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영암 도갑사(道岬寺) ▶
새로운 불교문화의 성지!!!
▲ 도갑사 전경
월출산국립공원 내에 소재한 영암의 도갑사 방문은 2015년 11월 2일(월)~2일(화) 1박2일간의 계획으로 전라남도 강진 여행을 떠나면서 강진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관계로 가는 길에 둘러 가장 먼저 실시를 한 탐방이었다.
영암의 도갑사를 먼저 탐방하고, 본격적인 강진지역의 문화재 탐방이 이루어졌으며, 강진 지역의 탐방지와는 별개로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전남 영암)새로운 불교문화의 성지! 도갑사'란 제목으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여유있는 일정으로 영암과 강진 지역의 관광지들을 함께 탐방했으면 좋았겠지만, 2016년도에 영암의 다른 관광지들은 추후 월악산국립공원 산행과 함께 찾기로 한다.
▲ 도갑사 일주문(사진 上)
일주문 옆 쉼터(사진 下)
▲ 도갑사 일주문 지나 해탈문 가는 길
▲ 해탈문 진전 좌측에 자리한 도갑사 사적비
【 일 정 표 】2015년 11월 2일(월)-3일(화) 1박2일
◈ 첫째날(11/2) : (영암)도갑사-(강진)무위사-월남사지
◈ 둘째날(11/3) : 사의재-백련사-다산초당-금곡사-강진 전라병영성
『 영암 도갑사(靈巖 道岬寺) 소개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1984년 2월 29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이 있었으며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道詵)국사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의 어머니 최씨(崔氏)가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 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하여 낳았으나 숲속에 버렸다. 그런데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그를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먹여 길렀으므로 최씨가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 기르도록 하였으며, 장성한 그가 중국을 다녀와서 문수사 터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도갑사 입구에 고려 선종 7년(1090)에 만들어진 국장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웠고 11세기 후반에 번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세조 3년∼10년(1457∼1464)에 그 뒤를 이은 수미왕사와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들이 주석 하시면서 깨달음의 참다운 이치를 널리 펼치셨다.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량으로 신라말 헌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세조2년(1456) 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였다.
수미왕사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 암자만 해도 상동암, 하동암, 남암, 서부도암, 동부도암, 미륵암, 비전암, 봉선암, 대적암, 상견암, 중견암, 하견암 등 12개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원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효종4년(1653)에는 '도선수미비'와 '월출산도갑사석교 중창비'가 세워졌는데, 당시 영의정과 형조판서 등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도갑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후로도 사원의 중수는 계속 이어져 숙종3년(1677)에는 당간석주를 세웠고, 1682년에는 대형 석조(石槽)를 조성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더구나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성보들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가람의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09년 4월11일 대웅보전낙성식을 갖는 등 유관기관의 역사적 검증을 거친 복원불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대가람에 걸맞게 눈푸른 납자을 양성하기 한 수행환경을 위해 選佛場(선불장)개창하였다.
도갑사는 이제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도선국사의 재 조명에 힘입어 새로운 불교문화의 성지로 자리 매김 할 것이다.
▲ 도갑사 대웅보전과 오층석탑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大雄寶殿)·명부전(冥府殿)·미륵전(彌勒殿)·국사전(國師殿)·해탈문(解脫門)·일주문 및 요사인 세진당(洗塵堂)이 있다.
이 중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도갑사해탈문은 성종 4년(1473)에 중건하였으며, 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안치되어 있다. 또, 미륵전 안에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물 제89호인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보물 제1134호로 지정된 도갑사소장동자상이 있다.
이밖에도 대웅보전 앞과 뒤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1호인 오층석탑 및 삼층석탑 등 고려시대의 석탑 2기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된 도선·수미의 비가 있다. 이 중 도선·수미비는 비문에 의하면 인조 14년(1636)에 건립을 시작하여 효종 4(1653)에 완성한 것으로, 조각의 솜씨와 비문의 필치가 섬세하고 우수하여 주목을 끈다.
또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된 수미왕사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된 석조(石槽)가 있다. 이 절의 주위에는 국보 제144호로 지정된 월출산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하여, 도선이 디딜방아를 찧어 도술조화를 부렸다는 구정봉(九井峰)의 9개 우물, 박사 왕인(王仁)이 일본에 건너간 것을 슬퍼한 제자들이 왕인이 공부하던 동굴입구에 새겼다는 왕인박사상 등이 있다. 절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천불전(사진 左), 명부전(사진 中) 그리고 산신각(사진 右)
▲ 도갑사 해탈문을 들어서며 정면으로 조망된 광제루
▲ 도갑사 광제루
『 도갑사의 문화재들 』
국보 제50호 영암 도갑사 해탈문(靈巖 道岬寺 解脫門)
보물 제89호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靈巖 道岬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134호 영암 도갑사 목조문수·보현동자상(靈巖 道岬寺 木造文殊·普賢童子像)
보물 제1395호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ㆍ수미선사비(靈巖 道岬寺 道詵國師ㆍ守眉禪師碑)
보물 제1433호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靈巖 道岬寺 五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 도갑사 석조(道岬寺 石槽)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도갑사 도선국사진영(道岬寺 道詵國師眞影)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도갑사 수미왕사진영(道岬寺 守眉王師眞影)
♧ ♧ 영암 도갑사 해탈문(靈巖 道岬寺 解脫門)
*국보 제50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로 306, 도갑사(도갑리)
▲ 다양한 방향에서 바라본 도갑사 해탈문
사진 上左:전면 정면 방향, 사진 上右:후면 방향
사진 下左:전면 좌 대각 방향, 사진 下右:좌 측면 방향
도갑사는 월출산에 있는 절로,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원래 이곳은 문수사라는 절이 있던 터로 도선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자라 중국을 다녀온 뒤 이 문수사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수미·신미 두 스님이 조선 성종 4년(1473)에 다시 지었고,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버린 것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도갑사 해탈문의 내부가구
▲ 도갑사 해탈문 내부 홍살문
▲ 도갑사 해탈문 정면 계단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위쪽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은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山門)건축으로, 춘천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과 비교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 도갑사 미륵전과 도선국사·수미선사비 가는 산길 입구의 이정표
▲ 도갑사 미륵전과 도선국사·수미선사비 가는 산길의 용수폭포 정자쉼터
▲ 도갑사 미륵전과 도선국사·수미선사비 가는 산길
▲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진 도갑사 미륵전 입구(사진 左)와 미륵전(사진 右)
♧ ♧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靈巖 道岬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89호(1963년01월21 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4번지(도갑사)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의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있는 석조불상이다. 이 불상은 몸체와 광배(光背)가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있어서 마치 바위에 직접 불상을 새긴 마애불과 같은 기법이다.
▲ 도갑사 미륵전의 석조여래좌상 우측면 얼굴 표정
▲ 도갑사 미륵전 석조여래좌상
머리 부분 및 광배(사진 左)
좌측면 머리 부분(사진 右)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를 큼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얼굴은 타원형이며 도드라진 눈덩이,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은 강건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다. 넓은 어깨, 평평한 가슴, 단순한 몸의 굴곡 등은 생동감이 없는 경직된 모습이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왼쪽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걸쳐 입고 있으며 몇가닥의 옷주름이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갸름한 타원형 광배의 가운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꼭지와 머리 양 옆에 각각 작은 부처가 표현되었다. 광배에 새겨진 조각은 대체적으로 생략이 강하다.
▲ 도갑사 미륵전 석조여래좌상 대좌와 무릎 부분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좌(臺座)는 밋밋한 4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본래는 연꽃무늬를 새긴 8각형의 대좌였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다소 경직되고 형식화된 수법을 보여주지만 얼굴표정에서 훈훈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불상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투박하고 생략이 강한 고려적 요소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 ♧ 영암 도갑사 목조문수·보현동자상(靈巖 道岬寺 木造文殊·普賢童子像)
*보물 제1134호(1992년07월28일 지정)
*수량/면적 2구
신라말 도선이 창건한 도갑사 해탈문 안에 있는 목조동자상이다.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해탈문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동자상은 뒷쪽 좌우칸에 모셔져 있다.
▲ 도갑사 해탈문의 동자상(사진 上:채색 후 현재/사진 下:채색 전 과거)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두 동자상은 총 높이가 약 1.8m가량이고, 앉은 높이가 1.1m 안팎으로 크기도 비슷하고 조각기법도 동일하다. 다리를 앞쪽으로 나란히 모아서 사자, 코끼리 등에 걸터앉은 두 동자상은 동물상과 따로 만들어 결합하였으며, 두 손도 따로 만들어 끼웠다. 현재의 손도 후대에 다시 만들어 끼운 것으로 생각된다. 두 동자상의 머리를 묶은 모양새는 매우 화려하며, 이목구비가 원만하여 동자의 천진스런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점에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인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추정되며 사자와 코끼리를 탄 동자상이라는 드문 예 가운데 목조상으로서는 유일한 작품이다.
1960년 해탈문을 해체 복원할 때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해탈문이 1473년에 건립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이곳에 모신 동자상도 문이 건립될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도갑사 미륵전에서 도선국사·수미선사비 가는 산길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가 보관되어 있는 비각 전체 전경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가 보관되어 있는 비각
♧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ㆍ수미선사비(靈巖 道岬寺 道詵國師ㆍ守眉禪師碑)
*보물 제1395호(2004년01월26일 지정)
도갑사 도선·수미비는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이首)를 구비한 석비로 도갑사의 부도전(浮屠田)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수미왕사의 행적을 기록한 높이 517㎝ 규모의 석비이다.
석비가 자리한 탑구(塔區)는 수매의 판석으로 조성했는데, 전면의 구도는 방형이지만, 뒷면은 귀부의 형상과 같이 ‘ㅅ’자형으로 조성해 전체적으로는 6각형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귀부
귀부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약간 튼 형태인데 입에는 상·하 8개의 이빨로 여의주를 꽉 물고 있는 형상이다. 코는 큼직하며, 반구형의 양 눈은 부리부리하게 표현하였다. 등에는 전형적인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斜線紋)으로 정연하게 음각하였다. 4발 중 앞발은 5조, 뒷발은 3조의 발가락이 표현되었으며, 꼬리는 살짝 돌려 왼쪽 발의 허벅다리에 닿았다. 상면에는 비좌(碑座)로부터 중단에 이르기까지 넓게 방형의 얕은 받침이 표현되었다. 각 면 중앙의 내곡된 상면에는 화문(花紋)이 조식되어 있다.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비신과 양 측면에 양각된 운룡문
비신은 귀부와 이수와는 달리 대리석으로 조성했다. 상면에는 전서로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이라 썼으며, 비제(碑題)는 횡서로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병서」라 음각했다. 비문에 의하면 본래 이 곳에 있던 도선국사의 비가 훼손되어 다시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은 전면에 2개, 후면에 1개 등 모두 3개로 다른 석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비문의 찬자가 각각 이경석(李景奭), 이수인(李壽仁), 정두경(鄭斗卿)인데 반해 연대는 모두 「숭정(崇禎) 병자(丙子) 사월(四月) 일(日) 입(立)」이라 기록되어 있어 1636년(조선 인조 14)에 건립이 시작되어 1653년(조선 효종 4)에 준공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양 측면에는 운룡문(雲龍紋)이 가득 양각되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마치 살아 있는 쌍룡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이수
이수 역시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하단에는 28판의 앙련(仰蓮)이 조각되었으며, 상면에는 운문 위에 2마리의 용이 각각 이수의 양끝을 물고 있는 형상을 지니고 있다.
이 석비는 1653년(조선 효종 4)에 건립된 것으로 우선 규모 면에서 다른 비석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각부의 양식에서 귀부는 다른 예와는 달리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비신 역시 조성재료가 대리석이라는 점 외에도 양 측면에 조각된 운룡문은 매우 힘찬 기상과 율동감을 지니고 있어 당대 최고 수준의 작풍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석비의 건립기간이 18년임을 알려주고 있어 이 방면 기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나아가 대부분의 석비가 1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 비해 도선과 수미선사를 표방하고 있어 이 역시 독특한 예라 생각된다. 한편 건립연대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비문이 각각 독립된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찬자는 물론 쓴 사람과 각자한 사람이 모두 다른 것은 비문의 내용을 볼 때 석비를 다시 세우기로 계획하고 3년의 모금활동과 건립기간 18년을 포함한 21년간에 걸친 건립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2번째 비문에는 앞선 비문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으며, 석재의 채취로부터 이동과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3번째 비문에서는 음기를 청탁받은 사실이 기록된 점으로 보아 석비의 건립과정에서 3개의 비문에 대한 준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이 석비는 규모의 거대함과 더불어 건립에 소요되는 기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아울러 미술사적으로 볼 때도 조선후기 조각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일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도선과 수미선사 등 2인이라는 점과 글씨 역시 서예사 연구에 좋은 자료라 판단된다.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앞 쉼터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앞의 월출산국립공원 도갑지구 안내도와 윤곽지도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에서 도갑사로 내려가는 산책로
♧ ♧ 영암 도갑사 부도전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옆에 위치한 부도전
▲ 도갑사 부도전의 부도들
▲ 도갑사 부도전에서 도갑사로 내려가는 탐방로
♧ ♧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靈巖 道岬寺 五層石塔)
*보물 제1433호(2005년06월13일 지정)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은 하층기단을 잃은 채 단층기단 위 5층 탑신부 및 노반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95년 이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도갑사경내 발굴조사중 하층기단부가 발견되어 2002년 2월 현 대웅전 앞에 2중기단의 5층석탑으로 복원되었다.(현재 높이 5.45m)
▲ 도갑사 오층석탑 상륜부(사진 上)
기단부(사진 下左)와 탑신부(사진 下右)
조각 및 구조수법 등의 특징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각 부재도 온전하게 잘 남아있으며 전체적으로 균제된 체감율과 안정된 조형미가 돋보이는 석탑이다.
♧ ♧ 도갑사 석조(道岬寺 石槽)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1987년06월01일 지정)
도갑사 안에 놓여 있는 것으로, 물을 담아두거나 곡물을 씻는데 쓰였던 일종의 돌그릇이다.
길쭉하고 네모난 돌의 안을 파내고, 각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는데, 아랫부분을 둥글게 반원모양으로 깎아 놓아 옆에서 보면 작은 통나무배를 보고 있는 듯하다. 안쪽 밑바닥에는 물을 뺄 때 쓰이는 작은 배수구멍이 뚫려 있다.
표면에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숙종 8년(1682)에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다.
▲ 도갑사 수미왕사비가 보관된 비각
♧ ♧ 도갑사 수미왕사비(道岬寺 守眉王師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1987년06월01일 지정)
도갑사 경내에 서 있는 비로,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수미는 조선시대 승려로 13세에 출가하였고, 불교를 숭상했던 세조 임금이 그 스승(왕사)으로 모셨던 인물이다.
비는 거북모양의 받침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 도갑사 수미왕사비 귀부
형식적으로 조각된 거북받침은 머리가 용의 머리처럼 바뀌었으나, 목이 짧다. 앞발과 뒷발의 발톱이 다섯개씩이다. 거북 등에는 벌집모양의 육각형이 매우 두껍게 조각되어 있다.
▲ 도갑사 수미왕사비 비신과 이수
비몸 위에 놓인 머릿돌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구름 위로 중간과 양 모서리에 다투듯 뒤엉킨 두마리의 용을 새겨놓았다.
선조 14년(1581)에 비가 넘어져 새로 세운 것으로, 인조 7년(1629)에 시작하여 인조 11년(1633)에 완성하였다. 전체적으로 조각의 솜씨와 비문의 필치가 섬세하고 우수한 작품으로, 17세기 초에 세운 석비로서는 특이하게도 고려시대 유행하였던 양식과 수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 ♧ 도갑사 도선국사진영(道岬寺 道詵國師眞影)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1990년12월05일 지정)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도선국사(827∼898)의 초상화이다.
도선은 주로 통일신라말·고려초에 활약했으며 비기(秘記:신기한 기록)나 풍수지리설과 연관되어 있어 실재 인물이라기보다 신화적 존재로 파악되기도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기도 하여 태조 이후 고려의 왕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초상화는 불교의 의식 때에 왕사나 대사 등이 손에 드는 장자를 들고 의자에 걸터앉아 약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전신상으로, 화폭의 윗부분에 ‘도선국사진영’이라는 제목을 써 놓았다. 절에 전해오는 기록에는 도선의 초상화는 세조 2년(1456) 도갑사를 중창한 수미왕사의 제안으로 처음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이후 다시 옮겨 그린 것으로, 비단에 진한 채색을 사용하여 그려 놓았다.
현재 도선의 초상화는 순천 선암사에도 1점이 보존되어 오는데 그림의 윗부분에 쓰인 글로 보아, 순조 5년(1805)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암사의 초상화와 비교할 때 인물의 표현방법이나 의복에 가해진 음영의 처리와 바닥에 깔린 돗자리무늬 등이 서로 비슷하여, 선암사의 상과 같은 시기의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고, 단순화된 복장과 옷깃의 끝머리가 안으로 접혀든 점, 의자의 양쪽에 꽃무늬 띠 등은 선암사의 상보다 약간 후대의 작품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의 승려 초상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 ♧ 도갑사 수미왕사진영(道岬寺 守眉王師眞影)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1990년12월05일 지정)
조선 세조 대의 승려인 수미왕사의 초상화이다.
수미는 세조의 왕사(王師)이며 15세기 중엽에 도갑사를 크게 중창한 승려로서, 당시 선종판사가 되어 황폐한 불교를 부흥시켰다.
초상화에는 약간 왼쪽을 향한 자세에 불교용구인 불수를 들고 두 다리를 가부좌하여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담았으며, 화폭의 오른쪽 윗부분에 ‘수미왕사진영’이라는 그림제목을 써 놓았다. 조선 인조 11년(1633)에 제작된 것으로 전하는데 그의 비를 건립한 시기와 같다.
함께 보존되어 있는 도선국사진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6호)과 인물의 표현법이나 의복의 음영처리 기법이 같다. 화문석 돗자리의 무늬 등 여러 가지 표현형식이 또한 비슷하여 19세기 초반에 도선의 초상화와 함께 옮겨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비단에 진한 채색을 사용하고 조선 후기에 불화를 그리던 물감을 사용하는 등 불교 회화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 도갑사 입구의 보호수 팽나무(지정번호:15-15-7-1/1982년12월02일 지정)
*수령:480년/수고:8m/나무둘레:4.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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