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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安東)을 찾아서... 제Ⅶ편 : 안동의 고택들

왕마구리 2013. 8. 13. 22:03

◀ 역사가 휘감아 돌아 흐르는 곳! 안동을 찾아서

경상북도 북단에 위치한 안동시는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재를 고르게 보유한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의 고장으로 문화적 편향성을 가지지 않고, 시대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는 고장이다.

삶의 생생한 모습을 간직한 목조문화재가 많아 옛 선인들의 생활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관계로 다양한 민속문화가 삶 속에서 계승되어 오고 있다. 불교와 유교, 기독교 등 한국 문화사의 정신철학도 안동의 문화를 꽃 피워 안동문화의 이해는 곡 한국문화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며, 동양의 정신세계를 체험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동시는 아시아태평양회원도시간 상호협의를 통한 관광진흥발전과 도시간 네트워크 강화를 위하여 2000년 설립된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TPO)에 가입하여 안동의 전통유교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으며, 2004년 10월 27일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도시(전세계 59개국 95개 도시)로 가입하므로서 안동의 우수한 역사와 전통 문화적 가치를 세계인들에게 보다 폭 넓게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위치한 회원 도시(세계유산도시기구 OWHC 전세계 86개국 239개)로 구성된 유네스코 협력기구에 2006년 10월 2일 가입하였고,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2007년 7월 31일 등재됨으로 정회원 도시로 아시아에서 7번째로 승격, 가입되었다.

세계보편문화이며 각 문화의 특징을 드러내는 문화도구인 '탈' 관련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안동의 화회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 기반을 통해 안동이 세계 탈문화를 선점, 선도하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국제문화교류의 거점으로 인지시켜 나가기 위해 세계탈문화예술연맹을 안동시는 2006년 9월 29일 창립하였고,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5개, 보물 39개, 중요무형문화재 2개, 사적 2곳, 천연기념물 7개, 명승 2곳, 중요민속문화재 28개, 등록문화재 1개 등 총 86점과 경상북도 도지정문화재인 유형문화재 69개, 무형문화재 5개, 기념물 20개, 민속문화재 53개, 문화재자료 70개 등 총 216점이 폭 넓게 산재해 있어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둘러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아래에 서술한 문화재만을 둘러보고 다음에 기회를 보아 다시 재 방문하여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하회마을',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 명승 제 28호 '백운정 및 개호송숲 일원' 그리고 명승 제82호인 '만휴정 원림' 등을 주로 하여 인근 문화재들을 탐방해 볼 생각이다.

이번 탐방에서는 총 7편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문화재 위주로 기재를 하기로 한다.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Ⅰ편 :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산실! 도산사원(陶山書院)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Ⅱ편 : 퇴계 이황의 뿌리를 찾아서... 퇴계태실(退溪胎室)과 퇴계종택(退溪宗宅)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Ⅲ편 : 5천년 역사의 뿌리를 간직한 불교문화의 성지! 봉정사(鳳停寺)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Ⅳ편 : 불교문화의 산물! 안동의 탑과 불교 문화재들(법흥사지 칠층전텁, 운흥동 오층전탑, 조탑리 오층전탑 外)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Ⅴ편 : 우리나라 현존의 가장 큰 규모의 살림집! 임청각(臨淸閣)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Ⅵ편 : 월영교 주변의 문화재들! (월영교, 월영대, 석빙고, 선성현객사)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Ⅶ편 : 안동의 고택들! (법흥동고성이씨탑동파종택, 의성김씨종택, 천전리 추파고택, 구봉종택)

 

【 일 정 표 】2013년 7월 9일(화)-10일(수) 1박2일

                     ◈ 첫째날(7/9) 오후 : 도산서원-퇴계종택-퇴계태실-봉정사

                     ◈ 둘째날(7/10) : 안기동 석조여래좌상-평화동 삼층석탑-운흥동 오층전탑/운흥동 당간지주-법흥사지 칠층전탑/법흥동 고성이씨탑동파종택-임청각-월영교 주변의 문화재들(월영교,석빙고,선성현객사)-의성김씨종택/구봉종택-조탑동 오층전탑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安東)을 찾아서(Ⅶ편) : 안동의 고택들

법흥동 고성이씨탑동파종택, 의성김씨종택, 천전리 추파고택, 구봉종택

 

이번 탐방에서 방문한 고택들은 전부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여 문 앞이나 담장 너머로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법흥동 고성이씨탑동파종택은 실제 소유주가 거주하고 있었지만 대문이 굳게 닫혀져 있었고, 의성김씨종택은 관리인만 상주를 하였으며 천진리 추파고택과 구봉종택은 아무도 거주하지 않고 문이 잠겨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의성김씨종택은 탐방한 날이 제사날이라 소유주가 안채에서 제사 상차림 준비를 하는 중이어서 문이 개방되어 일부 내부를 탐방 할 수가 있었다.

 

♧♧ 법흥동고성이씨탑동파종택(法興洞固城李氏塔洞派宗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85호(1984년01월14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103(법흥동)

 

 

 

안동 영남산 동쪽 기슭에 계곡을 끼고 동남향으로 넓은 대지에 자리 잡고 있다.

현 소유자의 11대 조상인 이후식(1653~1714)이 조선 숙종 때 안채를 짓고 이어 사랑채를 짓다가 완성하지 못한 것을 손자 이원미가 마저 짓고 대청인 '영모당'도 지었다. 대청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북정(北亭)'은 영조51년(1775)에 지어졌다. 순조24년(1824)에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졌고, 1991년에는 안채의 정침을 고쳐지었다.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위에 지어진 중문간을 들어서면 사각형의 안마당이 나오고 이를 둘러싸고 비교적 큰 규모의 안채가 있다. 안채의 왼편에는 앞쪽으로 사랑채가 있는데, 마루방에는 '정우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대청은 앞에 넓은 연못이 있는 별당건물로 '영모당'의 현판이 있다.

북정은 서쪽에 흐르는 계곡물을 향하여 배치된 '一'자형의 정자이다. 안채의 오른쪽에는 사당이 있다.

조선 중기 양반집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주택으로 주변늬 자연환경과 건물을 잘 조화시킨 산간저택이다. 또한 독특한 구조와 수법,전통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주택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소유주가 거주하고 있는 가옥으로, 내부 출입 등 관람이 불가능하여,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여야 했으며, 집 앞에 자리한 국보 제16호인 법흥사지 칠층전탑 또한 표면세척 및 균열부 수지처리 보수처리 작업으로 관람이 불가능하여 인근에 위치한 임청각만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다.

내부 건물 구조는 출입이 불가능하여 관람치 못하여 문화재청의 자료를 인용하기로 한다.

 

▷ 안채(정침)

*중요민속문화재 제185-1호(1984년01월14일 지정)

 

 

중문간을 들어서면 네모반듯한 안마당에 이르게 되고, 안마당을 둘러싼 안채가 있다. 앞면에는 마당쪽을 향하여 4칸 대청이 자리잡고 있으며, 대청 오른쪽에는 골방 1칸과 안방 3칸이 마당쪽으로 길게 내밀어 있다. 그 앞에 부엌 2칸을 더 달아 내었고, 부엌 오른쪽에는 붕당과 부엌방을 설치하였다. 이와 대청으로 골방 오른쪽에 마루방과 동녘방을 돌출시켰는데, 마루방은 현재 부엌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부엌방과 동녘방을 흙담으로 연결하고 문을 내어 뒤꼍마당으로 통하게 하였다. 대청 왼쪽에는 2칸통 서녘방을 배치하고 그 앞에 마당쪽으로 3칸을 누집으로 뻗어내렸다. 누 위에는 긴 마루방을 꾸며 창고방으로 쓰고, 누 아래에는 헛간을 두었다. 누집 끝에 一자로 이어져 안마당을 감싸고 있는 중문간은 방과 부엌,곳간이 배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저장고로 쓰이고 있다.

▷ 사랑채

*중요민속문화재 제185-2호(1984년01월14일 지정)

정면 2칸, 측면2칸으로 비교적 작은 규모이다. 2칸 크기의 마루방과 2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루방을 중심으로 3면에 툇마루를 돌리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마루방에는 '정우재(淨友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 대청

*중요민속문화재 제185-3호(1984년01월14일 지정)

 

                  ▲ 영모당

 

대청은 네모 반듯한 넓은 연못 뒤에 있는 별당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4칸통 큰 마루방과 그 오른쪽에 1칸 반 온돌방을 두었고 방 뒷쪽에 반칸 골방을 들였다. 오른쪽 옆면을 제외한 3면에 툇마루를 놓아 안팎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였다.

방과 마루 사이에는 문턱이 높은 두쩍 열개문을 설치하였는데, 특히 마루방에는 절간문처럼 바깥에서 들어서 열수 있도록 만들어, 일반 가옥에서 보기드문 수법을 보이고 있다.마루방에는 '영모당(永募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 사당

*중요민속문화재 제185-4호(1984년01월14일 지정)

▷ 북정

*중요민속문화재 제185-5호(1984년01월14일 지정)

 

 

대청 북쪽에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는 정자이다.

서쪽에 흐르는 계곡을 향하여 지었는데 언덜방 2칸과 마루방 1칸이 一자로 배치되었고, 가운데에서 계곡 쪽으로 누마루 1칸을 돌출시켰다. 누마루 3면에는 난간을 돌려 양옆의 쪽마루까지 이어지도록 하였다.

▷ 대문채

*중요민속문화재 제185-6호(1984년01월14일 지정)

 

 

♧♧ 안동 의성김씨종택(安東 義城金氏宗宅)

*보물 제450호(1967년06월23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경동로 1947-9(천전리)

 

 

조선 중기에 지어진 민가이다.

의성 김씨 청계 김진(1500~1580)의 종가로 임진왜란 당시 불타 없어진 것을 김진의 아들인 김성일(1538~1593)이 재건하였다.

학봉 김성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서애 류성룡과 함께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과 예학에 뛰어나 이후 영남학파의 학문 전통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조10년(1577)에는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선조23년(1590)에는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겸 순찰사를 역임하여 왜적과의 전투를 독려하다가 진주성에서 병사하였다.

 

 

의성 김씨 종택은 그 배치나 구조에서 독특한 점이 많은데 그 이유는 김성일이 명나라 사신으로 임명받아 북경에서 지내는 동안 직접 설계도를 그려 귀국 후 조선과는 다른 장점과 매력이 있는 중국 상류층 주택을 모델로 해서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 안채 외부 모습(사진 左)과 출입문을 들어선 후 바라본 종택 내부(사진 右)

 

                  ▲ 안채 대청마루(사진 左)와 대청마루 상부가구(사진 右)

 

건물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로 구분되는데,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형태는 一자형이다.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맡았던 안채는 ㅁ자형이고 다른 주택과 달리 안방이 바깥쪽으로 높게 자리를 잡고 있다.

행랑채는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어 있는 특이한 구성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 가옥 구성이 巳자 모양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행랑채에서 안뜰로 통하는 중문이 없어 외부사람이 드나들 수 없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교 사상의 남녀 유별, 내외사상을 건물구성에 반영하였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사랑채 출입은 행랑체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사랑채로 직접 갈 수 있는 별도의 문이 있다.

 

 

                  ▲ 사당 출입문 앞 300년 된 보호수인 회화나무(사진 上)

                      사당 전체 전경(사진 下)

 

사랑채와 행랑채를 이어주는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서재로,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인다. 이와 같은 2층 구조는 다른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양식이다. 훗날 추가로 연결된 서쪽 끝의 대청문은 지붕이 커, 집 전체 겉모습에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은 간략한 양식으로 지었지만 보기 드문 주택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선시대 민가 건축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안동 구봉종택(安東 龜峯宗宅)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5호(1982년12월0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79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종가집 양식을 지닌 건물이다. 구봉 김수일선생의 종택으로 현종1년(1660)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고종25년(1888)에 12대손 김주병공이 수리한 바 있다.

 

 

                  ▲ 대문 틈새로 바라본 안채(사진 左)와 솟을대문(사진 右)

대문채, 사랑채, 안채, 사당채 등의 님도리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당에는 선생의 맏아들인 김용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 몽진의 상황을 기록한 호종일기(보물 제484호)가 보관되어 있다.

 

                  ▲ 사당

◎ 김용 호종일기(金涌 扈從日記)

*보물 제484호(1968년12월19일 지정)

조선조 관료인 김용(1557~1620)이 임진왜란 때에 선조가 의주로 피난 중 임금을 호종하였을 때 직접 쓴 일기이다.

김용은 안동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일찍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는데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이 피난한 곳으로 달려가 왕을 수행하였다. 후에는 '선조실록'을 펴내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작성기간은 1593년8월~1594년6월까지 약 1년간이다. 표지에는 '운천선조호종일기'라고 썼다.

이 자료는 후에 잊혀졌다가 1925년 9월에 발견되어 3책으로 장첩되었다. 호종일기는 평상시의 승정원일기와 유사한 것이나, 임진왜란 중 행래소에서 사관들이 호종하면서 당시의 모든 정사를 기록한 것으로 일차적인 역사적 자료로서의 값진 기록이다. 더욱이 이 '운천호종일기'는 피난 중 직접 체험하고 보고들은 사실들을 그대로 기록하였으며, 사생활은 물론 국가의 정치, 군사, 외교 등 각 방면에 걸친 귀중한 자료이다.

♧♧ 안동 천전리 추파고택(安東 川前里 楸坡古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32호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 의성김씨종택 가는 길가의 추파고택

 

의성 김씨 추파 김정락(1830~1893)과 그의 아들 김병식(1856~1936)이 살았던 집이다.

보물 제450호 의성김씨종택 안에 건립되었으나, 후대에 종택에서 분가하였다고 한다. 현존 건물의 건축양식으로 미루어보아 1850년대 이후로 추정되며, 최근 몇 차례 보수하였다고 한다.

이 주택은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자형 기와집이나, 건물의 규모는 작고, 형태 또한 일반 ㅁ자형과는 다르며 마당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행랑채가 부속되어 있다. 이 가옥은 위치상 의성김씨의 전통주택이 밀집한 곳에 있어 문화적 가치를 가지며 19세기 건립 당시의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김병식은 1907년 안동지역 근대교육의 출발점으로 천진에 설립된 협동학교의 교사와 교장(1911년)을 역임한 바 있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