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성곽돌기

천삼백년의 역사가 숨쉬는 남한산성 성벽을 따라...

왕마구리 2009. 4. 13. 20:37

◀ 남한산성 성곽 돌기 ▶

 

 

▲ 수어장대에서 단체 기념촬영 

 

【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역사 】

*사적 제57호(1963년 1월 21일 지정)

▲ 능선따라 이어지는 남한산성 성곽

 

이 산성은 조선시대에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을 지키던 남쪽의 방어산성이다.

삼국시대부터 천연요새지로 백제, 신라에서 도성을 쌓았다고 한며 최초로 문헌에 나타나는 기록은 신라 문무왕12년(672) 광주 동쪽에 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다. 조선시대에서는 북방의 방비책으로 광해군13년(1621)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고, 이괄의 난 이후 인조2년(1624)에 수어사 이서에게 명하여 대대적인 국가사업으로 증축하여 2년뒤 1626년에 완공하였다.

그뒤 순조때까지 각종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중 가장 완비된 시설을 갖추었다. 성안에는 군사시설은 물론 유사시에 임금이 거처할 행궁과 관아시설, 방어시설인 4장대와 출입시설인 문루 그리고 승병 주둔을 위한 사찰들도 있었다.

현재는 문루를 비롯한 시설물들을 수차에 걸쳐 복원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때 인조는 이곳에 피난하여 항전한 곳이다.

성의 둘레는 7,545m이고, 높이는 낮은 곳이 3m정도이고 높은 곳은 7m내외이다. 성벽위에는 여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다른 성과는 달리 길이가 매우 짧은 치가 설치되어 있다. 산성안에는 80개의 우물과 45개의 연못이 있고 성벽에는 30여개에 달하는 수구를 설치하였다. 동문인 좌익문, 서문인 우익문, 남문인 지화문, 북문인 전승문 등의 4대문과 비밀문인 암문 16개가 있었다.

또한 5개의 장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병사들의 숙소인 군포가 125개 있었다. 왕의 숙소인 행궁이 설치되었으며, 광주시의 읍치를 산성안으로 옮겨 각종 관아건물과 창고를 설치하였다.

1971년 3월 17일 경기도 남한산성도립공원(제158호)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 남한산성 성곽 돌기코스 】

남문-(0.7km)→영춘정-(0.4km)→청량산(482.6m)/수어장대-(0.6km)→서문-(0.3km)→연주봉옹성-(0.5km)→북장대지-(0.3km)→북문-(1.4km)→동장대암문/벌봉갈림길-(0.7km)→장경사신지옹성-(0.8km)→동문/342번지방도-(1.1km)→남장대지-(0.6km)→남문----→'산성각' 식당/뒤풀이

 

▲ 남한산성 성곽 안내도

 

 

【 산행거리 】총 7.40km (이정표 기준) 

【 산행일자 】2009년 4월 12일(일)

【 산행시간 】총 4시간 07분 소요(중식, 휴식 및 관광시간 포함)

【 날     씨 】 맑 음

【 참 가 자 】총 31명(재경대구고 18산우회 동기 및 가족)

기세명+장종여, 김광훈, 김경동, 김경암+김가연, 김정두, 박출석, 서영호+박미현, 신명호+김경숙, 윤창희+이미옥, 윤희모, 이상우, 이수형, 이준건+심명자, 이종익+송미란, 이현동+이경희+이준규, 정지언+노숙희, 조경수+손순희, 천영면+김미숙, 황희철

【 교 통 편 】대중교통 및 승용차 이용

<< 갈 때 >> 부천터미널(08:30)-(성남행 시외버스)→모란역/8호선(09:11~09:17)-(#9번 시내버스)→남한산성남문입구(10:12)→남문(10:15)

<< 올 때 >> '산성각' 식당(16:45)-산성주차장-(승용차)→복정역→모란역(17:25~17:45)-(시외버스)→부천터미널(18:35)

【 산 행 기 】

 문경새재 옛 과거길 트레킹 또는 부봉 산행으로 실시하려 하였던 2009년 4월 정기산행이 인원부족으로 차량대절의 어려움이 있어 3일 전 서울 근교의 남한산성 성곽돌기로 장소를 변경, 실시를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변경된 산행지이었지만 이 종익 산우회 홍보이사의 산행 참석 독려로 예상보다 많은 동기 19명 포함 총 인원 31명이란 대군이 수도 한양을 북한산성과 함께 오랜 세월 지켜오며 한민족의 영광과 고난을 함께해온 남한산성 성곽 공격에 동참을 해 주었다.

 

이번 남한산성 성곽돌기에는 산행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었던 이 준건 동기와 신 명호 동기 부부, 인도 근무를 마치고 본사에 복귀한 기 세명 동기 부부, 필리핀 세부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이 수형 동기, 약국 휴무일이 2,4주 일요일인 관계로 매주 첫째 일요일이 산행일이라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해 오던 황 희철 동기, 재경 동기회의 모임 첫 참석 장소로 산행을 택한 김 경동 동기와 작년 까지 산우회 산행 개근을 해 오던 정 지언 동기가 올해 초 부산 본사 근무 발령 후 첫 산행에 부인을 동반하여 참석하는 등 많은 동기들이 동참을 하여 산행이 예전보다 더 활기차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실시가 되었다.

 

남문 집결시간인 오전 10시. 그러나 성남시가지를 뺑뺑 돌며 남한산성으로 운행되는 #9번 시내 노선버스 덕분에 모든 인원이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45분경. 팔을 뻗으면 성벽이 닿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있는 길을 따라 성벽을 왼쪽에 끼고 남한산성 안으로 성곽돌기 종주산행에 들어갔다. 1차 종주 목표지점은 능선상에 위치해 있는 남문옆을 지나는 성남과 광주시를 잇는 342번지방도따라 약 1.5km 동쪽에 떨어져 있는 동문으로 삼고 반원을 그리며 성벽을 따라 진행을 하고, 동문에서 희망자(11명)에 한해 2차로 나머지 성벽구간인 동문~남문까지의 약 1.7km 거리의 성벽돌기 완전 종주를 하는 코스에서 이번 산행이 실시되었다.

 

산행을 마치고 동문에서 헤어진 1진이 잡은 '산성각' 식당에서 파전, 두부 김치 그리고 도토리묵 안주에 동동주 한 잔을 곁들이며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오늘처럼 많은 인원들이 계속 참석하게 될 것이니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산우회 부대장을 한 명 더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지만 동문에서 헤어진 후미 회원들을 이끌고 총 인원 31명이란 대군이 들어갈 식당을 수배하며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저력을 보여준 김 경암 동기 회장겸 18산우회 부대장이 있어 뒤풀이 시간이 끝난 후에는 이 같은 제안은 두번 다시 나오지 않았었다,

지난 1월 이 준건 동기가 삼성생명 상무로 진급을 하면서 바빠서 참석을 하지 못하더라도 18산우회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 기금 조성에 일조를 하겠다며 \100,000을 찬조하였는데, 이번에는 부인과 함께 산행에 직접 동참을 하고 뒤풀이 비용(\187,000) 전액을 찬조하여 당일 산행회비를 전액 산우회 기금으로 돌릴 수 있게 하여 이 현동 산우회 총무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고 뒤풀이 시간내내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질 않았었다.

특별찬조(\100,000)와 이번 산행에서 뒤풀이 비용(\187,000)을 전액 찬조해 주셔서 18산우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해주신 이 준건 동기 부부에게 다시 한 번 18산우회 회원 모두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산행기는 특별한 난코스가 없으며 성벽을 따라 완만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진행하게 되고, 요소요소에 이정표 등이 잘 정비되어 있어 '성벽을 좌측에 두고 진행'한다는 원칙만 고수하면 별 어려움없이 쉽게 길을 찾아 갈 수가 있어 간략한 설명과 함께 사진들을 올리는 것으로 대체를 하고, 일부 사진은 검단지맥 종주 산행(2008년12월25일) 때 찍은 사진들을 첨부하였으니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 남한산성 성곽돌기의 시작점과 종착점인 남문

▲ 남문 우측으로 이어지는 성벽을 따라 계단길을 오르며 성곽돌기를 시작하고...

 

10:15~10:45=>남한산성 남문/성곽돌기 시작지점

     '지화문(至和門)' 편액이 걸린 남문 우측의 계단길을 오르면 성벽이 나타나고 이를 좌측에 두고 따라 계단길을 오르며 성곽돌기 산행이 시작된다. 첫 번째 고개를 오르면 미완성의 돌무더기탑이 하나있고, 이를 지나 내려섰다 두 번째 고개 정상에 서면 우측으로 정자인 '영춘정'이 보인다.

 

▲ 영춘정

 

11:00=>영춘정(迎春亭)

     '봄을 맞는 정자'라는 뜻풀이와 딱 맞아 뜰어지게 이곳에 오르니 4월 산행지로 최적의 타이밍을 맞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자 입구에는 위치표시판과 이정표(↑서문 1km, 수어장대 0.4km/↓남문 0.7km)가 있다.

고개 정상을 내려서고 다시 세번째 고개 정상인 청량산(482.6m)에 오르니 우측으로 기와 담장을 두른 수어장대가 있다.

 

▲ 수어장대 입구에서 단체 기념촬영

▲ 수어장대와 청량당이 위치한 청량산 정상

♣ 청량당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

   *소재지: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815-2 

인조1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 부분을 책임지고 공사를 하다가 공사 경비를 횡령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이회와 이 소식을 듣고 한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그의 부인 송씨와 소실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이회는 누명을 쓰고 죽을 때 자신이 죄가 없으면 사형을 당할 때 매가 한마리 날아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이회가 죽으려는 순간 과연 매 한마리가 날아와서 사형 당하는 장면을 쳐다 보았다고 한다. 이회가 죽은 후 공사비 횡령사건이 다시 조사되었는데 조사 결과 그가 한 공사는 모두 충실하게 축조되었으며 공사비를 횡령한 사실이 없음이 밝혀지자, 서장대 옆에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뜻으로 초상을 안치해 두었는데, 6.25전쟁 때 분실되고 지금 있는 것은 그 이후에 만든 것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홀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 수어장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소재지: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815-1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에 있다. 성안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졌으며 왼쪽에는 사당인 청량당이 있다.

 

뒤쪽에는 2개의 우물이 있어 장대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물을 공급하였다. 이 건물은 인조2년(1624)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누각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27년(1751) 유구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누각으로 다시 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

 

특히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가 친히 군사들을 지휘, 격려하며 45일간 항전하던 곳이다. 수어장대는 아래층이 정면 5칸, 측면 3칸, 위층이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작지붕 양식의 이층누각이다. 지붕은 위, 아래 모두 겹처마를 둘렀으며 용마루에는 취두를 올렸다. 건물의 기둥은 높이 60cm의 팔각장주초석 위에 올려져 있고, 포는 주심포 양식의 이출목익공계이다.

 

 

 

11:07~11:28=>수어장대

     입구에는 이정표(↑ 북문 1.7km, 종로 1.2km, 서문/↓ 남문)가 있다. 우측으로 수어장대를 향하면 수어장대를 들어서기 직전 우측으로 넓은 공터에 대형 '남한산성안내도'가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문이 잠겨진 청량당 건물이 좌측에 있고, 수어장대로 오르는 짧은 돌계단 우측에는 300년이 넘은 보호수인 향나무 1그루가 보인다.

돌계단을 오르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인 화려하고 웅장한 '수어장대' 누각이 눈에 들어온다.

수어장대 좌측으로는 우리나라 측량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는 대한제국 말기 탁지부에서 설치한 '탁지부 측량 소삼각점'이 있다.

수어장대 앞 마당 우측 담장 구석에는 청량당의 주인공인 이 회와 관련된 전설로 '이회가 참수당할 때 매 한마리가 앉았던 바위 위에 매 발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현재는 손실되고 그 흔적만 남았다'라고 하는 안내문과 함께 '매바위'가 있다.

수어장대를 구경하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내려와 이정표있는 곳에서 편안한 성벽 옆을 따라 완만한 경사의 길을 내려서면 서문에 이르게 된다.

 

 

▲ 편안한 성곽 산책로

▲ 서문

 

11:36=>서문

     서문을 뒤로하고 성벽을 따라 약 3분 정도 오르면 좌측으로 암문이 보이고 입구에 '연주봉옹성' 표석과 이정표(↑북문 0.8km/↓수어장대 0.9km, 학암동 1.7km, 서문 0.3km)가 있다. 좌측 암문을 통해 성밖으로 빠져 나가면 봉화대 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연주봉옹성'에 이르게 된다.

 

 

▲ 연주봉옹성(08년12월25일 촬영)

 

이 옹성은 원성과 연주봉을 연결하고 있는데 둘레는 274m로 73개의 여담이 있었다. 이 옹성은 암문을 통하여 성내를 출입할 수 있으며, 봉수나 망루의 소임을 한 듯한 원형의 석축인 시설물의 잔해가 4~5단 정도 남아있다.

 

▲ 연주봉옹성 입구의 암문과 이정표 및 표석

 

▲ 연주봉옹성을 배경으로...

 

11:39~11:57=>연주봉옹성

     옹성 끝에 서면 주변의 경치가 시원하게 조망이 되는데 멀리 하남시 일대와 한강이, 그리고 서울시 송파구 마천동과 거여동 일대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암문을 통해 다시 성안으로 들어서 성벽을 따라 계속 이어가면 북장대지 표석과 이정표가 있는 북장대지에 이르게 된다.

 

 

 

 

 

 

 

▲ 연주봉옹성을 배경으로...

 

▲ 북장대지 표석

 

12:04=>북장대지

     이정표(↑동장대지 1.6km,북문 0.3km/↓수어장대 1.4km, 서문 0.8km)와 표석이 있는 북장대지를 지나 성벽 따라 숲길을 내려서면 북문에 이르게 되는데 북문 직전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 북장대지 이정표를 배경으로 이 준건 동기 부부

 

▲ 북문 

 

12:13~12:59=>북문/중식

     오늘 점심식사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 종익 산우회 홍보이사의 부인 송 미란 여사가 준비한 푸짐하고 다양한 메뉴의 반찬들이 펼쳐졌는데, 이제는 산행보다 이 산중 점심식사를 위해 산에 오고 '종익이 산에 안 오면 나도 산에 안 온다' 고 까지 말하는 동기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송 미란 여사의 헌신적인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오늘의 18산우회 성공 비결의 최고의 공헌자임을 누구나가 인정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밝혀둡니다.

1.6ℓ 맥주 2통과 윤 창희 동기가 전북 고창에서 공수해 온 '복분자주'로 정상주를 대신하고 45분여의 긴 식사시간을 가지고 북문을 지나 북문을 완만하게 오르면 '군포지' 안내문 푯말있는 군포지(13:07)와 돌탑이 있는 성벽길을 지나 암문, 수구문 그리고 군포지가 함께 있는 안부에 내려선다.

 

 

▲ 편안한 성벽 옆 산책로를 따라...

 

♧ 군포지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건물이다. '중정남한지(1848년)'에 의하면 남한산성내에는 125개소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한 군데의 군포건물도 남아있지 않고 그 터만 남아있다. 발굴조사 결과 이곳 군포는 시기가 서로 다른 2동의 건물이 겹쳐 나타났는데 상층건물지에는 3칸 x 1칸 규모이며 초석 7기와 적심석 1기 등의 유구가 발견되었고, 하층 건물지는 3칸 x 2칸 규모이며 초석 1기와 적심석, 석렬 등이 확인되었다.

 

 

▲ 암문 

 

▲ 군포지 뒷쪽으로 보이는 수구문 

 

성내의 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수구의 조사에서는 입수구의 물을 유도하기 위하여 날개 형태의 석축과 물을 임시로 저장하기 위한 집수시설이 설치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남한산성에는 수구가 26개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발굴조사 결과 수구 하부에는 조선시대 이전의 초창기 성벽과 배수로가 있음이 확인되었으나 보존을 위하여 묻어두었다.

 이 군포지는 주변보다 약간 높은 평탄한 대지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보이는 초석과 벽체, 그리고 다수의 와편과 조총탄환이 나왔다. 이를 통해 군포는 목조가구로 된 건물에 기와를 얹고 벽체는 토석벽을 둘린 건물로 보인다. 또한 군포는 초소기능에 맞게 정면은 트여 있고, 내부에 온돌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정비시에 발굴된 발굴시의 건물유구를 잘 보전하기 위하여 유구 위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기존 유구와 같은 형태의 모조 초석을 설치하였다.

 

13:14~13:17=>군포지,수구문 & 암문

     수구문과 암문이 있는 안부를 뒤로하면 가파른 성곽길이 이어지는데 약 8분여를 오르면 다른 규모의 암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암문이 나타나는데 동장대암문으로 벌봉과 한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 동장대 암문과 이정표(08년12월25일 촬영)

▲ 벌봉으로 향하는 동장대암문

 

13:25~13:35=>동장대암문/벌봉갈림길, 동장대지

     이곳에서 암문을 빠져나가 우측으로 성벽을 따르면 또 다른 암문을 대하게 되고 이를 지나면 외성 성벽이 이어진다. 이 길이 검단지맥으로 남한산의 최고봉인 삼각점이 설치된 521.1봉을 거쳐 능선분기봉에서 성벽을 넘어 43번국도가 지나는 은고개에 내려서게 되는 이 지맥 산줄기는 용마산과 검단산(경기도 하남시 소재)을 거쳐 팔당댐이 있는 한강으로 그 맥을 다하게 된다.

또한 외성은 봉암성, 외동장대지, 삼각점을 차례로 지나 능선분기봉에서 좌측의 지맥길을 분기시키고 직진의 능선길을 이어가 벌봉, 한봉까지 성곽이 이어지게 된다.

이정표(↑동문 1.5km/←벌봉 0.6km, 한봉 1.7km/↓북문 1.4km)가 있는 암문 갈림길에서 성벽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잠시 후 동장대지 표석과 남한산성 여장 안내문이 있는 동장대지에 이르게 된다.

 

▲ 남한산성 여장

 

♧ 남한산성 여장(女墻)

여장이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물을 말한다.

남한산성 여장은 다른 성곽에서 보기 힘든 전돌로 축조한 평여장이다. 그러나 여장은 축조시기와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재료는 일반적으로 하부는 석재를 주로 사용하고 상부는 전돌을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장은 수평되게 축조하는 것이 기본 형식이나, 급경사지에서는 계단식으로, 일부 완만한 경사지에서는 지형에 따라 경사지에 조성한 예도 보인다.

여장에는 중앙에 근총안 1개와 좌,우에 원총안 2개 등 3개의 총안과 여장과 여장 사이에는 활을 쏘기 위한 타구가 마련되어 있고, 남한산성 여장 규모는 길이 4.2m, 높이 1.2m, 폭 0.8m 내외가 일반적이다.

 

남한산성 준공 후 수어청을 두었는데 수어청에는 전후중좌우의 5영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그 5영중 전영장과 좌영장이 배치되어 진을 치고 휘하 장졸들을 지휘하였던 동장대가 있었던 곳인 동장대지를 뒤로 하면 긴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중간에 이정표(↑동문 0.8km, 장경사/↓벌봉, 동장대 0.35km)가 설치된 암문이 나타나는데 이 암문을 통해 들어서면 장경사신지옹성이 있다.

 

 

 

 

 

 

▲ 동장대지를 뒤로 하고 성벽 옆 길따라 내려서며...

 

▲ 장경사신지옹성

 

♧ 장경사신지옹성

이 옹성은 둘레 150.9m, 여장이 40개 있고 옹성 끝머리에는 대포혈이 있다. 이 옹성은 암문을 통하여 안밖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5개 옹성중 가장 작고 좌측 벽에는 무기고가 있었고 포혈의 안벽은 2단으로 쌓고 천정은 4개의 장대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성에 대한 외적의 직충을 막고 성문을 가리는 일차적 방어시설물이다.

 

 

▲ 장경사 앞 안부 직전의 남한산성 성곽길

 

13:42=>장경사신지옹성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넓은 공터가 있는 안부에 이르게 되는데 우측으로 남문으로 향하는 342번지방도가 보이고 그 옆으로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 건너에는 장경사 절 건물이 보인다.

 

▲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남한산성 성곽

 

안부를 뒤로 하고 잠시 오르면 우측으로 도로가 접하고, 이를 지나 성벽을 따라 내려가면 성곽보수공사 현장을 대하게 되고 이를 돌아 가파르게 내려서면 편안한 성벽 산책로가 동문까지 이어진다.

 

▲ 동문으로 내려서기 직전 뒤돌아본 성곽

▲ 동문

▲ 동문 옆 342번지방도 건너 다시 시작되는 성곽

▲ 남문을 향해 성곽길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다 뒤돌아 내려다본 동문 일대 전경

 

14:05~14:20=>동문

     동문을 뒤로하고 342번 지방도를 건너 가파른 경사지에 설치된 성곽을 따라 오르면 오랜 세월을 인내한 탓일까 곳곳에 소실되거나 붕괴되어 보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성벽들을 대하게 된다.

 

▲ 제3남옹성 입구를 향하는 가파른 성벽 옆 가파른 오르막길

 

 

▲ 훼손된 남한산성 성벽의 모습

 

가파른 성벽 옆길을 따르면 남문까지 성곽보수공사 현장이 곳곳에 나타나고 일부에서는 보수를 마치고 새 단장을 한 흔적이 역력한 성벽들이 이어진다.

위치표시판이 이정표(↑종로 1.7km,남문 1.2km/↓동문 0.5km, 안흥사지 0.2km) 기둥에 함께 설치된 곳에 이르면 축대를 쌓아 보수를 한 흔적이 역력하고 축대 밑으로 암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3남옹성 입구인 것 같다.

 

▲ 제3남옹성의 이정표

 

14:30=>제3남옹성

 

▲ 새롭게 보수, 단장된 성곽을 따라서...

▲ 제3남옹성 입구를 지나고...

 

14:35=>제2남옹성/암문

 

 

▲ 제1남옹성 입구인 남장대지에서 금단산 군부대 통신시설을 뒤에 두고...

 

14:37~14:42=>제1남옹성/남장대지

     수어청 5영중 후영장이 배치되어 지휘를 하던 남장대가 있던 남장대지에 이르면 Ω 형태의 밖으로 돌출된 성벽이 나타난다. 성벽 너머로는 군부대 통신시설물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검단산(성남시계종주등산로 상에 위치한 산)이 더욱 가깝게 조망이 된다.

 

▲ 성벽 너머로 조망된 군부대 시설물이 있는 검단산 

▲ 남장대지의 이정표

▲ 남문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한창 성곽보수공사중인 현장

 

남장대 표석과 이정표(↑관리사무소 1.5km, 남문 0.6km/↓동문 1.1km)가 있다.

성벽을 좌측에 두고 내려가면 성벽보수공사 현장이 나타나고 이를 돌아 내려서면 남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14:52~14:54=>남문/성곽돌기 끝지점

     계단길로 남문에 내려서며 총 4시간여에 걸친 남한산성 성곽돌기 일정을 마무리하고 동문에서 헤어졌던 1팀과 합류하기 위해 도로를 따라 산성로타리 인근의 '산성각' 식당으로 이동을 하였다.

 

▲ 성벽에서 내려다본 남문 일대 전경

 

15:10~16:45=>'산성각' 식당/뒤풀이

     동동주에 파전, 두부김치 및 도토리묵을 안주 삼아 산행의 여독을 풀고 새로운 친구들과 오랫만에 함께 한 친구들의 인사시간, 그리고 18산우회 약식 회의 시간을 가지며 약 1시간 35분여의 뒤풀이시간을 마치고 목적지별로 승용차에 분승, 남한산성을 뒤로하며 오늘 산행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산행을 기약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산행에 참석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동기 및 가족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며 산행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