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산행/서울,인천&경기권

설봉산(雪峯山 394m)/경기 이천

왕마구리 2009. 8. 21. 11:20

설 봉 산(雪 峯 山)

높    이

394m

소 재 지

경기도 이천시

 

 

 ▲ 설봉공원에서 기념촬영

 

【 개    관 】

이천시가지가 양팔로 감싸안은듯 둘러싸고 있는 설봉산은 해발 394m로 험준하지는 않으나 오밀조밀한 운치와 주봉부근에 울창한 혼합림과 삼형제바위, 연자바위, 칼바위, 장군바위, 연인바위 등 기암괴석이 볼만하여 시민들이 즐겨찾는 이천시의 명산이다.

설봉산의 각 봉우리에는 이름이 붙여져 있고, 표지석들이 설치가 되어 있다.

▷ 설봉산 8봉 : 성화봉, 연자봉, 서희봉, 희망봉(정상), 부학봉, 백운봉, 청운봉, 이섭봉

 

  

  

  

  

  

  

  

  

 

▷ 설봉산의 3계곡 : 호암계곡, 여래계곡, 구암계곡

▷ 설봉산의 등산코스 :

    *만남의 쉼터-설봉산성-칼바위-정상-전망대-화두재-이섭봉-학소정 : 약 6.85km/약 2시간 소요

    *제1주차장-호암약수터-설봉산성-정상-전망대-화두재-구암약수터-주차장 : 약 5km/약 1시간20분 소요

    *대형주차장-숲속교실-영월암-부학봉-화두재-구암약수터-오미약수터-주차장 : 약 4.2km/약 1시간 소요

    *제1주차장-호암약수터-숲속교실-구암약수터-오미약수터-주차장 : 약 3.6km/약 50분 소요

▷ 이천9경

    *제1경 : 도드람삼봉

    *재2경 : 설봉호

    *제3경 : 설봉산 삼형제바위

    *제4경 : 설봉산성

    *제5경 : 산수유마을

    *제6경 : 반룡송

    *제7경 : 안흥지 애련정

    *제8경 : 노성산 말머리바위

    *제9경 : 이천도예촌

【 산행코스 】설봉공원/제1주차장→설봉산산림욕장입구→호암약수터→초암약수갈림길→설봉산성→ 성화봉/봉수대+칼바위 →영월암갈림길→연자봉서희봉설봉산(394m)/희망봉 부학봉→부학루/정자→도드람산갈림길→ 청운봉백운봉→화두재365계단→화두재/안부사거리→구암약수터갈림길→88계단→구암약수터→무궁화동산갈림길/삼거리→사부골약수갈림길→생태관찰로/청심교→설봉서원→숲속교실/삼형제바위입구→삼형제바위→영월암→설봉공원

 

 

【 산행일자 】2009년 8월 9일(일)

【 산행시간 】총 5시간 42분 소요(중식 및 휴식 : 3시간 38분 포함)/실제 산행시간 : 2시간 38분 소요

【 날     씨 】맑 음

【 참 석 자 】천 영면(단독산행)

【 교 통 편 】승용차 이용

【 산 행 기 】

이번 설봉산 산행은 이천의 도드람산 산행후 이천시에 소재한 산을 찾아 실시하는 두번째 산행이다.

이천시에는 웅장하고 우람한 높은 산이 없고 대부분의 산들이 고도가 낮고 아기자기하여 호젓한 산책을 겸하여 가볍게 산행을 즐기고 인근의 관광지를 함께 둘러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산행이 가능한 곳이다.

물론 이번 설봉산 산행도 산행지내에 위치해 있는 설봉공원, 영월암, 설봉산성 그리고 설봉서원 등을 산행코스에 포함시켜 관광을 하였고, 인근에 있는 안흥지와 애련정을 귀가길에 함께 둘러보기도 하였다.

산행코스중 어려운 곳은 없었으나 각 봉우리마다 설치해 둔 표지석을 확인하며 사진을 찍고, 영월암 경내 구경, 설봉공원 산책 등을 하느라 산행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휴식과 관광으로 소요하었다. 지난 번 도드람산 산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연계하여 산행을 하였으면 당일산행으로는 시간과 거리상으로 부족함이 없는 코스일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10:35~10:51=>설봉공원/제1주차장

     주차장에 설치된 설봉공원 안내도를 참고로 오늘의 등산코스를 확정하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계류를 끼고 우측으로 레포츠공원 체육시설을 두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베드민턴장, 축구장, 테니스장을 차례로 지나 좌측으로 샛길이 보이지만 이를 무시하고 포장도로 산책로를 따르면 설봉산 산림욕장 입구 아치가 나타난다. 

 

▲ 시멘트 포장도로 산책로

▲ 설봉산 산림욕장 입구

 

11:00=>설봉산 산림욕장입구

     산림욕장 아치밑을 통과하면 통나무 계단의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고 약 7분 후 여러 개의 정자 쉼터가 있는 호암약수터에 이르게 된다.

 

▲ 호암약수터 가는 길

▲ 호암약수터

 

 

▲ 호암약수터 푯말 

 

▲ 호암약수터의 이정표 

 

11:07~11:17=>호암약수터

     '호암정' 등 여러개의 정자가 있고 이정표(←출발점<청심교에서 이곳까지 거리> 0.7km, 구암약수 1.98km/↓출발점<관광안내소에서 이곳까지 거리> 0.8km/→칼바위 0.85km, 출발점<관광안내소에서 이곳까지 거리> 4.52km)가 있다.

이정표의 표시가 약간은 특이하게 되어 있는데 이 코스를 따라 관광안내소로 원점회귀를 한다면 총 산행거리가 6.5km인 셈이다. 또한 좌측의 산길 방향은 청심교 방향인데 청심교는 구암약수터에서 산 사면길의 등산로를 따라 설봉서원으로 진행할 때 영월암 진입도로인 포장도로 직전 상태관찰로에 있는 다리이다.

약수터에 부착된 안내판에는 '식음부적합'이란 검사서가 부착되어 있어 시원한 약수를 기대하고 이곳에 올랐는데 실망감만 안겨준다. 그러나 약수터 밑에는 흐르는 약수를 모아두는 욕조를 설치해 두었으며 그 옆에는 세수대야를 비치해 두어 누구던지 물을 받아 땀을 씻어 낼 수 있도록 해 음용은 못하였지만 대신 시원한 약수로 남의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세수를 하며 땀을 식히는 영광을 누렸다.

위치표시 '현위치:1-3(호암약수터)'를 확인하고 약수터를 빠져나가면 ㅓ자 갈림길이 나타나고, 좌측으로 통나무 계단길을 따르면 갈림길 입구 우측으로 '체육관'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 정자가 보이는데 정자내에는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현위치:설봉1'이란 표지판이 나무에 붙어 있는 Y자 갈림길(11:21)에서 우측의 계단길을 버리고 좌측의 임도처럼 넓은 산길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막길을 돌아오르면 이정표가 설치된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초암약수갈림길이다.

 

 

▲ 초암약수갈림길과 갈림길의 이정표

 

11:28=>초암약수갈림길

     이정표(현위치:만남의쉼터 1.55km지점, ↑설봉산정상 1.2km/↓호암약수 0.52km/→초암약수 0.58km)가 설치된 삼거리인데 우측의 초암약수 방향은 만남의 쉼터에서 시작되는 등산로이다.

계속되는 오름길을 이어가면 정면으로 성벽이 나타나고 성벽 사이의 길을 따라 오르면 '설봉산성' 안내판이 있는 설봉산성이다.

11:30~11:47=>설봉산성

 

♧ ♧ 설봉산성(雪峯山城)

*사적 제423호

*소재지:경기도 이천시 사음동 산24일원

 

 

 

설봉산성은 관고리성지 또는 무안산성이라고도 불리며, 설봉산의 정상부에 쌓은 퇴뫼식의 돌로 쌓은 산성이다. 관고동의 일명 기치미고개에서 중일리에 이르는 산줄기의 연봉에 위치하고 있어 북쪽과 남쪽은 물론 주변지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079m이고 삼국시대의 성중에서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는 산성으로 사면을 다듬은 화강암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 쌓기를 하였으며, 쐐기돌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성문은 어긋문 형태로 된 서문과 북문, 동문이 있으며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돌출시킨 치성은 4곳이 확인되었다.

장대는 성내의 가장 높고 지휘, 관측이 용이한 칼바위 부근에 설치(남장대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노출된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 정도이다. 우물은 1개소가 있으며, 물통로는 북쪽과 동쪽에 각각 1기씩 설치하였다.

단국대학교에 의한 발굴조사 결과 칼바위 부근의 토광과 서문지 하부에서 백제시대 토기가 다수 출토되어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백제 석성일 가능성에 대한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반면 동문의 상단 및 성내 전역에서는 단각고배류와 인화문토기 등이 출토되었으며, 함통6년(885) 명의 벼루기 출토되어 이 산성이 삼국시대에 축성되어 9세기 중엽까지도 사용되었음을 말해주고 있고, 부성은 규모가 각각 532cm, 362cm인 석축성으로 성내에 건물지와 치성, 문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삼국-통일신라기의 기와, 토기,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천9경중 제4경인 설봉산성 위에 장송숲 아래로 나무벤치가 여럿 설치된 쉼터가 있고, 좌측 산 아래로 설봉공원과 이천시가지가 조망이 된다.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이정표(↑출발점<관광안내소에서 이곳까지 거리> 3.72km/↓출발점<관광안내소에서 이곳까지 거리> 1.6km)가 있는 곳에 칼바위가 있다. 이정표 우측으로 잠시 오르면 봉화대와 '성화봉'이란 작은 표지석이 있다.

 

▲ 성화봉 정상에서...

▲ 성화봉 밑의 칼바위

 

11:48~12:00=>성화봉/봉수대+칼바위

     칼바위 기준 우측에는 봉화대와 작은 표지석이 있고, 좌측으로는 사직단과 안내문, 이천시 설치(2000.1.1.) '새천년의 탑' 그리고 설봉산성 남장대지와 안내문이 있다. 넓은 공터를 이루고 있는 정상 좌측으로는 나무벤치가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으며, 위치표시 '현위치:설봉산(1-1) 칼바위'가 보인다.

 

 

▲ 사직단 

 

▲ 새천년의 탑 

 

♧ ♧ 사직단(社稷壇)

사직은 원래 토신인 사신과 오곡의 어른이 되는 직을 말하는 것으로서 제사를 지내는 단을 만들어 사직단이라 하였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천,지,인의 삼위일체 사상이 점점 발달되면서 사와 직을 하나로 합하여 토지와 곡물을 관리하는 신으로 받들어 이때부터 천자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사직에 제사를 올리는 중요한 국가 행사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때에 전국의 명산에서 국가적으로 제를 받드는 관습이 있었으며 이러한 제사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서 시행되었고 주로 국가 또는 지방에서 주관하였다.

이곳 팔각제단은 그간의 발굴 출토된 각종 유물로 보아 4세기 백제를 비롯하여 삼국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이천은 통일신라가 남천정(삼국 통일 후 서기 568년인 진흥왕29년에 설치되었던 군영)을 설치한 군사적 요충지인 것으로 보아 이곳 설봉산성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적임을 나타내는 제단시설이다.

이천시에서는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설봉문화제 행사기간중 이곳에서 사직제를 거행함으로서 시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고 있다.

 

잠시 직진의 오르막을 오르면 군부대 설치 '활공금지구역' 경고판이 있는 설봉산성 석벽위에 이르게 되고, 성벽을 좌측으로 돌아 나가면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나무벤치가 있는 쉼터를 지나면서 편안한 능선길은 약간의 경사를 지닌 완만한 오름길로 변하여 나무벤치가 설치된 쉼터 갈림길인 영월암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 편안한 능선길

▲ 영월암갈림길

 

12:10~12:15=>영월암갈림길

     이정표(현위치:만남의쉼터 2.37km지점, ←영월암 0.4km/↑출발점 3.22km/↓출발점 2.10km)가 있는 갈림길로 좌측의 등산로는 설봉서원에서 삼형제바위와 영월암을 거쳐 올라오는 산길이다.

잠시 경사도있는 오르막길을 오르면 무인카메라가 설치된 산불감시탑을 거쳐 연자봉에 이르게 된다.

12:18~12:20=>연자봉

     작은 표지석과 둥굴고 편평한 큰 바위(연자바위)가 있는 봉우리이다. 연자봉을 뒤로 하고 잠시 편안하게 진행하면 이정표(현위치:서희봉, ↖정상 0.3km/↗정상우회 0.3km )가 있는 Y자 갈림길(12:22)에 이르게 되고, 좌측 길 따라 밧줄이 설치된 가파른 계단길 오르막을 극복하면 작은 표지석이 있는 서희봉 정상이다.

 

 

▲ 서희봉직전의 Y자갈림길과 이정표

▲ 서희봉 오름길

 

12:25=>서희봉

     사희봉 정성에는 큼직한 바위들이 군락을 이루며 몰려 있고, 그 바위들 사이에 작은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서희봉을 뒤로 하고 잠시 내려서면 서희봉 직전 Y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되던 우회로와 만나게 되는데 삼거리에 역시 이정표(↑정상 0.1km/↓칼바위 0.82km/→사기막골)가 있다.

잠시 후 설봉산 정상인 희망봉에 이르게 된다.

 

▲ 설봉산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12:28~12:38=>설봉산 정상(394m)/희망봉

     커다란 설봉산 정상표지석이 있고, 그 앞으로는 '희망봉'이란 작은 표지석이 별도로 설치가 되어 있다. 정면 산 아래로는 설봉산과 멀리 이천시가지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 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설봉공원과 이천시가지 전경

 

정상표지석 뒷편으로는 위치표시 '현위치1-2(정상)'과 이정표(↑출발점 2.79km/↓출발점 2.53km)가 보이고 좌측 나무숲 밑 공터에는 여러 개의 나무벤치들이 설치된 쉼터이다.

 

▲ 이정표있는 안부

 

 

▲ 안부의 이정표 

 

▲ 부학봉가는 통나무계단길 

 

▲ 영월암/삼형제바위 갈림길의 이정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이정표(↑화두재 0.76km/↓정상 0.17km)가 설치된 안부(12:41~12:43). 통나무 계단길을 오르면 영월암과 삼형제바위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있는 갈림길의 이정표(현위치:부학봉, ←영월암 0.3km, 삼형제바위 0.34km/↑화두재 0.7km/↓정상 0.22km)지나 부학봉에 도착을 한다.

12:45~13:23=>부학봉

     넓은 공터에 나무벤치와 침대형 긴의지가 설치된 쉼터봉이지만 선점한 등산객들로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어 부학봉 바로 밑 우측으로 2~3명이 앉아 쉬어가기 최적의 큰 바위가 있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식사와 간식을 즐기며 소풍나온 마냥 긴 휴식을 취한다. 약 38분간 휴식.

넓고 편안한 능선길을 따르면 전망대인 '부학루' 정자를 대하게 된다.

 

▲ 넓고 편안한 능선길

 

13:30~13:33=>부학루/정자

     위치표시 '현위치:설봉산1-5(제3봉)'와 '부학루기' 안내판이 정자 앞에 있고, 정자에 오르면 이천시가지가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 부학루에서 내려다본 이천시가지 전경 

 

♧ ♧ 부학루기(浮鶴樓記)

 

 

이 누정은 2000년 8월 15일 이천시에서 세운 것으로 부학루 또는 도원정이라 한다.

부학루는 설봉산이 학처럼 날개를 펴고서 이천 시민을 굽어보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도원정은 2001년 8월10일~10월28일까지 개최된 세계도자기엑스포 행사장이 이 산자락에서 펼쳐진 것을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시내의 전경은 물론 백사, 부발, 호법평야가 한 눈에 보이고 있으며 새천년을 맞아 등산동호인을 위해 세운 것이다.

 

 

▲ 부학루의 위치표사 

 

▲ 도드람산갈림길의 이정표 

 

▲ 도드람산 갈림길

 

정자를 뒤로 하고 약 50여m 정도를 따르면 이정표(↑출발점 2.14km/↓출발점 3.18km/→도드람산 2.25km )가 있는 ㅏ자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도드람산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2.25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약 1시간 정도면 도드람산 정상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옛날에 도드람산 산행을 하지 않았다면 연계하여 산행을 한 번 시도해 볼만한데, 차량회수 문제도 있고 이번 기회에 설봉산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아야 하니 미련없이 갈림길을 뒤로 하고 청운봉에 오른다. 

 

▲ 청운봉

 

13:35~13:37=>청운봉

     조그만한 공터에 나무벤치가 역시 설치되어 있고, '청운봉' 작은 표지석이 보인다. 청운봉 정상을 뒤로 하자마자 1분도 채 안되어 백운봉 정상 표지석을 대하게 된다.

 

▲ 백운봉

 

▲ 오백년송

 

13:38~13:43=>백운봉/오백년송

     '오백년송'이란 푯말이 있고 그 옆으로 푯말에 표기된 것처럼 수령 500년이 되었는지가 약간은 의문이 가는 멋진 소나무 1그루가 있다. 주변에는 나무벤치가 마련되어 있으며, '청운봉'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이 보인다.

백운봉을 뒤로 하면 긴 나무계단길이 이어지고 이를 내려서면 이정표(←화두재 0.2km/↑정상우회/↓설봉산성 1.9km )와 '화두재365계단' 안내문이 있다. 방금 내려선 긴 계단길이 365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화두재365계단이다.

13:48~13:50=>화두재365계단 입구

     좌측으로 잠시 내려가면 안부사거리인 화두재이다.

 

♧ ♧ 화두재365계단

 

 

이 화두재는 과거에 마장면에서 이천읍내로 통과하던 고개로서 설화에 의하면 중국사신이 효양산(부발읍소재)에 금송아지를 찾기 위하여 오던 중 마장면 오천리에 와서 어느 노인에게 앞으로 갈 길을 물으니 노인이 대답하기를 "오천역(5,000驛)을 지나 화두재고개를 넘어 이천읍(2,000邑)을 거쳐 억억다리(億億橋)를 건너서 구만리(90,000里)뜰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 사신은 너무 멀게 느껴져 되돌아 갔다는 전설이 깃든 고개이며, 그 노인은 요양산을 지키는 산신령이었다고 한다.

1년을 상징하는 365계단이다.

 

 

▲ 화두재 전경과 화두재의 이정표

 

13:52~13:54=>화두재/안부사거리

     위치표시 '현위치:1-7(화두재)'와 이정표(현위치:화두재고개, ←출발점 1.81km/↑학소정 2.95km/↓출발점 3.61km/→도드람산 2.60km)가 있는 안부사거리로 도드람산 방향의 산길 입구에는 조그만한 돌무더기탑이 보인다.

직진의 능선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게 되면 설봉산 능선 종주를 하게 되는데, 설봉산 8봉중 마지막 봉우리인 이섭봉과 이섭능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직진을 할 경우 설봉산의 8봉을 전부 종주를 하게는 되지만 이천9경의 하나인 제3경 삼형제바위와 설봉서원, 그리고 영월암 구경을 포기해야 하므로 이섭봉을 포기하고 좌측의 산길을 따라 진행을 하기로 한다.

잠시 산사면길 등산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면 ㅓ자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설봉공원으로 바로 내려가는 직진의 산길을 버리고 좌측의 산길을 택해 구봉약수터로 향한다.

 

 

▲ 구암약수터갈림길의 전경 및 이정표

 

13:58~14:02=>구암약수터갈림길

     이정표(←구암약수터 0.12km/↑설봉저수지 0.8km/↓설봉산정상 1.4km )가 설치된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88계단' 푯말과 통나무 계단길이 나타나는데 이를 내려서면 구암약수터이다.

 

♧ ♧ 88계단

 

 

구암약수터와 산 정상으로 통하는 계단으로서 구암약수터 회원들이 88올림픽을 기념하여 손수 만든 계단으로 2001년 산림욕장 조성시 새롭게 정비하여 88개를 설치한 계단이다.

 

▲ 구암약수터

▲ 구암약수터의 푯말

 

14:03~14:18=>구암약수터

     이곳 약수터 역시 '음용부적합' 판정을 받은 곳이다. 또한 호암약수터처럼 정자가 설치된 약수터이며 약수터 바로 아래에 흐르는 약수를 받아 모아둘 수 있도록 욕조를 설치해 두었고 세수대야가 있어 가볍게 세수 등을 할 수가 있다.

 

▲ 구암약수터 입구 삼거리

 

위치표시 '현위치:설봉산1-6(구암약수터)'가 있고, 약수터 입구 삼거리에는 이정표(←호암약수터 1.98km/↑출발점 1.31km/↓출발점 4.01km )가 있다. 삼거리 좌측 산허리를 따라 이어지는 호암약수터 방향의 사면길을 따라 진행을 한다.

이정표(14:23, ↑호암약수터 1.34km/↓구암약수 0.64km)를 지나면 다시 2분 후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나무벤치 2개가 있는 무궁화동산 갈림길이다.

 

 

▲ 설봉서원가는 사면길

▲ 무궁화동산 갈림길

 

14:25~14:27=>무궁화동산갈림길/삼거리

     이정표(↖호암약수 1.17km/↗무궁화동산 0.68km/↓구암약수 0.71km )가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의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 실계류를 건너는 2개의 통나무다리를 건너면 커다란 바위군이 나타나고 나무에는 위치표시 '설봉5' 푯말이 있다.

14:30~14:46=>사부골약수터갈림길

     우측 바로 아래로 약수터가 보인다. 잠시 우측으로 밧줄 난간이 설치된 등로를 따라 오르면 이정표(↑호암약수터 1.08km/↓구암약수 1km )와 나무벤치가 있는 쉼터 고갯마루에 이르고, 완만하게 5분 정도를 내려섰다 잠시 오르면 이근배님의 '살다가 보면' 시가 있는 고갯마루(14:54)에 이르게 된다.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나무마루가 깔린 '생태관찰로'인 산책로, 청심교 다리를 건너면 '범양골' 설명문과 이정표(↑출발점<호암약수터에서 이곳까지 거리> 0.7km/↓출발점<구암약수터에서 이곳까지 거리> 1.18km)가 있는 포장도로에 이르게 된다.

 

▲ 생태관찰로

▲ 청심교

▲ 설봉공원 앞 영월암가는 도로

 

이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오르면 영월암과 삼형제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게 되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산행들머리였던 설봉공원 주차장으로 향하게 된다. 도로건너 설봉서원이 위치해 있다.

설봉서원을 찾아 둘러보고 도로를 따라 삼형제바위와 영월암을 찾기로 하고 도로와 계류를 건너 먼저 설봉서원으로 향한다.

15:00~15:26=>설봉서원

     최근에 복원한 설봉서원 경내를 관람하고 서원 좌측 화장실 옆에 300여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 보호수(고유번호:경기-이천-02/지정일:82.10.15./수고:25m, 흉고직경:4.6m)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한다.

 

♧ ♧ 설봉서원(雪峯書院)

*이천시 향토유적 제18호

*소재지:경기도 이천시 관교동 437-1번지

 

 

 

 

 

유학의 진흥과 장학을 목적으로 창건된 설봉서원은 소수서원, 남계서원, 서악서원에 이어 조선조 명조19년(1564) 이천부사 정현이 유림의 공의에 따라 지금의 이천시 안흥지 주변에 세운 서원이다.

선조때 임진왜란 전 설봉산 아래로 옮기면서 설봉서원으로 명명되었다. 이 서원에는 원래 복천 서희 선생을 모시다가 이어 율정 이관의 선생, 모재 김안국 선생을 배향하여 삼원사로 불리우다가 철종8년(1857) 소요재 최숙정 선생을 함께 배향하여 사현이 봉안되었으며 유림들이 매년 춘추로 제향을 올리고 학문을 강론하면서 젊은 선비들을 가르치던 사학교육기관이다.

그런데 고종8년(1871)에 300여년 동안이나 향사해온 서원이 안타깝게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러나 1990년경부터 서원복원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어 2004년 6월 사단법인 설봉서원의 등기를 설정하고 건축공정을 추진하였다.

2005년 12월 현 위치에 기공하고 2006년 12월에 완료되어 2007년 4월 13일에 준공식을 가지므로서 철폐된 지 136여년만에 이전 복원이 완료되었다.

 

도로로 다시 나와 도로를 따라 영월암 방향으로 올라가면 우측으로 숲속교실이 보이고 그 맞은 편에 이정표가 설치된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삼형제바위 가는 길 입구이다.

 

▲ 삼형제바위 가는 입구

 

15:28~15:34=>숲속교실/삼형제바위 입구

     좌측 산길이 삼형제바위를 거쳐 영월암으로 가는 길이며, 도로를 계속 따르면 영월암으로 바로 향하게 된다. 이정표(←영월암<걸어가는길> 0.5km, 출발점<삼형제바위에서 이곳까지 거리> 0.3km/↑영월암<차도> 0.5km/↓출발점<관광안내소에서 이곳까지 거리> 0.79km )와 삼형제바위 표석이 있는 갈림길 좌측 숲길로 들어 실계류 1곳을 건너 경사도있는 계단길을 극복하면 주춧돌로 추정되는 잘 다듬어진 사각형 돌 한개가 있는 건물터로 보이는 공터(15:38)에 이르게 되는데 나무벤치가 있다.

이어지는 오름길을 계속 이어가면 '삼형제바위의 전설' 안내문을 지나 삼형제바위에 오르게 된다.

15:41~15:44=>삼형제바위

 

♧ ♧ 삼형제바위의 전설

(전설 1) 아주 오랜 옛날 가난한 집에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나무를 해다가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 가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삼형제는 우애와 어머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인근 지방에 효자아들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느 날 설봉산으로 나무하러 갔던 삼형제가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아 속태우던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가게 되었고, 그런줄도 모르는 아들은 나무를 한짐씩 잔뜩하여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안 계시자 어머니를 찾아 온 산을 헤메고 있을 때 어디선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 삼형제가 쏜살같이 달려가보니 수십길이 넘는 낭떠러지 밑에 어머니가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삼형제 아들이 똑 같이 뛰어 내렸는데 그 순간 세덩어리의 바위가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전설 2) 오랜 옛날 홀어머니 밑에 삼형제가 있었는데 3년 기한인 병졸로 모두 뽑혀가게 되었다. 아들 셋을 의지하며 살던 어머니는 아들의 무사함을 빌었으나 약속한 3년이 지나도 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서 생계를 이어가던 홀어머니는 그리던 아들을 보지 못한 채 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병졸의 의무를 다한 삼형제가 집에 돌아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여 어머니의 무덤에 엎드려 명복을 빌며 일어날 줄 몰랐고 그대로 세 덩어리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삼형제바위 위에 서면 이천시가지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 삼형제바위 위에서 바라본 이천시가지 전경

 

삼형제바위를 뒤로 하고 약 2분간 오르면 이정표(↑출발점<정상에서 이곳까지 거리> 0.5km/↓출발점<삼형제바위에서 이곳까지 거리> 0.2km/→영월암)가 설치된 영월암 입구이다.

직진의 산길을 계속 따라 오르면 설봉산 정상으로 향하게 된다. 우측으로 들어서면 영월암 경내에 이다.

 

 

▲ 영월암 입구 전경 및 이정표

 

15:46~16:20=>영월암

 

♧ ♧ 영월암(映月庵) 소개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인 영월암은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43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설봉산(雪峰山) 중턱, 이천시의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북악사(北岳寺)로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창건은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절 안에는 마애여래입상(보물 제822호)을 비롯하여 석조광배·연화좌대(이천시 향토유적 제3호)와 은행나무(관리번호 5-14)가 있어 절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마애여래입상과 석조광배 및 연화좌대는 모두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절이 상당히 번성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절 입구의 노거수인 은행나무는 고려 말에 나옹화상이 심은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 영월암 대웅전 

▲ 영월암 아미타전 

 
조선시대까지 북악사로 불리던 절은 영조50년(774)에 영월 낭규대사가 중창하면서 스님의 법호를 따서 영월암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모습은 근래에 와서 이룩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절에는 주지스님인 홍법 스님을 비롯하여 모두 세 분의 스님이 거주하고 계신다. 법회로는 초하루법회와 중·고등학생 법회(매주 토요일 2시)가 거행되고 있다.
이천 도자기축제와 연계한 수련원을 건립할 계획 중에 있다고 한다. 이천 시민의 몸과 마음의 안식처인 설봉산 속에 자리 잡은 영월암은 이천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한 범종각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부처님의 공덕으로 이천 시민의 마음속에 꿈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을 것이리라.

 

영월암 경내에 들어서면 범종각이 있고 우측으로 설봉서원에서 올라오는 도로가 이어지는 영월암 입구가 있다. 입구에는 나옹대사가 식수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수령 640년이 된 은행나무 보호수(지정일:1982.10.15./수고:37m, 나무둘레:5m) 한 그루가 영월암의 오랜 역사를 대변해 주듯 수문장처럼 절 입구를 지키고 있다.

 

▲ 절 입구의 나옹화상이 심었다는 수령 640년된 은행나무

▲ 도로쪽에서 바라본 영월암 입구

 

마당 정면으로 대웅전이 있고, 그 우측으로 아미타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두 건물 사이의 돌계단을 오르면 향토유적 제3호인 '영월암 석조광배와 연화대좌'가 좌측에, 그리고 우측에는 삼층석탑이 보인다.

 

▲ 영월암 석조광배와 연화대좌 우측에 위치한 석탑

 

♧ 영월암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보물 제822호

*소재지: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산64-1

 

 

이 불상은 자연 암석을 다듬어 머리와 두 손만 얕게 부조하였고, 옷 주름 등은 선각으로 처리한 높이 9.6m의 입상이다. 둥근 얼굴에 눈, 코, 입을 크고 뚜렷하게 조각하였는데 지그시 감은 눈, 넓적한 코, 두툼한 입술 등은 온화한 인상을 준다.

머리는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없는 민머리이며,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있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모두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는데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왼손은 안쪽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 형식의 옷은 몸 전체에 유연한 사선으로 흐르고 왼팔을 돌아 내려간 마사 끝단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이러한 옷의 모양과 오른쪽 팔꿈치가 직각으로 표현된 점은 고려시대 조각상의 특징이다.

이 마애상은 지정 당시 명칭이 마애여래입상으로 되었으나 머리가 민머리인 점과 옷의 형식으로 보아 나한상이나 조사상으로 확인되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줄임말로 소승불교의 수행자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자를 뜻하고 조사는 한 종파를 세우고 중심이 되는 가르침을 준 승려를 뜻한다.

이 불상은 유래가 드문 마애조사상으로 양식과 영월암에 전하는 석불대좌와 광배, 석탑재 등을 볼 때 조성 연대는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 영월암 석조광배 및 연화대좌

*향토유적 제3호

 

 

영월암 창건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석조광배와 연화대좌로서 그 중심에 안치했던 불상은 없어진 채 도괴되어 있던 것을 대웅전 앞에 복원해 놓았다. 중앙의 불상은 1980년 새로 조성해 안치한 것이다.

화강암 1석으로 조성된 광배는 끝이 뾰족한 주형기신광의 형태로 다듬어져 있다. 표면에는 2조로 된 융기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나타냈고 두광 복판에 연잎을 둘렀으며 주위에는 화엄문과 당초문이 있다.

두광의 상부와 신광 좌우로 3존의 화불좌상이 있고 복판에 홈이 나있어 불상뒤에 부착했던 흔적이 있다. 전체 높이 156cm, 폭 118cm, 두께 45cm의 규모이다.

연화대좌는 정방형의 지대석 위에 8각의 하대석과 역시 8각의 인상, 양련좌, 목련좌의 4부분을 1개씩으로 조성, 연결해 놓았다. 섬세하고 유려한 조각 솜씨는 뛰어나며 특히 불신을 떠 받고 있는 양련좌에 새겨진 연잎들은 방금 피어오른 듯 생동감에 넘쳐 있다. 전체 높이는 107cm이다.

전체적인 조화와 섬세하고 세련된 조각 솜씨로 미루어 불교미술의 전성기였던 통일신라~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영월암 석조광배와 연화대좌' 안내문 우측 돌계단을 오르면 보물 제822호인 커다란 바위에 조각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이 정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안내문이 있는 좌측으로 잠시 걸어가면 경내 최상단에 위치한 삼성각이 있다.

경내 구경을 마치고 보호수가 있는 절 입구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숲속교실/삼형제바위 입구와 설봉서원을 차례로 지나 첫 출발장소였던 주차장으로 되돌아 내려와 설봉호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 설봉공원 호수가에서...

 

▲ 설봉공원

 

16:35~16:50=>설봉공원

     설봉공원을 뒤로 하고 귀가길에 이천시내 이천온천 옆에 위치해 있는 안흥지와 애련정을 둘러보고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 ♧ 안흥지(安興池)

 

 

 

안흥지는 안흥방죽이라 불러오고 있는데 이는 방축이 순화되어 불려진 이름으로 우리나라 연못의 전형적인 방지 즉 네모진 연못으로 만들고, 그 물로 구만리뜰 논에 물을 대어 천하제일의 미질을 자랑하던 자채쌀 주산지를 만들었으니, 고려, 조선시대 조정대신들이 방축 앞 자채논 갖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고 한다.

안흥방죽의 축성연대는 애련정기에 의하면 세조(1456) 때로 되어 있으나 역사와 지리를 더듬어 볼 때 통일신라 말 이전인 것으로 추측된다.

1970~80년대에는 연꽃으로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으나 수원고갈로 폐허가 되었던 연못을 이천시에서 국도비의 예산을 보조받아 1997~8년 2년여에 걸쳐 대대적으로 준설, 수리하고 시민의 정성어린 현수운동까지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천은 지금부터 1,400여년전 신하 진흥왕(568)이 남천주(도청소재지)를 설치하였던 곳이며, 태종무열왕이 서기 660년 6월 김유신 장군을 비롯한 5만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남천정에 올랐고, 그의 아들 문무왕(667)이 남천정을 바탕으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유서깊은 천년고도로 안흥지는 이천시의 대표적인 역사유적이다.

 

♧ ♧ 애련정(愛蓮亭)

*이천시 향토유적 제15호(이천9경 중 제7경)

*소재지:경기도 이천시 안흥동 404

 

 

이천읍지에 의하면 객사 남쪽에 정자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모르나 세종10년(1428)에 중건하고 세조12년(1456) 이천부사 이세보가 다시 중건하였으며, 정자 옆 습지에 안흥지를 파서 그 한 가운데 연꽃을 심고 영의정 신숙주에게 애련정이란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월산대군 이정(조선9대 성종의 형), 서거정, 조위 등 많은 시인들은 애련정의 경치를 읊은 시를 남겼고, 임원준, 김안국의 애련정기와 애련루기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중종23년(1528), 숙종14년(1688), 정조3년(1779)의 기록에는 역대 임금님들이 영릉 행차길에 이천행궁에 머무르며 으레 붉은 연꽃이 어우러진 애련정을 돌아 보았다고 전한다.

순종황제 원년(1907) 벌떼같이 일어났던 정미의병때 일본군이 이를 진압하고자 이천읍내 483가구를 불태운 충화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본다. 이천시에서는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18만 시민의 의견을 모아 1998년 애련정을 복원하였다.

이천9경중 제7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