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전남 강진)고려8국사와 조선8종사의 숨결이 들리는 곳! 백련사

왕마구리 2015. 12. 10. 15:50

◀ 전남 강진 백련사(白蓮寺) ▶

고려8국사와 조선8종사의 숨결이 들리는 곳!!!

 

                      ▲ 백련사 아래로 펼쳐지는 강진만 전경

 

「 전남 강진(全南 康津) 소개 」

강진군은 원래 백제시대의 도무군지역인 도강과 동음현 지역인 탐진이 영합된 지역으로 도강의 “강”자와 탐진의 “진”자를 합하여 강진이라 호칭되어 온 것으로써, 도강군은 백제시대에는 도무군,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는 도무군이 양무군으로, 동음현이 탐진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조에 도강군으로 개칭과 동시에 탐진현 일부지역이 영암군과 장흥군에 속하다가 명종 2년(1172) 이 곳에 감무를 두어 행정, 병무를 동시 담당토록 하였다.

조선조 태종 17년(1417) 도강현 지역의 일부인 현 병영면 지역에 전라도병영(병영 절제사)을 신설함과 동시에 동강현과 탐진현을 합하여 이 곳을 강진현이라 명명하였으며, 그 치소를 도강의 치소이던 송계(현 강진읍 송현 또는 성전면 수양지역)로 옮겼으나 조선조 성종 6년(1475)에 다시 탐진의 치소(현 강진읍)로 복귀하였다.

조선조 개국 503년(1895)에는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강진군으로 개칭하고, 1914년에 백도면(현 신전면과 해남군 북일면의 일부)의 월성, 항리, 만수, 좌일, 금당, 내봉, 동리, 중산, 방책, 남촌 등 10개리를 해남군 북평면에 이속시키는 동시에 완도군 관할이던 가우도를 우리 군 도암면에 영속시켰다.

1936년 7월 1일 강진면이 강진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도암면 남부의 7개리를 분할하여 신전 출장소를 설치하였고, 도암면 영파리를 강진읍에 편입하였다. 서기 1974년 10월 26일 도암면 신전출장소를 군 출장소로 승격된 후 1983년 2월 15일 면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1981년 9월 25일 마량출장소를 설치(1982년 2월 10일 개소)한 후 1989년 4월 1일 마량출장소가 마량면으로 승격되었고, 1990년 8월 1일 해남군 옥천면 봉황리 일원이 도암면으로 편입되어 헌재 우리 군의 행정구역은 1읍, 10개면, 112개 법정리, 287개 행정리, 292개 자연마을로 되어 있으며 약 5만 여명에 달하는 인구가 오순도순 정답게 살고 있다.

 

                      ▲ 절 입구에서 바라 본 백련사

                      ▲ 백련사 경내 전경

 

『 탐방한 강진군의 문화재들 』

● 강진 무위사

국보 제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국보 제313호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康津 無爲寺 極樂殿 阿彌陀如來三尊壁畵)

보물 제507호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康津 無爲寺 先覺大師塔碑)

보물 제1312호 강진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康津 無爲寺 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314호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無爲寺 極樂殿 白衣觀音圖)

보물 제1315호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無爲寺 極樂殿 內壁四面壁畵)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 무위사 삼층석탑 (無爲寺 三層石塔)

● 강진 월남사지

보물 제298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313호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전라남도 기념물 제125호 월남사지 (月南寺址)

●강진 금곡사(金谷寺)

보물 제829호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康津 金谷寺 三層石塔)

●강진 정약용 유적(康津 丁若鏞 遺蹟) 사적 제107호

사의재(四宜齋)

다산초당(茶山草堂)

백련사(白蓮寺)

보물 제1396호 강진 백련사 사적비 (康津 白蓮寺 事蹟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백련사 대웅전 (白蓮寺 大雄殿)

천연기념물 제151호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康津 白蓮寺 동백나무 숲)

●강진 전라병영성 (康津 全羅兵營城) 사적 제397호

 

【 일 정 표 】2015년 11월 2일(월)-3일(화) 1박2일

                             ◈ 첫째날(11/2) : (영암)도갑사-(강진)무위사-월남사지

                             ◈ 둘째날(11/3) : 사의재-백련사-다산초당-금곡사-강진 전라병영성

 

전라남도 강진 여행은 월출산국립공원 내에 소재한 영암의 도갑사 방문을 겸하여 실시한 여행이었다.

강진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영암의 도갑사를 먼저 탐방하고, 본격적인 강진지역의 문화재 탐방이 이루어졌으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만덕산 숲탐방로(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인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약 1km의 숲길)도 백련사와 다산초당 탐방시 함께 탐방을 하였다.

만덕산 숲탐방로는 강진 정약용유적 편에 사의재, 다산초당과 함께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를 하기로 하며, 영암의 도갑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별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또 다른 강진의 탐방지들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강진 전라병영성'을, '무위사','월남사지'와 '백련사', 그리고 '금곡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각 사찰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마음의 평화를 얻는 곳. 쳔년고찰! 강진 무위사(無爲寺)

- 신라계 양식의 석탑 흔적이 남아 있는 절터! 강진 월남사지(月南寺址)

- 고려8국사와 조선8종사의 숨결이 들리는 곳! 련사(白蓮寺)

- 한국 사상의 원형! 다산의 사상이 완성된 유배지! 강진 정약용 유적 (康津 丁若鏞 遺蹟)

- 임진왜란 승병의 훈련장! 금곡사(金谷寺)

- 민족저항 정신의 산 증거! 강진 전라병영성 (康津 全羅兵營城)

 

                      ▲ 백련사 경내로 들어가는 일주문(사진 左)과 해탈문(사진 右)

 

                      ▲ 백련사~다산초당 간 숲길 갈림길1(사진 上)과 이정표(사진 下)

 

                      ▲ 백련사~다산초당 간 숲길 갈림길2(사진 上)과 이정표(사진 下)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어울림상( 숲길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강진 다산초당~백련사 간 숲길 '만덕산 숲탐방로'는 해탈문을 지나 첫번째 ┫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이어지고, 백련사를 향해 계속 올라가면 백련사 직전 또 다시 두번째 ┫자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좌측의 숲길을 따라 다산초당으로 향해도 된다.

 

 

 

                      ▲ 백련사 만경다설

 

 

백련사 탐방을 마치고 만경루에 자리한 '만경다설'에서 백련사의 명물 '연꿀빵'과 '떡차'를 음미하며 휴식을 취하고, 두번째 갈림길에서 만덕산 숲탐방로를 따라 약 1km 거리인 다산초당까지 갔다가 다산초당을 탐방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왕복하여 첫번쨔 갈림길로 빠져 나와 백련사주차장으로 원점회귀를 하였다.

민덕산 숲탐방로 탐방기는 '한국 사상의 원형! 다산의 사상이 완성된 유배지! 강진 정약용 유적 (康津 丁若鏞 遺蹟)' 편에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백련사~다산초당 간 숲길 입구 

 

『 강진 백련사(康津 白蓮) 소개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萬德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백련사에 대한 사적은 세종13년(1432) 윤회(尹淮)가 저술한 《팔도지리지 八道地理志》와 정약용(丁若鏞)의 《만덕사지 萬德寺誌》 등에 나타나 있다.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하였다. 이 절은 문성왕1년(829)무염(無染)이 창건하였으며, 중요한 수도도량으로 면모를 달리한 것은 희종7년(1211) 요세(了世)가 크게 중창한 뒤부터이다.

요세는 천태종계(天台宗系)의 승려로서 고승 지눌(知訥)과 깊은 친분 속에서 지눌과 함께 송광사에 머물다가, 1208년에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었고, 강진에 살고 있던 최표(崔彪)와 최홍(崔弘)·이인천(李仁闡) 등의 권유로 만덕산에 자리를 잡고 그의 제자 원영(元營)으로 하여금 가람 80칸을 짓게 하였다.

이 역사(役事)는 1211년부터 1232년(고종 19년)까지 21년 만에 완공되었으며, 당시 목백(牧伯)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물을 보시(布施)하였다고 한다. 절이 완공되자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실천 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었다.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修禪社)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결사(白蓮社結社)이다.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을 이어 고려의 8국사(國師)를 배출하였다. 고려 말에는 강진지방이 세 차례의 왜구침입을 받았을 때 이 절도 함께 폐허화되었다. 조선 세종 때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보호를 받아 주지 행호(行乎)가 불타버린 가람을 복원하였다. 그 뒤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였으며, 그때 탑과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조계종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하여 종세(宗勢)를 키우고 있을 때, 이 절은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結社道場)을 개설하여 침체한 불교중흥을 꾀한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절 주위에 성을 쌓았는데, 이 성을 행호토성(行乎土城)이라고 한다. 현재의 절 또한 그때 쌓은 토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 백련사 경내로 오르는 돌계단길

                      ▲ 백련사 천불전(사진 左), 삼성각(사진 中), 요사채(사진 右) 

                      ▲ 백련사 만경루

                         절 입구에서 바라 본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문인 만경루(사진 左), 대웅전 앞 마당에서 바라 본 단층 건물처럼 보이는 만경루(사진 右)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시왕전(十王殿)·나한전(羅漢殿)·만경루(萬景樓)·칠성각·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써 각 추녀마다 네 개의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전면 두 개의 주두(柱頭)는 용두(龍頭)로 장식한 다포집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또한 만경루는 규모가 큰 누각으로 강진만 일대의 바다를 환히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밖의 사중유적(寺中遺蹟)으로는 만덕산 백련사사적비와 원묘국사중진탑(圓妙國師中眞塔)이 있다. 사적비의 거북은 앉은 키가 높은 편이고 용의 눈이 험상궂게 생긴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이 있으며,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 모양을 한 가첨석(加檐石)이 놓여 있다. 중진탑은 방형의 지대석(地臺石)인 위에 연화문(蓮花文)의 중대석(中臺石)이 있으며, 상대석에도 무늬가 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고복형(鼓腹形)의 옥신(屋身)에는 두 줄의 주렴문이 조각되어 있고,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상륜부에는 노반(露盤)·복발(覆鉢)·보주(寶珠)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절 주위에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의 동백림과 정약용이 신유사옥 때 강진으로 귀양와서 조선의 실학을 집대성하고 차를 끊여 마시던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백련사를 가리켜 ‘남쪽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여 동백 또한 곁들여서 수목이 싱싱하게 푸른 모습이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이라고 한만큼 주위의 경관 또한 아름답다.

 

 

 

                      ▲ 백련사 동백나무숲길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康津 白蓮寺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51호(1962년12월07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25(만덕리)  

동백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백련사의 동백림은 강진에 있는 백련사 부근에 있는데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굴참나무,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도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동백나무의 높이는 평균 7m쯤 되고,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매우 아름다워 이 지역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동백림의 유래에 관하여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인 다산 초당이 가까이 있고, 이곳에서 다도(茶道)연구를 했던 것으로 미루어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백련사의 동백림은 우리나라의 난온대지방을 대표하는 나무인 동백나무가 집단적으로 자라고 있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정약용 선생과 관련된 문화적 장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 강진 백련사 사적비(康津 白蓮寺 事蹟碑)

*국보 제13호(2004년01월26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백련사(만덕리)

 

 

 

백련사 사적비는 백련사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약 50여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 447㎝ 규모의 전형적인 석비(石碑)이다. 귀부(龜趺), 비수(碑身), 이수(이首)로 구성되어 있는데, 귀부는 고려시대의 조성으로, 비신과 이수는 1681년(조선 숙종 7)에 조성되어 각기 서로 다른 건립연대를 보이고 있다.

 

                      ▲ 백련사사적비 귀부아 지대석

 

귀부는 지대석(地臺石)과 더불어 화강암 일석(一石)으로 조성되었다. 용두(龍頭)는 목을 움츠리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입은 상·하 7개의 가지런한 이빨로 꽉 다문 모습이며, 하단에는 길게 수염이 흘러 목주름까지 늘어져 있다. 위 입술은 약간 들려 눈은 삼각형의 구도 안에 동그란 눈동자가 볼륨있게 표현되었다. 용두의 뿔은 목 뒤로 흐르며 2조로 갈라지며 비좌(碑座)에 연결되어 있다.

 

                      ▲ 용머리 형상의 귀두

 

귀부의 등면은 너비 30㎝의 음각선으로 곽을 조성한 후 내부에 당초문(唐草紋)을 양각했다. 귀갑문(龜甲紋)은 6각형으로 내부에는 연화문을 새겼다. 네 발은 모두 5개의 발가락을 지녔으며, 꼬리는 왼쪽으로 틀어 올렸다. 귀부의 중앙 상면에는 비좌가 조성되었는데, 측면에는 초화문(草花紋)이 양각되었고, 상면에는 118㎝×15㎝ 규모의 비신공(碑身孔)이 마련되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귀부의 크기는 227㎝×190㎝×110㎝이다.

 

                      ▲ 백련사사적비의 이수와 비신 상단의 '만덕산 백련사비'(사진 上)

                         비신 측면의 초화문(사진 下左)과 비신(사진 下右)

 

비신은 2면비로 전·후면에는 비문이, 양 측면에는 초화문을 양각했다. 비신 전면의 상단에는 자경 15㎝ 크기의 전서체로 「만덕산백련사비」라 새겼고, 횡서로 「전라도강진만덕산백련사사적비」라 기록하고 있다. 뒷면에는 당시 불사(佛事)에 참여한 사람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조정저(1631∼1690)가 지었고, 현록대부랑선군 이우(1639∼1693)가 썼는데, 상단의 전서만은 가덕대부랑원군 이간(?∼1699)이 썼다. 말미의 명문으로 보아 1681년(조선 숙종 7)에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수에는 우진각지붕의 형태로 하단에는 목조 건축의 겹처마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정상에는 2마리의 용이 등을 맞대고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형상인 바, 매우 사실적인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비신의 크기는 234㎝×118㎝×29㎝이며, 이수는 170㎝×75㎝이다.

백련사 사적비는 귀부와 비신의 건립연대가 서로 다른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아 귀부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조각수법도 뛰어나 고려시대 전기의 작풍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사적비 역시 전형적인 조선시대 석비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양 측면에 양각된 초화문은 이 시대의 석비로서는 특이한 예라 하겠다. 따라서 백련사 사적비는 귀부와 석비가 비록 시대를 달리하고 있지만, 각 부재가 지닌 양식상의 특성으로 보아 가치가 있다.

 

 

♧ ♧ 백련사 대웅전(白蓮寺 大雄殿)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1986년02월07일 지정)

 

 

만덕산에 위치하는 백련사는 만덕사라고도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 1년(839)에 지은 절이다.

백련사 대웅전은 신라시대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안에는 석가모니불상이 모셔져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 백련사 대웅전 내부 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