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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전 백제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부여 Ⅴ편(부소산성)

왕마구리 2012. 10. 13. 18:00

◀ 백제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부여 Ⅴ편) ▶

수도 사비의 중심 산성으로 백제 멸망을 맞은 비운의 장소! 부소산성(扶蘇山城)

                    ▲ 부소산과 백마강 전경( 출처:문화재청)

 

2008년 6월12일~13일 1박2일간 삼국시대의 옛 수도였던 신라의 경주 탐방, 2010년 6월17일 백제의 공주(옹진) 공산성과 예산의 임존성 탐방에 이어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사비)를 찾아 1400여년 전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1박 2일이란 짧은 시간 내에 넓은 부여군 전역에 흩어져 있는 백제시대의 유적지와 문화재 그리고 사적지들을 전부 돌아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사전에 탐방 가능한 곳을 미리 정하고 백제 역사 여행을 시작하였다.

부소산성, 가림성 등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적지,

무량사와 대조사, 정림사지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는 사찰이나 옛 절터,

그리고 백제 무왕의 별궁 연못으로 추정되는 궁남지 등을 찾아 이번 옛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부여)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이번에 탐방한 유적지들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탐방한 유적지에서 아쉽게 놓쳐버린 것이나, 짧은 일정으로 찾지 못한 유적지는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재 방문을 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로 하고, 탐방기를 유적지 별로 정리하여 총 5편으로 나누어 작성을 해 보기로 한다.

 

-  Ⅰ편 <천년의 세월을 이어 온 고찰! 무량사(無量寺)>

-  Ⅱ편 <부여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객사와 관청! 홍산현 객사(鴻山縣 客舍)와 관아(官衙), 부여객사(扶餘客舍) 와 동헌(東軒)>

-  Ⅲ편 <사비성의 외곽 방어성인 금강 하류의 가림성(加林城)과 거대한 미륵석불의 대조사(大鳥寺)>

-  Ⅳ편 <왕실 별궁 연못인 궁남지와 사비시대 중심 사찰이었던 정림사지!>

-  Ⅴ편 <수도 사비의 중심 산성으로 백제 멸망을 맞은 비운의 장소! 부소산성(扶蘇山城)>

 

【 일 정 표 】2012년 9월 8일(토)-9일(일) 1박2일

                             ◈ 첫째날(9/8) : 무량사(외산면)-홍산현객사&관아(홍산면)-대조사&가림성(임천면)-궁남지(부여읍)-정림사지(부여읍)

                             ◈ 둘째날(9/9) : 부소산성&고란사-부여객사&동헌

 

 

                 ▲ 부소산성 안내도(사진 上)

                    부소산성 입구(사진 下)

 

【 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

*사적 제5호(지정일:1963년01월21일)

*소재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부소로 31)

*면적:983,598㎡

 

                 ▲ 안에서 뒤돌아본 부소산성 산문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 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옹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16년(538)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이중의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었던 것을 무왕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모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비도성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된 성곽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백제가 한성과 웅진시대 도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하에 축조되었음을 보여준다.

내성인 부소산성은 백제 수도 사비의 진산으로 동서넘북 모든 경관을 조망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신령스러운 부산과 천정대가 있는 취령봉이 보이고, 백마강의 아름다운 풍경과 중국과 일본까지 가는 뱃길의 포구, 구드래가 사비성에 접해있다.

 

성곽의 형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테뫼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동,서,남문터가 남아 있으며, 북문터에는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수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문지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대형 철제 자물쇠가 발견되어 문지였음을 입증해주고 있으며, 남문지에는 아직도 문주를 받쳤던 초석 2개가 동서로 나란히 있다.

동서 문지는 부소산성 좌우 양편으로 나성과 연결되는 지점의 안쪽에 근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나성 외부로부터 직접 산성으로 들어올 수 없는 구조이다. 남문지는 상충사 뒤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문으로 파악된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때 건물터와 영일루, 사비루, 고란사, 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하다.

1978년 금강상수도사업 공사로 인하여 성벽의 단면이 드러났는데 성벽 내부는 잡석으로 적심석을 넣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최근의 발굴조사에서는 목챚지와 수혈상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둘레 2,200m의 성벽의 축성의 구체적 방법을 보면 성벽 안쪽의 흙을 파서 호를 만든 한편, 그 파낸 흙을 내벽에 보축하였다. 성의 바깥 벽면은 기반초를 마치 판축하듯이 황색사질토와 적색점질토를 겹겹이 다져놓았고, 그 위에 돌을 3~5단으로 쌓고 흙을 덮었다.

이런 방식으로 축조된 산성의 입지는 경사면이어서 원래의 경사도보다도 더욱 가파른 경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이 산성의 아래 너비는 7m 가량이며 높이는 대락 4~5m에 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창지와 영일루가 있는 부근의 표고는 전면 70m, 후면 90m의 등고선을 따라 둘레 1,500m의 성벽을 거의 토축으로 축조하였다.

1981년의 사비성 복원 때 토성의 단면을 자른 결과 대개 아래로부터 ①.②,③④의 4개층이 확인되었다.

맨 아래층인 ①층은 붉은색의 진흙으로 판축하여 하부를 축조하였는데 층의 높이는 1.9m이며, 토루 바깥면에는 토루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4단의 석축이 남아있다.

②층은 황갈색토층으로 북반부는 ①층 위에 퇴적되었고, 남반부는 ①층과 같이 아래서부터 쌓아 올렸는데, 이는 ①층을 고쳐쌓기 위해 ②층이 축조되었음을 알려주며, 생토층으로부터 ②층까지의 높이는 3.2m이다. 이곳에서 연질의 백제시대 기와조각이 출토되었다.

③층은 황갈색사질토로 판촉기법을 사용하여 두께 3~6m로 축조되었는데, ②층의 바깥쪽 경사면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수축된 것으로 보인다. 석재는 6합식 5단으로 쌓여 있는데 높이는 103cm로 치 층에서도 ②층과 같이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출토되었다.

맨 위층인 ④층은 조선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부소산성이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축,개축을 거치며 사용된 이용편년을 증명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전체 성벽의 높이는 내면이 7.6m, 외면이 3.4m, 너비는 8.6m이다.

한편 부소산성의 가장 높은 표고 106m의 사비루 부근의 산봉우리 중심으로 약 700m의 테뫼형 산성이 있는데 50 x 50, 70 x 60cm의 백제시대 초석이 많이 흩어져 있다. 이 산성은 위의 두 산성이 연결되어 백제시대의 독특한 복합식 산성양식을 하고 있다.

사비 천도 이후 백제 멸망시까지 국도의 중심산성으로서, 인근의 청산성, 청마산성 등의 보조 산성으로 왕도의 방어를 강화한 성곽발달사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 부소산성 낙화암과 고란사가는 길목에 위치한 연리지

 

♧ 고란사(皐蘭寺 또는 高蘭寺)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8호(1984년05월17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1번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백제 말기에 왕들이 노닐기 위해 건립한 정자였다는 설과 궁중의 내불전이라는 설이 있으나 창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소실된 것을 고려 현종19년(1028)에 백제의 후예들이 삼천궁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중창하여 고란사라 하였다. 그 뒤 벼랑에 희귀한 고란초가 자생하기 때문에 고란사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인조7년(1629)과 1959년 개건할 때 발견된 고란사 상량문에서 정조21년(1797) 각각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으며, 1900년 은산면에 있던 숭각사를 옮겨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31년에 지은 것을 1959년 보수, 단장한 정면 7칸, 측면 5칸의 극락보전과 종각인 영종각, 삼성각 뿐이다.

 

 

절의 뒤뜰 커다란 바위틈에는 고란초가 촘촘히 돋아나 있고, 왕이 마셨다는 고란수의 고란샘터가 있고, 주위에는 낙화암, 조룡대, 사비성 등이 있다. 절 일원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되어 있다.

 

▷ 고란초(皐蘭草)

양치식물 고사리목 고란초과에 속하는 다년생살이풀로 산지의 그늘진 바위틈에서 자란다.

뿌리줄기는 길게 옆으로 뻗어 지름이 3~4mm이며, 비늘조각이 빽빽이 있다. 비늘조각은 줄 모양의 바소꼴이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고 막질(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다.

 

 

                 ▲ 고란정 고란샘 위의 암벽에 자라는 고란초와 고란정

 

잎자루는 길이가 5~25cm이고, 딱딱하며 관택이 있다. 잎몸은 홀잎으로 긴 타원 모양의 바소꼴이며 길이가 5~15cm, 폭 2~3cm로 끝이 뾰족하다.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약간 흰색이 돌며, 잎 가장자리는 두터워져 검은빛이 돌고 물결 모양이다. 잘 자란 잎몸은 2~3개로 갈라지는데 갈라진 조각중에 가운데 것이 가장 크고 옆에 달린 조각은 짧고 작다.

포자낭군은 둥글고 지름이 2~3cm이며 중앙맥 양쪽의 잎맥 사이에 1개씩 달려 2줄로 배열하고 황색으로 익으며 포막은 없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약재로 쓰는데, 종기와 악창에 효과가 있고, 소변을 잘 보지 못할 때에도 사용을 한다.

고란초는 고란사 뒷편 절벽에서 자라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의 강가 절벽이나 바닷가 숲속에서 자란다.

분포지역은 한국을 포함하여 일본, 타이완, 중국 등지에 분포를 한다.

 

▷ 조룡대(釣龍垈)

 

 

낙화암 아래 앞쪽에 작은 섬 모양의 바위이다.

옛날 당나라 군사가 백제의 왕이 있는 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백마강을 거슬러 오던 중 갑자기 풍랑이 일어 진군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수소문을 하여 그 연유를 알아내고는 수중바위에 걸터 앉아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강물 속에서 백제 무왕의 화신인 청룡을 낚아 올린 것으로써 용의 조화를 막고 풍랑을 멈추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에는 그 발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전한다.

 

【 부소산성 탐방코스 】부소산성 정문-삼충사-영일루-태자골숲길 입구&군창지-부소산성 수혈건물지 자료관-반월루-사자루-백화정&낙화암-고란사-부소산성후문고란사유람선선착장-(유람선)-구드래나루-부소산성 서문-서복사지-부소산성 구문-부소산성 정문

 

 

                 ▲ 부소산성 탐방로(사진 上)

                    부소산성 탐방로에서 바라본 산성내 숲길(사진 下)

 

이번 부소산성 탐방은 산성의 성벽위를 따라 걷는 성곽돌기가 아니라 부소산성 내에 있는 현재까지 조성되거나 복원된 유적지를 위주로 돌아보기로 하였다.

 

((참고1)) 부소산 토성을 따라 걷는 '토성길'

*거리 : 4.5km/소요시간 : 1시간40분

*코스 : 부소산성 관광주차장-부소산문-서복사지-반월루-토성길-남문지-영일루-동문지-북문지(취수장)-사자루-토성길-광장-구문-관북리백제유적-부소산성 관광주차장(사비도성 옛길의집)

(참고2)) 부소산성에는 '토성길'이외에도 도보여행길인 '사비길'과 '백마강길'이 지나고 있다.

 

이번의 부소산성 방문은 2006년08월13일~2008년07월13일간 실시하였던 굼남정맥(전라북도 진안군의 3정맥분기점인 주화산에서 북서 방향으로 뻗어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 조룡대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7km의 산줄기) 종주 산행 제13구간(진고개~부소산/백마강) 산행 때인 2006년10월28일 방문 후 6년만에 다시 찾은 셈이다.

당시 금성산을 넘어 부소산성 영일루, 군창지를 거쳐 반월루가 있는 부소산 정상(109m)에 오르고, 낙화암과 고란사를 지나 백마강 구드래나루에서 금남정맥의 끝 지점에 도달하였었다.

오늘의 탐방기는 방문한 유적지 위주로 순서대로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을 한다.

 

♧ 삼충사(三忠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

백제시대의 건축 양식을 살려 지은 이 사당의 구조는 잘 가공된 화강석 기단위에 2단으로 깎은 원형 초석을 놓고 배흘림이 심한 원형기둥을 세우고 주심포 양식으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용마루 양 끝에 백제시대에 사용되었던 형태의 치마가 얹어져 있어 건물의 위용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 삼충사(사진 上)

                    삼충사에 묘셔진 백제 세 충신의 영정(사진 中)

                    삼충사 출입문인 의렬문(사진 下左)), 의렬문과 충의문 사이에 설치된 삼충사 중건사적비(사진 下中), 중문인 충의문(사진 下右)

 

♧ 영일루(迎日樓)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1호

 

 

 

                 ▲ 보수 공사중인 부소산성 영일루

 

♧ 태자골숲길 입구 & 군창지(軍倉址)

 

 

 

                 ▲ 태자골숲길 입구의 이정표와 안내문(사진 上)

                    태자골숲길 입구(사진 下)

                 ▲ 부소산성 군창지

 

♧ 반월루(半月樓)

 

                  ▲ 부소산성 반월루

                  ▲ 반월루에서 바라본 금강으로 흘러드는 백마강

                 ▲ 반월루에서 바라본 부여시가지와 뒷편으로 흐르는 금강

 

♧ 사자루(泗泚樓)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

 

                 ▲ 사자루

 

                 ▲ 백화정과 고란사가는 길(사진 上)

                    백화정&고란사 갈림길의 이정표(사진 下)

 

♧ 백화정(百花亭) & 낙화암(落花岩)

 

                 ▲ 백화정 

                 ▲ 낙화암 

 

                 ▲ 낙화암에서 바라본 백마강 전경

                 ▲ 낙화암에서 고란사와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

 

♧ 고란사 & 고란사유람선 선착장/부소산성 후문

 

 

 

 

                 ▲ 고란사 유람선 선착장과 유람선들

 

고란사 유람선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백마강을 따라 내려가면 부소산성 밖 구드래나루에 도착을 하게 되며, 이곳에서는 부소산성 서문을 통해 다시 성내로 들어 올 수 있으므로 부소산문(정문)에서 끊었던 부소산성 입장권을 반드시 소지하여야 그냥 입장을 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부여객사와 부여동헌을 지나 부소산성 입구로 오게 된다. 물론 거리와 소요시간은 비슷하지만...

 

 

                 ▲ 유람선에서 바라본 부소산성(사진 上)

                    유람선에서 바라본 구드래나루 일대(사진 下)

 

♧ 구드래나루터

 

 

 

                 ▲ 구드래나루터(사진 上)

                    구드래나루터의 쉼터(사진 下)

 

구드래나루터 일원의 강변공원을 벗어나면 도로변 좌측으로 부소산성 서문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을 통해 들어가 완만하게 잠시 오르면 부소산성 탐방로와 만나게 되고

탐방로와 만나는 우측에 부소산성 서복사지가 자리를 하고 있다.

 

♧ 부소산성 서문

 

 

                  ▲ 부소산성 서문(사진 左)과 서문에서 서복사지로 오르는 길(사진 右)

 

                 ▲ 백마강길 안내푯말들

 

♧ 서복사지(西腹寺址)

*충청북도 기념물 제161호

절 이름이나 유래가 전해지지 않는 폐사지이다.

금당지의 와적 기단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군수리 사지의 와적 기단과 더불어 백제시대 기단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출토된 연화문 와당으로 보아 창건 연대는 7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 서복사지

 

서복사지를 뒤로 하고 부소산성 구문을 지나 처음 출발지점이였던 부소산성 산문 앞에 도착을 하게 된다.

부소산성 산문 직전 우측으로 넓은 공터인 사적지가 눈에 들어오는데 사적 제428호로 지정된 부소산성 남쪽 기슭에 자리한 왕궁터와 부여 관북리 백제유물 안내문이 있다. 유적지를 통과하고 정면으로 보이는 부소산성 담장 밖에 자리잡은 부여동헌과 객사로 나갈 수가 있다.

 

                  ▲ 부소산성 관북리 백제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