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경북8경 내연산에 자리한 신라 천년고찰! 보경사(寶鏡寺)

왕마구리 2019. 7. 11. 20:41

◀ 경북8경 내연산에 자리한 신라 천년고찰! 보경사(寶鏡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 보경사 전경

 

경상북도 포항시 탐방은 내연산 12폭포 계곡산행이 포함되어 1박2일이라는 짧은 여정으로는 포항시 권역의 관광지들 전체를 탐방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이번 포항시 탐방은 이동일 첫째날 국보 264호인 포항 냉수리 신라비와 명승 제81호로 지정된 포항 용계정과 덕동숲이 위치한 덕동문화마을 탐방, 둘째날 내연산에 자리한 보경사와 1999년 8월 8일 실시하였던 내연산 삼지봉과 향로봉을 잇는 능선 종주와 12폭포 계곡 탐방 이후 약 20년만에 다시 찾아 내연산 12폭포 계곡은 시간상 내연산 산행은 하지 않고 12폭포 중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1폭 상생폭포에서 제7폭 연산폭포까지의 계곡 트레킹에 제8폭포 은폭포까지만 추가하여 실시하는 등 포항시 북부 지역의 명소들만 찾아서 이루어졌다.

다음 포항시 탐방에서는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1박2일간의 일정으로 명소들을 찾을 계획이다.


보경사는 내연산 12폭포 탐방과 내연산 산행의 들머리이며, 날머리이다. 이번에 실시된 보경사 탐방 또한 내연산 12폭포(실제는 8폭포) 탐방과 함께 이루어졌으며, 내연산 12폭포 탐방 직전 약 1시간여에 걸쳐 실시가 되었다.

보경사에서 보유, 관리되고있는 문화재 탐방이 주 목적이었고, 이곳에서도 현존하는 보경사의 문화재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한다.



                   ▲ 보경사 불전들 전경


【 일 정 표 】2018년 10월 01일(월)-10월 02일(화) 1박2일

                             ◈ 첫째날(10/01) : 포항 냉수리 신라비-덕동문화마을

                             ◈ 둘째날(10/02) : 보경사-내연산 12폭포


포항 북부지역 탐방에서의 명소 소개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경북8경 내연산에 자리한 신라 천년고찰! 보경사'  일반산행 '영남&호남권'에 '경북8경 중 3경! 내연산 12폭포', 그리고 내가 찾은 관광명소 '영남권'에 '신라시대 재산 분배증명서! 포항 냉수리 신라비'와 '국가지정 문화마을&환경친화마을! 덕동문화마을' 등 총 4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한다.

 

- 경북8경의 하나내연산 청하골 12폭포

- 경북8경 내연산에 자리한 신라 천년고찰보경사(寶鏡寺)

- 신라시대 재산 분배증명서! 포항 냉수리 신라비(浦項 冷水里 新羅碑)

- 국가지정 문화마을 & 환경친화마을! 포항 덕동문화마을


                  ▲ 보경사 해탈문에서 보경사 경내가는 길


보경사 문화재 탐방은 내연산 12폭포 중 제8폭까지 트레킹을 하기 전 약 1시간여에 걸쳐 실시가 되었으며, 이곳에서는 보경사 경내에 남아있는 국가지정문화재와 도 지정 문화재, 그리고 현존하는 일부 전각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 포항 보경사(寶鏡寺) 소개 】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중산리 622)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중산리) 내연산(內延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02년(진평왕 25)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 보경사 입구인 매표소


지명은 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 내연산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金堂)을 건립한 뒤 보경사라 하였다. 723년(성덕왕 22)에는 각인(覺仁)과 문원(文遠)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 하고 시주를 얻어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745년(경덕왕 4) 철민(哲敏)이 중창하였고, 1214년(고종 1) 주지 승형(承逈:圓眞國師)이 승방 4동과 정문 등을 중수하고 종·경(磬)·법고(法鼓) 등도 완비하였다. 1677년(숙종 3)에는 도인(道仁) 등이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1695년 가을에 준공하였으며, 삼존불상과 영산전(靈山殿)의 후불탱화도 조성하였다.

그때 초한(草閑)이 시주를 얻어 금당을 중건하였고 관음전은 도의(道儀)가, 명부전은 석일(釋一)이, 응향전(凝香殿)은 국헌(國軒)이, 향적전(香積殿)과 국사전(國師殿)은 학열(學悅)이, 열반당은 신특(信特)이, 국사전 정문과 사천왕각 및 식당은 비구니 총지(摠持)와 신원(信遠)이, 팔상전은 지총(志聰)이, 종각은 영원(靈遠)이 각기 분담하여 중건, 중수하였다.

또한, 그와 동시에 도인은 청련암(靑蓮庵)을 창건하고 탁근(卓根)은 서운암(瑞雲庵)을 창건하였다. 1725년(영조 1) 성희(性熙)와 관신(寬信)이 명부전을 이건하고 단청하였으며, 성희는 괘불을 중수하였는데, 이때의 사세가 가장 컸다고 전한다.


                ▲ 매표소 입구의 일주문(사진 左)과 매표소 지나 해탈문(사진 右)


1916년부터 1922년까지는 장욱(壯旭)이 많은 사재를 내어 전당(殿堂)과 탑을 중수하였고 홍수로 파손된 제방을 쌓았으며, 교량을 시설하고 전답을 사찰에 헌납하였다. 1917년 10월에는 태인(泰仁)이 명부전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대웅전과 상지전(上持殿)을 중수하였으며, 1975년 이후 약간의 단청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신 대적광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사자를 탄 문수와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16나한 등을 배열한 영산전, 석가모니의 팔상시현(八相示顯)을 나타낸 팔상전이 중심 당우로 자리잡고 있다.

이 밖에도 명부전·산신각·원진각(圓眞閣)·일로향각(一爐香閣)·동로각(東爐閣)·누각·수월당(水月堂)·천왕문·일주문·원진국사비각·설산당비각(雪山堂碑閣)·창고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52호로 지정된 보경사 원진국사비와 보물 제430호로 지정된 보경사 승탑, 보물 제1609호(2009년02월24일 지정) 보경사 괘불탱(寶鏡寺 掛佛幀)과 괘불함, 보물 제1868호(2015년03월30일 지정) 보경사 적광전(寶鏡寺 寂光殿), 그리고 보물 제1996호(2018년08월21일 지정) 보경사 비로자나불도(寶鏡寺 毘盧遮那佛圖)이 있으며, 조선시대 숙종이 이곳의 12폭포를 유람하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시를 지어 남겼다는 어필의 각판이 있다. 그 밖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된 오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1호(2013년04월08일 지정) 보경사 대웅전(寶鏡寺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4호(2018년02월22일 지정) 보경사 적광전 소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寶鏡寺 寂光殿 塑造毘盧遮那三尊佛坐像), 경상북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다.


                ▲ 보경사에 세워진 영화 '남부군'(제4폭 잠룡폭포)과 KBS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제7폭 연산폭포) 촬영지 표지석


현존하는 산내암자로는 동쪽 50m 지점의 청련암과 서쪽 100여m 지점에 위치한 서운암이 잇으며 서운암에는 보물 제11-1호(2000년02월15일 지정)로 지정된 사인비구 제작 동종-보경사 서운암 동종(思印比丘 製作 銅鍾-寶鏡寺 瑞雲庵 銅鍾),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7호(2005년11월07일 지정)로 지정된 보경사 서운암 후불탱화 및 신중탱화(寶鏡寺 瑞雲庵 後佛幀畵 및 神衆幀畵), 그리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8호(2013년07월11일 지정)로 지정된 보경사 서운암 부도(14기)군(寶鏡寺 瑞雲庵 浮屠群)이 있다.

보경사 창건과 동시에 건립되었다는 문수암(文殊庵)과 보현암(普賢庵)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이 절의 주변에는 상태사(常泰寺)·성도암(成道庵)·계조암(繼祖庵)·내원암(內院庵)·대비암(大悲庵) 등의 유지가 있다.



『  보경사의 국가지정문화재 』


♧ ♧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1963년01월21일 지정)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 원진국사비 비신과 비좌 복련대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 원진국사비 귀부

                ▲ 원진국사비 비좌 후면

                ▲ 원진국사비 비좌 측면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 보경사 경내 뒷편 서쪽의 보경사 승탑(원진국사 부도탑)가는 산길 입구

                ▲ 보경사 승탑가는 산길

                ▲ 산 중턱에 위치한 보경사 승탑


♧ ♧ 포항 보경사 승탑(浦項 寶鏡寺 僧塔)

*보물 제430호(1965년09월0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33, 보경사(중산리)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으로,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원진국사 신승형(申承逈)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 51세에 입적하자 고종이 그를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보경사 승탑 기단부


기단부(基壇部)의 아래·중간·윗받침돌 가운데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아래받침돌은 맨윗단에만 연꽃조각이 둘러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겨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 보경사 승탑 탑신


탑신(塔身)은 몸돌이 매우 높아 마치 돌기둥처럼 보이며, 한 면에만 자물쇠모양을 새겨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모서리에서 뻗어나가는 곡선의 끝마다 꽃장식이 조그맣게 솟아있다. 처마의 곡선은 양쪽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고, 추녀는 두터워 보인다.


                ▲ 보경사 승탑 지붕돌인 옥개석과 상륜부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으로는 활짝 핀 연꽃받침 위에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을 올리고, 연꽃조각이 새겨진 돌을 놓은 다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서 마무리 하였는데 보존이 잘 되어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이며 너비도 좁아 안정감이 적다.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한 감이 들고 밋밋하다.

 

♧ ♧ 포항 보경사 괘불탱(浦項 寶鏡寺 掛佛幀)

*보물 제1609호(2009년02월24일 지정)

*수량:괘불탱1점, 괘불함1점

보경사 괘불탱은 1708년(숙종 34)에 조성되었지만, 17년 뒤인 1725년(영조 원년)에 중수하였다. 화원은 의균(義均)·석민(碩敏)·성익(性益)·지붕(智朋)·체환(體環)·쾌민(快敏)·삼학(三學)인데, 모두 대구 팔공산 동화사와 파계사의 불화 조성에 참여한 화사로 주로 경상도에서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 괘불탱은 10m에 이르는 대형의 화면에 연꽃줄기를 든 보살형의 여래만을 단독으로 그렸는데, 의균의 작품 중에서 최대의 역작이다. 대형의 화폭에 단독의 존상만을 그린 구성은 매우 단순하지만 홍색과 녹색, 청색계열의 색만을 이용해 조화와 대비를 훌륭하게 처리하였고, 여래가 입고 있는 가사의 조(條)에 금 바탕에 녹색으로 문양을 내는 장식이나 끝단의 세부 문양 등 세부장식에도 소홀함이 없다.

보경사 괘불탱같이 5여래가 표현된 화려한 보관과 연꽃을 들고 있는 괘불도상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경상도지역에서 유행한 괘불형식으로 괘불 도상의 계승을 연구하는 데 의미 있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 ♧ 포항 보경사 적광전(浦項 寶鏡寺 寂光殿)

*보물 제1868호(2015년03월30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보경로 523 (송라면)

보경사는 신라 25년(602)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보경사에 위치한 적광전은 사명대사가 1588년에 지은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鏡寺金堂塔記)> 에 의하면 603년(신라 진평왕 25)에 창건된 뒤 1214년(고려 고종 원년)에 원진국사가 중창하고, 1677년(숙종 3)에 삼창한 불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한반도의 불교전래 역사를 볼 때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평면에 다포 맞배지붕이며,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주초는 주좌와 고맥이가 뚜렷한 통일신라기 초석이고 고맥이도 돌로 만든 전형적 통일신라기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기법들이며 전면에 심방석 부재도 남아있어 신라시대 고부재(古部材)을 사용하여 중창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면 중심칸에는 사자를 조각한 신방목이 결구되어 있는데 보통 둥글게 만들어 태극문양 등을 새기는데 비해 사자상의 조각이 정교하고 국내의 사례가 적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 보경사 적광전 현판과 정면 공포

                ▲ 보경사 적광전 귀공포


공포는 다포계열로 정면과 배면은 주간포를 2구씩, 양측면은 1구씩 설치하였다. 일반적으로 맞배지붕 다포건축물에서 측면에 포작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나 적광전은 다소 예외적이다. 내외 출목 수가 같은 특징이 있으며 공포의 세부 형식에서 17세기기 말 다포계 공포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다포계인데도 우물반자를 설치하지 않고 가구를 그대로 노출시킨 연등천장으로 처리한 것도 또한 특징적이다.


                ▲ 보경사 적광전 내에 모셔진 비로자나불도(보물 제1996호)와 소조 비로자나 삼존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4호)


위 내용으로 살펴 볼 때 적광전은 구조적으로나 의장적으로 매우 독특할 뿐만 아니라 조선중기의 특징적인 건축수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 ♧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浦項 寶鏡寺 毘盧遮那佛圖)

*보물 제1996호(2018년08월21일 지정)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는 1742년(영조 18) 뇌현(雷現), 밀기(密機), 석잠(碩岑) 등 조선 후기 경북지역에서 활동한 세 명의 불화승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린 작품이다.

높이와 좌우 폭 모두 3미터에 가까운 대형 삼베 바탕에 붉은 안료를 칠한 뒤 인물과 의복 등을 백색 안료로 그린 선묘불화(線描佛畫)이다. 비단 바탕에 금니(金泥)로 그린 금니선묘불화는 고려 후기에 등장했으나, 삼베에 그린 선묘불화는 조선 16세기에 이르러서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왕실의 금선묘(金線描) 불화에 비해 민중불화의 일종인 삼베 바탕 선묘불화는 18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제작되었으며, 그중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가 대표적 작품이다.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문수․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 권속(眷屬)들이 둥글게 에워싼 원형 구도로서, 이렇듯 비로자나불을 주존불(主尊佛)로 배치한 불화 중에는 이 작품이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한다. 붉은 바탕과 백색의 선묘, 섬세한 필선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장식 문양 등이 어우러져 시각적인 오묘함과 조화로움이 돋보이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뚜렷하여 조선 후기 비로자나불 도상 및 선묘불화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 적광전 앞 오층석탑


『 경상북도 지정 문화재들 』

 

♧ ♧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浦項 寶鏡寺 五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1985년10월15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중산리)



보경사 경내에 적광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 보경사 오층석탑 탑신과 지붕돌

                ▲ 보경사 오층석탑 기단부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 보경사 오층석탑 몸돌의 글씨(사진 左)와 자물쇠 문양 장식(사진 右)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부르는데,『보경사금당탑기(寶鏡寺金堂塔記)』에는, 도인(道人), 각인(覺人), 문원(文遠)이 고려 현종 14년(1023) 3월에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 ♧ 포항 보경사 대웅전(浦項寶鏡寺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1호(2013년04월08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보경로 523 (송라면, 보경사)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3)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법사가 세운 절이다.

이 절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은 지은 시기를 알 수 없고 다만 조선 숙종 3년(1677)에 중건한 것으로 그 후 몇 차례 중수가 더 있었다. 현재의 건물에는 1932년의 대대적인 중수에 의한 양식적 특징이 주로 남아 있다.


                ▲ 보경사 대웅전 하부의 나무조각 동물상


이 건물은 조선후기 목조불전으로 정면 3칸·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이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태이다. 가운데칸 뒷부분에는 불단을 마련하여 삼존불상을 모셔 놓았다.


♧ ♧ 포항 보경사 적광전 소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浦項 寶鏡寺 寂光殿 塑造毘盧遮那三尊佛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4호(2018년02월22일 지정)

*수량:3구



이 불상은 흙으로 성형되어 여러 겹의 천으로 싸인 후 도금된 삼존의 불상이다. 좌상의 비로자나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입상의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시립한 비로자나삼본상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희소성이 있다.

비록, 여러 번의 중수와 보수 시에 두껍게 도포된 도금, 카슈칠 등으로 원상이 가려져 있고 정확한 고증이 따르지 않은 도금과 채색으로 인해 훼손된 부분이 있지만, 신라 통일기의 불상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반기의 작풍을 보여주며 우아한 조형성을 갖고 있어 학술적,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 ♧ 포항 보경사 탱자나무(포항 寶鏡寺 탱자나무)

*경상북도기념물 제11호(1974년12월10일 지정)

*수량:1주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중산리)

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보경사의 탱자나무는 보경사 경내 천왕문 우측 동편 종무소를 사이에 두고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다. 대웅전 쪽의 나무는 지상 160㎝ 위치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원형으로 왕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맞은편의 나무는 지상 40㎝ 위치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자라고 있다.

그러나 경내 2그루의 탱자나무 중 태풍 ‘나비’로 고사한 동쪽 탱자나무는 문화재적 가치를 상실하였으므로 2006.01.08. 기념물에서 해제하고 서쪽의 탱자나무의 종자로써 후계목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나무는 탱자나무로는 보기 드물게 오래된 것으로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 보경사의 전각들 』


                ▲ 범종각과 오층석탑


♧ 팔상전(八相殿)



석가모니의 생애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그것을 팔폭 화면에 그린 팔상탱화를 모신 전각이다.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모시고 양쪽 협시불을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을 모시고 양 벽에 각 네 폭씩 팔상탱화를 배열하였다.

이 전각은 조선 숙종3년(1677) 지총 스님이 화주하여 세웠다.


♧ 산령각(山靈閣)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다. 그런 산신을 모시는 산령각은 한국 사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이 산령각은 내연산 산신과 시방법계의 산신을 봉안한 전각으로 원래 북쪽 100m 산중에 있던 것을 1914년 현 장소로 이건하였다.


♧ 원진각(圓眞閣)



원진각은 원진국사의 진영과 상을 모시고 그밖에 사명대사 등 당사에서 수도와 교화를 하시다가 입적하신 대덕 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전각이다.

이 전각은 조선 숙종3년(1677) 큰 붛사 때 학열 스님이 화주하여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