궤네기당, 성세기당, 노모릿당, 남당(하르방당), 일렛당, 한개당, 새개당 등 일곱 개나 된다. 이 가운데 드르빌레길에서는 큰당, 궤네기당, 그리고 성세기당을 만날 수 있다.
본향당인 큰당이 자리한 곳은 '새당빌레'라 부르는 곳으로 신목으로 삼고 있는 커다란 팽나누가 당의 오랜 역사를 전하고 있고, 정방형으로 깔끔하게 돌려진 돌담 울타리가 본향당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정성을 느끼게 한다.
본향단신은 마을 사람들의 생산, 물고, 호적을 관장하는 신으로 일반적으로 남성신을 모시는데, 김녕본향당은 드물게 '큰도안전 큰도부인'이라는 여성신을 모시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강남천자국 정국 안가름에서 솟아난 세 자매가 제주에 들어와 맏이는 조천마을에 정중부인으로 좌정하고, 막내는 성산읍 온평마을에 맹호부인으로 조정하고, 둘째는 김녕마을에 와서 좌정했다고 한다.
김녕 큰당에서는 대제일(정월 13·14일), 마물림제(7월 13·14일), 시만곡대제(9월 13·14일) 등의 제의가 거행된다. 이 당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하기 때문에 제일 3일 전부터 당에 갈 여성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며 정성을 다하였으며, 제물은 각 가정에서 시루떡, 메, 과일, 생선, 삶은 계란, 술, 채소 등을 저마다 차려다가 올리고, 액막이 상도 저마다 별도로 마련하였다.
제주사람들의 민간신앙은 무속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본래 당굿은 남녀 모두 하나가 되어 한 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던 공동의 축제였는데,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유교제법이 보급됨에 따라 남성들은 당굿에 참여하지 않고 따로 포제를 지내게 된 것이다.
김녕마을에는 '동김녕포제간'과 '서김녕포제단' 등 두 개의 포제단이 있는데, 이는 김녕마을이 동·서 두 개의 마을로 분리되었을 때 저마다의 마을에서 마을제를 올렸기 때문이다. 2000년 1월 1일 두 마을이 합쳐진 뒤로는 '서김녕포제단'에서 함께 치르고 있다.
▲ 1132번지방도 일주도로와 만나는 사거리(사진 左)
김녕중학교 앞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서(사진 右)
김녕중학교 담장을 따라 시멘트 포장길을 빠져나가면 1132번지방도 일주도로와 만나는 사거리. 우측으로 꺾어 중학교 담장을 끼고 100여m를 가면 '김녕중학교 앞' 사거리. 좌측의 횡단보로를 이용하여 1132번지방도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입구에 '←동부농업기술센터' 입간판이 있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면 '동부농업기술센터' 앞 ┪자 갈림길(14:53).
▲ 동부농업기술센터 앞 ┫자 갈림길(사진 上)
┫자 갈림길의 '김녕빌레왓길' 안내도(사진 下)
갈림길에는 '김녕빌레왓길' 안내도가 있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김녕빌레왓길과 함께 하는 지질트레일 탐방로를 따르면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자 삼거리.
▲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자 삼거리(사진 上左)와 궤네기굴과 입산봉갈림길인 ┫자 갈림길(사진 上右)
궤네기굴과 입산봉갈림길인 ┫자 갈림길의 지질트레일 이정표(사진 下)
우측으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100여m를 올라가면 ┪자 갈림길. '김녕의 당(堂) 궤네기당' 지질트레일 해설판과 이정표가 있다.
입산봉으로 향하는 지질트레일 탐방로는 좌측의 포장길이지만, (8)궤네기굴과 궤네기당이 직진의 도로따라 약 9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다녀와서 입산봉으로 향하기로 한다.
▲ 궤네기굴과 궤네기당의 당산목인 팽나무
「 2천년 전에는 누구의 집이었을까? 궤네기굴 」
궤네기굴은 전체 길이 200m로 제법 긴 용암동굴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선사시대 사람들이 주거했던 공간이었으며, 중세시대 이후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다.
▲ 궤네기굴 입구
동굴이 길이는 200m지만 주거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은 65㎡쯤 되며, 가장 넓은 부분은 입구인데 9.2m이고 내부 안쪽은 7.5m이다.
유물이 묻혀있던 바닥은 세 층으로, 층마다 시대를 달리한 토기조각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청동기 주거지 흔적이 남아있는 최하층에서 출토된 '패촉'은 전복껍데기를 다듬어서 만든 화살촉으로 현재까지 제주지역에서만 확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동굴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유물인 적갈색경질토기로 미루어 중심연대는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보인다. 적갈색경질토기는 토양 조건이 열악한 제주지역에서 경도를 강하게 만든 토기라고 한다.
결국 궤네기동굴은 적어도 2천년 전을 전후한 수백 년 동안 주거지로 이용된 선사시대 유적지이다.
「 '돗제'를 지내던 신당, 궤네기당 」
수령 350년, 수고 12m, 나무둘레 5m가 넘는 당산목인 늠름한 팽나무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는 궤네기굴은 신앙유적이기도 하다.
동굴 안에서 멧돼지뼈가 많이 출토됐는데, 특히 머리뼈 부분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수백 년 동안 멧돼지를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냈던 오랜 제장 유적인 셈이다.
마을에서는 '궤네기당'이라 부르는데, 용맹한 영웅신으로 비바람을 잠재워 한 해 농사를 돌봐주고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궤네기또'가 좌정해 있다는 신당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전에는 돼지를 잡아서 통채로 올려 제를 지내는 '돗제'가 치러졌었다.
돼지는 제주도 사람들에게 귀하고 특별한 것으로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제물이었으며, 모든 집에서 1년에 한 번씩은 돼지를 한 마리 잡아서 제물로 올렸다 하니 보통 정성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돗제가 끝나면 돼지고기로 죽을 쑤어 굿을 보러 온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이 궤네기당의 내력을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이 "돼지 천 마리를 잡아 피 한 점 흘리지 말고 돗제를 하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지시에 따라 마을의 집마다 돼지를 잡아 '돗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궤네기굴에서 돗제를 지내지 않고 집집마다 문전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 사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유가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 당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결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굿을 못하게 하자 집에서 몰래 지내게 되었다는 설과 4·3사건을 겪으면서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그렇게 되었다는 설, 그리고 주변 입산봉이 무덤으로 뒤덮히면서 피 냄새 때문에 '궤네기또'가 동굴에 머무를 수 없어 각자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설 등이다.
저마다 집에서 지내는 돗제는 방식도 주기도 그 집안의 사정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였는데, 주로 삼방을 불러 지내지만 유교식으로 축을 고하기도 하는 등 제의방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제의주기도 1년에 한 번 또는 3년에 한 번 지내기도 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기 위해, 자손이 태어날 때, 소상이나 결혼잔치 등이 있을 때 지내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제가 끝나면 돼지를 삶아서 동네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눠 먹는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다시 마을 축제가 되어 마을 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민속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15:00~15:05=>궤네기굴과 궤네기당
입구에는 지질트레일 해설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궤네기굴은 거대한 보호수인 팽나무 아래 입구를 쇠창살로 막아 두어 출입을 할 수가 없다.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입산봉을 갔다 되돌아 내려와 진행해야 할 ┩자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입산봉과 산사면에 조성된 입산봉 공동묘지가 정면으로 조망이 되다.
입산봉 공동묘지 입구를 지나 잠시 오르면 (9)입산봉 입구이다.
▲ 입산봉 입구
15:10~15:47=>입산봉
┪자 갈림길인 입산봉 입구에는 대형 입산봉 안내도, 김령빌레왓길 '입산오름' 안내판, 그리고 직진하지 말고 되돌아 내려가라는 지질트레일 이정표 등이 있다.
지질트레일의 정규 코스는 아니지만 현재 제주도의 오름을 탐방하고 있는 중이라 입산봉 둘레길 탐방을 하고 가기로 한다.
▲ 입산봉 입구의 입산봉 안내도(사진 上)
김녕빌레왓길 입산오름 안내판(사진 中)
지질트레일 이정표(사진 下)
「 김녕의 두 오름 중 하나, 입산봉(笠山峰) 」
*표고:84.5m(비고:65m), 둘레:1,742m, 면적:229,521㎡, 폭:628m
김녕마을에는 두 개의 오름이 있다. 입산봉과 묘산봉이다.
입산봉의 본디 이름은 '입미오름'이며, 한자차용표기로는 입산악(笠山岳), 오름 모양이 마치 삿갓을 뒤집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삿갓 '입(笠)'자를 써서인지, 삿갓오름이로도 하지만, 민간에서 그에 대응하는 음성형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는 조사연구가 있다.
어쨋거나 이 오름의 본디 이름은 '입미오름'인데, '입미'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조선 초기부터 이 오름의 봉우리에 적의 동정을 살피던 봉수가 설치됐는데, 세종21년(1439) 봉수 이름이 입산봉수대(笠山烽燧臺)로 지정되어, 줄여서 입산봉(笠山烽)이었다. 조선 후기에 봉수가 폐지되면서부터는 '봉'자의 한자를 바꾸어 입산봉(笠山峰)이라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풍수적으로 김녕의 두 오름(입산봉과 묘산봉)은 풍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산체로 꼽히고, 마을을 지키고 보호하며 정기를 불어넣어 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허한 기운을 보완해 주는 비보의 역할을 하는 오름이다.
봉수대 폐지와 한일합방으로 일반인의 입산금지령이 해제되자 입산봉 정상 입지에 처사 김원익의 묘(현 농장주 김두전 조부모)가 최초로 들어섰으며, 그후 김녕리를 중심으로 인근 부락 공동묘지로 지정되어 북쪽 일부 송림지대를 제외하고 산 전체가 묘가 조성되어 현재는 수 천기에 달하게 되었다.
선사시대 농기구 등 다수가 출토되어 제주대와 서울대 박물관이 현지 답사 결과 입산봉 분화구 분지에서 3,4천년 전에 사람이 살면서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추정,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돌괭이는 문화재관리국이 청동기 말기나 철기시대 초기 유물로 보고 보전문화재로 평가하여 현재 제주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입산봉은 마을의 길흉화복을 점차는 김녕의 명산이다.
▲ 입산봉 둘레길에서 바라본 입산봉 정상
주민들은 풍수학설에 따라 '입산봉의 물꼬를 헐지 말라'는 뜻으로 큰 암석에 '금훼수(禁毁水)'라 표시, 영원히 보호하도록 했다고 한다.
수성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융회환이고, 제주 섬이 품은 24개의 수성화산 가운데 하나이다. 분화구 남서쪽 일부가 침식되어 사라졌지만 산 높이에 비해 매우 큰 원형분화구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용어)
*수성화산 : 고온의 마그마가 지표를 향해 올라오다가 지하수나 지표수를 만나면 마그마는 급격히 식고 물은 끓어 기화하면서 매우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렇게 물에 의한 폭발적 분화로 형성된 화산
*융회환 : 수성화산의 가운데 분화구의 크기에 비해 낮은 산체를 지닌 것
*융회구 : 수성화산의 가운데 분화구의 크기에 비해 높은 산체를 지닌 것
<< 입산봉 탐방 >>
좌측 입산봉 공동묘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입산봉 표지석과 금산농장 입구인 ┫자 갈림길을 차례로 지나 입산봉 둘레길에 오른다.
▲ 경작지로 변해버린 입산봉 분화구
▲ 입산봉 분화구 둘레길
좌측에 경작지로 변해버린 분화구를 두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여 입산봉 정상으로 향해 본다. 수레길처럼 뚜렷하던 분화구 둘레길은 묘지대를 만나면서 사라지고, 묘 사이로 나있는 샛길을 따르거나 빼곡히 들어 찬 묘지들 돌담위를 이어가며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진행에 어려움이 있어 10여분만에 포기를 하고 발길을 돌려 되돌아 내려온다.
금산농장 입구 ┫자 갈림길(15:29)에서, 이번에는 좌측 금산농장 방향, 시계 방향으로 입산봉 정상을 향해 분화구 둘레길을 진행해 본다.
▲ 입산봉 금산농장갈림길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입산봉 정상에서 바라본 김녕마을' 해설판에서 부터 시작되는 수레길 수준의 넓은 둘레길을 따르면 다시 묘지대의 돌담(15:38)으로 산길이 사라져 버려 어쩔 수 없이 입산봉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입산봉 입구로 되돌아 내려온다.
▲ 입산봉 분화구 둘레길에서 바라본 김녕마을(사진 上)
묘산봉(사진 下)
그러나 분화구 둘레길에서 좌측 아래로 펼쳐지는 김녕마을 일대가 조망되어, 이를 내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지만, 약 35분간의 입산봉 정상을 향한 둘레길 탐방을 시도하였으나 정상에는 오르지 못한 것이다.
▲ 입산봉 입구에서 되돌아 내려가는 지질트레일 탐방로
입산봉 입구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궤네기굴과 궤네기당 입구 방향으로 약 150여m를 내려가다, ┢자 갈림길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우측 아래로 보이는 1132번 지방도 변에 위치한 김녕교회로 향한다.
▲ 김녕교회 앞 1132번지방도
15:51=>1132번지방도 일주도로/김녕교회 앞
횡단보도를 건너 직진의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코너에 신산동복지회관이 자리한 ┢자 갈림길(15:55). 복지회관을 끼고 우측의 마을 포장길(김녕로18길)을 이어가면 ┱자 삼거리.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자 갈림길(15:58). 지질트레일 이정표(출발점기준 3km/종착점까지 11.6km)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 신산동복지회관 옆 마을길(사진 上)
┳자 마을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자 갈림길, 우측 길따라 진행(사진 中)
┣자 갈림길의 지질트레일 이정표(사진 下)
우측의 시멘트 포장길.
정면으로 가야 할 소년체전 농구경기가 열리는 구좌체육관이 조망되는 밭 사이의 트레일길.
▲ 구좌체육관을 향해 밭 사이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 '성세기당'과 잠수굿 」
성세기당은 고깃배를 갖고 있는 집의 부녀자와 해녀들이 주로 다니는 당이다.
김녕마을의 어업을 권장하는 해신 '요왕제국 말잣아덜'을 모시고 있는데, '요왕'은 용왕을, '말잣'은 셋째를, '아덜'은 아들을 일컷는 제주토박이 말이다.
제단 뒤에 서있는 동백나무 두 그루가 신목이고, 제단 좌우에는 신의 거처를 일컷는 궤가 하나씩 마련되어 있다. 이 당에서는 정월 18일에 신과세제, 3월 8일에 잠수굿, 7월 18일에 마불림제, 9월 18일에는 시만국대제가 치러진다. 정성이 깊으면 매달 8일이나 18일 새벽에 간당하게 제물을 마련해 기원하러 가기도 한다. 이렇게 제일이 8일인 신당을 제주에서는 '여드렛당'이라 부른다.
가장 크게 여기는 제의는 요왕문이 열리는 날이라는 3월 8일의 잠수굿인데, 지금은 당에서 하지 않고 어촌계 잠수탈의장을 제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물질하는 여인을 '해녀'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잠수'라고 했다. '잠수굿'은 해녀를 위한 굿으로, 해안마을에서 1월과 3월 사이에 행해졌던 무속의례이다. 마을마다 시기가 조금 다른데 김녕마을에서는 3월 8일에 지내고 있는 젓이다.
구좌읍은 제주에서 해녀가 많은 지역이고, 김녕마을은 구좌읍에서도 그 수가 많고 활동이 왕성하기로 꼽히는 마을이다. 더불어 해녀들의 물질작업은 김녕마을 어업소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잠수굿은 해녀들이 주관이 되어 일주일 전부터 각별히 언행을 조심하는 등 정성을 다해 준비를 하며, 마을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어부와 해녀들의 해상안전과 생업의 풍요를 기원하며 세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성대하게 치러진다.
▲ 성세기당 입구 갈림길과 입구의 지질트레일 이정표
▲ 조른빌레길
16:08~16:10=>성세기당 입구
(10)성세기당은 우측에 자리를 하고 있어 잠시 들어갔다 되돌아 나와 탐방로를 이어가면 (11)조른빌레길 해설판이 있고, 지질트레일 이정표(16:12, 출발점기준 4.1km/종착점까지 10.5km)를 지나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자 삼거리(16:15).
▲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자 삼거리(사진 左)와 성세기해변으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사진 右)
우측으로 방향을 잡고 2차선 포장도로 갓길에 만들어진 자전거전용도로을 따라 올라가면 김녕성세기해변 입구에 이르게 된다.
▲ 김녕성세기해변 입구(사진 上)
김녕성세기해변(사진 下)
16:18=>김녕성세기해변 입구
입구에는 제주올레 제20코스 '성세기해변' 안내푯말.
▲ 김녕성세기해변 입구의 제주올레 20코스 푯말과 입간판
'김녕성세기해변' 버스정류장과 구좌체육관 앞을 차례로 지나 동부소방서 김녕119지역센터 앞 ┪자 갈림길(16:26).
▲ 동부소방서 김녕119지역센터 앞 ┫자 갈림길(사진 上)
갈림길의 지질트레일 이정표(사진 下)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길을 따라 해안가 방향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구좌체육관을 포함하여 잔디가 깔린 다목적운동장, 게이트볼장, 그리고 배드민터장 등 체육시설을 두고 150여m를 올라가면 ┢자 갈림길.
「 자연을 닮은 곡선의 미학, 밭담 」
밭담 덕분에 제주의 경작지는 웬만한 관광지보다 아름답다.
어떤 농산물도 밭담과 어우러지면 한 폭의 그림처럼 빛난다. 밭이 비어 있어도 얼기설기 쌓여 구불구불 이어진 밭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밭담은 자연을 닮아 구부러지고, 둥글러지고, 휘어지고,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감탄케 한다.
제주밭담은 언제부터 쌓았는지 <탐라지>에는 "과거에는 밭 사이에 경계가 없어서 힘센 자들이 약한 자들의 토지를 날로 잠식하기에 김구가 지역민들의 고충을 듣고서 돌을 모아 담을 쌓고 경계선을 구분 지으니, 지역민들이 편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구는 고려시대 1234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제주밭담은 1234년 이후부터 쌓여졌던 것일까? 제주밭담에 '경계선'이라는 역할이 하나 더 보태진 것은 그때부터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농경문화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제주는 돌투성이 화산섬이고, 온갖 바람이 불어대는 바람의 섬이라 씨앗을 한 톨이라도 더 심고 살리기 위해 돌들을 골라내고 바람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밭에서 골라낸 돌들이 자연스럽게 담을 이루기도 했고 바람을 막기 위해 일부러 돌담을 쌓기도 했으리라. 밭담은 바람을 걸러내어 씨앗과 흙을 보호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제주밭담들이 엉기성기 쌓여 구불구불 곡선을 이루고, 해안지역일수록 높게 밭담이 쌓인 이유가 바로 바람 때문이다. 간혹 넓은 밭에서는 밭 가운데를 가로 지른 돌담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바람 때문이다. 밭의 가장 자리에 쌓은 돌담만으로는 바람을 막아주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밭담은 외줄로 얼기설기 쌓아올리게 마련인데,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잘 무너지지 않는다. 조사에 따르면 밭담은 불어오는 바람을 찢는 파풍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바람이 돌과 돌 사이의 틈을 통과하면서 찢어져 그 세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바람을 여러 갈래로 찢되 무너지지 않게 쌓아온 밭담. 그것이 제주 선인들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기술과 지혜의 결정체라는 걸 알고 감상한다면 제주밭담들이 자아내는 경관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올 것이다.
◈ FAO 세계중요농업유산. '제주밭담'
드르빌레길 코스의 밭담길은 '제주밭담'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한국농업유산으로 선정된데 이어, 2014년 4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제주섬의 밭담보전 지역 중에서도 핵심권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FAO(세계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은 '세계문화유산'이나 '세계자연유산'처럼 보전하고 계승할 만한 가치가 있는 농업유산을 지정해 관리하는 유일한 제도이다. 이 제도의 목적은 "어떤 국가나 지역사회의 독특한 풍토에 적응하면서 몇 세기에 걸쳐 발달하고 형성되어온 농업적 토지이용, 전통적인 농업과 관련되어 육성된 문화·경관·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그래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다음 세대에게 계승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세계환경기금, 유엔개발계획, 유네스코 등의 지원을 받아 2002년부터 국제식량농업기구가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12개국 27곳이 등재되어 있다.
제주밭담은 제주 선인들이 천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쌓아올린 제주농업의 역사이자 지혜의 산물이다. 덕분에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정성껏 보전하고 전승해야할 세계적인 유산을 지니게 된 셈이다.
(12)김녕 밭담길이 시작되는 우측의 밭 사이 돌담길을 따른다.
밭담은 밭을 정리할 뿐만 아니라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제주 농경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대표적인 문화이다.
▲ 지질트레일 이정표가 있는 ┳자 갈림길(사진 上)
풍력발전지대가시작되는 ┣자 갈림길(사진 下)
┱자 삼거리(16:41)에 이르면 지질트레일 이정표(출발점기준 5.6km/종착점까지 9km)를 만나게 되고, 좌측으로 진행하면 ┢자 갈림길(16:46)에서 우측의 길을 따르게 된다.
▲ 김녕밭담길
주변에 풍력발전소가 있는 밭담길을 이어가다 Y자 갈림길(16:51)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구릉지 산길이 시작되는데 (13)진벌레길이다.
▲ 진벌레길로 들어가는 Y자 갈림길(사진 上)
구릉지 산길이 시작되는 진벌레길 입구(사진 中)
수레길을 이루는 진벌레길(사진 下)
「 빌레지대의 진수, 진빌레 」
김녕밭담길 코스가 마무리될 즈음, 김녕과 월정 두 마을의 경계 부근에 '진벌레'라는 숲이 형성되어 있다. '진'은 길다는 뜻을 지닌 제주토박이말이므로, '빌레'가 길게 이어져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숲이기는 하지만 어느 숲들처럼 나무들이 울창하지는 않고, 덩굴식물들이 많이 우거져 있어 키 작은 사람들이 사는 동화 속의 밀림지대처럼 느껴진다. 밭밑은 온통 바위 투성이이고, 그것들은 크고 거칠게 쪼개진 채 울퉁불퉁 놓여있기도 하고, 넙대대하고 매끈한 모습으로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게 퍼져 있기도 하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큰 암반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태초에 형성했던 빌레지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진벌레에 깔린 암반들은 뜨거운 용암이었을 때 용암호를 이루었다가 식으면서 굳은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2차선 포장도로에 이르며 진벌레길은 끝이 나고, 도로건너 (14)월정밭담길이 시작이 된다.
▲ 진벌레길이 끝나고 월정밭담길이 시작되는 2차선포장도로(사진 上)
월정밭담길이 시작되는 길 입구의 '진벌레정' 정자 쉼터(사진 中)
'진벌레정' 정자 쉼터 옆의 지질트레일 이정표(사진 下)
16:58~17:02=>2차선 포장도로/월정밭담길 입구
도로 건너 월정밭담길이 시작되는 시멘트포장길 입구 우측으로 '진벌레정' 정자 쉼터가 있고, '월정밭담길' 해설판과 지질트레일 이정표(출발점기준 7.1km/종착점까지 7.5km)가 설치되어 있다.
▲ 진벌레정 정자 쉼터에서 바라본 월정밭담길 일대 전경
월정밭담길을 따라 진행하면
▲ 월정밭담길
「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밭 」
밭담길을 걷다보면 밭 안에 들어앉은 무덤들이 종종 보이는데, 그 무덤들은 하나같이 제주에서 '산담'이라 부르는 돌담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이는 외지인들이 매우 의아해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인데, 제주도 무덤 양식이 육지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밭에 무덤을 조성할 때에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밭이 있으면 그곳에, 다른 사람의 밭인 경우에는 밭주인에게 미리 허락을 받은 뒤 보리 등으로 임대료를 대신하기도 했다. 물론 기계가 아닌 소와 말을 이용해 밭을 갈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지금 밭에 있는 무덤들은 제법 오래 전에 조성된 무덤인 셈이다. 덕분에 이곳 밭담길에서 제주의 장묘문화를 만나 볼 수 있다.
무덤의 울타리인 '산담'은 타원형 또는 장방형으로 쌓은 돌담이며, 타원형의 산담은 한 겹으로 쌓은 외담형식이다. 장사 치르는 날 임시로 쌓은 산담읜 경우가 많지만, 후손의 사정으로 그리 쌓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날짜를 잡아 산담을 조성할 경우는 양쪽에 커다란 돌을 쌓은 뒤 그 사이에 작은 돌을 채워 넣는 겹담양식으로 만드는데 어김없이 장방형이다. 이때 특이한 것이 '시문(神門)'이라 부르는 신의 출입문을 만든다는 것이다. 무덤 주인이 제삿날 자손들이 차려주는 음식을 먹기 위해 후손의 집을 찾아갈 때 출입하는 문이다.
산담 안에는 무덤의 좌우로 동자석을 세우기도 하는데, 무덤을 지키고 영혼을 모시기 위해 세운 석상으로 넓게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의미까지도 담겨 있다.
밭에 조성된 무덤도, 산담과 동자석도, 삶과 죽음은 따로 있는게 아니라 여겼을 제주사람들의 생각을 엿보게 한다. 이곳 밭담길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풍경을 전해주고 있다.
밭 속의 돌담울타리인 (15)산담이야기 해설판(17:06)을 지나,
발 아래 해안쪽으로 이어지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일부를 이루는 (16)용천동굴과 (17)당처물동굴이 지나는 지역(1712)에 이르게 된다.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 지질트레일 해설판이 설치된 곳으로 출발점 기준 7.7km 지점이다.
우측으로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 입구로 가는 길이 있지만, 보존을 위해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발 아래 지나는 용암동굴을 상상해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한다.
▲ 월정밭담길의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 입구
「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의 신비 」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의 특이한 공통점은 용암동굴이면서 석회암동굴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동굴 내부에 석회암 동굴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석회장식 동굴 생성물을 품고 있어, 용암동굴이면서 내부에 석회동굴의 특징을 지닌 경우는 그 유례를 찾기 어럽다는 것이 세계동굴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석회장식 동굴생성물이 형성된 동굴지대 위는 하얀 모래언덕이 이루어져 있는데, 조개류 껍데기 조각들이 모여 이루어진 하얀 모래가 해안으로부터 바람에 날려 오랜 기간 쌓이면서 사구퇴적층을 이룬 것이다. 바로 이 모래언덕이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다.
모래의 탄산염 성분이 빗물에 녹으면서 동굴 틈을 타고 스며들어 동굴 안으로 한 방울 한 방울 쌓이는 과정이 계속되면서 갖가지 탄산염동굴생성물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석회동굴 안에서 발견되는 동굴생성물과 모양이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다른 점이 많다.
▲ 당처물동굴
당처물동굴은 1995년 마을 주민이 밭농사를 위해 중장비로 터 고르기를 하다가 발견하였으며, 인근에 '당처물연못'이 있어 동굴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당처물동굴은 길이 110m, 최대 높이 2.7m, 최대 폭 18.4m로 짧고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탄산염동굴생성물이 빚어내는 내부 경관은 그 어떤 동굴보다 충격적이고 강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 용천동굴
용천동굴은 전체 길이 3,400m에 이르는 대형동굴이다. 140m나 되는 용암 두루마리를 비롯해 용암단구, 용암선반, 용암폭포, 용암유선, 도랑 구조, 튜브인튜브 등 전형적인 용암동굴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온갖 모양과 종류의 탄산염동굴생성물이 동굴 안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동굴 하류에 거대한 호수가 있어 용천, 곧 '용이 하늘로 승천한 호수가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 붙여졌다. 호수 깊이는 7~15m, 길이는 800m에 이르고 그 끝은 모래둑으로 막혀 있는데 바다로 이어진다. 용암동굴에서 대형 호수가 발달한 사례는 이 용천동굴 밖에 없다고 한다. 용천동굴은 세계 동굴전문가들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암동굴'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용천동굴은 2005년 5월 월정마을에서 전신주 교체작업을 하던 중 땅속으로 전신주가 쑥 빨려들어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주 오래 전에 사람들이 다녀 간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굴 벽에는 세로로 글자가 몇 개 새겨져있는데, 그 가운데 불 '화(火)'와 내 '천(川)'자는 뚜렷이 알아 볼 수가 있다. 뿐만 이니라 동굴 곳곳에 깨진 토기 조각, 횃불로 사용했던 숯 조각, 동물의 뼈, 큼지막한 전북껍데기, 철기유물도 발견되었다. 동굴 물속에는 수많은 토기들이 부서진 채, 혹은 멀쩡한 채 제멋대로 놓여 있는데, 누군가 이 깊은 동굴 막장에 있는 호수에까지 들고 와서 일부러 물속에다 던져두고 간 것이다.'용천동굴의 상류에서 하튜까지 60개 구간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유물들 가운데 수습이 가능한 유물들은 제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겨져 복원작업을 거쳐 22점의 토기가 제 모양을 찾았는데 모두 주둥이가 좁은 병이거나 항아리 모양이다.
대부분 술과 물 등 액체를 담는 용기로 최상급 도자기이며, 그 가운데 토기장군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드물게 출토되는 특수기종인데, 제주에서는 처음 발견되었다.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인화문 토기병도 있었는데, 이는 신라왕경에서 골호문양으로 쓰였던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8세기를 중심 시기로 하는 고급 토기이다.
동물의 뼈는 사슴과 멧돼지의 것으로, 철기 유물은 깃발용 봉상철기와 손칼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용천동굴 내부의 입지조건, 유물의 시기와 분포상태, 유물의 종류와 특징 등을 종합해보면 탐라시대 후기인 700년대 당시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제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 제주올레 20코스와 다시 만나는 월정마을 입구의 ┳자 삼거리(사진 上)
┳자 삼거리의 지질트레일과 제주올레 이정표(사진 下)
┲자 삼거리(17:13)에서 우측 길로 진행하면 제주올레 제20코스와 다시 만나고 지질트레일 이정표(출발점기준 8.6km/종착점까지 6km)가 있는 월정리마을 입구 ┲자 삼거리.(17:20)
▲ 제주올레 20코스와 다시 갈라지는 월정마을 ╋자 사거리(사진 上)
월정마을길(사진 下)
우측 길 따라 월정리마을로 들어가면 ╂자 사거리.(17:22~1723)
좌측 길로 빠져 나가는 제주올레 제20코스와 작별하고, 직진의 '월정1길' 골목길로 들어 오늘 탐방의 종착지인 월정리사무소 진행을 하게 된다.
▲ 월정리사무소
17:28~17:42=>월정리사무소/월정리복지회관
리사무소 앞에는 대형 지질트레일 안내도와 '월정리 설촌 유래' 안내판이 있다.
바닷가에 위치한 지인이 운영하는 '가가펜션'에 들러, 냉커피 한 잔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300여m 떨어진 1132번 지방도 일주도로에 위치한 동회선 버스정류장(17:47~18:08)에서 하도리 '하도어촌계펜션'으로 향하며 탐방을 마무리한다.
'제주도 > 제주도의 관광명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가 오면 웅장하게 폭포수를 형성하는 폭포! 엉또폭포 (0) | 2019.07.22 |
---|---|
쉬멍 걸으멍… 때묻지 않은 제주 숲길 '고살리숲길' (0) | 2019.05.19 |
(제주)천년의 숲! 비자림(榧子林) (0) | 2015.05.16 |
불과 물 그리고 바람의 하모니!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0) | 2015.05.14 |
2014년 제주 해맞이해안로에서 맞은 새해 일출 (0) | 2014.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