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전남 강진)임진왜란 승병의 훈련장! 금곡사

왕마구리 2015. 12. 9. 21:23

◀ 전남 강진 금곡사(金谷寺) ▶

임진왜란 승병의 훈련장!!!

 

                      ▲ 금곡사 오르는 돌계단길이 끝나고 뒤돌아 본 담장과 입구를 지키는 고목

 

「 전남 강진(全南 康津) 소개 」

강진군은 원래 백제시대의 도무군지역인 도강과 동음현 지역인 탐진이 영합된 지역으로 도강의 “강”자와 탐진의 “진”자를 합하여 강진이라 호칭되어 온 것으로써, 도강군은 백제시대에는 도무군,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는 도무군이 양무군으로, 동음현이 탐진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조에 도강군으로 개칭과 동시에 탐진현 일부지역이 영암군과 장흥군에 속하다가 명종 2년(1172) 이 곳에 감무를 두어 행정, 병무를 동시 담당토록 하였다.

조선조 태종 17년(1417) 도강현 지역의 일부인 현 병영면 지역에 전라도병영(병영 절제사)을 신설함과 동시에 동강현과 탐진현을 합하여 이 곳을 강진현이라 명명하였으며, 그 치소를 도강의 치소이던 송계(현 강진읍 송현 또는 성전면 수양지역)로 옮겼으나 조선조 성종 6년(1475)에 다시 탐진의 치소(현 강진읍)로 복귀하였다.

조선조 개국 503년(1895)에는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강진군으로 개칭하고, 1914년에 백도면(현 신전면과 해남군 북일면의 일부)의 월성, 항리, 만수, 좌일, 금당, 내봉, 동리, 중산, 방책, 남촌 등 10개리를 해남군 북평면에 이속시키는 동시에 완도군 관할이던 가우도를 우리 군 도암면에 영속시켰다.

1936년 7월 1일 강진면이 강진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도암면 남부의 7개리를 분할하여 신전 출장소를 설치하였고, 도암면 영파리를 강진읍에 편입하였다. 서기 1974년 10월 26일 도암면 신전출장소를 군 출장소로 승격된 후 1983년 2월 15일 면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1981년 9월 25일 마량출장소를 설치(1982년 2월 10일 개소)한 후 1989년 4월 1일 마량출장소가 마량면으로 승격되었고, 1990년 8월 1일 해남군 옥천면 봉황리 일원이 도암면으로 편입되어 헌재 우리 군의 행정구역은 1읍, 10개면, 112개 법정리, 287개 행정리, 292개 자연마을로 되어 있으며 약 5만 여명에 달하는 인구가 오순도순 정답게 살고 있다.

 

 

 

                      ▲ 금곡사 진입로 입구(사진 上)

                         금곡사 진입로(사진 中, 下)

 

『 탐방한 강진군의 문화재들 』

● 강진 무위사

국보 제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국보 제313호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康津 無爲寺 極樂殿 阿彌陀如來三尊壁畵)

보물 제507호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康津 無爲寺 先覺大師塔碑)

보물 제1312호 강진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康津 無爲寺 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314호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無爲寺 極樂殿 白衣觀音圖)

보물 제1315호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無爲寺 極樂殿 內壁四面壁畵)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 무위사 삼층석탑 (無爲寺 三層石塔)

● 강진 월남사지

보물 제298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313호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전라남도 기념물 제125호 월남사지 (月南寺址)

●강진 금곡사(金谷寺)

보물 제829호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康津 金谷寺 三層石塔)

●강진 정약용 유적(康津 丁若鏞 遺蹟) 사적 제107호

사의재(四宜齋)

다산초당(茶山草堂)

백련사(白蓮寺)

보물 제1396호 강진 백련사 사적비 (康津 白蓮寺 事蹟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백련사 대웅전 (白蓮寺 大雄殿)

천연기념물 제151호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康津 白蓮寺 동백나무 숲)

●강진 전라병영성 (康津 全羅兵營城) 사적 제397호

 

【 일 정 표 】2015년 11월 2일(월)-3일(화) 1박2일

                             ◈ 첫째날(11/2) : (영암)도갑사-(강진)무위사-월남사지

                             ◈ 둘째날(11/3) : 사의재-백련사-다산초당-금곡사-강진 전라병영성

 

전라남도 강진 여행은 월출산국립공원 내에 소재한 영암의 도갑사 방문을 겸하여 실시한 여행이었다.

강진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영암의 도갑사를 먼저 탐방하고, 본격적인 강진지역의 문화재 탐방이 이루어졌으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만덕산 숲탐방로(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인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약 1km의 숲길)도 백련사와 다산초당 탐방시 함께 탐방을 하였다.

만덕산 숲탐방로는 강진 정약용유적 편에 사의재, 다산초당과 함께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를 하기로 하며, 영암의 도갑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별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또 다른 강진의 탐방지들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강진 전라병영성'을, '무위사','월남사지'와 '백련사', 그리고 '금곡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각 사찰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마음의 평화를 얻는 곳. 쳔년고찰! 강진 무위사(無爲寺)

- 신라계 양식의 석탑 흔적이 남아 있는 절터! 강진 월남사지(月南寺址)

- 고려8국사와 조선8종사의 숨결이 들리는 곳! 련사(白蓮寺)

- 한국 사상의 원형! 다산의 사상이 완성된 유배지! 강진 정약용 유적 (康津 丁若鏞 遺蹟)

- 임진왜란 승병의 훈련장! 금곡사(金谷寺)

- 민족저항 정신의 산 증거! 강진 전라병영성 (康津 全羅兵營城)

 

                      ▲ 금곡사 경내로 올라가는 돌계단길

 

『 강진 금곡사(康津 金谷) 소개 』

*소재지: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파산리 보은산(報恩山)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파산리 보은산(報恩山)에 있는 절로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강진읍에서 작천면으로 넘어가는 까치내재에 이르면 마치 중세시대 성벽을 마주하는 것처럼 거대한 석문으로 가로막혀 계곡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서는 그 흔적조차 짐작할 수 없는 금곡사라는 오래된 사찰을 발견하게 된다.

신라 선덕여왕 때 활동하던 밀종(密宗)의 큰스님 밀본(密本)이 창건하여 성문사(城門寺)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제의 영토에 신라 승려가 와서 창건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

이 사찰 금곡사라 한 것은 이곳에 금광이 있었기 때문이며 사찰 옆 개울가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금광이었던게 사실인 것 같다.

 

                      ▲ 금곡사 대웅전(사진 左), 범종각(사진 中), 천불전(사진 右)

                      ▲ 불전들 보다 한 단 아래 자리한 금곡사 요사채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는 금곡사라고 나와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승군의 훈련장으로 활용하다가 왜군의 침습으로 소실했다.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 梵宇攷》에는 이미 폐사되었다고 나와 있다.

일제강점기에 절터에 건물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로는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칠성각·범종각·요사채가 있다. 무량수전에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나, 모두 근대에 조성된 작품이다.

 

 

유물로는 보물 제829호인 삼층석탑과 석등 대좌, 범종, 불화 6점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백제계 양식의 고려 초기 작품으로 1988년 6월 해체, 복원할 때 부처님 사리 32과가 발견되었다.

석등 대좌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이 절의 입구 길가에 있다. 범종과 불화는 모두 1970년대 이후 조성된 것으로 문화재적인 가치는 없다.

 

                      ▲ 금곡사 삼층석탑과 대웅전

♧ ♧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康津 金谷寺 三層石塔)

*보물 제829호(1985년01월08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금곡사 (파산리)

 

 

 

금곡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나, 기단과 탑신의 여러 군데가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기단은 네 모서리에 두터운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마다 판돌을 끼워 두었는데 그 중 한 면에는 판돌이 없이 작은 돌들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모서리기둥을 본떠 새기지 않고, 직접 세운 것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에서도 볼 수 있다.

 

 

 

                      ▲ 금곡사 삼층석탑 기단부(사진 上)

                         탑신(사진 中)

                        1층 몸돌 사면에 파 놓은 사각의 감실(사진 下)

 

탑신의 1층 몸돌은 각 면마다 감실(龕室)을 팠는데, 목탑에서의 감실은 불상을 모셔두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석탑에서는 이처럼 형식적인 조각만 하게 된다. 두툼한 지붕돌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밑면에는 6단씩의 받침을 두어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백제양식이 보이는 고려시대의 탑으로 기단에서 3층 탑신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규모를 줄여 안정된 비례를 보이는 점이나, 각 부분에 짜임새가 있는 점에서 이 탑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