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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숙종의 정비 인현왕후의 기도처! 청암사(靑巖寺)

왕마구리 2016. 4. 11. 20:33

◀ 김천 청암사(金泉 靑巖寺) ▶

숙종의 정비 인현왕후의 기도처!

 

                      ▲ 청암사

                      ▲ 청암사 안내도

 

『 청암사의 문화재들 』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0호 청암사 대웅전(靑巖寺 大雄殿)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 청암사 다층석탑(靑巖寺 多層石塔)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8호 청암사 보광전(靑巖寺 普光殿)

【 일 정 표 】2016년 1월 12일(화)

                             ◈ 직지사-모성정-방초정-청암사 수도암-청암사

 

 

 

                      ▲ 청암사 가는 길

 

『 김천 청암사(金泉 靑巖寺) 소개 』

*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번지

해발 1,317m의 불영산의 푸르른 정기로 둘러 싸여진 청암사(靑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헌안왕3년(859) 도선국사가 건립한 고찰(古刹)이다.

청암사 창건 당시에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 개조인 慧哲(785-861) 조사가 머물렀다고 하며,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고, 다만 사적비에는 조선시대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사적에 따르면 조선 인조 25년(1647) 화재로 전소(全燒)되었으나 벽암(碧巖)각성(覺性)스님이덕유산 구천동에서 門人 칠백 명과 함께 계셨는데,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그 문도(門徒) 허정(虛靜)혜원(慧遠)스님과 반운지선조사으로 하여금 재건토록 하였으며, 이에 반운지선(伴雲 智僊)조사는 쌍계사(증산면 옥동) 창신을 주관하였고 혜원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청암사를 중창하였다.

이후 1660년경에 명승(明勝) 선원과 강원을 설립한 후로부터 청암사 강원은 선장(禪匠)과 강백이 다투어 講敎와 說禪의 꽃을 피웠으며, 그 후 丈室 등이 쇠락한 것을 벽암의 손자 보광 원민조사(1680년경)가 복원하기도 하였다.

 

                      ▲ 청암사 일주문과 천왕문

 

숙종의 정비(正妃)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있을 때 청암사 극락전에서 특별기도를 올린 인연으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불영산의 적송산림은 국가보호림으로 지정되어 궁(宮)에서 무기 등이 하사되었고 조선시대 말기까지 상궁(尙宮)들이 신앙생활을 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1736년(영조 12, 병진)에 門樓가 물사태를 당한 것을 보광의 고족(高足: 높은 제자)인 회암 정혜(晦庵定慧)조사가 중수하였으며, 그 당시 강설의 법석을 더욱 진작시켜 운집한 학인의 수가 3백명이 넘었다고 한다.

1761년(조선 영조 37, 신사) 회암의 제자인 모암 체규조사가 법당 및 장실을 중수하였고, 1781년(정조5 신축)에 이르러 법당 지장존상이 물 사태에 상처를 입은 것을 회암 정혜(晦庵定慧)조사의 4대 법손인 환우 연찬(喚愚 演贊)조사가 施主募緣을 해서 중수하는 한편 주불 및 탱화 등을 一新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782년(정조6, 임인) 4월에 다시 화재를 입어 법당‧영감(影龕)‧丈室‧ 중료(衆寮)인 六和寮‧ 門樓‧익랑(翼廊) 등이 모두 재가 된 것을 환우 대사께서 慕庵조사가 만든 권선문으로 모연하는 등 여러 대중과 인화 단결하여 익년(1783) 가을부터 복구작업을 시작하여 신궁보전(新宮寶殿)과 누당(樓堂)을 중건하고 육화료를 보수하였는데 이를 제 3차 중창이라 한다.

1852년 회암조사의 5대 법손인 포봉 일오조사가 회암 진영을 봉안하기 위해 회당영각(晦堂影閣)을 지었으나 화재로 전소되고, 후에 대운병택(大雲丙澤)조사가 지금의 진영각을 신축하고 진영을 모시어 현재 22분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으며 원본 진영은 직지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 청암사 역시 1897년 무렵부터 거의 폐사되어 대중이 흩어졌으나, 1905년(고종 9, 을사)에 주지 용각화상이 극락전을 중건하고 대운병택조사(1868-1936)가 극락전을 복원하면서 다시 절을 세웠고, 이듬해에 응운영호(應雲永護)화상이 보광전을 건립하던 중 입적하자 대운(大雲)화상이 완공한 뒤, 가야산 동쪽의 성주 수륜면 용기사터에서 42수 청동관세음보살상을 이운하여 보광전에 봉안하고 萬日會를 결성하여 극락전은 염불당으로서 염불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신행의 전법 불사를 진작시키었다.

그러나 보수를 끝낸 지 6년만인 1911년 9월 21일 밤 청암사는 원인모를 화재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어, 대운 병택(大雲丙澤)조사가 그 다음 해인 1912년 봄에 현존하는 전각 대웅전과 육화료·진영각을 신축하고, 1921년에는 중국 항주 영은사에서 목조 석가모니불상을 조성하여 대웅전에 봉안하는 제 4차 중창을 이루었다.

 

                      ▲ 청암사 앞마당 전경

 

이후 청암사는 많은 쇠락과 함께 주민마저 외면하는 쓸쓸한 사찰로 방치되어 있다가, 1987년 3월 25일 비구니 의정 지형(義淨志炯)강백과 의진 상덕(義眞相德)강백이 청암사 최초로 비구니 승가대학을 설립하고 도난당한 청동 42수 관세음보살상을 대신하여 목조 42수 관세음보살상을 보광전에 조성 봉안하였으며, 대웅전‧ 육화료‧ 진영각‧ 보광전‧ 극락전‧ 정법루 등을 보수하고, 사천왕문과 일주문 이전을 비롯하여 회암 비각과 대운당 비각 보수 및 부속 건물인 중현당‧ 선열당을 신축하였으며, 1993년에는 극락전 중수, 1997년 범종각 신축 및 1999년 보광전 보수를 비롯하여 이후 백화당‧ 자양전 신축 등 대대적인 불사를 거쳐 지금과 같은 교육도량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니 이것이 제 5차 중창으로 2005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2005년 10월 2일 청암사 제5차 중창 20년불사회향 및 청암사승가대학 제1회 ~ 20회까지의 총졸업식을 거행하였으며, 2007년 4월 18일에는 교육전문기관인 청암사 율학승가대학원을 개원하였다.

 

♧ ♧ 청암사 대웅전(靑巖寺 大雄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0호(1985년08월05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 (평촌리)

 

 

청암사는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이 세운 절이다. 건립은 본사 창건 당시인 신라 헌안왕 3년 (859) 도선국사에 의해서 이루어 졌고 인조 25년 (1647) 허정혜원조사가 중창하였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911년 화재로 전소된 것을 1912년 제4차 중창시 대운화상에 의해 3년에 걸쳐 신축되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형식과 겹치마 팔작지붕을 갖춘 총 23평의 건물로서 1976년 주지 진기스님이 기와번와를 했으며, 2005년 주지 상덕화상에 의하여 평방위로 해체보수를 하였습니다.

안쪽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과 후불탱, 산신탱, 신중탱, 칠성탱, 독성탱 등 여러 점의 탱화와 소종(小鐘), 수번(繡幡)이 있다.

 

 

▷대웅전 불단(大雄殿 佛壇)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선정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불상은 1921년 대운大雲화상이 중국 항주 영은사靈隱寺에서 조성 대웅전에 봉안하였습니다.

약간 살집 있어 보이는 상호, 좁은 어깨를 덮은 통견의 옷주름은 대칭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계(肉髻)가 없고 계주(髻珠)만 크게 박혀있는 머리, 기름진 얼굴모습, 진홍빛의 가사 안자락 표현등 청나라 말기 중국불상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대웅전 후불탱화(大雄殿 後拂幀畵)

金魚로는 당대의 불화가 이혜고, 김계은, 홍한곡이 그린 것으로 부처님의 12제자, 8대보살, 4천왕이 옹호하고 있는 모습으로 당시의 대표적인 불화입니다.

산신탱화, 신중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도 모두 같은 畵僧의 작품입니다.

▷대웅전 편액(大雄殿 扁額)

근세 명필 성당 김돈희 (星堂 金敦熙 1871-1936)의 글씨입니다.

 

 

♧ ♧ 청암사 다층석탑(靑巖寺 多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1985년08월05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 (평촌리)

 

 

청암사 대웅전 앞에 서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4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아래·위층이 거의 비슷한 높이인데 보통 아래층 기단이 낮고 위층 기단이 높은 일반적인 탑들과는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면마다 불상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큰 편으로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일부가 놓여 있다.

 

 

                      ▲ 청암사 다층석탑 1층 몸돌의 불상(사진 上)

                         기단부의 연꽃 문양(사진 下)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도선국사가 세운 탑이다. 기단에 비해 탑신이 가늘어 가냘픈 감을 주며, 탑신의 몸돌에 비해 지붕돌이 커서 불안정해 보인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성주군 어느 논바닥에 있던 것을 청암사 주지였던 대운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 청암사 극락전&보광전 전체 전경

♧ ♧ 청암사 보광전(靑巖寺 普光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8호(1994년04월1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 (평촌리)

 

 

청암사는 통일신라 헌안왕 2년(858)에 도선이 세운 뒤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절이다.

보광전을 지은 것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조선 정조 6년(1782)에 고쳐 세운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존재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에 앞서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가 장희빈 때문에 폐위되어 이곳 청암사 극락전에 은거하였는데, 이 때 극락전 서쪽에 인현황후의 복위를 빌기 위해 보광전을 세웠다는 설도 있다. 그 뒤 광무 9년(1905)에 다시 세웠으나 1911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듬해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청암사 보광전 정면 공포와 현판(사진 左)

                         보광사 내부 전경(사진 右)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과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을 같이 보이고 있다. 안에는 42수의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고 벽면에 산신도(山神圖), 독성도(獨聖圖), 신상도(神像圖) 등이 걸려 있으며 상벽에는 불화를 그려 놓았다.

현존하는 전통 건축 가운데 드문 절충식 구성법을 보이고 있어 절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청암사의 전각들 」

 

                      ▲ 청암사 진영각

                      ▲ 청암사 육화료

                      ▲ 청암사 정법루와 범종각

 

                      ▲ 청암사 극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