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성곽돌기

안성 북부지역 여행 중 찾은 죽주산성

왕마구리 2010. 3. 22. 11:06

◀  안성 죽주산성(竹州山城) ▶

 

▲ 죽주산성 서벽길 

 

▲ 죽주산성 북치성과 포루

【 죽주산성(竹州山城)의 역사 】

*경기도 기념물 제69호

*소재지: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일명 '고죽주성(古竹州城)'이라고 불리어지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해발 370m의 비봉산 아래 위치해 있으며 복합식 산성으로 내성, 중성, 외성의 3중 구조를 하고 있다.

성내 해발 250m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한 테뫼식의 내성과 내성을 둘러싼 중성, 그리고 동북쪽으로 형성된 골짜기를 포함하여 축조된 포곡식의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성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류와 삼국시대 토기, 기와류가, 중성에서는 고려, 조선시대의 토기, 자기, 기와류가, 외성에서는 이들 유물이 혼재하여 나타나고 있어, 시대에 따라 공간구조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중성은 정상부와 동쪽으로 단을 이루며 내려가는 대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형성되기 시작하는 계곡을 감싼 성벽의 둘레는 1,688m 정도이다. 이같은 체성 외에 서벽에 깃대어서 북쪽으로 뻗은 외성이 있는데 그 길이는 1,500m 가량이고, 안쪽의 내성 길이는 270m 정도이다. 성벽 높이는 2.5m 내외이다.

시설물은 문지, 치성, 각루, 포대 등이 있다.

문지는 중성에 3개소, 외성에 2개소를 설치하였다. 대부분의 문지는 성벽의 중간부에 두었으나 남문은 중앙부가 완만한 경사의 능선임을 감안하여 서벽 가까이에 시설하였고, 서문은 본성을 약 20m 정도 벗어난 지점의 외성에 설치하였다. 이는 정상부 바로 아래를 지나가는데다가 주변 지세가 험한 서벽의 특성상 성벽의 효용가치가 적고 방어에도 불리함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벽이 꺾이는 곳에는 각루를 두었으며, 군데군데 치와 포대를 설치하였다. 성 안에는 비교적 넓은 대지가 많은 편이며, 장대지를 비롯하여 각종 건물지도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몇 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통일신라말인 진성여왕 때에는 기훤이 이곳에서 군사를 모아 크게 세력을 떨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죽주산성이 기록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고려사' 등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고종23년(1236) 몽고의 침입이 있자 이곳의 방호별감 송문주는 백성들을 이끌고 산성에 들어가 농성하였다.

송몽주는 이미 구주성 전투에서 몽고군의 공격방법을 경험한 적이 있으므로, 몽고군의 갖가지 공격에 대해 효과적인 방어전을 펼치며 적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으며, 이에 몽고군은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포위한 지 15일만에 물러가 백성들은 송문주 장군을 '귀신' 또는 '신명'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 죽주산성에서 변이중, 황진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왜군과 싸워 크게 승리하기도 하였다.  

  

【 탐방일자 】2010년 3월 21일(일)

【 탐방코스 】동문지-북치성/포루-남문지2/암문-'충의사'/송문주장군 사당-서문지/암문(외성 연결지점)-(서벽따라 진행)-남치성/산불감시초소-남문지-각루터-동문지/원점회귀-성은사약수터-옛 성은사대웅전과 요사-동문지-성밖 성은사

【 탐방시간 】1시간 45분(휴식시간 포함)

【 교 통 편 】승용차 이용

【 탐 방 기 】  

이번 안성 여행은 2009년 8월 3일 안성의 3대 명찰(칠장사, 청룡사, 석남사) 탐방에 이어 두번째이다. 물론 한남정맥, 한남금북정맥, 금북정맥의 3정맥 분기봉인 칠장산이 안성에 위치해 있어 정맥 종주와 선운산 시산제 등으로 10여차례 넘게 산행을 위해 방문하였지만 순수 여행을 목적으로 방문을 하게 된 것은 이번에 두번째가 된다.

38번국도를 따라 안성시 북부 지역에 위치해 있는 관광지를 찾아 탐방을 하였으며,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곳을 찾게 되어 수박 겉 핦기 식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죽주산성과 운수암을 애워싸고 있는 무한성 등 2곳의 산성을 성돌기를 하며 최대한 내용에 충실하려 하였고, 덕봉서원은 문이 잠겨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대문의 빗장을 손가락으로 열어 서원 내부를 구경하는 등 최대한 방문지를 제대로 둘러 보려는 노력을 경주하였었다.

다만 김기덕 감독의 '섬' 촬영지였던 고산호수만은 전체를 일주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아 다음 일정을 고려, 일부 구간만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탐방기에 기재하는 내용은 현장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문과 인터넷에서 조사한 자료들을 조합하여 기재를 하였으며, 일부 내용들은 현지의 안내문과 조사한 자료가 상이한 것들도 있어 이는 작성자의 판단으로 기재를 하였음을 밝혀 두며, 여기서는 안성 북부여행 탐방기 중 '죽주산성' 내용만 발췌하여 다시 정리하여 기재를 한 것이다.

 

죽주산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동문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38번국도 매산삼거리에서 17번국도를 타고 용인 방향으로 올라오면 좌측으로 죽주산성 들어가는 도로가 있다. 비보호 좌회전을 하여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죽주산성 내에 위치하였던 절이 성밖으로 이전하여 자리를 잡은 '성은사' 입구에 이르게 된다.

절 입구에 주차장은 아니지만 10여대의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이곳에 주차를 하고, 안성시 관광안내도와 '죽주산성' 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좌측의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면 죽주산성 동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 갈 수가 있다.

성 안으로 들어서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의 넓은 대지가 눈 앞에 펼쳐지고, 우측으로 약 50여m 떨어진 곳에 '죽주산성 현황도'가 있다.

성벽 위를 걷게되는 성돌기는 현재 현황도상에 표시된 복원된 성벽을 따라 걷게 되며, 성벽 위를 따르다 보면 곳곳에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좌측 방향의 길은 지름길이거나 성 안의 분지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이므로 성벽 위의 길만 고집하면 복원된 성벽 전체를 따라 돌게 된다.

물론 좌측의 길을 따라 진행하여도 되지만 성벽을 따라 전체를 한바퀴 돌더라도 전체 거리가 길지 않고, 가파른 경사를 이루는 힘든 구간이 없어 별 부담이 없다.

 

▲ 죽주산성 성돌기의 출발점인 동문지

▲ 새로 복원된 죽주산성 동벽

 

▲ 북치성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전경

 

▲ 남문지2 

 

▲ 남문지2로 이어지는 성벽

 

▲ 남문지2에서 서문지로 이어지는 성벽

▲ 서문지로 가는 소나무 숲길

 

▲ 서문지로 이어지는 성벽

 

▲ 성안에서 바라본 서문지 

 

▲ 성밖에서 바라본 서문지 

 

▲ 외성과 이어지는 서문지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성벽 

 

▲ 외성과 이어지는 서문지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성벽  

 

▲ 남문지로 향하다 뒤돌아본 서벽

▲ 남문지 직전 남치성 자리의 감시초소

 

▲ 남문지 

 

▲ 동문지 전 치성의 건물(각루)지 흔적 

 

▲ 남문지에서 동문지로 이어지는 성벽길

 

♧ 송문주 장군 이야기

 

◀ 죽주산성내의 송문주 장군 사당

 

송문주장군은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커 행동이 범상치 않았다. 이에 어머니가 송장군을 너무 총애하자 여동생 송희는 질투와 시기를 하여 동생을 죽이고 자기가 성공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하루는 다음과 같은 내기를 하였다.

송문주는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송아지를 끌고 개성에 갔다가 다음 날 아침밥 먹기 전에 돌아오고, 송희는 밤부터 성을 쌓기로 하되 지는 사람이 죽기로 약속을 하였다. 송문주는 개성을 향하여 떠나고, 그 다음날 어머니가 아침밥을 짓다가 보니 송희는 벌써 성을 다 쌓고 성의 남문을 달때인데 개성에 간 송문주는 아직 돌아오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송문주의 천성이 한번 약속한 일은 목숨을 내놓고라도 실현하고야 마는 까닭에 만일 내기에 지는 때는 죽음으로 맹약을 어기지 아니할 것이지만 송희는 여자라 진다고 할지라도 죽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일을 위하여 준비해 둔 뜨거운 팥죽을 가지고 송희를 찾아서 먹고 하라고 권하였다.

송희는 끝난 후에 먹겠다고 재삼 고사하다가 배가 고프던 차에 어머니의 강건을 막지 못하고 그 팥죽을 받아 먹고 성문을 달려고 하는 즈음 송문주가 돌아왓다.

송희는 그제서야 어머니에게 속은 것을 알았으나 지는 사람이 죽기로 약속을 한 것이므로 여장부인 송희는 칼을 빼어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그 목에서 선혈과 함께 푸른 새 한 쌍이 나와서 이상한 비명을 지르고 날아 갔는데 송장군이 몽고군에게 패하기 삼일 전 진문 앞에 푸른 새 한 쌍이 날아와 송희가 죽을 당시 날아갈 때 낸 소리와 똑 같은 비명을 내며 날아갔다. 그 후 송장군은 몽고군에게 패하였다. 후인들은 말하기를 송희의 원혼 때문에 진 것이라하며 남문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라 전해진다.

(이러한 오누이의 성쌓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보이는 이야기로,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죽산 지역의 설화이다. 송문주 장군은 죽주산성에서 몽고군에게 승리하였으며, 그 공으로 좌우위장군에 임명되었다)

 

 

▲ 성내에 있는 성은사약수터 전경

 

▲ 성은사약수터 

 

▲ 성은사약수터에서 바라본 성 내부 전경

▲ 성은사약수터에서 옛 성은사 대웅전가는 길

 

▲ 성내에 남아있는 옛 성은사 대웅전 

 

▲ 옛 성은사 절 마당에 남아있는 장독대 

 

♧ 성은사

죽주산성 입구에 있는 사찰로 연혁에 대하여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꽃절로 유명한 사찰이다.

성오 주지스님은 연꽃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작가이다.

 

▲ 죽주산성 입구에 위치한 성은사

 

▲ 성은사 대웅전

 

▲ 성은사 범종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