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제주 올레

제주올레길 제18코스(산지천마당~조천만세동산)

왕마구리 2019. 5. 16. 21:28

◀ 제18코스(탐라문화광장/산지천마당~조천만세동산) ▶

제주원도심-조천올레!!!


                   ▲ 닭모루 지나 화장실이 마련된 해안언덕 쉼터에서 뒤돌아본 닭모루 전망 쉼터와 해안 전경


【  걷기일자 】 2019년 5월 8일(수)

【  올레코스 】탐라문화광장/산지천마당→김만덕객주터→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사라봉 입구→사라봉/망양정→애기업은 돌→별도봉 산책로→별도봉 입구→화북 비석거리→곤을동 마을터→화북포구/아름다운 화장실→장머들경로당→별도연대/별도환해장설→벌당 새각시물/삼양3동포구→삼양 검은모래해변/해수욕장→삼양해수욕장 정자쉼터→원당봉 입구 삼거리→불탑사/불탑사 오층석탑→신촌가는 옛길→닭모루(닭머르)/정자 쉼터→신촌포구→대섬→수암정/정자 쉼터→연북정→조천연대→조천만세동산


                  ▲ 제주올레 제18코스 지도(제주올레 개장 당시의 코스도)


 <<참고>>제18코스 각 구간별 거리(19.7km)

간세라운드/제주에코브랜드 체험센터-(1.6km)-김만덕객주터-(0.5km)-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1.2km)-사라봉 입구-0.4km)-사라봉 정상-(1.2km)-애기업은 돌-(0.9km)-곤을동미을터-(1.5km)-화북포구-(0.8km)-별도연대-(2.4km)-삼양해수욕장 정자-(0.9km)-원당봉 입구-(0.5km)-불탑사-(0.3km)-신촌가는 옛길-(2.1km)-달모루-(1km)-신촌포구-(1.2km)-대섬-(0.9km)-수암정-(0.9km)-연북정-(1.4km)-조천만세동산

【 코스거리 】 약 18.80km

【 소요시간 】 총 7시간 25분 소요(중식 및 휴식 : 1시간 42분 포함)/실제 걷기시간 : 5시간 43분 소요

【 날     씨 】 맑 음

【 교 통 편 】 대중교통 이용

【 코스탐방 】

2012년 7월15일 제주올레 제17코스를 동문시장 북문 앞 산지천마당에서 탐방을 마쳤으니, 약 7년만에 숙제로 남겨 두었던 제18코스와 제19코스 탐방을 재개한다. 오늘은 제18코스를 탐방하고, 가까운 시일내 제19코스를 탐방할 계획이다.

제주올레길 개장 당시의 제17코스 종착지와 제18코스의 종착지가 이곳 산지천마당(현재 공식명칭은 탐라문화광장)이었으나, 현재는 기존 제17코스상의 오형단 인근의 간세라운지/제주 에코 브랜드 체험센터로 변경되어 두 개 구간의 거리가 조정된 상태이다.

변경된 시작지점으로 이동하여 제18코스의 탐방을 하려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간세라운지에서 산지천마당까지는 지난 제17코스 탐방 때 이미 탐방을 한 상태라 중복의 의미가 있어 개장 당시의 코스대로 산지천마당을 시작 지점으로 하여 탐방을 하기로 한다.

현재 제18코스의 총 거리는 19.7km이나, 출발 지점이 산지천마당인 관계로 총 거리는 18.8km로 추정하고 탐방에 들어간다.



                   ▲ 별도봉 산책로에 위치한 '애기업은 돌'로 이어지는 절경의 올레길


동문로터리 산지천 마당,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산지천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길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산책로로 이어지지만, 그 아래 복개천을 복원하여 살아 있는 산지천이 함께 한다.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지나서는 바다로부터 방향을 틀어 언덕을 오르면 마을길을 진행하여 제주 시내권에 박힌 보석같은 두 오름이 이어지는 사라봉과 별도봉이 발걸음을 이끈다. 일몰이 아름다워 '사봉낙조'라고 하여 영주십경의 하나인 사라봉은 오르기 어렵지 않은 높이의 오름이지만 제주 시내와 바다, 한라산을 바라보는 전망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 뒤돌아본 별도봉 산책로에 위치한 '애기업은 돌'


사라봉에서 별도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오름의 옆 모습, 억새와 바다가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낸다. 그 절경을 따라 별도봉 입구를 빠져나가면 돌담들만 남아 있는 텅 빈 땅이 나타난다. 4.3 당시 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곤을동 마을 터다. 흔적만 남은 집터들을 보며,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 하루 아침에 가족과 이웃 대부분이 죽고 집마저 불타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사람들, 제주의 아픈 상처를 생각한다.

잠시 무거워진 발걸음은 포구와 해변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에서 씻어내고, 다시 시골의 정취가 묻어나는 원당봉 둘레, 오랜 세월에도 여전히 우뚝 서 있는 옛 원당사터에 중창된 불탑사의 오층석탑, 제주 유일의 보물 석탑이다. 원당봉 자락에 자리한 고려 시대 창건된 원당사의 맥을 잇는 전통 사찰 불탑사를 뒤로하고 신촌으로 제사 먹으러 가던 옛길을 따라 여정을 이어간다.

그리고 다시, 바다. 시비코지에서 닭모루로 이어지는 바당길은 숨이 탁 트이는 풍경, 제주의 자연이 주는 장대한 풍광, 제주올레 18코스가 주는 가슴 뭉클한 선물이다. 이 장대한 자연의 풍광 속을 빠져 나와 아름다운 신촌의 포구와 야자수 숲길과 주변의 꽃밭이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내 신혼부부들의 촬영지가 된 대섬, 제주인의 삶이 묻어나는 용천수탐방길이 조성된 조천리 마을, 드리고 연북정과 조천연대를 차례로 지나 석양이 내리기 시작하는 제주 항일운동의 성지 조천 만세동산에 이르러 제주올레 제18코스의 여정이 끝이 났다.




                  ▲ 산지천광장(사진 上)

                     산지천변에 조성된 소공원(사진 中)

                     산지천변 소공원에 세워진 제주 출신 가수 혜은이 노래비(사진 下)

 

11:35~11:46=>산지천마당(탐라문화광장)

      제주동문시장 북문(GATE3) 길 건너에 자리한 산지천마당에는 기존에 있었던 제주올레 제18코스 안내표지석과 기념 스탬프함은 출발지점이 변경되어 없어진 상태이다. 음악분수와 제주가 나은 가수 혜은이의 프로필이 적힌 조형물이 있다.


♧ 산지천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의 북사면에서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거쳐 건입동의 제주항으로 흐르는 하천.

산지천은 한라산 북사면 해발 약 720m 지점에서 발원하여 제주시의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차례로 흘러 하구(河口)인 건입동의 제주항을 통해 바다로 나간다. 이 산지천은 과거에 큰 비만 내리면 하류 구간이 곧잘 범람하여 부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초래했던 하천이다.



산지천은 하류 구간에서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나는 하천으로도 유명하다. 산지천의 하류 구간과 그 주변에서 용출하는 용천수, 즉 ‘산짓물(山地泉)’, ‘금산물’, ‘지장깍물’ 등의 용천수들은 제주시에 상수도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이전인 1960년대 초까지도 많은 제주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었다.



산지천 하류(건입동)에 금산(禁山)이라는 낮은 산이 있는데, 이 금산 아래를 흐르는 ‘내(川)’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耽羅誌)』 등 여러 고문헌에는 산지천의 이름이 ‘산저천(山低川)’으로 등장하는 것이 많다. 

산지천은 한라산 관음사 남쪽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서 총 유로연장이 13.2㎞, 유역면적이 12.2㎢이며, 하천차수(河川次數)는 3차수를 보인다. 오늘날의 지형도에는 해발 520~720m 지점까지가 하천 발달이 미약하고 강우 시에만 형성되는 소류(小流)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하천의 발원지를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산지천의 유역은 서쪽으로는 소룡천(小龍川) 유역과 동쪽으로는 화북천(禾北川) 유역과 접하고 있다.

산지천은 도시지역을 거쳐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으로서 유로 연장이 유로폭(流路幅)에 비해 가늘고 길게 나타난다. 따라서 중·상류는 하상(河床) 경사가 급한 산지계곡의 특성을 보이나, 하류는 시가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전형적인 도시 하천의 특성을 보인다. 산지천 유역의 표고별 변화량은 아주 큰 편이고 하상은 암반과 큰 자갈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기(乾期)에는 유량이 전혀 없는 건천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산지천은 과거에 산짓내(山地川), 산젓내(山低川) 또는 가락천(嘉樂川)이라고도 불려 왔으며, 제주의 역사를 기록한 여러 고문헌에도 많이 등장하는 하천 중 하나이다. 예로부터 특히, 산지천 하구는 ‘산포조어(山浦釣魚)’라 하여, 낚시를 즐기는 것 자체가 영주10경에 속할 정도로 운치 있는 장소로도 유명하였다.

산지천의 하류 구간은 조선 시대 때 제주목의 읍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즉 산지천의 하류 구간은 최초의 읍성 축성 과정에서는 성 밖에 두었으나 전쟁 수행 시 식수 조달이 어렵다고 하여, 뒤에는 성 안으로 들여 축성한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고 있다. 역사를 한층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산지천은 탐라역사의 발상지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제주시민들의 친수 공간이자 문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산지천은 병문천(屛門川) 및 한천과 더불어 제주시의 3대 하천이라 할 수 있으며 하류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구간이다. 현재 산지천의 하류에는 뱀장어, 은어, 숭어, 학공치, 밀어 등의 어류가 서식하며, 또한 해오라기, 쇠백로, 흑로, 왜가리, 청둥오리, 괭이갈매기 등 많은 종류의 새들이 찾고 있다.

특히, 산지천의 하류 구간인 일도1동 동문교에서 건입동 용진교 구간(너비 474m, 너비 21~36m)은 1966년 10월부터 1996년 2월까지 약 30여 년 간 복개되어 주상 복합지구로 이용돼 왔다. 그러나 1996년 3월부터 2002년 6월까지 약 6년 동안 총 사업비 365억 원을 들여 정비함으로써 생태 하천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일도1동의 기업은행에서 부터 과거 남수각(南水閣)이 있었던 현 시영(市營) 주차장까지는 아직도 복개된 상태로 인위적인 토지 이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불어 산지천 주변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였기 때문에, 하천 주변에 많은 유적지를 비롯한 관광 명소들이 분포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가장 상류부에는 관음사를 비롯하여 탐라목석원, 산천단,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신산공원, 제주 삼성혈, 제주성지 등이 있다.


                  ▲ 산지천을 끼고 시작되는 제주올레 제18코스


산지천을 좌측에 두고 인도따라 내려가다 북성교를 지나면 건입도 안내판이 보이는데 제주올레 18코스 중 건입동 지역의 코스(김만덕객주터~별도봉 산책로) 안내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안내도에 따르면,

김만덕객주터-(0.5km)-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1.2km)-사라봉입구-(0.4km)-사라본 정상-(0.2km)-사라봉 산책로-(0.5km)-음수대-(0.5km)-애기업은 돌-(0.4km)-별도봉 산책로


                  ▲ 산지천변에 설치된 '거상 김만덕의 얼이 살아숨쉬는 건입동 올레18코스' 안내도


빨래터였던 산지천의 용천수(11:55), 산지교를 차례로 지나면 우측 도로 건너 김만덕기념관이 보이고,


                  ▲ 김만덕기념관 지나 ┣자 도로삼거리에서 횡단보도 건너면 김만덕객주터


도로사거리에서 우측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 인도를 따르다 ┣자 도로삼거리를 건너면 김만덕객주터가 자리하고 있다.

12:02~12:05=>김만덕객주터

      조선 후기 제주도의 여성 자선사업가인 김만덕의 객주가 있던 곳으로, 2015년 7월 만덕고가 4동, 객주시설 4동 등 총 8채의 초가를 재현해 놓았으며, 객주시설에서는 식사와 안주 및 주류 등 먹걸이를 판매하고 하고 있다.

잠시 내부를 둘러보고 인도를 따라 진행하면 좌측 도로 건너로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 건물이 보이고, 우측 공터에는 4·3유적지인 4·3 당시 민간인수용소였던 제주주정공장 옛터가 자리하고 있다.



♧ 김만덕(金萬德 1739~1812)

조선 후기 제주도의 여성 자선 사업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제주도 출신으로 기녀 신분에서 상업을 통해 거상이 되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정조 19년(1795)에 자신의 전 재산으로 육지의 곡식을 구매하여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이에 대한 상으로 정조는 출륙(出陸)하여 금강산을 관람하고 싶다는 김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아버지 김응렬(金應悅)과 어머니 고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로 북제주군 구좌읍 동복리(지금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서 태어났다. 오빠 김만석(金萬碩)과 김만재(金萬才)가 있다. 아버지 김응렬은 전라도 나주와 제주를 오가며 제주의 미역·전복·귤 등을 팔고, 육지의 쌀을 제주에 가지고 와서 파는 상인이었다. 김응렬은 김만덕이 11세 되던 해에 나주에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사망하였고, 이듬해에 어머니도 그 충격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외삼촌 집에서 살았던 김만덕은 퇴기 월중선(月中仙)에게서 성장하게 되며 어린 나이에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그녀가 20살 되었을 때 관아에 가서 양인의 신분을 회복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제주 목사 신광익(新光翼)과 판관 한유추(韓有樞)를 찾아가 부모를 잃고 가난으로 부득이 기녀가 된 사정과 양인으로 환속시켜줄 것을 요청하였다.



김만덕은 재물을 모으는데 능하여서 상인으로 활동하며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다. 그녀는 배를 만들어 육지와 미곡을 무역했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이득을 취하였다. 이는 물가의 변동을 잘 파악하여 적절한 시기에 물건을 사고팔았던 상인으로서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만덕은 정조 14년(1790)부터 정조18년(1794)까지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제주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자, 재산을 내놓아 배를 마련하고 육지에서 곡물을 사들여 구호곡(救護穀)으로 쓰게 하였다. 이러한 선행은 정조 20년(1796) 조정에 보고되어, 정조는 그녀에게 면천(免賤)시키는 것으로 상을 주려고 하였으나, 김만덕은 이를 사양한 후 바다를 건너 상경하여 금강산을 유람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구휼에 대한 상으로 정조의 허락을 받은 그녀는 제주 여인으로는 예외적으로 육지로 나와 한양에 머무르고, 영의정 채제공의 주선으로 금강산을 유람한 후 제주도로 돌아갔다. 순조 12년(1812)에 사망하였다. 묘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모충사에 있다. 

김만덕은 상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치산(治産)에 능하여 객주를 차리고 제주의 특산물인 말총·미역·전복·우황·진주 등을 육지에 팔았고, 기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양반층 부녀자의 옷감, 장신구, 화장품 등을 공급하였다. 또한 육지의 곡물을 제주에 가지고 와서 팔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업 활동을 통해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김만덕은 정조대 제주도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을 때 재산을 털어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제주도는 흉년에 취약한 지역으로 정조 14년(1790) 이래 흉년과 태풍의 피해가 컸고,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었다. 정조18년(1794)에는 바람과 해수로 인한 피해를 크게 입자, 제주목사였던 심낙수(沈樂洙)가 조정에 구휼미 2만 섬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당시 흉년은 100여 년 만에 있을 정도의 큰 재변이라 할 만큼 참혹하였다.

정조 19년(1795) 윤2월 조정에서는 5천 섬의 구휼미를 제주도로 내려 보냈으나, 쌀을 실은 배 12척 가운데 5척이 난파당하는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때 김만덕은 육지의 곡식을 사서 제주도 백성들을 구휼하는 자선을 베풀었다.

또한 김만덕은 1천금을 내놓아 배를 마련하고 육지로 건너가 연해의 곡식을 사들여 친척들과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준 후, 나머지를 모두 관아로 보내어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도와주도록 하였다. 그녀의 선행이 조정에 보고되자, 정조는 그녀의 소원인 금강산 유람을 허락해 주었다. 그 당시 제주도민들은 제주도를 떠날 수 없었다. 이때 김만덕은 한양의 대궐을 구경하고 싶다는 소원도 부탁하였는데, 평민 여성이 대궐에 들어가는 것도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조는 김만덕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녀를 내의원 ‘차비대령 행수의녀’라는 임시 직책을 하사하여 그가 무사히 한양으로 올 수 있게 하였다. 

정조 20년(1796) 김만덕은 한양에 도착하여 우의정 윤시동(尹蓍東)의 부인 처소에서 지냈으며, 궁궐에 나아가 혜경궁 홍씨를 비롯한 왕실 어른들을 만났다. 정조는 당시 초계문신(抄啓文臣) 친시(親試)에 ‘만덕전’을 주제로 하여 시험을 치르도록 하였다. 김만덕은 이듬해 봄까지 한양에서 지내다가 금강산으로 가서 명승지를 두루 구경하고 제주도로 돌아왔다.

순조 12년(1812) 10월 사망한 후 한 달 뒤에 ‘구묘비문(舊墓碑文)’이 세워졌다. 김만덕이 사망한 지 30여 년이 지난 헌종 6년(1840)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김정희는 김만덕의 양자 김종주(金鍾周)에게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졌다.’는 뜻의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편액을 써서 주었다.


                  ▲ 제주 연안여객터미널

                  ▲ 제주 연안여객터미널 건너 편 올레길 입구


12:12=>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

      여객터미널 길 건너편 우측 계단길이 올레길이다.

계단길이 끝이나면 ┳자 갈림길. 좌측 방향으로 들어서면 대형 '칠머리당 영등긋' 표지판이 좌측에 설치되어 있고, 놀이터가 있는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 계단길이 끝나는 지점의 ┳자갈림길(사진 上)

                      ┳자갈람길의 올레길 표시들(사진 下)


                  ▲ 나무데크 전망쉼터(사진 上)

                      ┳자갈람길의 나무데크 전망쉼터에서 뒤돌아본 놀이터 쉼터와 제주항 전경(사진 下)


쉼터 지나 시멘트 포장길을 잠시 오르면 ┳자 갈림길. 좌측에 나무데크 전망쉼터가 있어 올라서니 제주항 일대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우측의 마을 포장길을 50여m 따르면 '거상 김만덕의 얼이 살아 숨쉬는 건입동' 제주올레 18코스 안내판이 서있는 ┧자 갈림길. 갈림길 정면 담장에 '올레 제18코스 L:18.2km' 동판이 붙어 있다.



                  ▲ 동대3길 입구 ┫자갈림길(사진 上)

                      ┫자갈림길 담장에 붙어있는 올레18코스 이정표(사진 下)


좌측으로 꺾어 건입동 '동대3길'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6차선 포장도로(12:25)와 만나게 되고, 좌측 인도를 잠시 따르면 좌측 아래로 제주항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 '칠머리당 영등굿' 장면의 벽회가 그려진 동대3길 골목길(사진 上)

                      6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올레길(사진 中)

                      도로 좌측 아래로 조망된 제주항 전경(사진 下)


12:27~12:57=>'이화아파트' 버스정류장

      길 건너 이화아파트가 자리를 하고 있다. 버스정류장을 지나자마자 '해동이네 해장국' 식당이 보여 육개장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잠시 쉬어간다.


                  ▲ 횡단보도 건너 이화아파트 앞에서 바라본 가야할 올레길


식사 후 정면으로 보이는 이화아파트를 향해 식당 앞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 길로 방향을 틀면 우측에 안내도가 있고 가야 할 정면으로 한도맨션 옆 '산지등대 500m'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Y자 갈림길에서 좌측의 도로를 버리고 우측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사거리.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되는 오르막 포장길인 '사라봉1길'을 따라 사라봉 입구로 향한다.


                  ▲ 사라봉입구 직전 사거리


고갯마루 넘어 편안하게 내려가면 좌측에 세워진 제주올레 제18코스 안내도를 지나 사거리(13:06)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약 100여m를 진행하면 사라봉 입구이다.



                  ▲ 사라봉 입구(사진 上)

                     사라봉으로 오르는 돌계단길 입구(사진 下)


13:08=>사라봉입구

      우측 길 건너에는 주차장이 위치해 있는 사라봉 입구에서 제주올레 제18코스 안내도와 올레18코스 건입동관내 안내동판이 있는 좌측 돌계단길을 따라 사라봉 정상으로 향한다.


                  ▲ 사라봉 정상으로 오르는 게단길


제주 사라봉 일제 동굴진지

*제주특별자치도 등록문화재 제306호(2006년12월04일 지정)

*수량/면적:124,006㎡ 동굴 7기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사라봉동길 74(건입동)

1945년 무렵 건립


                  ▲ 사라봉 일제 동굴진지

                  ▲ 사라봉 일제 동굴진지 입구(사진 左)와 내부(사진 右:출처 문화재청)


이 시설물은 일본군이 제주 북부 해안으로 상륙하는 연합군을 1차 저지하고, 제주 동비행장(진드르 비행장)과 제주 서비행장(정뜨르 비행장, 현재 제주국제공항)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것이다. 입구가 두 곳인 ‘ㄷ’자형과 ‘一’자형, 입구가 세 곳인 ‘Y’형 등 8곳의 동굴 진지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군 군사 시설의 하나로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제주도를 저항 기지로 삼았던 침략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 사라봉 정상오르는 계단길 끝의 쉼터(사진 上)

                     쉼터 지나 다소 완만해진 사라봉 정상 오름길(사진 下)


우측과 좌측으로 연이어 위치한 '사라봉 일제 동굴진지'를 차례로 지나 길고 가파른 오르막 돌계단길을 극복하고 쉼터(13:14)를 지나면 다소 완맨해진 오르막길을 만나 정상에 오르게 된다.


                  ▲ 사라봉 정성의 망양정


13:18~13:26=>사라봉 정상

      일몰이 아름다워 영주십경의 하나로 불리는 사라봉 정상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라봉공원' 표지석, 망양정 정자 그리고 곳곳에 체육시설과 벤치 등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 사라봉 정상의 표지석과 봉수대


망양정 아래에는 복원된 봉수대, 그 아래로는 일제 동굴진지가 보인다.

망양정에 오르면 제주항과 제주시가지, 가야할 화북동 일대, 그리고 한라산이 조망이 된다.


                  ▲ 사라봉 정상 망양정에서 바라본 전경들

                     (사진 上)제주항과 시가지

                     (사진 下)화북동 일대


♧ 사라봉 (사라오름)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사라봉동길 74

현재 확인되고 있는 368개의 오름 중 하나로서, 제주도 내에서도 구 제주(舊濟州)의 동쪽 해안에 있으며, 제주시민들의 휴식 공간과 체력 단련의 장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사라봉(沙羅峯, 紗羅峯)'의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며, 특히 '사라(沙羅, 紗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일설에는 사라봉의 한자명인 '사라(紗羅)'에 견주어 '해질 녘의 햇빛에 비친 산등성이가 마치 황색 비단을 덮은 듯하다'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또는 '사라'의 의미가 '동쪽' 내지는 '동쪽 땅'이라는 설, 그리고 '신성한 땅(神域)'이라는 의미의 '살'에서 나왔다는 설 등도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없다. 이와 같이 현시점에서는 '사라'의 뜻을 정확히 밝혀내는 것이 사라봉의 유래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 할 수 있다.

사라봉은 주 화산체 주변에 형성된 기생 화산(寄生火山)의 하나이며, 형성 원인으로 볼 때는 분석구(噴石丘)에 해당한다.


                   ▲ 화북동 해안가에서 뒤돌아본 사라봉과 별도봉 일대 


사라봉의 구성 물질은 크기가 작은 붉은 송이(scoria)인데, 화산체 주변에서 쉽게 그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라봉은 해발 148.2m로 비교적 낮은 화산체인데 인접하는 별도봉 보다는 시기적으로 나중에 형성된 기생 화산이다.

높이는 148.2m, 비고 98m, 둘레는 1,934m, 면적은 233,471㎡, 폭은 647m이며, 모양은 북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이다. 제주 시내에 위치하는 대표적인 오름으로서, 바로 옆으로 이어져 있는 별도봉[화북봉 또는 베리 오름]과 더불어 오랫동안 제주 시민들의 공원으로 널리 이용돼 왔다.

제주시에서는 정상까지 산책로를 조성함과 동시에 다양한 체력단련 시설들을 갖추어 시민들의 편리를 도모하고 있다. 특히, 사라봉 정상에는 망양정(望洋亭)이라는 정자를 세워 바다와 시내를 동시에 전망할 수 있도록 하였고, 또 조선시대 때 통신 수단으로 사용했던 봉수대(烽燧臺)가 복원돼 있다.

제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오름으로,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예부터 ‘사봉낙조’라고 하여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혔다. 사라봉 해송숲은 2010년‘제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시민의 숲] 부문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상 수상하였다.



                  ▲ 사라봉 산책로

                  ▲ 사라봉 산책로의 제주올레 거리 표시 푯말


봉수대 좌측의 편안한 사라봉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며 사라봉 정상을 뒤로 한다. 산책로에 설치된 '제주올레 18코스 현재지점 3km/총 길이 19.8km' 올레 푯말(13:13)을 지나 도로가 가로지르는 사라봉과 별도봉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 음수대가 있는 사라봉과 별도봉의 경계인 안부사거리

                  ▲ 별도봉 산책로 입구인 Y자 갈림길


13:34=>음수대

      도로 건너 들어서면 Y자 갈림길. 좌측으로 들어서면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안내문이 있고, 우측으로 넓은 공터가 자리하는데 이곳에서 영등굿이 열리는 모양이다. 건너 온 도로 우측 아래에는 칠머리당 영등굿 전수관이 자리를 하고 있다.


♧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국가무형문화재 제71호(1980년11월17일 지정)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本鄕堂)인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이다. 건입동은 제주도의 작은 어촌으로 주민들은 물고기와 조개를 잡거나 해녀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마을 수호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요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 두 부부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굿을 했다. 부부수호신과 함께 영등신을 맞이하여 소중히 위하는 굿을 했는데, 영등신은 외눈백이섬 또는 강남천자국에서 2월 1일에 제주도에 들어와서 어부와 해녀들에게 풍요를 주고 2월 15일에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내방신(來訪神)이다.

제주도, 남해, 영남지역의 설화나 전설로 전해지면서 바닷가에서 바다의 평온과 풍어 그리고 바다에서 많은 수확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음력 2월에 열리는 제사 의식으로 500년 이상을 이어져 왔다.



당굿은 매년 음력 2월 1일과 2월 14일 하는데, 영등신이 들어오는 음력 2월 1일에는 신을 소환하고, 풍어를 기원하며, 조상신에게 바치는 3장의 연극을 포함한 영등환영제를, 영등신을 떠나보내기 전날인 2월 14일에는 술과 밥, 떡을 대접하고, 용왕을 맞이하는 의식 등을 포함한 영등송별제를 지낸다. 주민들은 영등신이 환영제보다 성대한 송별제를 받고 이튿날인 15일에 구좌읍 우도(牛島)에서 다시 송별제를 받은 뒤 떠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환영제 때는 배의 주인이나 신앙심이 깊은 이들만 모여서 간소하게 굿을 하고, 송별제는 어업관계자와 해녀, 그밖의 신앙민들이 많이 모인 가운데 하루종일 큰굿을 한다..

굿날이 되면 건입동 주민 뿐 아니라 제주시내의 어부와 해녀들도 참가한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제사에 쓰일 음식을 차려서 당으로 가져온다. 매인심방이 징과 북, 설쇠 등의 악기 장단에 맞추어 노래와 춤으로 굿을 진행한다. 굿의 순서는 모든 신을 불러 굿에 참가한 집안의 행운을 비는 초감제, 본향당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을 불러 마을의 평안을 비는 본향듦, 용왕신과 영등신이 오시는 길을 닦아 맞이하고 어부와 해녀의 안전을 비는 요왕맞이, 마을전체의 액을 막는 도액막음, 해녀가 바다에서 잡은 것들의 씨를 다시 바다에 뿌리는 씨드림, 영등신을 배에 태워 본국으로 보내는 배방송, 처음 불러들인 모든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으로 끝이 난다.

제주 칠머리당영 등굿은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져 있는 굿이며,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의 굿이라는 점에서 그 특이성과 학술적 가치가 있다.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는 칠머리당굿전수관에서 굿을 이어오고 있다


                  ▲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안내판이 있는 별도봉 산책로 입구

                  ▲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굿판이 벌어지는 곳


            


                  ▲ 해안 절벽을 따라 '애기업은 돌'로 이어지는 풍광이 아름다운 별도봉 산책로


                  ▲ 올레길인 별도봉 산책로에서 내려다본 제주항 전경


제주항이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해안 절벽위로 조성된 올레길이 '애기업은 돌'까지 이어진다.


                  ▲ '애기업은 돌' 직전 뒤돌아본 사라봉

                  ▲ 애기업은


13:49=>애기업은 돌

     별도봉 입구까지 이어지는 편안한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가야할 화북동과 삼양동 일대가 조망이 된다.




                  ▲ 올레길인 별도봉 산책로

                  ▲ 올레길인 별도봉 산책로에서 조망된 화북동과 삼양동 일대 전경

                  ▲ 올레길인 별도봉 산책로 ╋자 갈림길

                  ▲ 올레길인 별도봉 산책로의 넓은 잔디광장 쉼터


╋자 사거리(13:58)에서 직진 방향 길은 나중에 좌측으로 우회하는 올레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별도봉 산책로를 이어가면 넓은 잔디광장 쉼터(14:00)가 나타나고, 잔디광장 좌측 라인을 따라 돌아 내려간다.

좌측으로는 제주항과 바다 풍경이, 정면으로는 가야할 화북동 일대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 올레길인 별도봉 산책로


또 다른 별도봉 산책로와 만나는 ┳자 삼거리(14:06)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면 포장도로와 만나는 별도봉 입구에 이르게 된다.


                  ▲ 또 다른 별도봉 입구로 가는 산책로와 만나는 ┳자 삼거리


♧ 별도봉(別刀峯 화북악,벨도 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위치한 오름.

사봉낙조로 유명한 사라봉 동쪽에 위치한 오름으로, 자살 바위·애기업은돌·고래굴 등 유명한 지명과 함께 산책로가 개설되어 있어 제주 시민이 많이 찾는 오름 가운데 하나로 바닷가 벼랑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서쪽의 사라봉과 이웃해 있으면서 북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남사면에 삼나무와 소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면적은 242,535㎡, 둘레는 2,236m, 높이는 136m에 달한다.

별도봉의 북사면은 벼랑으로, 이른바 자살 바위와 애기업은돌이라 부르는 괴암이 있으며, 바다와 맞닿은 곳에는 고래라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해식 동굴인 고래굴이 있다. 사라봉과 별도봉을 잇는 장수 산책로가 개설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 별도봉 입구

                  ▲ 별도봉 입구 지나 ╋자 사거리


14:08=>별도봉 입구/주차장

      좌측에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주차장을 지나 ╋자 사거리에서 우측의 '원두교'를 건너 좌측 '동제원길' 포장도로 옆 인도를 따르면 화북동 문화유적탐방 안내도가 설치된 ┫자 갈림길(14:14)에 이르게 되는데 직진 방향 10여m 떨어진 곳에 '화북비석거리'가 자리를 하고 있다.




                  ▲ 곤을동가는 ┫자 갈림길(사진 上)

                     갈림길 입구의 표지석(사진 中)

                     곤을동가는 올레길(사진 下)


화북비석거리를 방문 후 갈림길로 돌아와 좌측의 올레길을 이어가면 좌측에 곤을동 4·3유적지(14:23)가 보인다.

우측 하천 건너 마을은 불타버리고 잡풀이 무성한 집터에 돌담만 남아 황량함만 더 해주고 있다.


                  ▲ 곤을동 해안길


♧ 곤을동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4440



4.3 당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마을로, 집터만 남아 당시의 아픈 상처를 말해준다. 곤을동은 항상 물이 고요있는 땅이라는 뜻으로, 고려 충렬왕26년(1300)에 별도현에 속한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별도봉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곤을’에는 22가구, 화북천 두 지류의 가운데 있던 ‘가운뎃곤을’에는17가구, ‘밧곤을’에는 28가구가 있었다. 곤을동이 불에 탄 것은1949년1월4일과 5일. 국방경비대 제2연대1개 소대가 이틀에 걸쳐 곤을동 주민24명을 학살하고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 화북비석거리


곤을동으로 이어지는 해안 시멘트 포장길을 따르면 개인이 1961년부터 수집한 수석과 석분재로 조성한 공원으로 SBS '세상이 이런일이' 1021회(2018년12월13일 방영)에 소개된 '돌과 나무 그리고 오름올레'(14:26~14:30)를  지나 곤을동 표지석이 세워진 ┳자 도로삼거리(14:31~14:33)에 이르게 된다.



                  ▲ 곤을동의 '돌과 나무 그리고 오름올레' 수석과 석분재 공원

                  ▲ 곤을동 입구 삼거리

                  ▲ 곤을동의 제주올레 거리 푯말


좌측 도로변 인도를 따르면  '제주올레 18코스 현재지점 5km/총 길이 19.8km' 올레 푯말(14:44).

화북동 문화유적 안내판과 '시민화장실 ↑350m' 안내판이 설치된 남당마루 정자 쉼터(14:44)를 차례로 지나 화북포구에 당도를 한다.


                  ▲ 곤을동에서 화북포구로 이어지는 해안길

                  ▲ 화북포구 초입의 안내판들

                  ▲ 아름다운 화장실이 마련된 화북포구


14:46~14:56=>화북포구/아름다운 화장실

     화북동 마을길 사거리에서 좌측 방향으로 들어가면 마을 안 큰짓물(서창물 14:59).


                  ▲ 화북포구에 위치한 큰짓물


약 1분 후 마을 내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돌면 다시 삼거리. 좌측의 길 따라 해안가로 나간다.


                  ▲ 화북포구 서쪽에서 바라본 전경


'별도올레 쉼터'가 있는 화북포구로 화북옛길 '걸을 락' 안내판이 보인다.


                  ▲ 별도연대 가는 길 입구


장머들경로당이 있는 사거리(15:04)에서 좌측으로 돌아 화북포구 서쪽 끝에서 바닷가쪽으로 진행하여 '화북어촌계 잠수탈의장' 앞에서 비포장길로 들어 50여m를 진행하면 우측에 별도연대가 자리를 하고 있다.


♧ 별도연대(瞥刀煙臺)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23-9호(1996년07월18일 지정)

*소재지:제주특별자치 제주시 화북2동 1537번지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제주의 9개 방어진 가운데 하나인 화북진에 속한 별도연대는 제주시 화북동 동쪽 연대동산에 위치하고, 화북 대라고도 부른다. 이곳 연대에는 장군 6명과 봉수군 12명이 배치되어 교대로 24시간 지켰으며, 동쪽으로 조천 연대, 서쪽으로 수근 연대와 신호를 주고 받았다.

제주의 전형적인 연대 모양과 다르게 독특한 방호벽을 두르고 있다. 제주의 주요 관문인 화북포구가 가까이 있어 예부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도 연대에 오르면 화북마을 앞바다가 넓게 펼쳐진다.

많이 허물어져 받침돌만이 불규칙하게 남아있던 것을 2001년 2월 복원하였다.

 

♧ 별도환해장성 (別刀環海長城)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49-2호(1998년01월07일 지정)

*수량/면적:620m

*소재지:제주특별자치 제주시 화북1동 1533-4번지 외 11필지


                  ▲ 성 안에서 바라본 환해장성

                  ▲ 바닷가에서 바라본 환해장성


배를 타고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제주도에서는 해안선을 따라가며 성을 쌓았는데 이를 환해장성이라 한다. 현재 성벽이 남아있는 곳으로는 온평리, 행원리, 한동리, 동복리, 북촌리, 애월리, 고내리 등 14곳이 있다. 김상헌이 지은 『남사록』에는 환해장성을 일러 ‘탐라의 만리장성’이라 부르고 있다.

별도 환해장성은 화북동 환해장성 1지점에서 동남쪽으로 약 40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안벽과 바깥벽을 갖춘 2중성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돌을 이용하여 벽을 쌓았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길이는 약 640m 정도이다.


                  ▲ 별도연대 위에서 바라본 전경들

                     (사진 上)동쪽 화북포구 일대

                     (사진 下)서쪽 삼양동 일대


15:09~15:20=>별도연대/화북 환해장성

     제주올레 '화북별도연대' 안내판이 별도연대 앞에 설치되어 있다. 연대위에 올라 지나온 화북포구 일대와 가야할 삼양동 일대를 조망해 보고, 좌측 바닷가에 돌담처럼 쌓아 만든 화북 환해장성을 다녀온다.


                  ▲ 별도연대 지나 마을길따라

                  ▲ 주변에 밭들이 펼쳐지는 올레길

                  ▲ 화북동과 삼양동 경계 지점 길손의 쉼터 앞에 설치된 안내도


우측 마을길을 돌아나가 밭 돌담 사이의 포장길을 따르면 '길손의 쉼터' 간이매점과 그 앞에 세워둔 해안누리길 '삼양역사 올레길' 안내도가 길손을 반긴다.

15:27=>길손의 쉼터

     이곳부터 화북동 올레길이 끝이 나고, 삼양동 올레길로 접어 들게 된다.


                  ▲ 삼양동가는 올레길


2차선 포장도로(15:30)와 만나면 좌측으로 10여m를 진행하고 길 건너 우측 '벌랑1길' 골목길로 들어간다. 마을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벌랑길'인 해안도로와 만나는 ┳자 삼거리로 길 건너 벌랑 새각시물이 있는 삼양3동 포구이다.


                  ▲ 삼양3동 포구의 벌랑 새각시물


                  ▲ 삼양동 해안길


15:36~15:38=>삼양3동포구/벌랑 새각시물

     우측 해안도로를 따르면 상먕3동 버스정류장(15:42)을 지나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둠벵이교'를 건너 Y자 도로삼거리에서 좌측의 해안도로를 따르게 되는데 10여분 후에 삼양 검은모래해변 입구에 도착을 하게 된다.



                  ▲ 삼양 검은모래해변 입구

                  ▲ 삼양 검은모래해변 나무데크 산책로

                  ▲ 삼양 검은모래해수욕장


15:48=>삼양 검은모래해변 입구

     삼양감수탕 건물 우측으로 들어서면 삼양 검은모래해변을 따라 나무데크 산책로가 이어지고, 데크길 끝에서 우측 도로로 나와 인도를 따라 가면 삼양 검은모래해수욕장 끝 정자 쉼터가 있다.


                  ▲ 삼양 검은모래해변 서쪽 끝 정자 쉼터

                  ▲ 삼양 검은모래해변 정자 쉼터 옆 삼양동 연가 표지석(사진 左)과 정자 내 제주올레 기념스탬프함(사진 右)

                  ▲ 삼양 검은모래해변 서쪽 끝 정자 쉼터에서 바라본 삼양 검은모래해수욕장


15:58~16:03=>삼양 검은모래해수욕장 정자 쉼터

     쉼터 안쪽에는 제주올레 기념 스탬프함이, 좌측 해변가에는 '삼양동 연가'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 삼양 검은모래해변 끝 정자 쉼터에서 이어지는 산책로

                  ▲ 삼양1동 포구


                  ▲ 삼양1동 포구 옆 '샛다리물' 용천수 옆 올레길 입구


쉼터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다시 이어지는 해변 산책로를 따르면 삼양1동 작은 포구와 '샛다리물' 용천수(16:07~16:12)가 자리를 하고 있으며 '샛다리물' 표지석 옆에는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올레길은 우측 길 건너 '엉덕알물(삼양동)' 좌측 시멘트 포장길이다.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서면 좌측에 누렇게 익은 보리밭이 자리하고 있다.


                  ▲ 원당로11길

                  ▲ 원당로11길에서 2차선포장도로를 건너 원당요양원/원당봉 입구가는 길


포장도로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직진의 '원당로11길'을 따르면 2차선 포장도로(16:20)와 만나 횡단보도를 건너 50여m를 직진하고 다시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진행을 한다.


                  ▲ 원당봉 입구가는 길

                  ▲ 원당봉 입구의 어린이공원


원당요양원(16:23) 앞을 지나 ┣자 갈림길(16:24)에서 우측 게단길을 올라 좌측으로 돌아 오르면 22호 어린이공원의 농구장과 쉼터이다.

좌측 도로로 나가면 원당봉 입구 삼거리이다.


                  ▲ 원당봉 입구


16:26=>원당봉 입구

     입구에 원당사, 불탑사, 문강사 표지석, 보물 제1187호이며 제주 유일의 보물 석탑인 불탑사 오층석탑과 전국 유일의 삼첩 칠봉 원당봉 안내문이 있다.

길 건너 좌측 원당사,불탑사 방향으로 올라간다.

Y자 갈림길(16:31)에서 좌측 불탑사와 원당사 방향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대한불교 태고종 원당사, 좌측에 대한불교 조계종 불탑사가 마주 보고 자리를 잡고 있다.


                  ▲ 불탑사 직전 Y자 갈림길

                  ▲ 원당사


♧ 불탑사(佛塔寺)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 696[원당로16길 41]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 말사인 불탑사는 고려 시대 사찰 터인 원당사지에 1914년 무렵 중창되었다. 그 뒤 1923년에 안봉려관과 안도월이 3칸 규모의 초가 법당 1동을 새로 지으면서 본격적인 불법 설파에 나서게 되었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의하면 불탑사의 사찰 계출일은 1930년 3월 25일로 되어 있다. 당시 명칭은 대흥사 제주 포교소 불탑 출장소였다. 1934년 김중봉이 감원으로 취임하여 사찰 증축에 힘을 쏟은 결과 기와로 된 법당 4칸을 증설함으로써 안정된 기반 속에서 포교 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이후에도 정법을 일으켜 세워 과거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불탑사의 노력은 계속되었으나, 1948년 4·3사건이 일어났을 때 파옥되어 삼양리 마을로 소개(疏開)되었다.

불탑사는 1953년 이경호에 의해 재건되었다. 소개될 당시 승려들과 함께 피신했던 불상과 탱화들도 다시 불탑사로 되돌아왔다. 이때 되돌아온 불상은 목조 도금으로 된 높이 1척 5촌의 석가여래좌상과 관세음보살상, 대세지보살상 등이다.



후불탱화 신중·칠성·지장·현왕·독성·산신·감로탱 등은 1950년대 이후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듭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불탑사는 1991년 4월 12일, 오랜 역사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유물이 현존하고 있어 전통 사찰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제주 유일의 보물 석탑인 불탑사 오층석탑을 간직하고 있으며, 고려 시대 창건된 원당사의 맥을 잇는 전통 사찰로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 제주 불탑사 오층석탑(濟州 佛塔寺 五層石塔)

*보물 제1187호(1993년11월19일 지정)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당로16길 41(삼양일동)

원당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이다. 원당사는 조선 중기에 폐지되었고, 1950년대 이후 절터에 새로이 지어진 불탑사가 대신 자리잡고 있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두고,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탑 주변에는 돌담이 둘려져 있다.

기단은 뒷면을 뺀 세 면에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는데, 무늬의 바닥선이 꽃무늬처럼 솟아나도록 조각하였다. 탑신의 1층 몸돌 남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만들어 놓았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그리 크지 않지만, 네 귀퉁이에서 뚜렷하게 치켜 올려져 있다. 꼭대기에 올려진 머리장식은 아래의 돌과 그 재료가 달라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 불탑사 오층석탑 탑신부와 상륜부

                  ▲ 불탑사 오층석탑 1층 몸돌의 감실과 기단부


전체적인 탑의 모양이 조형성이 적고 무거워 보이는 점으로 보아 지방색이 강했던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6:34~16:47=>불탑사&원당사

     원당사 경내를 먼저 들어가 살펴보고, 맞은 편 불탑사 경내로 들어 우측 옛 원당사 절터에 자리한 불탑사 오층석탑을 둘러본다.


                  ▲ 불탑사 지나 ┫자 갈림길


                  ▲ 신촌가는 옛길 입구로 가는 수레길


불탑사 경내 탐방을 마치고 시멘트 포장길 따라 잠시 내려가면 ┫자 갈림길.

좌측 길로 들어 밭 사잇길 따라 해안가로 향하면 시멘트 포장길 사거리에 이르게 되는데 '신촌가는 옛길' 제주올레 제18코스 표지판이 있다.



                  ▲ 신촌가는 옛길(사진 上)

                     신촌가는 옛길 입구에 설치된 제주올레 표지판(사진 下)


16:52~16:53=>신촌가는 옛길

     삼양 사람들이 신촌마을 제사밥을 먹기위해 오갔던 옛길이다.



                  ▲ 신촌가는 옛길의 첫번째 ┫자 갈림길(사진 上)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올레길(사진 下)


직진의 포장길을 따르면 ┫자 갈림길(11:54). 좌측으로 내려가면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우측의 인도를 따라 2차선 포장도로와 함께 진행을 하다, 삼양동 표석과 '동부양식센터' 입간판이 설치된 곳에 이르니 진행할 2차선 도로 방향으로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오가는 차량들로 진행에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고의 위험까지 있다.


                  ▲ 도로 확장공사가 시작되는 구간


                  ▲ 현재지점 13km 올레 푯말이 있는 ┫자 갈림길(사진 上)

                     갈림길에 설치된 제주올레 푯말(사진 下)


┠자 삼거리(17:03) 지나  '제주올레 18코스 현재지점 13km/총 길이 19.8km' 올레 푯말이 보이는 ┫자 갈림길(17:06)에서 위험한 공사중인 도로에서 벗어나 좌측 비포장 수레길로 방향을 바꾼다.


                  ▲ 수레길인 올레길을 따라서

                  ▲ 수레길에서 만난 제주올레 화장실 안내푯말


'제주올레 18코스 화장실 ↑950m' 안내푯말(17:12)이 보이는 계속되는 비포장 수레길을 따르면 해안올레길(17:15)로 연결이 된다.


                  ▲ 해안올레길에서 뒤돌아본 전경1

                  ▲ 진행해야할 해안올레길1

                  ▲ 진행해야할 해안올레길2

                  ▲ 해안올레길에서 뒤돌아본 전경2


                  ▲ 해안올레길을 진행하며 지척에서 조망된 닭모루 정자 쉼터


안내푯말의 화장실은 닭모루 지나 언덕 쉼터에 있는 올레화장실을 의미한다. 바닷가를 따라 조성된 올레길을 약 8~9분 정도 이어나가면 시멘트 포장도로(17:24)가 나타나고, 1분 후 ┳자 삼거리(17:25)에 이르게 되는데 좌측 올레길 입구에 '닭모루(닭머르)' 제주올레 표지판이 있다.

좌측 길 따라 잠시 오르면 닭모루 정자 쉼터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 닭모루 정자 쉼터가는 길 입구                   

                  ▲ 닭모루 안내 제주올레 표지판

                 ▲ 닭모루 정자 쉼터 오르는 길

                  ▲ 닭모루                 

                  ▲ 닭모루 정자 쉼터에서 바라본 지나 온 해안길


                  ▲ 닭모루 정자 쉼터에서 바라본 가야할 올레화장실이 설치된 쉼터


                  ▲ 닭모루 정자 쉼터



17:29=>닭모루

     정자 아래 바닷가에 툭 튀어나온 바위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바위 모습이 닭이 흙을 걷어내고 들어 앉아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데크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고 언덕 위 도로변에 올레화장실이 설치된 쉼터에 오른다.


                  ▲ 올레화장실가는 길에 뒤돌아본 전경

                  ▲ 올레화장실있는 쉼터


17:33~17:35=>올레화장실&전망쉼터

     화장실 우측 옆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면 해안도로로 연결되는 올레길.


                  ▲ 올레화장실있는 쉼터에서 신촌포구로 내려가는 길


마을 안 '신북촌3길'을 따라가면 '제주올레 18코스 현재지점 15km/총 길이 19.8km' 올레 푯말이 있는 마을내 삼거리(17:43). 좌측 길따라 바닷가로 나가면 신촌포구가 나타난다.


                  ▲ 신촌포구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마을안 제주올레 거리표시 푯말

                  ▲ 신촌포구


17:44~17:46=>신촌포구

     포구가 끝나는 곳에 정자 쉼터(17:51).

동동엉창(장)물(17:54), '신촌9길' 마을길, '신촌11길' 마을길을 차례로 따르면 ┳자 마을내 삼거리(17:57),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도 '신촌11길'이 계속 이어진다.


                  ▲ 신촌포구에서 마을길을 빠져나오면 만나는 2차선 포장도로


2차선 포장도로(18:01)와 만나면 좌측 포장길 입구에 '대섬' 제주올레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신북로'로 들어서면 비포장길이 나타나고, 직진의 야자수길과 우측의 넓은 공터가 있는 갈림길에 이르면 올레길은 우측 공터 방향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 대섬가는 길 입구의 제주올레 표지판

                  ▲ 대섬입구 제주올레 갈림길


♧ 대섬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111

조천마을과 신촌마을의 경계에 위치한 섬. 점성이 낮아 넓은 지역으로 퍼지면서 흘러내린 용암류(파호이호이용암류)가 표면만 살짝 굳어져 평평하게(투물러스) 만들어진 지형이 특징이다. 제주도 내에서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형이다.


                  ▲ 대섬가는 야자수길

                  ▲ 대섬의 꽃밭

                  ▲ 대섬에서 바라본 신촌포구 일대 전경

                  ▲ 대섬 쉼터


그러나 직진의 야자수 길을 따라 대섬 방향으로 진행하였다가 되돌아나와 올레길을 따르기로 한다.

야자수길 좌,우 양쪽에는 꽃밭들이 펼쳐지는데 좌측 꽃밭에는 두 쌍의 예비 신혼부부가 웨딩촬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대섬 끝 야자수밭에는 캠핑족들이 설치한 몇 동의 텐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 대섬 입구 우측 공터의 올레길 입구


18:14=>대섬입구/넓은 공터

     넓은 공터로 되돌아 나와 우측 공터 끝에서 해안가 시멘트 제방길을 따르면 누가 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곳곳에 세워진 여러 기의 돌탑들이 눈에 들어온다.


                  ▲ 조천리로 이어지는 해안 제방길

                  ▲ 바닷가 돌탑들


마을길(18:20)로 들어 마을길을 따르면 조천리 용천수 탐방길 이정표(←절간물가는길 20m)와 절간물 안내판(18:24)을 만나게 된다. 

좌측 바닷가로 나가 절간물을 확인해 보니 용천수가 흘러 나오고 있다.



                  ▲ 바닷가 용천수인 절간물


'조천1길' 마을길을 진행하면 '수암정' 정자 쉼터(18:27)와 체육시설이 설치된 ┳자 갈림길에 이르게 되고,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수암정알물'이 자리를 하고 있다.


                  ▲ 수암정과 수암정알물


계속 되는 마을길을 이어가면 좌측 해안가에 절간물(용천수)이 있으며 각각의 안내문과 이정표가 설치된 조천리 용천수 탐방길이 올레길과 함께 한다.


                  ▲ 조천리 용천수 탐방길의 이정표들

                  ▲ 마을 돌담에 설치된 제주올레 이정표


┣자 갈림길(18:320에서 좌측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정자 쉼터(18:34)를 지나 넓은 마을 안 주차장이 나타나고, 주차장 지나 입구에 조천리 용천수 탐방길 이정표(←개낭개남탕 가는 길 300m)가 있는 ╋자 갈림길.

좌측 길을 따라 돌담의 좁은 골목길을 통과한다.

또 다시 마을 안 주차장에서 직진의 '조천7길' 마을길을 따르면 개낭개남탕과 도릿물 입구, 양진사 절 앞을 차례로 지나게 연북정 앞에 다다르게 된다.


♧ 연북정(戀北亭)

*제주특별자치도유형문화재 제3호(1971년08월26일 지정)

*소재지:제주특별자치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690번지

바닷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로 조선 선조 23년(1590)에 조천관 건물을 새로 지은 후 쌍벽정이라 하였다가 선조 32년(1599)에 건물을 보수하고 이름을 연북정으로 고쳤다. ‘연북’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제주도로 유배 온 사람들이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쪽에 계시는 임금을 사모한다는 충정의 뜻을 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게 축대를 쌓고 다진 기단 위에 세웠다. 축대의 북쪽으로 둘러싼 타원형 성곽의 모양과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망을 보기 위한 망대의 용도로 지은 것이라 추측한다. 기둥의 배열과 건축재료의 배열방법은 모두 제주도 주택과 비슷하다.



「조천진터」

조선시대 조천진 성터이다.

고려시대부터 제주도 의주교통항으로 성이 축조되어 있었으며, 고려 공민왕23년(1374) 조천관이 창건되었다.

조선시대 선조23년(1590) 목사 이옥이 성을 중수하여 둘레 428척, 높이 9척에 성문 하나의 석성을 쌓았으며 초루, 객사, 청사, 군기고, 포사 등을 두었다. 조방장 1인, 치종 2인, 성정군 92인, 유직군 103인, 서기 12인이 있었으며, 사후선 1척이 있었다.


「금당포터」

고대 전설에 나오는 금당포터.

기원전 3세기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해오도록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선단이 중국을 떠너 처음 도착한 곳이 이 포구로 알려져 있다. 서불은 이곳에서 천기를 보고 조천이라는 글을 새겨놓았다고 하며 그 바위는 고려시대 조천관 건립공사 때 매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연북정


18:42~18:48=>연북정/조천진터, 금당포터

     연북정 앞에는 조천포구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 연북정은 조선시대 성이었던 조천진터이며 고대 진시황 전설이 깃들어 있는 금당포터이기도 하다.


                  ▲ 연북정 앞 조천포구

                  ▲ 제주올레 제18코스 마지막 거리표시 옛 푯말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조천포구의 부두 방파재를 한바퀴 돌며 해안길을 따르면 우측으로 펜션 바다정원'이 보이고 '제주올레 18코스 현재지점 17km/총 길이 18km' 올레 푯말(18:56)이 나타난다. 이 올레 푯말은 지나오며 대하였던 제주올레 푯말의 총 길이 19.8km에서 18km로 줄어 표기된 것으로 보아 제주올레 제18코스 개장 당시에 설치하였던 푯말을 교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푯말의 총 거리 표시에 상관없이 현재지점이 17km이므로 종착지가 가까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 조천포구에서 조천연대가는 오솔길 입구

                  ▲ 조천포구에서 조천연대가는 오솔길 1

                  ▲ 조천포구에서 조천연대가는 오솔길 2

                  ▲ 조천포구에서 조천연대가는 오솔길 주변에 핀 유채꽃


오솔길을 빠져나오면 2차선 포장도로 삼거리에 이르게 되는데 길 건너 언덕에 조천연대가 자리를 하고 있다.


♧ 조천연대(朝天煙臺)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23-5호(1976년09월09일 지정)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980번지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조천 연대는 동쪽으로 왜포연대, 서쪽으로 별도 연대와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조천진 소속의 별장 6명과 봉군 12명이 배치되어 지켰으며, 현재 연대의 모습은 1975년에 수리한 것이다.



                  ▲ 조천연대 앞 도로삼거리

 

19:00~19:03=>조천연대

     우측의 2차선 포장도로 변 자전거길을 따라 진행하니 11시 방향으로 조천 만세동산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을 한다.



                  ▲ 조천포구에서 조천연대가는 길


'현지사 주차장 ←400m' 입간판이 있는 ┫자 갈림길(19:11)을 지나 약 3분 후 제주올레 제19코스 표지석과 기념 스탬프함이 설치된 조천 만세동산 주차장에 도착하며 제주올레 제18코스 탐방은 끝이 났다.

참고로 제주올레제19코스 안내 표지석을 살펴보면

총 거리 19.1km에 난이도는 '중'이며 예상 소요시간은 제18코스와 비슷한 6~8시간 정도 소요가 된다.

각 구간별 거리를 살펴보면

조천만세동산-(3.4km)-신흥백사장-(6km)-함덕서우봉해변-(8.8km)-너븐숭이4·3기념관-(9.7km)-북촌포구 등명대-(13.3km)-동복리 마을운동장-(16.1km)-김녕농로-(19.1km)-김년서포구 이다.


                  ▲ 조천 만세동산 주차장의 제주올레 제19코스 표지석과 기념 스탬프함


19:11~19:32=>조천 만세동산

     일제강점기 제주지역 3·1 만세운동의 발상지인 이곳은 기념탑이 세워져 있는 등 성역화공원으로 조성되어져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여 성역화공원을 탐방하는 것은 다음 제주올레 제19코스 탐방 때로 보류를 하고 '조첮만세동산' 버스정류장에서 제주 시내로 운행하는 버스에 몸을 실으며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 조천 만세동산 입구의 성역화공원 안내표석

                  ▲ 조천 만세동산 앞 버스정류장


♧ 조천 만세동산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303

1919년 3월 21일, 신천, 조천, 함덕에서 온 사람들이 미밋동산(만세동산)에 모였다.




서울 휘문고등학교에 다니다 3.1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고향에 돌아온 고등학생 김장환이 동지들과 함께 만세운동 을 준비했던 것이다.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꽂고 김시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며 조천 비석거리까지 행진하였다. 주동자들은 모두 연행되었다. 이튿날 조천장터에서 연행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시 만세운동이 벌어졌고,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연행 되었다. 나흘 동안 계속된 만세운동에서 29명이 기소되고 그 가운데 23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 뒤로 미밋동산은 만세동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조천만세동산에는 항일운동기념관과 애국선열추모탑, 독립유공자비 등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