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경북 봉화)봉화의 국가지정문화재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과 서동리 동ㆍ서 삼층석탑

왕마구리 2017. 8. 3. 23:47

경상북도 봉화군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종주, 그리고 청량산 산행 등으로 몇 차례 방문하였지만 관광과 문화재 탐방만을 위해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거리 이동과 백두대간 협곡열차 관광 등으로 예정하였던 문화재 탐방을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 다음기회에 인접지역인 영주시 문화재 탐방과 묶어 이번 방문에서 탐방하지 못하였던 바래미 전통문화마을의 고택들, 설매리 3겹까치구멍집 및 법전면 일원의 고택과 정자 등을 둘러 볼 계획이다.

또한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승부역가는 길(석포역~승부역/12km)' 도보여행을 할 계획이며, 만약 시간적 여유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백두대간 협곡열차 구간 중 승부역~양원역간 조성된 '양원~승부 비경길(5.6km)' 또는 양원역~분천역(6.5km)'간 조성된 '체르마트길' 중 한 곳만이라도 도보 탐방을 실시할 것이다.


『 경북 봉화군 소개 』

춘양목의 푸른 솔향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

충효의 얼과 옛 전통이 살아있는 봉화!

봉화군은 산세가 수려하고 선비의 정신이 깃들은 예절의 고장이다. 인구 4만여명에 19개면으로 전체면적의 83%가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림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특산물이 많다. 특히,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청량산을 위시한 명산과 국보 및 보물들이 산재해있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북부에 있는 군. 진한12개국 중의 하나인 기저국(己柢國)이 있던 지역이며 삼국시대에는 지금의 봉성면 일대가 고구려의 고사마현(古斯馬縣)이었다. 1895(고종 32) 지방관제 개편 때 봉화군(奉化郡)으로 개칭되었다.

경관이 빼어난 고산준령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천연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험준한 산지이다.

행정구역은 봉화읍·물야면·봉성면·법전면·춘양면·소천면·석포면·재산면·명호면·상운면 등 1개읍 9개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봉화로 1111이다. 면적 1,201.46, 인구 33,808(2015년 기준)


『 탐방한 봉화군의 문화재들 』

국보 제201호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奉化 北枝里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52호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奉化 西洞里 東西 三層石塔)

보물 제995호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奉化 鷲棲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 木造光背)

보물 제1379호 축서사 괘불탱(鷲棲寺 掛佛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7호 축서사 삼층석탑(鷲棲寺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8호 축서사 석등(鷲棲寺石燈)

명승 제60호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奉化 靑巖亭石泉溪谷)

국가민속문화재 제170호 봉화 쌍벽당 종택(奉化 雙碧堂 宗宅)

국가민속문화재 제171호 봉화 계서당 종택(奉化 溪西堂 宗宅)

국가민속문화재 제249호 봉화 송석헌 고택(奉化 松石軒 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제279호 봉화 만산고택(奉化 晩山古宅)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봉화 한수정(奉化 寒水亭)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54호 도암정(陶巖亭)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81호 봉화 의양리 권진사댁(奉花 宜陽里 權進士宅)

 

【 일 정 표 】2017년 07월 07일(금)-07월 08일(토) 1박2

                             ◈ 첫째날(07/07) : 도암정-송석헌고택-쌍벽당종택-충암정-석천계곡&석천정사

                             ◈ 둘째날(07/08) : 협곡열차 관광-서동리 서 삼층석탑-의양리 권진사댁(성암고택)-만산고택-한수정-북지리 마애여래좌상-계서당 종택(이몽룡

                                                       생가)-축서사


봉화에서의 탐방 명소 소개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내가 찾은 명찰'에 '축서사의 문화재들'를, 그리고 나머지 관광 명소와 문화재들은 '영남권'에 5편으로 나누어 총 6편으로 소개를 한다.


- 봉화의 국가지정문화재들북지리 마애여래좌상(北枝里 磨崖如來坐像)과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西洞里 東西 三層石塔)

- 옛 선비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조선시대 종택 및 고택들

-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청암정과 석천계곡(靑巖亭石泉溪谷)

-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진 정자들! 도암정(陶巖亭)과 한수정(寒水亭)

-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인 백두대간 협곡구간을 왕복 운행하는 국내 최초 개방형 관광열차! 백두대간 협곡열차

- 의상조사가 창건한 신라의 천년고찰! 축서사의 문화재들


◀ 봉화의 국가지정문화재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201호)과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보물52호)!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奉化 北枝里 磨崖如來坐像)

*국보 제201(1980091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산108-2번지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사진 上)

                     안내판의 북지리마애여래좌상 사진(사진 下)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지림사가 자리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좌,우 측면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얼굴과 상반신 모습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좌,우 무릎부분과 손 모양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 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광배 우측 하단에 새겨진 작은 부처상(사진 左)

                                                                좌측 하단에 새겨진 작은 부처상(사진 右)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얼굴 옆 광배에 새겨진 작은 부처상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제221)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지림사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지림사 대웅전(사진 左)와 원통전(사진 右)


♧ ♧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奉化 西洞里 東西 三層石塔)

*보물 제52(196301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원촌길 8-14 (서동리)

춘양중학교 안에 동·서로 마주 서있는 2기의 탑으로 쌍탑 형식을 띤다.




이 곳은 신라의 옛 사찰인 남화사(南華寺)의 옛터로 알려져 있는데, 신라 문무왕 16(675)에 원효대사가 여기서 서북쪽으로 6정도 떨어진 곳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이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두 탑 모두 같은 양식이다.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층으로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어 뚜렷한 체감율을 보인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 동탑


                  ▲ 동탑 탑신부(사진 上)

                     동탑 기단부(사진 下)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서쪽 탑에만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남아있을 뿐이며, 동쪽 탑은 모두 없어졌다.

기단부가 땅 속에 파묻혀 있고 탑이 몹시 기울어져 있어 196210월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서는 사리함을 넣었던 공간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비례와 정제된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동탑


                  ▲ 동탑 탑신부(사진 上)

                     동탑 기단부(사진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