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 남장사(尙州 南長寺) ▶
장백사(長栢寺)란 이름으로 창건된 신라 천년고찰!
노악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
2014년 2월20일~21일 1박2일간 '경북 북부 나드리 : 역사와 자연의 소리를 찾아서...'란 테마로 상주시, 안동시, 그리고 예천군의 명소들을 일부 탐방을 실시하였었다. 당시 상주시에서는 '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명소! 경천대'와 ''사벌국을 건국한 왕의 릉! 진사벌왕릉',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 등 3곳의 명소만을 탐방하여, 이번에 다시 찾아 1박2일간 '상주의 역사와 자연의 소리를 찾아서...' 탐방을 실시하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철 탐방이라 피서를 대신하여 첫째날은 상주시 북부지역에 인접해 있고 각각의 특색을 지니고 잇는 3곳의 폭포를 찾아 연속적으로 탐방을 실시하고, 두 곳의 국가지정문화재 탐방을 이어 갔었다.
둘째날은 2019년 7월6일 제43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 목록으로 등제된 한국의 서원 9곳(경북 영주 소수서원, 경북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작하여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2호로 지정된 상주 옥동서원, 조선시대 주거 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상주 양진당(방문 당시 보수공사중), 퇴계 이황이 태어난 곳인 우복 종택, 그리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노악산 아래 자리한 천년 고찰 남장사와 남장사 게곡을 탐방하였다.
【 일 정 표 】2019년 7월 29일(월)-7월 30일(화) 1박2일
◈ 첫째날(7/29) : 옥양폭포-오송폭포-장각폭포-상오리 칠층석탑-용화사(중촌리 석조여래좌상 및 석조여래입상)
◈ 둘째날(7/30) : 옥동서원-상주 양진당-남장사&남장사계곡-우복종택
상주지역 재탐방에서의 명소 소개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노악산 자락에 자리한 신라 천년고찰! 남장사', '영남권'에 '경북 상주의 3대 폭포 탐방! 옥양폭포, 오송폭포, 그리고 장각폭포', '장중하며 전체적인 균형미가 뛰어난 고려 전기의 석탑!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 '통일신라 후기의 석불!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및 좌상', '조선시대 주거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물! 상주 양진당' 그리고 '퇴계 이황이 태어난 곳! 상주 우복 종택', 그리고 '한국의 서원'에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은 황희를 배향한 유일한 서원! 상주 옥동서원' 등 총 7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한다.
- 경북 상주의 3대 폭포 탐방! 옥양폭포, 오송폭포, 그리고 장각폭포
- 노악산 자락에 자리한 신라 천년사찰! 남장사(南長寺)
- 장중하며 전체적인 균형미가 뛰어난 고려 전기의 석탑!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尙州 上吾里 七層石塔)
- 통일신라 후기의 석불!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및 좌상(尙州 曾村里 石造如來立像 및 坐像)
- 조선시대 주거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물! 상주 양진당(尙州 養眞堂)
- 퇴계 이황이 태어난 곳! 상주 우복 종택(尙州 愚伏 宗宅)
-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은 황희를 배향한 유일한 서원! 상주 옥동서원 (尙州 玉洞書院)
【 남장사(南長寺) 연혁 】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502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노악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832년(흥덕왕 7)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柏寺)라 하였으며, 1186년(명종 16) 각원(覺圓)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그 뒤 1203년(신종 6) 금당(金堂: 법당)을 신축하였고, 1473년(성종 4)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635년(인조 13) 정수(正修)가 금당 등을 중창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명해(明海)가 영산전(靈山殿)을 신축하였고, 1704년(숙종 30) 진영각(眞影閣)을 신축하였으며, 1709년 민세(旻世)가 영산전을 중수하였고, 1761년(영조 37) 상로전(上爐殿)을 신축하여 1807년(순조 7)에 중수하였다.
1856년(철종 7) 진허(鎭虛)가 극락전과 조사각을 중건하였고, 1867년(고종 4) 응월(應月)이 영산전을 중수하였으며, 1889년 보광전을 건립하였고, 1903년 함월(涵月)이 칠성각을 건립하였으며, 1907년 덕암(德巖)이 염불당(念佛堂)을 건립하였다.
1978년 7월 영산전의 후불탱화에서 주불(主佛)과 16나한상을 조성할 때,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 4과와 칠보류들을 봉안했다는 기록과 함께 사리 4과 및 칠보류가 발견되었다.
▲ 남장사 보광전(사진 上)
설법전 아래 돌계단에서 바라본 보광전(사진 下)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보광전·금륜전(金輪殿)·향로전·진영각·강당·일주문·불이문 등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관음선원(觀音禪院)과 중고암(中高庵)이 있다.
▲ 남장사 극락보전(사진 上左), 설법전 옆 계단위에서 내려다본 극락보전 일대 전경(사진 上右)
극락보전 앞 부처님 진신사리 4과와 칠보류를 봉안한 삼층석탑(사진 下)
보물 제922호로 지정된 보광전의 목각탱과 보물 제923호로 지정된 관음선원의 목각탱, 보물 제990호로 지정된 상주 남장사 철불좌상이 있으며, 철불좌상인 비로자나불이 땀을 흘리면 병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밖에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된 석장승이 있다.
응향각 안에는 12폭의 조사진영(祖師眞影)이 봉안되어 있고, 극락보전에는 업경대(業鏡臺) 2점이 불전에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골에는 4기의 부도가 있다. 진영은 인월대인(印月大仁)·상남영찰(尙南永察)·백봉신엄(白峰信嚴)·백설찬수(柏雪贊修)·만성원화(晩惺元嘩)·진감국사·달마(達磨)·나옹(懶翁)·휴정(休靜)·환적(幻寂)·소영(昭影)·유정(惟政) 등의 것이며, 달마 영정은 1812년(순조 12)에 조성된 것이다. 부도는 취진당(醉眞堂)·소영당(昭影堂)·환옹(喚翁)·쌍원당(雙圓堂)의 것이다.
이 절에서 개판된 목판본으로는 조종경(趙宗敬)의 『독암유고(獨庵遺稿)』 1권과 부록 1권, 이춘원(李春元)의 『구원집(九畹集)』 5권 등이 있다.
▲ 남장사의 전각들(사진 위에서부터)
1.보광전 앞 마당으로 통하는 설법전
2.보광전 우측에 위치한 다향당
3.보광전 앞 마당으로 연결되는 금강문인 금란방
4.사천왕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범종루
5.보광전 좌측에 자리한 교남강당
【 남장사 보광전의 문화재들 】
♧ ♧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尙州 南長寺 普光殿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보물 제922호(1987년07월1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동)
높이 236㎝, 두께 10∼12㎝, 너비 226㎝.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후불탱으로 봉안된 작품이다.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그림인데, 이 탱화는 종이나 비단이 아닌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목각탱으로 불화와 불상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특수성 때문에 목각탱이라고 불리운다. 아미타를 주제로 한 목각탱이 걸린 보광전은 원래 무량전으로 아미타를 봉안한 도량이었으나, 현재는 편액명이나 주존불의 도상에서 화엄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남장사보광전중건여단청기(南長寺普光殿重建與丹靑記)」를 통해 1891년 중건 불사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의 조성과 관련된 기록은 없지만, 1675년 조성된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구도와 형식, 조각 기법 등이 유사하여 제작 시기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엽으로 추정된다.
▲ 보광전 후불탱으로 봉안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중심부를 이루는 7매의 장방형 판목과 상부 1매를 합친 총 8매의 나무판으로 이루어졌다. 중앙에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를 배치하고, 상하 4단으로 나뉘어 3열로 배치하였는데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에서부터 사천왕상, 8대보살과 범천·제석천, 10대제자가 좌우 대칭구조를 이루며 나란히 있다. 가장 윗부분은 본존불의 머리에서 뻗쳐나가는 서운과 천개가 장식되었고 그 아래로 조각된 존상들 사이에는 연봉우리, 연잎과 넝쿨들로 구획하며 빈 공간을 메웠는데 연화세계에서 아미타가 설법하는 모습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연꽃 위에 앉아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4단씩 3열로 보살상들은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꽃가지를 들고 있으나 한 분만 합장하고 있으며 관음과 대세지 보살은 연꽃 위에 앉았고 다른 인물들은 서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본존불인 아미타여래상은 불꽃무늬가 장식된 배 모양의 광배를 지니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으며 머리와 육계의 불분명한 경계, 방형의 큰 얼굴, 변형편단우견식 대의와 꽃잎형으로 주름 잡힌 승각기, 간결한 옷주름 등 전형적인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인다.
8대보살은 본존을 에워싸듯 가장 가까이에 위치하는데 1단에 2구, 2단에 2구, 3단에 4구씩 배치되었으며 모두 꽃잎처럼 생긴 독특한 광배가 표현되었고 신체 비율, 옷과 얼굴 표현 등이 본존불과 닮았다. 본존의 좌우에 앉아 있는 관음과 대세지보살은 각각 연꽃가지 위에 경합, 버들가지를 들었다. 나머지 보살들도 여의가지나 연봉우리와 같은 지물을 들었는데, 관음과 대세지보살의 옆에 있는 보살 한 구는 합장인을 취하였고 다른 한 구는 보살과 다르게 천의와 복갑을 입고 있어 범천, 제석천으로 추정된다.
보살과 범·제석천의 외곽으로 10대 제자가 합장을 하거나 지팡이, 연봉우리, 여의와 같은 지물을 든 모습이며 무릎을 꿇거나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장 아랫단의 오른쪽에는 보당과 탑을 든 서방 광목천왕,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 증장천왕, 왼쪽에는 장검을 든 동방 지국천왕과 비파를 든 북방 다문천왕을 좌우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이 사천왕들의 표정은 다채로우며 증장천왕과 지국천왕은 투구, 광목천왕과 다문천왕은 보관을 써서 달리 표현되었다.
아미타의 권속으로 등장하는 24구의 존상을 네 단으로 나누어 나란히 배치한 구도와 단신의 신체 비례 그리고 광배와 좌우 일렬로 배치된 사천왕상 등이 1675년의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비교된다.
조선 후기의 목각탱으로는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이외에도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75년, 보물 제575호),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84년, 보물 제989-2호), 서울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7세기 말경),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94년),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782년) 등이 있다.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아미타극락구품도를 조각으로 옮긴 회화이자 조각의 특징을 지닌 목각탱이다. 평면성과 입체감이 공존하는 목각탱은 대부분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에서 조성되었는데,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제작되었던 독특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7점 정도만 남아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명문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회화적이면서도 조각적인 매력을 간직한 귀한 작품이다.
▲ 보광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후불탱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 ♧ 상주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尙州 南長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보물 제990호(1989년04월10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동)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사 보광전에 모셔진 높이 133㎝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지금은 불신만 남아있다.
얼굴은 단아하며 어깨에 닿을 듯 긴 귀는 목에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와 잘 조화를 이루어 위엄을 자아낸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부드럽게 흘러내려 양쪽 무릎을 덮고 있는데, 주름은 팔과 다리의 끝부분에만 나타났을 뿐 대담하게 생략하고 단순화시켰다. 손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상과 비교하여 손의 위치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육계, 중간 계주, 정상 계주가 없는 점이 독특하며 나발을 촘촘히 표현하였고 얼굴과의 경계선인 이마선은 일직선을 이룬다. 작은 얼굴에는 기다란 눈과 귀, 오똑한 코, 입꼬리가 올라간 입술 표현으로 온화하면서도 단아한 인상을 준다.
길쭉한 신체비례는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천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15세기 불교조각의 특징이며 V자형 목깃과 겨드랑이 아래 접혀진 U형의 옷주름은 동해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과 같은 통일신라시대 철불에 나타나는 요소로서 복합적인 특징을 보인다. 철불임에도 외면에 돌출된 분할선이 확인되지 않은 점은 독특한데, 앞으로 면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작품이다.
철불임에도 조형감각이 우수한 작품으로, 엄숙한 얼굴 표정, 치마를 묶은 띠매듭, 왼쪽 어깨에 드리워진 U자형 옷자락, 단아한 얼굴, 장대한 체구 등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철불의 전통을 이어주는 조선시대의 유일한 철불 사례이며, 조선 초기의 불상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조선 철불상의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
【 남장사 극락전의 문화재 】
♧ ♧ 상주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尙州 南長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635호(2010년02월24일 지정)
*수량:3구(발원문 1점 포함)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동)
▲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남장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좌상으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139㎝이며,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가 128㎝이며,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높이가 131㎝이다. 이 삼존좌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에 따르면, 순치 2년(조선 인조 23, 1645)에 수많은 사부대중의 참여하고, 지희(智熙)스님의 증명 아래 청허(淸虛), 영색(英賾), 현욱(玄旭), 천휘(天輝), 나흠(懶欽), 법찬(法燦) 등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 제작의 수조각승 청허는 17세기 대표적인 조각승 청헌(淸憲)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통견식의 착의 형식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신체 비례가 적절하며,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가락을 구부린 설법인을 결하고 있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원통형 정상계주가 있고, 나발 사이에는 반달형 중앙계주가 있다. 얼굴은 비교적 넓은 방형으로서 뚜렷한 인중과 작은 입술에서 근엄한 모습이 나타난다. 넓은 이마와 부풀어 오른 눈꺼풀, 살짝 뜬 눈, 돌출한 코 등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상체는 다부진 모습으로, 가슴이 편평하며 아랫배가 살짝 나와 있다. 결가부좌한 하체는 무릎이 낮고 넓어서 안정감을 준다. 법의는 통견 형식으로 착용하였다. 내의는 가슴까지 올려 수평을 이루며, 왼편의 대의자락은 발가락을 덮고 있으며, 오른편의 것은 부채살 모양의 주름으로 형식화되었다.
▲ 목조아미타여래 삼존좌상 본존불(사진 左)과 좌협시불(사진 右)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상호와 신체 비례, 수인, 착의법 등 형식적인 특징은 목조아미타불좌상과 동일하다. 그러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수인과 신체 비례, 상호 등이 아미타불상, 대세지보살상과 같지만, 착의법에서 차이가 난다. 비록 관음보살좌상이 통견형식으로 법의를 입었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곳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여러 명의 조각승이 일을 분담하여 여래삼존상을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두 보살좌상의 세부 모습을 살펴 보면, 정수리에 틀어 올린 보개는 비교적 높은 편이며, 보발은 어깨에 닿아서 세 개의 원형을 이룬 후 다시 세 가닥으로 흘러내린다. 또한 꽃문양의 귀걸이와 팔찌를 착용하였고, 목걸이는 하지 않았다.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청허가 조성한 불상 가운데 삼존의 형식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는 점 외에도 상호의 표현과 안정된 신체 비례 등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즉 조선시대 17세기의 조각승 청허의 역작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이 불상은 17세기 전반기의 특징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데, 즉 양감이 강조된 방형의 큼직한 얼굴, 당당한 어깨, 넓고 안정된 무릎, 강직한 힘이 느껴지는 선묘를 추구하여 건장하면서도 평담한 형태미를 보여 주는데, 청헌의 작품과 양식적으로 흡사하다.
한편 이러한 형태미는 임진왜란 이후 자존심을 회복한 불교 재건사업과 맞물려 새롭게 대두된 양식적 경향으로 이해된다. 남장사 삼존상은 발원문을 통해 아미타·관음·대세지의 아미타삼존형식의 상으로 관음과 대세지 보살상의 착의형식에서 변화를 준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례이다. 또한 17세기를 대표하는 청허 유파에 의해 조성된 작품 중에서 비교적 연대는 늦어나 조각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대표작품으로 볼 수 있고, 조각승의 이름과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조선 후기 조각사 연구의 기준자료가 되는 귀중한 작품이다.
【 남장사의 불화들 】
♧ ♧ 상주 남장사 감로왕도(尙州 南長寺 甘露王圖)
*보물 제1641호(2010년02월24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동)
이 불화는 1701년 탁휘(卓輝) 등의 화승이 그린 감로도로서 18세기의 감로도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이다.
각 장면 옆에는 방제를 적어 내용을 밝히고 있어 감로도의 도상을 파악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필치가 유려하며, 채색은 분홍색과 노란색 등 밝은 채색을 사용하여 화면 전체가 밝아 보이는 한편 금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화려한 느낌을 준다.
화면을 3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칠여래와 인로왕보살, 지장보살, 관음보살을 배치하고, 중단에는 제단과 그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승려들, 하단에는 고혼들의 다양한 모습을 질서정연하게 묘사한 이 감로도의 구성은 차후 18세기 감로도의 전형을 이루었다. 남장사 감로도는 감로도 도상 변천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가가 그룹별 도상의 묘사도 뛰어나다.
♧ ♧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尙州 南長寺 靈山會 掛佛圖)
*보물 제2007호(2018년11월27일 지정)
*수량:괘불 1폭, 불사성공록 1책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동)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는 야외에서 행하는 불교의식인 영산재(靈山齋)에 사용된 불화로, 1788년(정조 12) 조선 후기 대표 불화승인 상겸(尙謙)의 주도로 총 22명의 화승(畵僧)이 참여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 불화와 함께 전해지고 있는 문헌인 '불사성공록(佛事成功錄)'에 의하면 앞 시기에 조성된 괘불(1776년)이 기우제를 지내던 중 비를 맞아 손상되자 한양에서 온 화승들에게 맡겨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를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괘불도는 높이 10m가 넘는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본존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주위에 권속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였고 밝고 짙은 채색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화면이 특징이다. 명료하고 능숙한 필선으로 대상을 표현하여 격조 있는 품위를 보여주고 있으며 18세기 후반 경상북도 지역의 대표적인 불화 중 하나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괘불 조성 과정을 기록한 '불사성공록'은 괘불의 제작 경위와 참여 화승, 도상(圖像)의 사상적 근거 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료이다. 당시 괘불 제작뿐 아니라 지장도, 시왕도 등 1788년 당시 행해진 불사(佛事) 전반에 대한 기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희귀한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 불교사적 의의가 크다.
▲ 남장사 관음선원 입구(사진 上)
관음선원 전경(사진 中)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봉안된 관음전(사진 下)
♧ ♧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尙州 南長寺 觀音禪院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보물 제923호(1987년07월1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동 남장사 관음선원)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그림으로, 대개 사찰 전각 안의 본존불 뒤에 위치한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흔히 목각탱이라 부르며 이는 불화와 불상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관음전의 주존인 관음보살상 뒷편에 후불탱 형태의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가로 184㎝, 세로 165㎝이다.
관련 기록으로는 「尙州露岳山觀音殿佛像及後佛木幀改金記(상주노악산관음전불상급후불목정개금기)」가 있고, 『天柱山北長寺事蹟記(천주산북장사사적기)』에는 더욱 확실한 내용이 남아 있다. 즉, “木幀後佛甲戌年造成化主僧熙善也(목정후불갑술년조성화주승희선야)”라 하여 목탱후불이라는 명칭과 함께 갑술년인 1694년 화주 희선에 의해 조성되었음이 밝혀 졌다. 그리고 1819년 천주산 상련암에서 남장사로 이안되었음도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의 조사에서 목각탱 뒷면에서 ‘康熙三十四年乙亥(강희삼십사년을해)’라는 묵서가 발견되어 1695년이라는 정확한 제작 연대가 다시 밝혀졌다.
중심부를 이루는 5매의 판목과 상, 하부 각 1매를 합친 총 7매의 나무판으로 이루어졌다. 중심의 3판목에는 불, 보살을 2단으로 배치하고 좌우 판목에는 나한상과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사각형의 판목 중앙에 본존뷸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네 보살이 배치되었고 그 주위로 2대 제자인 아난·가섭과 사천왕을 배열한 구도이다. 아미타여래의 두광에서 뻗어나가는 서광과 그 양 끝에 타방불을 3구씩 조각하였고, 아랫부분에는 커다란 연잎과 연꽃, 연봉우리를 좌우로 넓게 배치하여 아미타가 서방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아미타상은 배 모양의 광배를 지니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으며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고 있으며, 머리와 육계의 불분명한 경계, 방형의 큰 얼굴, 변형통견식 대의, 간결한 옷주름 등 전형적인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인다.
좌우에 배치된 네 구의 협시보살들은 얼굴이나 옷 표현 등이 본존상과 유사하며, 2단으로 배치되었다. 앞 줄의 두 보살상은 각각 연꽃가지 위에 놓인 정병, 연꽃가지를 받쳐 들고 있으며, 그 뒤의 두 보살상은 모두 합장을 하고 있다.
늙은 노인의 모습인 가섭존자와 젊은 스님의 아난존자 역시 합장인을 취하였는데 늙고 젊음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목각의 네 가장자리에는 부릅 뜬 눈에 갑옷으로 무장한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본존 오른쪽의 위, 아래 2단으로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 증장천왕, 보당과 탑을 든 서방 광목천, 그 왼쪽에는 장검을 든 동방 지국천왕과 비파를 든 북방 다문천왕이 조각되었다.
불상들의 얼굴과 신체 등이 모두 네모난 형태로 비사실적 인체 표현이 드러나 있으며 이와 함께 두꺼운 옷에 간략화된 주름은 당대의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목각후불탱은 목각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17세기 작품을 대표하는 수준작으로 뛰어난 목조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에 7점 정도만 남아 있는 희소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목각탱의 내력을 담은 기록을 통해 1694년에 조성되었고 상을 이안한 내용 등이 담겨 있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 일주문가는 길(사진 上 & 中)
보수공사중인 일주문(사진 下)
♧ 상주 남장사 일주문(尙州 南長寺 一柱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8호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동)
사역(寺域)으로 진입하는 비탈길에 자리하고 있는데, 방향은 남남동향이다. 앞면의 공포 부분에는 1923년에 제작된 편액이 걸려 있다. 전체적인 짜임새와 건축 기법으로 보아, 건립 시기는 1889년(고종 26)에 다시 건립된 보광전(普光殿)보다는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은 앞면에는 두벌대로, 뒷면에는 한벌대로 설치하였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3단의 장대석 계단을 두었고, 서쪽은 노출된 암반에 장대석을 연결하였다. 장대석을 바른층으로 쌓은 지금의 기단은 고치는 과정에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윗면에는 신방목(信防木) 2개를 남북 방향으로 설치하였고, 바닥면에 장부구멍을 낸 원기둥을 가운데에 끼워서 세웠다. 껍질만을 제거한 원기둥은 아래 지름이 2자 이상이고, 길이는 10자 정도이다. 주선(柱線)은 그랭이질을 한 뒤 원기둥에 밀착시켜 세웠는데, 바깥쪽에 네모난 단면의 휘어진 부재를 까치발처럼 두었다. 까치발은 신방목 윗면부터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휘어져 주선에 밀착되었고, 다시 위쪽으로는 바깥쪽으로 휘어져 창방(昌枋)의 십자맞춤부 주두(柱頭)를 받치고 있다. 원기둥의 중심에서 십자맞춤부까지는 길이가 4자로 공포의 간격과 같으므로, 윗부분에서 양통(樑通)은 8자로 맞추었다. 곧 십자맞춤부에서는 기둥을 생략하여 까치발로 지붕의 하중을 처리하였다. 까치발의 중간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새겼고, 윗부분은 용두(龍頭) 모양으로 꾸몄다.
▲ 일주문 현판(사진 左)과 기둥(사진 右)
동서 방향으로 설치된 창방의 끝부분은 비스듬히 자르고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지만, 남북 방향의 끝부분은 아랫부분을 잘라내고서 작고 둥근 기둥의 동바리를 덧대어 받쳤다. 창방과 함께 평방(平枋)은 공포를 설치하기 위한 네모난 틀을 구성하여 안정적으로 수평을 이루고자 하였다. 남북 방향 부재는 받을장으로, 동서 방향 부재는 업힐장으로 반턱맞춤을 하였다. 평방의 맞춤부분 윗면에는 귀포의 주두를 올렸고, 그 바깥으로는 두께가 얇은 이방(耳枋)을 놓아 귀한대를 받쳤다.
공포는 내외3출목의 다포식 구조이다. 평방의 윗면에서는 도리통에 3개의 공포 간격을 두었고, 양통에는 2개의 공포 간격을 설정하였다. 주두는 운두에 비하여 굽의 높이가 낮고, 굽면은 비스듬히 잘린 모습이다. 주심첨차(檐遮)와 출목첨차의 끝부분은 곧게 잘렸는데, 그 아랫면은 비스듬히 잘라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모든 살미의 바깥쪽 끝부분은 윗단을 연꽃을 둔 앙서[仰舌]로 구성하였고, 안쪽 끝부분은 운공(雲工)형 장식으로 처리하였다. 제공(提栱)은 윗단과 아랫단 사이를 붙여서 설치하였으며, 주심첨차와 살미의 반턱맞춤부에는 소로[小累]를 두지 않았다.
이 문에는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공포 구조와 다른 부분이 있다. 곧 출목첨차와 살미의 맞춤부에 놓인 소로는 귀포에 사용되는 접시소로와 비슷하게 운두가 없는 모습이다. 내외1출목선에는 가첨장여(加檐長欐)를 사용하지 않았고, 출목첨차를 하나 더 사용하여 중첨차(重檐遮)를 적용하였다. 4제공 살미의 바깥쪽 끝부분에도 윗단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앙서를 설치하였기에, 끝이 아래로 뾰족한 수서[垂舌]를 가진 살미를 사용하지 않았다. 보를 대신하여 사용된 5제공 살미의 바깥쪽 끝부분은 용두로 장식하였고, 외목도리 받침장여는 2단으로 높게 설치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은 귀포에서 더욱 부각되었는데, 5제공에 설치된 좌우대의 바깥쪽 끝부분을 첨차의 끝부분처럼 간략하게 처리하였고, 외목도리 왕찌맞춤 아래부분에는 춤이 높은 네모난 부재를 두고서 끝부분에 용두를 끼워 장식하였다.
공포의 출목사이에는 순각천장(巡閣天障)을 설치하였고, 내부에서는 내3출목선 가첨장여 윗면에 청판(廳板)을 깔아 천장을 형성하여 가운데에 쌍학(雙鶴)을 그렸다. 외목도리 윗면에는 고팽이 모양의 게눈각을 둔 추녀와 삼각형 모양의 갈모산방[帽散枋]을 두어, 좌우에서 휘어져 오른 곡선의 겹처마와 팔작지붕을 이루게 하였다. 문 전체에는 금모로단청(錦毛老丹靑)을 하였다.
이 문은 까치발의 조각이 특이하면서, 전체적으로 균형감과 중량감을 준 사찰의 문으로 알려져 있다.
▲ 남장사가는 길목 노음산 등산로 입구에 서 있는 남장사 석장승
*노음산(노악산 728.5m)
갑장산, 천봉산과 함께 상주 삼악을 이루는 명산으로, 신라시대 창건된 유서깊은 남장사와 북장사를 끼고 있으며 특히 남장사 일대는 경북8경의 하나이다.
♧ 남장사 석장승(南長寺 石長丞)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3호(1982년02월24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남장동)
장승은 마을입구나 사찰입구에 세워 잡귀와 액운의 출입을 막고 사찰내의 재산과 경계를 표시하는 민간신앙물로, 마을에서는 수호신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남장사 입구에 서 있는 이 돌장승은 원래 남장동에 있었는데, 1968년 저수지 공사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놓은 것이다.
높이 186㎝의 크기로,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다듬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비뚤어진 얼굴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왕방울 눈과 커다란 주먹코,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 송곳니는 아래로 뻗어있다. 가슴에는 한가닥의 수염이 있으며 그 밑에 ‘하원주장군(下元周將軍)’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성난 표정을 표현하려 했으나 그 보다는 소박함과 천진스러움이 엿보이는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작년도는 장승 앞면에 ‘임진 9월입’이라는 기록과 조선 철종 7년(1856)에 지은 남장사 극락보전 현판의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남장사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없으므로 남장동을 지키기 위한 수호신으로서 이 장승을 세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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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 아래 남장사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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