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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900년 전 대홍수와 산사태로 매몰된 사찰! 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왕마구리 2016. 5. 24. 15:51

◀ 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900년 전 대홍수와 산사태로 매몰된 사찰!

 

「 강원도 양양(江原道 襄陽) 소개 」

강원도 중부 동해안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해, 서쪽으로는 인제군과 홍천군, 남쪽으로는 강릉시, 북쪽으로는 속초시와 접하고 있다. 총 면적은 628.82㎢이고 동서의 거리는 약 31 km, 남북의 거리는 약 34 km에 달한다.

양양군의 행정 구역은 1읍 5면으로 법정리 124개, 436개 반이다.[14] 양양군의 면적은 629.32 km²이며, 인구는 2015년 12월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2만7479 명, 1만3374 가구이다. 이 중 42.6%가 양양읍에 거주한다. 양양군의 남녀 성비는 1.03 : 1이다.

동쪽은 동해안을 따라 2∼4㎞ 폭으로 좁고 긴 평야가 전개되고,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대부분의 지역이 험준한 산악지대로 되어 있다. 대표적인 산으로 서남부에 매복산, 약수산, 북부에 설악산, 점봉산등이 있어 인제군, 홍천군과의 경계를 이룬다. 이들 산지에서 남대천, 서림천, 물치천, 화상천, 오색천 등이 발원하여 흐르며 39.5㎞에 달하는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고 해안의 모래사장은 해수욕장으로 적합하다.

동해에 면하고 서쪽 태백산맥이 겨울에 북서 계절풍을 가로막아 푄 현상(Föhn)으로 기온을 높여 같은 위도의 서해안에 비해 연평균 2.5 °C 높고, 특히 1월 평균 기온은 3°C나 높다. 또 가을에 강수량이 비교적 많은 것도 특색이다. 연평균 기온은 11.8 °C, 1월 평균 기온은 -2.2 °C, 8월 평균 기온은 24.3°C이고, 역대 최고 기온은 39.2 °C(1939년 7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 °C(1944년 2월)였고, 연평균 강수량은 1,400 ㎜이다.

손양면 오산리에서는 한반도 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어 이 지역에서의 인간의 오랜 거주를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이전에 예(濊)나라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점령하면서 이문현(伊文縣) 또는 익현현(翼峴縣)이라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익령현(翼嶺縣)으로 개칭되어 수성군(守城郡 : 고성)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1018년(현종 9)에 5도양계제 실시에 따라 현령이 파견되고 동계(東界)에 속했다. 이때 동산현(洞山縣)을 속현으로 병합했다. 1221년(고종 8)에 양주(襄州)로 승격했으나 1254년에 양주현, 1257년에 덕령현(德寧縣)으로 강등되어 감무가 파견되었다.

 

                      ▲ 선림원지

 

1260년(원종 1)에 다시 양주로 복구되었다. 조선초인 1397년(태조 6)에 태조 이성계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부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양주(襄州)도호부로 바뀌었다. 1416년(태종 16)에 양양으로 개칭되어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잇고 있다. 1783~92년에는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양양의 별호는 양산(襄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강릉부 양양군, 1896년에 강원도 양양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서면·현북면·현남면은 그대로, 군내면·위산면·부남면이 군내면으로, 동면·남면이 손양면으로, 강선면·사현면이 강현면으로, 도문면·소천면이 도천면으로 통합되었다. 1917년 군내면이 양양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19년 간성군이 고성군으로 개칭되면서 토성면·죽왕면이 양양으로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국토가 양단되자 북위 38。선이 군의 중앙을 가르고 있는 양양군은 현북면의 일부 지역을 현남면에 이관하면서 현남면과 서면 일부를 강릉군에 넘겨주고, 나머지 지역은 북한에 속하게 되었다.

1951년에 군 전역이 수복되고,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현남면이 명주군에 이속되고 현북면과 서면은 양양군에 환속되었다. 1937년에 도천면에서 속초면으로 바뀌었다가 1942년에 읍으로 승격된 속초읍이 1963년에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면서, 죽왕면·토성면을 고성군으로 환원하고 명주군에서 현남면을 환속받았다. 1979년에 양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강현면 상복리 일부가 속초시로 편입되었고 1989년 손양면 가평리와 송현리 일부가 양양읍에 편입되었다.

*문화제

현산 문화제는 원래 1007년(목종10)부터 성내리에 성을 쌓고, 매년 서낭제를 올려 국태민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였으나 그 뒤 명맥만 유지하다가 3·1운동 당시 가장 치열했던 항쟁지이며 많은 열사가 순국한 점을 기려 '현산 문화제'로 확대·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주요 행사로 횃불제등행렬, 기미만세추모제 및 민속놀이, 문예행사 등이 있다.

*민속

-패다리 놓기

두 마을이 개울 하나를 사이에 놓고 함께 힘을 모아서 어느 편이 신속하게 다리를 놓는가를 겨루는, 이는 지형적으로 개울이 많아 다리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났다. 이 밖에도 '귀애파기 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고장의 산골짜기에서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하여 큰 통나무의 속을 파서 만든 수로를 '귀애'라 한다. 이 귀애를 만드는 일은 놀이 겸 마을의 큰 행사이다. 매년 한식을 전후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귀애를 파고 이를 산골 논에 설치하며 하늘에 제를 올려 풍년을 기원했다.

-동 제

임진왜란 후 매년 5월 5일 단오에 장군 서낭신을 주신(主神)으로 모시는 현산서낭제를 지냈다가 일제 강점기에 폐지되었으나 1968년 부활되었고 현재는 그 시기가 단오 5일 전후의 현산문화제 때 거행되고 있다.

*축제

문화관광부 지정 지역문화축제 “송이축제”는 청정한 양양의 울창한 소나무숲에서 자생하는 신비의 버섯인 “송이버섯”을 직접 채취할 수 있는 체험의 장을 마련, 세계 어느 곳에서도 경험 할 수 없는 송이채취의 신비한 체험이다. 또한 송이생산이 전국 생산량의 60∼80%를 차지하며, 10월초에 송이 축제가 열린다.

또한 남대천에서는 해마다 11월초가 되면 어머니의 강을 찾아 회귀하는 연어들을 맞이하는 연어축제가 열린다. 거친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의 몸부림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온가족이 참여하여 환경의 중요성과 인성교육의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다.

 

『 탐방한 양양군의 문화재들 』

●양양 진전사지(襄陽 陳田寺址)

강원도 시도기념물 제52호 양양 진전사지(襄陽 陳田寺址)

국보 제122호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襄陽 陳田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439호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襄陽 陳田寺址 道義禪師塔)

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강원도 시도기념물 제53호 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보물 제444호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襄陽 禪林院址 三層石塔)

보물 제445호 양양 선림원지 석등(襄陽 禪林院址 石燈)

보물 제446호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襄陽 禪林院址 弘覺禪師塔碑)

보물 제447호 양양 선림원지 승탑(襄陽 禪林院址 僧塔)

양양 오색리

천연기념물 제529호 양양 오색리 오색약수(襄陽 오색리 오색약수)

보물 제497호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襄陽 五色里 三層石塔)

●양양 낙산사 일원(襄陽 洛山寺 一圓)

사적 제495호 양양 낙산사 일원(襄陽 洛山寺 一圓)

명승 제27호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襄陽 洛山寺 義湘臺와 紅蓮庵)

보물 제499호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襄陽 洛山寺 七層石塔)

보물 제1362호 양양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襄陽 洛山寺 乾漆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723호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일괄(襄陽 洛山寺 海水觀音空中舍利塔·碑 및 舍利莊嚴具 一括)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3호 낙산사 홍예문(洛山寺虹霓門)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4호 낙산사 원장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8호 의상대(義湘臺)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호 낙산사 홍련암(洛山寺 紅蓮庵)

 

【 일 정 표 】2016년 04월 26일(화)-2016년 04월 27일(수) 1박2일

                             ◈ 첫째날(04/26) : (양양)오색리<주전골·성국사 오색리 삼층석탑·오색약수>-낙산사 일원

                             ◈ 둘째날(04/27) : (양양)진전사지-선림원지-(강릉)강릉대도호부·임영관삼문-신복사지-굴산사지-보현사

 

                      ▲ 선림원지 주변의 미천골 자연휴양림 등산안내도

 

강원도 양양군과 강릉시는 이미 여러 차례 방문을 한 지역으로 이번에 탐방한 오색 주전골과 오색리 삼층석탑은 201년 11월03일 고교동창 산악회 회원 19명과 함께 「(흘림골)흘림골지킴터~여심폭포~등선대~등선폭포~십이폭포~용소폭포갈림길~(주전골)금강굴~선녀탕~독조암~성국사/오색리 삼층석탑~약수터탐방지원센터」 코스로, 낙산사 일원은 화재 전과 후 수 차례 탐방을 하였었다.

이번 탐방에 상기의 관광명소 이외에 강릉지역의 경포대 일원(강릉 해운정, 선교장, 경포대), 오죽헌, 강릉향교, 대창리와 수문리 당간지주 등을 탐방 할 예정이었으나, 원거리 지역에 주전골 탐방과 낙산사 일원을 전부 둘러보게되어 시간적으로 부족하여 다음에 탐방을 하기로 하였다.

양양과 강릉에서의 탐방 명소 소개는  오색 주전골과 오색리 삼층석탑, 강릉대도호부·임영관삼문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영남&호남권'에,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양양의 낙산사 일원, 진전사지, 선림원지, 그리고 강릉의 신복사지, 굴산사지, 보현사의 문화재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양양군의 탐방지는 오색 주전골과 오색리 삼층석탑, 양양 낙산사 일원, 양양 진전사지 및 양양 선림원지 등 총 4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한다.

 

- 시원한 폭포와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곳! 오색 주전골과 오색리 삼층석탑(五色里 三層石塔)

- 선명한 단청과 풍경소리! 양양 낙산사 일원(襄陽 洛山寺 一圓)

-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이 출가한 사찰! 양양 진전사지(襄陽 陳田寺址)

- 900년 전 대홍수와 산사태로 매몰된 사찰! 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 미천골 자연휴양림내 선림원지 입구

 

                     ▲ 선림원지 입구의 안내문들

 

선림원지는 산림청 미천골 자연휴양림내에 위치해 있어, 탐방을 할 경우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를 통과해야 한다.

이 경우 자연휴양림 입방료(\1,000/1인)를 지불하고, 자연휴양림 내 도로를 따라 약 8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림원지를 탐방하고 30분 내외의 시간내에 관리소로 다시 되돌아나오면 지불한 입정료를 환불받을 수 있다.

이는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입장시킬 경우 선림원지 탐방을 핑게로 자연휴양림내에 장기간 머무러는 이들이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 한다.

 

『 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소개 』

*강원도 기념물 제53호(1982년11월03일 지정)

*면적:9.113㎡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 424번지

선림원은 9세기 초 순응법사에 의해 창건된 후 홍각선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전한다. 1985년 동국대학교의 발굴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절터가 완전히 매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8년에는 신라 동종이 출토되기도 하였는데 이 종은 상원사 범종, 에밀레종과 함께 통일신라 범종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월정사에 옮겨 보관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는 일부 파편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지에 남아있는 문화재로는 삼층석탑(보물 제444호)과 부도(보물 제447호), 석등(보물 제445호), 부도비(보물 제446호)들이 있다.

 

                      ▲ 선림원지 승탑과 삼층석탑

 

♧ ♧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襄陽 禪林院址 三層石塔)

*보물 제444호(1966년09월21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번지

 

 

1948년에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어 주목되었던 선림원터에는 석탑을 비롯하여 석등·홍각선사탑비·석조부도 등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 석조유물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으나 모두 복원되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으로, 법당터 남쪽의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 선림원지 삼층석탑 기단부

 

여러 장의 돌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8부중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높은 편이며, 2층 몸돌은 반으로 체감되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 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다.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있고, 철제찰주을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형이 아닌 듯하다.

 

 

 

                      ▲ 선림원지 삼층석탑 상층기단 면석의 팔부중상들 

 

외형상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 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도 규율성을 잃고 있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나 기단부의 짜임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9세기경 신라 후기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복원공사가 진행되기 전 기단부에서 소탑(小塔) 60여 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된 일이 있다. 탑 앞에는 안상(眼象)을 새긴 배례석(拜禮石)이 남아 있다.

 

♧ ♧ 양양 선림원지 석등(襄陽 禪林院址 石燈)

*보물 제445호(1966년09월21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번지

 

 

선림원터 안의 서쪽 언덕 위에 놓여있는 돌로 만든 등이다. 선림원은 신라의 옛 절로, 이 곳에서 출토된 신라범종을 통해, 당시 해인사를 창건했던 순응법사(順應法師)에 의해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지금은 이 터가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여러 유물들이 남아있고 각종 기와와 토기조각들이 아직까지도 발견되고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 선림원지 석등 화사석과 옥개석(사진 上)

                         고복형 간주석인 가운데 받침돌(사진 中)

                         아래 받침돌인 하대석(사진 下)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식을 따르면서도 받침돌의 구성만은 매우 독특하여 눈길을 끈다.

아래받침돌의 귀꽃조각은 앙증맞게 돌출되어 아름답고, 그 위로 가운데받침돌을 기둥처럼 세웠는데, 마치 서 있는 장고와 같은 모양이며 그 장식이 화려하다. 즉 기둥의 양끝에는 구름무늬띠를 두르고 홀쭉한 가운데에는 꽃송이를 조각한 마디를 둔 후, 이 마디 위아래로 대칭되는 연꽃조각의 띠를 둘러 모두 3개의 마디를 이루게 하였다.

 

                      ▲ 선림원지 석등 옥개석 귀꽃(사진 左)과 하대석 귀꽃 장식(사진 右)

 

화사석은 8각으로 빛이 새어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었고, 각 면의 아래에는 작은 공간에 무늬를 새긴 매우 드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지붕돌은 8각의 모서리선이 뚜렷하며, 추녀에는 아래받침돌에서 보았던 같은 모양의 귀꽃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경사진 면은 가파르지 않고 부드러운데, 귀꽃조각과의 어우러짐이 자연스럽다. 꼭대기에는 연꽃이 새겨진 머리장식의 작은 받침돌만 남아 있다.

지붕돌이 일부 탈락되긴 하였으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전체적인 양식과 장식적으로 흐른 조각 등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담양 개선사지 석등(보물 제111호)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같은 절터내의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와 함께 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 선림원지 석등과 홍각국사탑비

 

♧ ♧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襄陽 禪林院址 弘覺禪師塔碑)

*제446호(1966년09월21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번지

 

 

                      ▲ 선림원지 비신을 복원한 홍각국사탑비

 

홍각선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탑비이다. 선림원터에 있으며, 통일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비는 일반적으로 비받침인 거북머리의 귀부(龜趺)와 비몸, 비머리돌로 구성되는데 이 비는 비받침 위에 바로 비머리가 올려져있다. 비문이 새겨지는 비몸은 파편만 남아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2008년에 비신을 새로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 선림원지 비신 복원전의 홍각국사탑비 귀부와 이수

                      ▲ 선림원지 홍각국사탑비 이수 중앙의 제액

                      ▲ 춘천박물관에 소장중인 선림원지 홍각국사탑비 비신 조각

 

비받침의 거북은 목을 곧추세운 용의 머리모양으로 바뀌어있고, 등에는 6각형의 무늬가 있다. 등에 붙어 있는 네모난 돌은 비몸을 세우는 자리로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 있다. 비머리에는 전체적으로 구름과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었고, 중앙에 비의 주인공이 홍각선사임을 밝히는 글씨가 있다.

 

                      ▲ 선림원지 홍각국사탑비 귀부 측면과 후면 모습

                      ▲ 선림원지 홍각국사탑비 이수 정면과 측면 모습

 

홍각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비의 파편과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경서에 해박하고 수양이 깊어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비문은 운철이 왕희지의 글씨를 다른 곳에서 모아 새긴 것인데 신라 후기에 왕희지의 글씨가 보급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 ♧ 양양 선림원지 승탑(襄陽 禪林院址 僧塔)

*보물 제447호(1966년09월21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번지

 

                      ▲ 기단부만 남아 있는 선림원지 승탑

 

선림원은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연 절로, 1948년 절터에서 연대가 804년으로 적힌 신라시대 범종이 나오면서 창건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승탑은 일제시대에 완전히 파손되었던 것을 1965년 11월에 각 부분을 수습하여 현재의 자리에 복원한 것으로 기단부(基壇部)만이 남아있다.

기단의 구조로 보아 8각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승탑임을 알 수 있는데, 신라 때에 돌로 만든 승탑은 대부분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기단의 아래받침돌·중간받침돌·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2단인데, 아래단이 바닥돌과 한 돌로 짜여진 점이 특이하다.

 

                      ▲ 몸돌이 놓였던 기단 윗받침돌 상부 모습

                      ▲ 기단부 중대석의 운룡문

                      ▲ 기단부 아래받침돌의 조각들

 

윗단에는 두 겹으로 8장의 연꽃잎을 큼직하게 새기고, 그 위에 괴임을 2단으로 두툼하게 두었다. 중간받침돌은 거의 둥그스름한데 여기에 높게 돋을새김해 놓은 용과 구름무늬의 조각수법이 매우 웅장한 느낌을 준다. 윗받침돌에 2겹으로 새긴 8장의 연꽃잎은 밑돌에서의 수법과 거의 같다.

기단의 위아래를 마무리하는 수법에서 뛰어난 안정감을 보이고 있는 승탑으로, 기단 아래받침돌 밑을 크게 강조한 것은 8각형의 일반적인 승탑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승탑의 건립시기는 절터에 남아있는 홍각선사비와 이 승탑이 홍각선사의 승탑인 점으로 미루어 신라 정강왕 1년(886)인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