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명낙가사(登明洛伽寺) ▶
▲ 등명낙가사 일주문 밑에 설치된 '대한민국정동'이란 표석을 배경으로...
강릉 경포대 벚꽃축제가 올해는 4월3일(금)~12일(일)까지 개최가 된다고 하여 인파로 붐빌 주말을 피해 한 번 가보기로 하고 주변의 관광지를 물색해 함께 돌아보기로 하였다. 우선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동해바닷가에 위치한 휴휴암을 먼저 관광하고 7번국도를 따라 내려와 강릉 경포호 주변의 만개한 벚꽃구경과 경포대 관광, 인근의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경포해수욕장, 경포호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는 허난설헌 생가터, 그리고 오죽헌을 관광하기로 한다.
경포호 주변에 산재해 있는 관광지 탐방이 끝나면 다시 7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 서울에서 정동에 위치해 있는 절로 빈혈증, 만성신경통, 만성출혈증, 소화불량, 위장병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난 탄산 약수터가 있어 더욱 더 유명해진 등명낙가사를 마지막으로 관광하는 코스로 진행을 하였으며, 각 관광지별로 나누어 소개를 하고, 참고로 설명을 첨가하여 사진을 게재하는 것으로 한다.
【 일 정 표 】2009년 4월 6일(월)
휴휴암-경포(경포대 벚꽃~경포대~허난설헌생가터~경포해수욕장~오죽헌)-등명낙가사
【 교 통 편 】승용차 이용
<< 갈 때 >> 부천(07:05)-(도시외곽순환도로)-구리I.C.-(6번국도)-용문휴게소(09:00~09:38)/조식→새말I.C.-(영동고속도로)→횡성휴게소(10:31~11:00)→강릉분기점-(동해고속도로)→한남I.C-(7번국도/속초방향)→휴휴암(12:10~13:15)-(7번국도/강릉방향)-경포대(13:41~16:47)/경포대+허난설헌생가터+오죽헌-(7번국도)→등명낙가사(17:15~17:55)
※ 아침시간 고속도로 정체를 피해 우회하여 국도를 이용
<< 올 때 >> 등명낙가사(17:55)-(7번국도/강릉방향)→강릉I.C-강릉분기점-(영동고속도로)→부천(21:10)
【 등명낙가사 소개 】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절로 창건 당시에는 수다사(水多寺)라 불리었으며 북쪽의 고구려와 동쪽의 왜구가 쉼없이 침범하여 변방을 어지럽히는 것으로부터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곳에다 부처님 사리를 모신 석탑 3기를 세우고 절을 창건하게 되었다.
당시 세웠던 3기의 석탑 중 1기는 약사전 앞에 현존하는 오층석탑이고. 1기는 일주문 옆 약수터 근처에 세웠다고 전해되는데 6.25 한국전쟁 때 없어졌다고 전하며, 나머지 1기는 절 앞바다 수중탑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신라 말기 병화로 소실된 것을 고려 초에 중창하고 절 이름을 등명사(登明寺)로 고쳤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곡이 등명사에서 해돋이 광경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고, 고려시인 김 극기는
"불법의 높은 길이 푸른 연봉에 둘러있고
층대 위에 높은 사전은 겹겹이 공중에 솟아 있다.
그윽한 숲은 그늘을 만들어 여름을 맞이하고
늦게 핀 꽃은 고운 빛을 머금어 봄을 아름답게 하여 봉우리의 그림자에 걸렸고,
절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골짜기에 불어내는 바람에 전한다"라 하였다.
이 시와 같이 주변의 경관에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강릉부 동쪽 30리에 이 절이 위치해 있으며, 풍수지리로 볼 때 강릉도호부내에서 어두운 방 가운데 있는 등불과 같은 곳이라 하여 등명사로 개칭하였으며,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학도가 3경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빨리 급제를 한다고 해서 등명사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고려 때에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조선 중기에 폐사되었는데, 폐사된 이유로는 3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불을 질러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설
둘째; 안질에 걸려 고생하던 왕이 "왕의 병이 정동쪽에 있는 큰 절에서 쌀 씻은 물이 동해로 흘러들어 용왕이 노하셨기 때문이다."란 한 점술가의 말을 믿고 폐사시켰다는 설
세째; 서울의 정동쪽에서 궁중에서 받아야 할 일출을 늘 먼저 받으므로 정동쪽 등불을 끄면 조선의 불교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숭유억불의 주장에 따라 폐사시켰다는 설.
▲ 등명낙가사 영산전 앞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전경
그 후 오래동안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56년 경덕 영해당 선사께서 이곳에 계시면서 10여채의 민가를 옮기고 작은 암자를 짓고 중창을 하시면서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산 명칭을 따 낙가사로 바꾸고, 옛 이름 등명을 앞에 붙여 등명낙가사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경덕선사께서는 30여년 이곳에서 살아오시며 1977년에 주법당인 영산전을 세우고 인간문화재 유 근형옹의 3년 8개월의 각고끝에 옥으로 오백나한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500여명의 회원이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고 기도처 도량으로 중창원을 세우시다가 1981년 11월 1일 열반하시고, 당시 총무 청우스님이 원력으로 산신각, 범종각, 안심당, 요사채 및 선원(400평), 도량조성공사 16만평, 임야 매입, 조계종 등록, 약사보전 22평, 극락보전 22평 등을 창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 등명낙가사 일주문과 그 밑에 설치된 '대한민국 정동' 표석
【 등명낙가사의 볼거리들 】
♧ ♧ 영산전
인간문화재 유 근형옹이 옥으로 만든 오백나한을 모신 등명낙가사의 주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어 오백나한전으로도 불린다. 특히 단청이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지붕의 처마 부분의 다양한 문양과 구조가 특이하다.
▲ 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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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정토삼부경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십만억 옥토를 지난 곳에 극락정토가 있다고 한다. 극락이란 명칭은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미타불은 성불전에는 한 나라의 임금의 지위와 부귀를 버리고 출가한 법장비구로서 여래의 덕을 칭송하고 보살이 닦는 온갖 행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을 세웠으며 마침내 마흔여덟가지 원을 세워 아미타불이 되었다.
아미타불은 그 광명의 끝이 없어 백천억 불국토를 비추고 그 수명이 한량없어 백천억겁으로도 셀 수 없다고 하며 따라서 극락전은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또한 주불의 이름을 따서 '아미타전'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극락전에는 당연히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그 좌우에는 고해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삼존불의 뒤쪽에는 극락의 법회 장면인 극락회상도나 극락구품탱화 등이 현괘되어 있다.
1995년 4월 19일(음, 3월 20일) 4년만에 주지 청우스님이 낙성식을 봉안하였으며, 본전인 영산전 우측에 위치해 있다.
국락보전의 벽화에는 부처님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절에서 금기시 되고 있는 나체의 여성상이 일부 그려져 있다.
▲ 극락보전
▲ 극락보전의 부처님 일대기를 그린 벽화에 그려진 여인상들
▲ 앞마당에서 바라본 극락보전
♧ ♧ 범종루와 삼성각
▲ 영산전 좌측에 위치한 범종루
▲ 범종루 뒷편에 자리잡은 삼성각
극락보전과 종무소 건물 사이로 '약사전과 오층석탑 가는길'이란 푯말이 붙은 계단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서면 오층석탑이 있는 약사전 앞 마당에 내려서게 된다.
마당 한 가운데에는 자장율사가 '수다사'란 이름으로 이 절을 창건할 당시 세웠다고 전해지는 3기의 석탑 중 현존하는 1기의 오층석탑(전문가들의 감정으로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이 있고, 정면으로는 약사전, 우측에는 선원이, 좌측에는 요사채가 자리를 하고 있다.
▲ 극락보전 우측으로 '약사전 가는길'
▲ 약사전 앞 마당에서 바라본 오층석탑과 약사전
♧ ♧ 약사전
이 건물은 약사유리광여래의 불상을 모신 불전이다.
약사여래는 동방유리광 세계의 교주로서 대의왕불이다. 약사여래는 과거에 12대원을 세워서 이 세계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고, 재난을 소멸시키며 의복, 음식 등을 만족케하고 또 부처님의 행을 닦아 무상보리의 묘과를 증득케 하겠다고 서원하였다.
약사여래 불상의 형상은 큰 연화위에 왼손은 약병을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맺고 있다. 약사여래의 좌우에는 각각 일조변조보살과 월광변조보살이 협시해 있다. 불상 뒤에는 약사회상도가 탱화로서 현괘된다. 약사회상도는 약사정토의 특성을 도상화하고 있는데 <불설약사여래본원경>에 의하면 일광보살, 월광보살과 12신장이 호법신장으로 되어 있다. 간혹 사천왕을 12신장과 같이 그리는 경우도 있다.
옛부터 정동은 약사여래도량으로, 현판은 동방만월약사유리여래보전이라고 한다.
▲ 약사전
♧ ♧ 등명사지 오층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소재지: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549
이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5층의 탑 몸체부를 구성하고, 그 위에 상륜부(탑의 맨 위에 놓인 장식)를 장식하였다. 아랫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탑 면석에 팔면의 오금곡선으로 안쪽을 파낸 모양)을 3구씩 새겼으며, 갑석(뚜껑처럼 덮은 돌)에는 연꽃을 둘렀고, 네 모서리에는 귀꽃(탑 지붕들의 추녀마루 끝에 꽃무늬를 새긴 장식)을 만들었다. 위층 기단의 갑석에도 연꽃무늬를 둘렀다.
탑 몸체부에서 1층 몸돌의 한 면에는 문틀과 자물쇠를 새겨 주목된다. 지붕돌은 받침이 3단씩인데 5층만 2단이다. 1층의 몸돌돠 지붕돌은 얇으며, 물매가 매우 완만하다. 추녀 받침이 매우 약화되었으며, 추녀의 위, 아래 모두 살짝 들려 경쾌한 분위기를 보인다. 지붕돌 윗면의 두께와 비교하여 지붕돌 밑면의 두께가 매우 얇은 점이 특이하다.
상륜부는 노반(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과 양화만 남았는데 노반은 위부분에 연꽃무늬를 둘렀고, 네 모서리에는 귀꽃을 장식하였다. 기단부 장식과 탑 몸체부 등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오층석탑
♧ ♧ 대한민국의 정동
숭유억불이란 조선시대 통치이념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등명낙가사의 폐사와 관련된 전설에서도 이 사찰이 서울의 정동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첫번째 전설이 한양 궁궐에서 먼저 받아야 할 태양의 기운을 정동에 위치한 등명낙가사에서 먼저 받는다는 이유에서 폐사되었다는 것과
두번째 전설로 조선시대 어느 왕이 안질을 심하게 앓아 점술가에게 물어보니 한양의 정동에 위치한 어느 절에서 쌀뜨물을 동해로 흘려보내 용왕이 놀라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여 왕이 특사를 파견하여, 특사가 와 보니 절 앞바다가 뿌옇게 변해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을 폐쇄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해의 이름난 일출명소로 매스컴의 광고 덕을 톡톡히 입은 곳이 정동진이며, 특히 방송 드라마 '모래시계'로 전국적인 명소로 부각되게 되었다.
정동진은 서울의 정동 쪽에 있는 진(津)이라는 뜻으로 나루나 나루터를 의미하는 말인데 이로 미루어 정동진은 해상교역소나 군사 요충지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정동진에서 10분 정도 바다를 끼고 내려가면 우측으로 등명낙가사가 위치해 있는데. 동해안에 있는 해안사찰로는 양양의 낙산사에 버금 갈 정도로 웅장한 규모의 사찰로 널찍한 주차장이 눈에 확 뜨일 정도로 그 규모를 짐작케한다.
이 주차장 끝 절 입구에 세워진 '계방산등명낙가사'란 편액이 붙은 일주문이 보이는데 이 밑을 통과하면 중앙에 '대한민국정동'이란 글자가 새겨진 돌기둥이 있다. 이 글자가 정동진이 서울의 정동쪽이 아니라 등명낙가사가 실제 서울의 정동에 위치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 동쪽(바다에서 절 방향)에서 바라본 표석 |
▲ 절에서 바다쪽(동쪽)으로 바라본 표석 |
♧ ♧ 등명약수
등명낙가사 입구, 일주문을 지나 우측에 위치해 있다.
이 약수를 처음 마셔보면 시큼하고 톡 쏘는 맛에 약간 비위가 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맛은 철분을 다량 함유한 탄산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수 색깔도 약간 붉은 빛이 돌지만 몸에 좋은 약수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부인병이나 신경쇠약, 빈혈증 등에 약효가 있고, 이 물로 피부염이 난 곳에 씻으면 약간의 효과를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약수의 효능은 국립보건원에 의뢰하여 검증을 받은 것으로 아래 사진에 있는 '등명약수안내'를 참조하면 된다.
등명낙가사를 둘러 볼 때 반드시 이 약수를 한 번 먹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 등명약수 옆에 세워둔 표석
▲ 등명약수터
▲ 등명약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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