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작산 수타사(壽陀寺) ▶
영서 내륙의 최고 고찰!!!
홍천 제6경!
「 강원 홍천(全北 全州) 소개 」
건강과 휴양, 레포츠의 도시 홍천!
홍천군의 면적은 1,819.60㎢로 백두대간의 크고 작은 지맥에 둘러싸인 중산간 지역이며, 홍천읍 시가지를 관통하는 북한강 지류인 홍천강이 백두대간의 분수령으로부터 서쪽으로 흘러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북한강과 합류하고 있어 그 유역에 작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경도상으로는 동경 127º 32'에서 128º 51'간에 걸쳐 있으며, 동북쪽으로 인제군과 양양군, 남쪽으로 횡성군과 평창군, 거쪽으로는 경기도 양평군과 북쪽으로 춘천시와 접하고 있는 동서간 거리는 93.1km, 남북간 거리는 39.4km이다.
《 홍천 9경 》
- 제1경 팔봉산 ~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해발 327.4m의 나지막한 산으로 여덟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 봉우리마다의 비경과 기암괴석이 산허리를 끼고 흐르는 맑고 깨끗한 홍천강이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같은 절경을 연출한다.
- 제2경 가리산 ~ 발아래 펼쳐지는 소양호의 풍경과 3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은 석간수가 샘 솟으며, 강원 제1의 전망대라고 할 만큼 풍경이 좋은 산이다.
- 제3경 미약골 ~ 원시림의 자연생태계의 보고로써 촛대바위와 암석폭포 등 바위들이 각기 아름다운 형상을 이루고 있어 미암동 또는 미약골이라 불리며, 맑고 깨끗한 용천수가 샘솟아 400리를 흘러 북한강 청평댐으로 유입되는 홍천강의 발원지이다.
- 제4경 금학산 ~정상에 오르면 태극문양의 노일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명산으로, 백두대간에서 오대산을 거쳐 영서내륙 한강변까지 깊숙히 뻗어내린 한강기맥의 끝자락 장락산맥이 한 눈에 들어온다. 400리 홍천강변 최고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하다.
- 제5경 가령폭포 ~ 오지의 백암산(1,099m) 서남쪽 기슭에 숨어 있으며, 개령호인들이 찾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백암산과 더불어 우렁찬 굉음을 토하며 50여m의 낭떠러지를 뒤흔들며 내리꽂는 자태가 웅장하다.
▲ 홍천9경 중 제6경인 수타사
- 제6경 공작산수타사 ~ 한국의 100대 명산 공작산 끝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 신라 성덕왕7년(708)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영서내륙 최고의 고찰이다.
- 제7경 용소계곡 ~ 우거진 숲과 곳곳에 펼쳐지는 소와 너래바위들,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10km의 계곡으로 조화롭게 펼쳐져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내설악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 제8경 살둔계곡 ~ 계방천과 자운천이 어우러져 만든 살둔계곡의 물은 천연기념물인 어름치와 열목어가 서식하는 1급수를 자랑하고 있다. 봄에는 기암괴석과 철쭉이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수려하며, 가족단위의 휴식처로 적당하다.
- 제9경 가칠봉삼봉약수 ~ 조선시대 실론약수라 불렀으며, 주위에 가칠봉, 사삼봉, 응복산의 세 봉우리 가운데 위치한다하여 삼봉약수라 불린다. 수질이 우수하여 한국 명수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15가지 약수 성분이 함유된 명천으로서 빈혈, 당뇨병, 신경통, 위장병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하여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 홍천의 역사 》
고구려시대에 벌력천현으로 칭하여 오다가 신라 경덕왕 떄 녹효로 고쳐 삭주(현재의 춘천)의 영현이 되었으며 그후 고려 제8대 현종9년(1018)에 홍천으로 고치고 제17대 인종21년(1043)에 감무를 두고 별호를 화산현이라 하였다.
조선 태종13년(1413)에- 홍천현이 되어 현감을 두었다가 고종32년(1895)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춘천부 홍천현이 되었다.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한 13도제 실시로 강원도 홍천군이 되어 화촌,두촌,내촌,서석,영귀미,감물악,금물산,현내,북방의 9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그후 현내면을 군내면으로 변경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화촌면의 태학,결운 2개리와 금물산면 하오안,장전평 2개리를 군내면으로 편입하였으며, 1917년 금물산면을 남면, 군내면을 홍천면, 영귀미면을 동면, 감물악면을 서면으로 변경하였다.
1935년 5월 1일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분지리를 홍천군 서면 굴업리에 편입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국토가 분단되면서 38선 이남에 해당되는 인제군 기린면의 진동리와 북리의 일부, 인제면의 원대리, 남면의 부평,어론,김부,신월,정자,갑둔,신충 7개리를 편입하여 신남면을 신설하고 인제군 내면을 편입하여 11개 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됨.
1954년 10월 21일 법률 제350호 '수복지구 임시조치법' 시행에 따라 신남면은 인제군에 환원시키고, 내면은 그대로 남아 10개면으로 개편.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7호로 홍천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남면의 삼마치리가 홍천읍으로 편입. 1읍 9개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됨.
1995년 7월 26일 북방면 성동리 일부가 화촌면 구성포리로 편입되어, 현재 홍천읍, 화촌면, 두촌면, 내촌면, 서석면,동면, 남면, 서면, 북방면, 내면의 1읍 9면으로 현재에 이루고 있음.
【 일 정 표 】2015년 6월 11일(목)-12일(금) 1박2일
◈ 첫째날(6/11) 홍천 탐방 : 수타사-공작산 수타사 산소길 트레킹
◈ 둘째날(6/12) 홍천 & 양구 탐방 : (홍천)희망리 삼층석탑&사사자 삼층석탑, 홍천읍사무소-희망리 당간지주-물걸리사지(석조여래좌상,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석조대좌, 석조대좌 및 광배, 삼층석탑)-(양구)국토정중앙탑 탐방
이번에 탐방하는 강원도 홍천군에는 영서내륙의 최고 고찰인 수타사와 강원도내에서 한 곳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 5점)가 가장 많은 유적지인 홍천 물걸리사지(강원도 기념물 제47호)가 있고, 수타사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인 공작산 수타사 산소길이 있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홍천읍내에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3점이 있는데, 2점이 읍내 옛 홍천군청 앞 마당에, 그리고 가까운 곳에 보물 1점이 자리를 하고 있어 쉽게 탐방을 할 수 있다.
홍천군 관광을 위해 3곳(홍천읍, 수타사, 물걸리사지)만 탐방하면 되기 때문에 여유있게 관광을 즐길 수가 있었다.
홍천읍에서는 홍천 희망리 삼층석탑(보물 제79호),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보물 제540호), 희망리 당간지주(보물 제80호) 등 보물 3점을, 수타사에서는 수타사 동종(보물 제11-3호), 월인석보 권17~18(보물 제745-5호) 등 국가지정문화재 2점, 수타사 대적광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 수타사 소조사천왕상(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영상회상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2호), 지장시왕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호), 홍우당부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호) 등 강원도 지정문화재들을 감상하고, 수타사 주변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생태숲 산책로인 수타사를 출발과 도착지로 약 3km의 '공작산 수타사 산소길'을 탐방할 수가 있다.
또한 물걸리사지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석조대좌(보물 제543호), 석조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 그리고 삼층석탑(보물 제545호)가 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
▲ 수타사가는 길인 산소길
홍천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은 공작산 수타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 공작산 수타사 산소길은 도보여행 '강원&충청권' 그리고 홍천읍의 문화재들!'과 '물걸리사지의 문화재들!'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강원&충청권'에 각각 나누어 총 4편으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영서 내륙의 최고 고찰, 홍천 제6경! 공작산 수타사(壽陀寺)
- 수타사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생태숲 산책로! 공작산 수타사 산소길
- 홍천읍의 문화재들! 희망리 삼층석탑, 당간지주,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 & 홍천군청
- 물걸리사지의 문화재들! 석조여래좌상,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석조대좌, 석조대좌 및 광배, 그리고 삼층석탑
▲ 수타사 경내 전경
『 공작산 수타사(孔雀山 壽陀寺) 』
*소재지:강원도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덕치리)
【 홍천 수타사 동종(洪川 壽陀寺 銅鐘) 】
*보물 제11-3호(2000년02월15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덕치리)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작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제작하였다. 이 종은 조선 후기의 종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종의 몸통 윗 부분에는 인도의 옛 글자인 범자를 새겼고, 그 아래에는 구름 위에 서서 양손으로 길다란 연꽃 가지를 쥐고 있는 4구의 보살입상이 있다.
보살입상아래에는 종과 관련된 여러 기록들리 새겨져 있는데 종을 만든 시기와 종을 만드는데 참여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각각 네모난 틀안에 새겨져 있다. 그 아래로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4개 있는데, 마치 불꽃같이 화려한 모양이다.
▲ 수타사 동종의 고리 부분
다른 종들은 몸통과 종을 거는 고리 부분을 한꺼번에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종은 따로 따로 만들어 붙이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였다.
특히 같은 해 만들어진 문경 김룡사 동종(보물 제11-2호)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독특하게 표현하여 완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인다. 문경 김룡사 종은 수타사의 종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수타사 동종과 함께 사인비구의 작품 세계와 조선 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김룡사 동종(사진 左)과 수타사 동종(사진 右)
나머지 동종은 포항 보경사서운암 동종(보물 제11-1호), 안성 청룡사 동종(보물 제11-4호), 서울 화계사 동종(보물 제11-5호), 양산 통도사 동종(보물 제11-6호), 의왕 청계사 동종(보물 제11-7호), 강화 동종(보물 제11-8호) 등 모두 8구이다. 이 중 강화 동종은 1963년 1월 21일이 보물로 지정되었고, 나머지 7구는 2000년에 지정되었다.
▲ 수타사 동종이 보관된 범종각
【 월인석보 권17~18(月印釋譜 券十七~十八) 】
*보물 제745-5호(1983년05월07일 지정)
*수량:2권1책
*소재지:강원도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덕치리) 수타사성보박물관
'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석보는 석가모니의 년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28년(1446) 소현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에 세조)이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석보상절'이다.
세종29년(1447)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석보 권17~18은 세조 떄 처음 간행된 초간본으로 2권 1책이다. 본래 강원도 홍천의 수타사 인왕문에 있는 사천왕상의 배 부분에서 발견되었다.
권17은 전부가 완전하며, 권18은 재87장 하부가 없어졌으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내용은 권 17은 '월인천강지곡' 제311장에서 제317장까지이며, 권 18은 제318장에서 제324장까지 해당되는 내용이다.
▲ 수타사 대적광전과 원통보전
【 홍천 수타사 대적광전(洪川 壽陀寺 大寂光殿)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1971년12월16일 지정)
수타사의 중심 법당으로 정면과 측면이 3칸 규모아고,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저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임진왜란으로 폐허로 남아 있던 것을 인조14년(1636) 공잠대사가 대적광전을 다시 짓고 이후 차례로 건축물을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선 중기의 모습을 간직한 공포의 모습과 조선 후기의 모습을 보이는 내부 살미첨자와 판재화, 연봉장식 등이 함꼐 나타나는 대적광전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균형이 잘 잡혀있는 조선 후기 불전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용마루 한 가운데 청기와 2개를 올려 놓았다.
▲ 수타사 대적광전 내부의 닫집과 수미단
▲ 수타사 대적광전 내부(사진 左)와 앞에 세워진 석주(사진 右)
▲ 수타사 사천왕상이 자리한 봉황문
봉황문 전면(사진 左)과 후면(사진 右)
【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洪川 壽陀寺 塑造四天王像)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1호(1998년09월05일 지정)
수타사 봉황문 좌우에 모셔진 있는 4구의 사천왕상이다.
절에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현종15년(1674)에 법륜이 봉황문을 세우고, 2년 후인 숙종2년(1676)에 여담이 사천왕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분노하는 듯한 얼굴과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모두 악귀를 거느리고 있다. 사천왕상의 배치는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것에서 차이가 있지만 기본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각각 긴 칼, 깃대, 용과 여의주, 비파 등을 가지고 있다.
사천왕상의 높이는 3.2m이고 머리 높이는 1.12m, 어깨 너비 0.73m, 무릎 너비는 1.52m이다.
팔과 광배, 악귀 등이 전체적으로 떨어져 나갔으며 색칠 또한 많이 벗겨져 있다.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 이후에는 주로 나무로 만든 사천왕상이 많은데, 수타사의 사천왕상은 18세기의 작품이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만들었다.
나무로 기본 형태를 잡은 후 새끼줄을 감고,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빚었다. 머리 뒤쪽의 불꽃무늬와 사천왕상이 가지고 있는 물건 등에는 부분적으로 나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 수타사 사천왕상: 동방지국천왕(사진 左), 서방광목천왕(사진 右)
▲ 수타사 사천왕상: 남방증장천왕(사진 左), 북방다문천왕(사진 右)
▲ 수타사 성보박물관인 보장각
보물 제745-5호인 월인석보 권17~18,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2호인 영산회상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3호인 지장시왕도가 전시되어 있다.
【 홍천 수타사 영산회상도(洪川 壽陀寺 靈山會上圖)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2호(1998년09월05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덕치리) 수타사성보박물관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린 그림을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 걸어두는 불화의 한 종류로, 보통 사찰의 전각안에 모셔둔 본존불 뒤에 걸어두는 후불화를 이른다.
수타사 영산회상도는 수타사 대적광전 내에 있는 비로자나불의 후불탱화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세로 278cm, 가로 263cm 크기이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열보살과 사천왕 등을 배치하였다. 중앙의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을 걸치고 있으며,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붉은 색을 칠한 옷은 각종 무늬를 두어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머리 꼭대기에 있는 육계는 높고 뾰족하며, 머리카락은 조그만 소라 모양처럼 구불구불하게 표현하였다. 몸 뒤의 광배는 연꽃봉우리 모양으로 크게 나타냈으며, 대좌는 두 겹의 흰 연꽃잎으로 장식하였다.
석가불의 좌우에는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배치되어 각각 흰 연꽃과 여의를 들고 서 있고, 그 윗쪽으로는 둥근 두광을 지닌 8보살이 배치되었다. 그림 아래에 있는 2구씩의 사천왕상은 갑옷의 금색부분이 입체감있게 표현되어 있는데, 사각에 가까운 얼굴, 작은 코와 입, 콧수염과 턱수염의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석가불의 어깨 좌우에는 늙은 비구 모습의 가섭과 청년 모습의 아난이 서 있다.
아랫 부분에 새긴 기록을 통해 조선 영조38년(1762) 금어 진찰 등이 이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수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 홍천 수타사 지장시왕도(洪川 壽陀寺 地藏十王圖)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3호(1998년09월05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덕치리) 수타사성보박물관
지장보살과 시왕을 그림 불화이다.
크기는 세로 186cm, 가로 205cm로, 사자머리가 장식된 높은 대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 있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70구에 달하는 각종 상들을 정연하게 배치하였다. 조선 후기의 시왕도 중에 유난히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정연한 배치를 위해 그림 중간에 붉은 색 구름을 그려넣어 화면을 위,아래로 나누었다.
중앙에 있는 지장보살은 깎은 머리에 투명한 두건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기다란 지팡이와 보주를 들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치고 있고, 몸에는 귀걸이와 팔찌 등을 장식하였다.
녹색의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따로 구분하여 표현하였다. 지장보살의 주위에는 5구씩의 시왕과 십대보살을 두었으며, 좌우 2구씩의 사천왕을 세워 놓았다. 구름의 하단에는 상단보다 작게 그린 무리들이 있는데 우선 가장 앞쪽에 옥졸을 두고 판관, 사자, 동자 등을 점차 나열하였다.
구름에 둘러싸인 앞쪽의 인물은 작게, 윗쪽에 있는 10대 보살이나 사천왕 등은 상대적으로 크게 묘사하고 있어 위로 갈수록 인물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지장보살에게 모아지도록 하였다.
하단 중앙에 있는 기록으로 보아 이 작품은 영조52년(1776)에 비구 설훈 등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수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 홍천 수타사 삼층석탑(洪川 壽陀寺 三層石塔)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호(1984년06월02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10번지
1층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고, 2·3층 몸돌이 없어진 탑신은 남아 있는 1층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얕게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뾰족하게 치켜 올라갔고, 밑면에 1·2층은 3단, 3층은 2단의 받침을 각각 두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동그란 돌 하나가 남아 있다.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각 층의 지붕돌 너비가 거의 줄지 않고 있어 원래는 높고 날렵한 큰 규모의 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수타사는 선조2년(1569)에 중창한 건물로 덕치천으로 불리는 개울 건너에 있다. 이 탑이 있는 터가 먼저 세워진 절터로 보이도, 원효에 의하여 일월사로 창건되었다는 곳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단지 절로부터 8km 상류에 매우 큰 삼층석탑이 무너져 있는데, 그곳이 원래 수타사지이고, 이 탑이 있는 곳이 후에 중건했던 절터가 아닌가 한다.
▲ 수타사 들어가는 길 옆의 부도전
【 홍천 수타사 홍우당부도(洪川 壽陀寺 紅藕堂浮屠)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호(1984년06월02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25번지
수타사 들어가는 길 옆에는 7기의 부도가 서 있는데 이 부도 중의 하나이다.
▲ 수타사 부도전의 부도들(출처:수타사 홈페이지)
부도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 두는 곳으로, 이 부도는 '홍우당'이라는 호를 가진 승려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땅 위에 드러난 사각 바닥돌 위로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을 두고, 납작한 공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후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바닥돌을 제외한 대부분이 6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 중에서 아래받침돌은 옆면마다 선으로 무늬를 새기고, 윗면에는 두 겹의 연꽃잎을 둘러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여섯 모서리에 마디가 있는 작은 기둥을 새겨 두고, 면마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무늬를 두었다. 윗받침돌은 아래와 대칭되는 두툼한 연꽃잎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지붕돌은 윗면의 여섯 모서리선이 두툼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모서리에서 미끄러지는 각 귀퉁이가 위로 솟아있다. 꼭대기에는 낮은 받침돌 위로 공 모양과 꽃봉오리 모양의 돌이 차례로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6각으로 이루어진 전체적인 구성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이 부도를 세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홍우당은 광해군3년(1611)에 태어나 숙종15년(1689)에 입적한 스님으로, 비문의 글씨가 심하게 닳아 읽기가 어려우나,남양홍씨이고 범명은 선천임을 알 수 있다.
입적 후 화장을 하였는데 네모진 사리 1과, 둥근 은색 사리 2과가 나오자 이를 봉안하였다. 비문은 스님이 입적한 다음 해인 1690년에 세워졌으므로 부도 역시 이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 기타 수타사의 전각들 】
▲ 수타사 대적광전 뒷편의 삼성각(사진 左)과 봉황문과 대적광전 사이의 보수공사중인 홍회루(사진 右)
▲ 수타사 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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