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전남 강진)신라계 양식의 석탑 흔적이 남아 있는 절터! 강진 월남사지

왕마구리 2015. 12. 9. 20:02

◀ 전남 강진 월남사지(月南寺址) ▶

신라계 양식의 석탑 흔적이 남아 있는 절터!!!

 

                      ▲ 월남사지 가는 길에 조망된 월출산

 

「 전남 강진(全南 康津) 소개 」

강진군은 원래 백제시대의 도무군지역인 도강과 동음현 지역인 탐진이 영합된 지역으로 도강의 “강”자와 탐진의 “진”자를 합하여 강진이라 호칭되어 온 것으로써, 도강군은 백제시대에는 도무군,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는 도무군이 양무군으로, 동음현이 탐진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조에 도강군으로 개칭과 동시에 탐진현 일부지역이 영암군과 장흥군에 속하다가 명종 2년(1172) 이 곳에 감무를 두어 행정, 병무를 동시 담당토록 하였다.

조선조 태종 17년(1417) 도강현 지역의 일부인 현 병영면 지역에 전라도병영(병영 절제사)을 신설함과 동시에 동강현과 탐진현을 합하여 이 곳을 강진현이라 명명하였으며, 그 치소를 도강의 치소이던 송계(현 강진읍 송현 또는 성전면 수양지역)로 옮겼으나 조선조 성종 6년(1475)에 다시 탐진의 치소(현 강진읍)로 복귀하였다.

조선조 개국 503년(1895)에는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강진군으로 개칭하고, 1914년에 백도면(현 신전면과 해남군 북일면의 일부)의 월성, 항리, 만수, 좌일, 금당, 내봉, 동리, 중산, 방책, 남촌 등 10개리를 해남군 북평면에 이속시키는 동시에 완도군 관할이던 가우도를 우리 군 도암면에 영속시켰다.

1936년 7월 1일 강진면이 강진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도암면 남부의 7개리를 분할하여 신전 출장소를 설치하였고, 도암면 영파리를 강진읍에 편입하였다. 서기 1974년 10월 26일 도암면 신전출장소를 군 출장소로 승격된 후 1983년 2월 15일 면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1981년 9월 25일 마량출장소를 설치(1982년 2월 10일 개소)한 후 1989년 4월 1일 마량출장소가 마량면으로 승격되었고, 1990년 8월 1일 해남군 옥천면 봉황리 일원이 도암면으로 편입되어 헌재 우리 군의 행정구역은 1읍, 10개면, 112개 법정리, 287개 행정리, 292개 자연마을로 되어 있으며 약 5만 여명에 달하는 인구가 오순도순 정답게 살고 있다.

 

     

                      ▲ 월남사지 가는 길에 조망된 월출산

 

『 탐방한 강진군의 문화재들 』

● 강진 무위사

국보 제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국보 제313호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康津 無爲寺 極樂殿 阿彌陀如來三尊壁畵)

보물 제507호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康津 無爲寺 先覺大師塔碑)

보물 제1312호 강진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康津 無爲寺 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314호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無爲寺 極樂殿 白衣觀音圖)

보물 제1315호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無爲寺 極樂殿 內壁四面壁畵)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 무위사 삼층석탑 (無爲寺 三層石塔)

● 강진 월남사지

보물 제298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313호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전라남도 기념물 제125호 월남사지 (月南寺址)

●강진 금곡사(金谷寺)

보물 제829호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康津 金谷寺 三層石塔)

●강진 정약용 유적(康津 丁若鏞 遺蹟) 사적 제107호

사의재(四宜齋)

다산초당(茶山草堂)

백련사(白蓮寺)

보물 제1396호 강진 백련사 사적비 (康津 白蓮寺 事蹟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백련사 대웅전 (白蓮寺 大雄殿)

천연기념물 제151호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康津 白蓮寺 동백나무 숲)

●강진 전라병영성 (康津 全羅兵營城) 사적 제397호

 

【 일 정 표 】2015년 11월 2일(월)-3일(화) 1박2일

                             ◈ 첫째날(11/2) : (영암)도갑사-(강진)무위사-월남사지

                             ◈ 둘째날(11/3) : 사의재-백련사-다산초당-금곡사-강진 전라병영성

 

전라남도 강진 여행은 월출산국립공원 내에 소재한 영암의 도갑사 방문을 겸하여 실시한 여행이었다.

강진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영암의 도갑사를 먼저 탐방하고, 본격적인 강진지역의 문화재 탐방이 이루어졌으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만덕산 숲탐방로(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인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약 1km의 숲길)도 백련사와 다산초당 탐방시 함께 탐방을 하였다.

만덕산 숲탐방로는 강진 정약용유적 편에 사의재, 다산초당과 함께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를 하기로 하며, 영암의 도갑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별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또 다른 강진의 탐방지들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강진 전라병영성'을, '무위사','월남사지'와 '백련사', 그리고 '금곡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각 사찰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마음의 평화를 얻는 곳. 쳔년고찰! 강진 무위사(無爲寺)

- 신라계 양식의 석탑 흔적이 남아 있는 절터! 강진 월남사지(月南寺址)

- 고려8국사와 조선8종사의 숨결이 들리는 곳! 련사(白蓮寺)

- 한국 사상의 원형! 다산의 사상이 완성된 유배지! 강진 정약용 유적 (康津 丁若鏞 遺蹟)

- 임진왜란 승병의 훈련장! 금곡사(金谷寺)

- 민족저항 정신의 산 증거! 강진 전라병영성 (康津 全羅兵營城)

 

                      ▲ 월남사지 입구

 

『 강진 월남사지(康津 月南寺址) 소개 』

*전라남도 기념물 제125호(1988년12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0-1(월남리)

월남마을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월남사터이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시대에 진각국사(1178∼1234)가 세운 것으로 되어있지만, 경내 삼층석탑의 규모나 양식으로 보면 그 이전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폐사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으나 이 일대의 절이 정유재란 당시 병화로 소실되고 ‘무위사’만 남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편으로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가 있다. 최근에 삼층석탑 근처 민가에서 석탑의 지붕돌이 발견되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2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발견된 지붕돌의 세부기법이 월남사터에 있는 백제계 양식인 삼층석탑과는 다른 신라계 양식의 기법이라는 점이다. 한 절터에서 백제계 석탑과 신라계 양식의 석탑이 함께 자리하게된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운 진각국사비는 비석의 위쪽이 깨져 없어졌고, 앞면 일부도 떨어졌으나 남아있는 바닥돌과 거북의 기세,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금당터 초석, 축대가 남아있으며, 옛 기와, 청자, 백자조각이 츨토되고 있다.

 

 

♧ ♧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298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번지

 

 

 

월남사터에 남아있는 삼층석탑으로,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기둥 모양의 돌을 세우고 그 사이를 판돌로 채운 뒤 넓적한 맨윗돌을 얹어 조성하였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매우 높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 월남사지 삼층석탑 기단부(사진 上)

                         탑신의 모든 층 사이의 중간 석재(사진 中)

                         탑신(사진 下)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였으며,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에서와 같이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고,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낮은 체감률을 보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받침 위에 꾸밈을 위해 얹은 석재 하나가 남아 있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한 특징이 된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규모나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를 보관하고 있는 비각

♧ ♧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보물 제313호(1963.01.21.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6-1(월남리)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용머리 형태의 받침돌 귀두(사진 左)

                         후면에서 바라 본 받침돌과 비몸(사진 右)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