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경북 북부 나드리 : 역사와 자연의 소리를 찾아서...(안동)한국의 역사마을! 하회마을(Ⅰ편)

왕마구리 2014. 3. 23. 09:04

빼어난 산수와 아름다운 옛 전통문화가 조화롭게 살아 숨 쉬는 경북 북부유교권은 우리 유교문화의 보고이자 친환경 웰빙여행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수려한 산과 계곡, 질 좋은 온천과 드넓은 동해 바다가 있어 어느 계절에도 다양한 레포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경상북도 북부지역은 안동시, 영주시, 상주시. 문경시,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 예천군, 봉화군, 울진군 등이며, 이번 경북 북부 나드리는 1박2일 일정으로

상주시의 화달리 삼층석탑 및 전사벌왕릉, 경천대

예천군의 회룡포, 용문사, 초간정과 초간정원림, 금당실송림, 예천권씨초간종택, 그리고 개심사지 오층석탑

안동시의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등의 명소들을 방문하였다.

이번 탐방지는 각 지역별로 구분하여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일 정 표 】2014년 2월 20일(목)-21일(금) 1박2일

    ◈ 첫째날(2/20) : (상주)화달리 삼층석탑 및 전사벌왕릉-경천대-(예천)회룡포

    ◈ 둘째날(2/21) : (예천)용문사-초간정 및 초간정원림-예천금당실송림-예천권씨초간종택-개심사지오층석탑-(안동)하회마을-병산서원

 

역사의 향기와 전통의 숨결이 살아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安東)

경상북도 북단에 위치한 안동시는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재를 고르게 보유한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의 고장으로 문화적 편향성을 가지지 않고, 시대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는 고장이다.

염상도사가 BC57년에 창녕국을 세웠다고 전해지는 안동은 신라시대는 고타야군, 고창군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안동부로 승격되면서 처음 안동으로 불리었다.

이후 명종27년(1197) 안동도호부, 신종7년(1204)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복주목으로 바뀌고 공민왕10년(1361) 홍건적의 난 이후 다시 안동대도호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안동대도호부로 병마절도부사를 두었으며, 고종33년에 안동군이 되었고, 1931년 안동읍, 1963년 안동시로 승격되어 안동군과 분리되었다가 1995년 1월에 안동시,군이 통합되어 전국에서 가장 넓은 기가 되었다.

삶의 생생한 모습을 간직한 목조문화재가 많아 옛 선인들의 생활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관계로 다양한 민속문화가 삶 속에서 계승되어 오고 있다. 불교와 유교, 기독교 등 한국 문화사의 정신철학도 안동의 문화를 꽃 피워 안동문화의 이해는 곡 한국문화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며, 동양의 정신세계를 체험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동시는 아시아태평양회원도시간 상호협의를 통한 관광진흥발전과 도시간 네트워크 강화를 위하여 2000년 설립된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TPO)에 가입하여 안동의 전통유교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으며, 2004년 10월 27일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도시(전세계 59개국 95개 도시)로 가입하므로서 안동의 우수한 역사와 전통 문화적 가치를 세계인들에게 보다 폭 넓게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위치한 회원 도시(세계유산도시기구 OWHC 전세계 86개국 239개)로 구성된 유네스코 협력기구에 2006년 10월 2일 가입하였고,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2007년 7월 31일 등재됨으로 정회원 도시로 아시아에서 7번째로 승격, 가입되었다.

세계보편문화이며 각 문화의 특징을 드러내는 문화도구인 '탈' 관련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안동의 화회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 기반을 통해 안동이 세계 탈문화를 선점, 선도하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국제문화교류의 거점으로 인지시켜 나가기 위해 세계탈문화예술연맹을 안동시는 2006년 9월 29일 창립하였고,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5개, 보물 39개, 중요무형문화재 2개, 사적 2곳, 천연기념물 7개, 명승 2곳, 중요민속문화재 28개, 등록문화재 1개 등 총 86점과 경상북도 도지정문화재인 유형문화재 69개, 무형문화재 5개, 기념물 20개, 민속문화재 53개, 문화재자료 70개 등 총 216점이 폭 넓게 산재해 있어 지난 해 7월9일~10일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일부 문화재들을 탐방하였고, 이번 경북 북부 나드리를 계기로 안동을 재 방문하여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하회마을'과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 탐방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탐방한 안동의 명소들은 아래와 같이 3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한국의 역사마을!  안동하회마을(安東河回마을) : (Ⅰ편)탐방코스 내 국가지정문화재들

- 한국의 역사마을!  안동하회마을(安東河回마을) : (Ⅱ편)기타 국가지정문화재들 

- 유교문화의 본향  병산서원(屛山書院)

 

◀ 한국의 역사마을! 안동하회마을(安東河回마을) 

Ⅰ편.탐방코스 내 국가지정문화재들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

UNESCO 세계유산

【 하회마을(河回마을)

*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1984년01월14일 지정)

*면적:1,343필지/7,200,660㎡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고려 말 풍산류씨 입항시조인 류종혜가 이주하여 터를 잡은 이래,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 형제대인 16세기에 이르러 기반을 확고히 하여, 풍산류씨가 600여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다.

류씨가 집단 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이 씨족으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와가와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학자인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자란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하회마을의 동,남,서를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독특한 지형적 형상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물이 휘돌아 태극형, 연꽃이 물에 떠 있는 듯한 형상의 연화부수형, 배 모양을 닮아 행주형에 해당하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327m의 화산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크게 남촌과 북촌으로 나눌 수 있고, 수령이 600여 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는 지역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들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또한 큰 와가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는데, 특히 별신굿에 쓰이던 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제작연대를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멋스러운 경치에 민속과 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연구, 보존, 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 UNESCO 세계유산 』

2010년 7월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된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경주 양동마을과 함꼐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10가지 등재기준 중

(씨족마을의 진정성과 완잔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전적과 고문서, 유교의례, 마을신앙, 민속놀이 등 양반문화와 마을문화를 살피는 증거),

(인류역사의 단계를 잘 보여주는 건조물, 건축적 경관의 탁월한 사례:유교적 건축물은 조선시대 건축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예술적 가치를 잘 보여줌),

(환경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대표하는 전통적인 사람 정주지의 탁월한 사례:풍수를 이용한 자연지형의 극적인 활용, 유교사회의 전통적 정주지의 탁월한 사례로 급속한 도시화, 현대화로 훼손될 위험성에 대응, 보존의 필요성),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살아있는 전통, 사상, 예술적, 문화적 작품관 연계:조선시대 유교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의 기준에 의해 우리나라 열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등재결의안에서 '한국의 역사마을:하회, 양동'은 주거 건축물과 정자, 정사, 사원 등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와 그 배치 방법 및 전통적 주거문화가 조선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는 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문집, 예술작품과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학술 및 문화적 성과물과 공동체 놀이, 세시풍속 및 전통 관혼상제 등 주민들의 생활과 신앙에 관계된 무형유산이 세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하였다.

하회마을이 세계유산 등재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들의 삶 자체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 하회마을의 국가지정문화재들

- 국보(2개)

   *국보 제121호 : 하회탈 및 병산탈 12종 13점  *국보 제132호 : 징비록

- 보물(4개)

   *보물 제306호 : 안동 하회 양진당     *보물 제414호 : 안동 하회 충효당

   *보물 제460호 : 유성룡 종가 유물     *보물 제160호 : 유성룡 종가 문적 11종 22점

- 사적 제260호 : 안동 병산서원

-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 하회별신굿탈놀이

- 중요민속문화재(10개)

   *중요민속문화재 제 90호 : 하회 남촌댁        *중요민속문화재 제 91호 : 하회주일재

   *중요민속문화재 제 84호 : 하회 북촌댁        *중요민속문화재 제 85호 : 하회원지정사

   *중요민속문화재 제 86호 : 하회빈연정사      *중요민속문화재 제 87호 : 하회풍천류씨 작천댁

   *중요민속문화재 제 88호 : 하회옥연정사      *중요민속문화재 제 89호 : 하회겸암정사

   *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 : 안동하회마을     *중요민속문화재 제177호 : 하회동하동고택

- 천연기념물 제473호 :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숲

 

 

▣ 탐방코스

하회마을 종합안내소/셔틀버스 정류장→하회마을 안내판→하동고택→남촌댁(염행당)→양오당(주일재)→북촌댁(화경당)→삼신당 신목→양진당→충효당→작천고택(류시주가옥)→빈연정사→만송정 솔숲→나루터/부용대→하회마을 종합안내소

 

 

하회마을의 문화재들은 탐방코스 순서대로 탐방하였던 국가지정문화재를 (Ⅰ편)에, 탐방 코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 등에 보관되어 있는 문화재와 무형문화재 등은 문화재청의 자료를 인용하여 (Ⅱ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또한 사적 제260호인 병산서원도 별도로 나누어 작성을 하여 총 3편으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하회마을의 고택들은 현재 후손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라, 내부 탐방이 제한적이라 직접 확인을 할 수가 없었으며, 특히 북촌댁은 출입이 금지되어 대문에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어 자료와 사진 등을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등재된 것을 인용하였다.

 

                  ▲ 안동 하회마을 토담길

 

먼저 탐방을 실시하였던 탐방코스의 문화재들을 우선 소개를 하고, 이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문화재들을 문화재청의 자료를 인용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 하회동 하동고택(河回洞 河東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77호(1984년01월14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종가길 45

 

 

조선 헌종2년(1836)에 용궁현감을 지낸 류교목(1810~1874)이 지었다.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독립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사랑채와 안채가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대청에 다층의 수납공간을 둔 점이 특이하며, 건넌방과 중간방 사이에 있는 마루를 두고 건넌방 아궁이를 바깥쪽으로 나가게 하는 등 조선 후기 건축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주택이다.

하동고택은 하회마을의 동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청에서는 '하회마을 선비의 집'으로 지정했다.

 

 

                  ▲ 하회동 하동고택의 안채

                     안대청 우측면 모습(사진 左)

                     안채 우익사 중간방과 통래간 배면 모습(사진 右)

 

♧ 안채

*중요민속문화재 제177-1호

안채는 가운데 3칸을 대청으로 놓았는데 오른쪽 뒤편 반칸에 2층 광을 설치하였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2칸과 부엌 2칸을 길게 뽑아 배치하고, 오른쪽에 건넌방 1칸과 마루 1칸, 중간방 1칸을 마련해 놓았다.

대체로 건넌방과 중간방 사이에는 아궁이를 설치하는 부엌이 놓이는데, 이집에서는 마루를 두어 건넌방 아궁이를 건물 바깥쪽 옆면에 만들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 사랑대청에서 본 사랑방

 

♧ 사랑채

*중요민속문화재 제177-2호

사랑채는 2칸 대청과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 앞쪽으로 마루를, 뒤쪽으로 사랑방 놓았다.

오른쪽 칸은 앞면에 개방된 마루를 놓았으며, 문을 중심으로 중문간채와 연이어 있다.

 

                  ▲ 대문에서 바라본 중문채

 

중문간채는 1칸 문과 광 3칸을 배열하여 안마당 앞을 막고 있다.

 

 

                  ▲ 대문이 달려있는 하동고택의 행랑체(대문체)

 

♧ 대문(행랑)채

*중요민속문화재 제177-3호

행랑채는 4칸 크기로 왼쪽에 대문을 설치하였고 오른쪽으로 머슴방 2칸과 마구간을 만들어 놓았다.

♧ 방아간 *중요민속문화재 제177-4호

♧ 화장실 *중요민속문화재 제177-5호

 

 

                  ▲ 하회동 하동고택의 방아간과 화장실

 

예스러움을 잘 간직하고 있고 건넌방과 중간방 사이에 마련한 마루 등은 배치 형식에서 색다른 변화를 주고 있는 것으로, 조선 후기 주택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 하회 남촌댁<염행당>(河回 南村宅<念行堂>)

*중요민속문화재 제90호(1979년01월2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남촌길 60-5

 

 

 

 

하회마을 남촌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기옥이다.

조선 후기 형조좌랑을 지낸 류기영이 정조1년(1797)에 지었으며, 서애 류성룡의 종가인 보물 제414호 충효당과 함께 하회마을 남촌을 대표하는 집이다.

 

                  ▲ 하회 남촌댁의 별당과 사당 전경

 

 

                  ▲ 복원된 하회 남촌댁의

                     사랑채 모습(사진 上)

                     정자 정면과 측면(사진 下)

 

건립 당시에는 대문채, 몸채, 별당, 사당이 있는 전형적인 양반주택이었다고 전하는데, 한국전쟁 때인 1953년 화재로 안채와 사랑채, 정자가 타버려 소실되고, 현재는 주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별당채, 문간채, 사당이 남았고 정자는 복원하였다. 안채와 사랑채는 구들 연기를 하나의 큰 굴뚝으로 뽑아낼 정도로 잘 지었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굴뚝만 남아 있다.

 

                  ▲ 하회 남촌댁의 굴뚝과 별당채로 통하는 협문

 

대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몸채가 있었던 터가 있고, 왼쪽으로 복원한 정자, 몸채 터 뒷쪽으로 따로 쌓은 담장 안에 사당채가 있다.

별당채는 사당 오른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 하회 남촌댁의 대문채 전,후면 전경

 

정면 7칸, 측면 1칸 크기의 대문채는 가운데 문을 중심으로 좌,우 6칸을 광으로 쓰고 있고,

사당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로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 하회 남촌댁의 사당채(사진 左)와 별당채(사진 右)

 

별당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크기로 부엌이 1칸, 방이 2칸, 마루방이 1칸씩 차지하고 있으며, 별당 앞마당에는 작은 연못과 화초를 심어 꾸미고 있어 운치를 느끼게 한다.

하회마을 남촌을 대표하는 집 중 하나로, 화재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잃긴 했지만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 하회 주일재<양오당>(河回 主一齋<養吾堂>)

*중요민속문화재 제91호(1979년01월2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5

 

 

류성룡의 손자 류만하가 충효당에서 분가할 때 지은 집으로 그의 아들 주일재 류후장이 증축한 조선시대의 기옥이며, 집의 이름은 그의 호를 따 온 것이다.

하회마을 남촌 충효당 뒷 골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간채, 사랑채, 안채, 광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골목으로 이어진 담장 중간 끊어진 곳으로 들어서면 사랑채와 문간채가 있고, 안마당을 들어서 왼쪽에 광채, 앞쪽에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문과 담장이 어우러져 대체로 '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담장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 하회 주일재의 사랑채(사진 上)

                     사랑채의 현판들(사진 下)

                  ▲ 하회 주일재의 사랑채 대청

 

사랑채인 주일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크기로 사랑방 2칸과 대청 2칸을 마련한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고 문간채는 사랑채 옆으로 연이어 있다.

 

                  ▲ 하회 주일재의 사랑채와 그 좌측으로 붙어있는 문간채

 

정면 4칸, 측면 1칸 크기의 문간채는 문 1칸, 작은 사랑 1칸, 아궁이 1칸으로 꾸몄다.

 

 

                  ▲ 하회 주일재의 사당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협문(사진 左)과 안채 측면 전경(사진 右)

 

                  ▲ 하회 주일재의 안채(사진 上)

                     안채의 상부구조(사진 下)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 크기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왼쪽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채, 협문간채와 인접해 있다. 곳곳에 낮은 담을 두어 여성 위주의 작업 공간을 마련하였다. 건넌방은 다시 위,아래 2칸으로 나누어 윗상방과 아랫상방으로 구별하였는데 상하 공간개념을 명확하게 한 것으로 짐작된다.

 

                  ▲ 하회 주일재의 사당

 

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고 따로 마련된 사당은 1칸 크기이다.

구성이나 배치에 적절한 변화를 주고 있으며 담장 구성면에서도 다른 집과 달리 독특한 특성을 보이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집으로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 하회 북촌댁 앞 골목 전경

 

♧♧ 하회 북촌댁<화경당>(河回 北村宅<和敬堂>)

*중요민속문화재 제84호(1979년01월2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북촌길 7

 

                  ▲ 하회 북촌댁 전체

 

하회마을 북촌의 중심부의 넓은 터에 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는 보물 제306호 양진당과 함꼐 북촌을 대표하는 규모가 큰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철종3년(1862) 경상도 도사를 지낸 류도상이 건립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원래 99칸의 집으로 전해지지만 현재는 54칸만 남아 있다. 크게 안채, 사랑채, 별당채, 대문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문채인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앞에 보이는 사랑채와 안채가 이어진 건물이 완전한 'ㅁ'자형의 몸체이며,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별당채이다.

사당은 별당채를 지나 안쪽에 별도로 담장을 둘러 지어 놓았다.

 

                  ▲ 하회 북촌댁 사랑채 전체 전경

 

몸채의 앞쪽이 사랑채로 오른쪽에 중간 사랑인 화경당, 왼쪽에 작은 사랑인 수신와을 두었으며 각 끝칸에 대청을 만들었다. 중간 사랑에는 '화경당(和敬堂)'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는데 한석봉의 글씨라 하며, 뒤쪽 방은 서재이다. 화경당은 학서 류이좌의 당호로 가족과 친족간에 화목하고 임금과 어른을 공경하라는 뜻이며 충효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 하회 북촌댁 사랑채인 화경당(우측)과 수신와(좌측)

 

왼쪽의 작은 사랑 '수신와'는 집안의 손자가 기거하는 곳으로 방 오른쪽에 안채로 드나들 수 있는 쪽문이 달려 있다. '수신와'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 언제나 삼가면서 겸손하라는 뜻으로 '적선지가'로서 마음가짐이 깃들어 있다. 편액은 당대 명필인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다.

작은 사랑 대청 뒤편으로 1칸 방이 부엌 아랫방과 연이어 있다.

 

                  ▲ 하회 북촌댁 대문간채에서 바라본 화경당과 북촌유거

 

화경당 우측으로 길게 큰 사랑채인 '북촌유거'가 자리하고 있는데 정면 7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별당채로 분류되기도 하는 '북촌유거'는 2칸 방 2개, 1칸 방 2개, 4칸의 대청, 3칸의 누마루, 3칸 규모의 부엌과 그 위에 같은 크기의 다락, 5칸의 퇴, 5쪽의 쪽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굴도리 5량에 외부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 상부 보이지 안쪽을 초각하고 장여 밑에 소로 받침을 두고 문은 띠살창호와 울거미널문을 혼용하였다.

 

                  ▲ 하회 북촌댁 별당채(큰사랑채)인 북촌유거

 

가장 웃어른이 거주하시던 곳으로 간혹 외빈 접객용으로도 사용하였다. 누마루는 동쪽으로 하회의 주산인 화산, 북쪽으로는 부용대와 낙동강, 남쪽으로는 남산과 병산 등 하회마을의 명풍광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이다.

대청마루에 걸려 있는 액자 속 붉은 홍패는 조선시대 과거급제자에게 국왕이 내린 합격증으로 류세호의 7대조 류이좌가 정조대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이고, 현판은 조선 철종 당시 명필인 해사 김성근의 글씨로 북촌이 기품있게 기거하고 있다는 뜻이다.

 

 

 

                  ▲ 하회 북촌댁 중문간에서 바라본 안채(사진 上)

                     안채의 윗상방과 아랫상방 사이의 툇마루(사진 下左)와 부엌(사진 下右)

 

안채는 높은 축대 위에 세웠으며 기둥도 매우 높이 올렸다. 둘레 3.5자(약1m), 높이 13자(약 4m)의 두리기둥과 둘레 6.5자(약 2m), 길이 23자(약 7m)의 굵고 긴 대들보를 얹어서 지었다. 한옥에서 보기 드문 2층 구조로 되어 있어 하회마을 건물 중 단일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로 대갓집의 위엄과 품격을 뿜어내고 있다. 안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과 안방, 오른쪽에 아들과 며느리의 방으로 쓰는 건너방(윗상방)이 있다. 안방은 '田'자' 구조로 함경도 지방의 형식을 띠고 있고 부엌은 3칸이 넘는 크기로 2칸의 아랫방과 연이어 있다.

건너방 앞에 툇마루와 연결된 방(아랫상방)은 살림을 물린 노부부가 사용하는 방이다.

별도로 마련된 사랑채는 3문을 두고 평범하게 지어 놓았다.

 

                  ▲ 하회 북촌댁 화경당 앞에서 뒤돌아본 대문간채

 

하회마을 북촌의 큰 집 중의 하나이며, 양반집의 대표가 될 수 있는 본보기로서 귀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한옥 체험을 실시하고 있는 고택으로, 예약자만 출입이 가능하여 일반 탐방객들은 문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 하회 삼신당 신목(河回 三神堂 神木)

*보호수

『 우리나라 유일의 소원지 느티나무 』

 

 

2010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은 삼남의 4대 길지 중의 하나인 명당마을로서 마을 중심부가 높고 주변 강가(낙동강)로 갈수록 낮아지져 풍수지리 상으로 '현화부수형'이라 하거나 '행주형'이라고도 한다.

연화부수형은 곧 연꽃의 모습으로, 그 중심 가장 높은 명당 위치에 바로 삼신당 신목인 느티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삼신당 느티나무는 고려말 공조전서를 지낸 풍산류씨 입항시조인 류공해공이 하회마을에 들어오면서 심은 것이라 하니 6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한 뿌리에 세 줄기의 가지가 장엄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으며 높이는 20m이고, 가슴 높이의 둘레는 15m에 이르는 거목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이 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을 제사, 즉 동제를 지낸다. 이 행사에 앞서 신성한 영역임을 알리고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기 위해 금줄을 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다른 지역의 금줄과는 달리 금줄 사이사이에 소원을 적은 한지가 무수히 끼워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매년 정리해도 마치 함박눈이 내려 바람에 날려 가는 듯한 착각을 자아낼 정도의 무수히 많은 한지를 늘 볼 수 있다.

이 느티나무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금줄 사이에 끼워진 소원지의 내용도 무척 다양하다.

건축학자들은 "좁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나쁘다"고 하는데 신목 삼신당에 이르는 골목길은 좁아서 좋은 그런 감흥을 주는 길이다. 좁지만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어머니 품속 같이 포근한 느낌을 준다.

 

                  ▲ 삼신당 신목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

 

이 골목은 43m에 이르는 긴 통로인데, 마을 중앙에서 우측으로 90º 꺾어 들어가서 다시 골목 끝에서 왼쪽으로 90º 틀어 8m 정도 더 간다. 이렇게 통로가 두 번 직각으로 꺾이게 하여 '공간의 깊이'를 더해주고 기대감을 고조시켜 주는 한편 성스러운 삼신당 공간임을 암시한다.

 

♧♧ 하회 양진당(河回 養眞堂)

*보물 제306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4

 

 

                  ▲ 외부에서 바라본 양진당 전체 전경

 

하회마을에 있는 겸암 류운룡(1539~1601)의 집으로 풍산 류씨 대종택이다.

류운룡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내며 임진왜란에 큰 공을 세운 서애 류성룡의 형이자 퇴계 이황의 제자로 학식이 깊었으나, 동생과는 달리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을 기르는데 일생을 바쳤다.

입암 류중영(1515~1573)의 호를 빌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류중영은 류운룡의 부친이다.

 

                  ▲ 양진당 

 

                  ▲ 양진당 툇마루와 난간(사진 左)

                     사랑채 내부와 뒤뜰(사진 右)

                  ▲ 뒤뜰에서 바라본 사랑채(양진당) 후면과 판문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하회에서 유일한 겹처마가옥이다. 안에 재료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민 대청 천장이 특징이다.

오른쪽 3칸은 대청, 왼쪽 1칸은 온돌방으로 높은 축대 위에 세워진데다 대청과 방 주위를 툇마루와 난간으로 둘러 누각과 같은 인상을 준다. 대청에는 문을 달아 3칸 모두 열 수 있게 하였다.

 

                  ▲ 양진당 행랑채 

                  ▲ 양진당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짓는 중간채

 

양진당이란 이름은 류운룡의 6세손 류영(1687~1761)의 어릴 때 이름에서 따 왔으며, 내부에는 한석봉이 쓴 '양진당' 당호와 여러 현판들이 함께 걸려 있다.

건물 안쪽 일부 재료를 만든 수법이 뛰어나고, 일반 주택으로는 제법 규모가 큰 조선시대 별당 건축물 중 하나이다.

 

♧♧ 하회 충효당(河回 忠孝堂)

*보물 제414호(1964년11월14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종가길 69

 

                  ▲ 충효당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종택이다.

여러 벼슬을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 '징비록'과 '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를 받고 있다.

 

                                            ▲ 충효당 사랑채 뒷편 사당 앞의 만지송 : 서애 류성룡의 13대 종부 무안 박씨가 자손들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1959년 식목일에 화산에서 옮겨 심은 나무이다.

 

『 충,효를 강조했던 류성룡 』

류성룡은 평소 자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자손들은 그 뜻을 받들어 집 이름을 '충효당'이라고 지었다.

류성룡이 임종할 무렵 남긴 시를 한 수 적어본다.

 

"숲속의 새 한마리는 쉬지 않고 우는데

문밖에는 나무 베는 소리가 정정하게 들리는구나

한 기운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도 우연이기에

평생 동안 부끄러운 일 많은 것이 한스러울 뿐

권하노니 자손들아 꼭 삼가라

충효보다 중요한 것은 없느리라"

 

                  ▲ 충효당 대문 앞의 구상나무 : 1999년 4월 21일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Ⅱ세가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하회마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심은 나무

 

충효당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 충효당

 

 

                  ▲ 충효당 툇마루와 난간(사진 上)

                     사랑채 내부(사진 下)

 

사랑채와 안채는 손자인 졸재 류원지(1598~1674)가 짓고, 증손자인 눌재 류의하(1616~1698)가 확장 수리한 것이다. 행랑채는 8대손 일우 류상조(1763~1838)가 지은 건물로 대문과 방, 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 행랑채에 달린 솟을대문(사진 上)

                     행랑채(사진 下)

 

서쪽을 앞면으로 솟을대문이 있는 긴 행랑채를 두고 안쪽으로 '口'자 모양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가 연이어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왼쪽에서부터 사랑방, 대청마루, 방,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대청에는 '충효당'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명필가였던 허목(1595~1682)이 쓴 것이라고 한다.

 

 

                  ▲ 충효당 안채(사진 上)

                     안채 중문 밖 마당으로 통하는 문인 일각문(사진 下)

 

사랑채 온돌방 옆의 대문간을 통해 들어가는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산림을 돌보던 공간으로 동북쪽에 부엌을 두고 'ㄱ'자로 꺾어서 안방, 대청, 건넌방이 있다. 또한 건넌방 앞에는 마루와 2칸의 온돌방, 부엌이 있으며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 충효당 사당 

 

비교적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하회 풍산류씨 작천댁(河回 豊山柳氏 鵲泉宅)

*중요민속문화재 제87호(1979년01월2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종가길 76

 

 

하회마을 북촌의 서쪽 끝 낙동강 강변 가까이 자리잡은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작천 류도관이 이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작천고택' 또는 '작천댁'이라고 부르며,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건축 수법과 양식으로 미루어 조선중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 2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1934년 홍수로 현재는 안채 1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 크기로 왼쪽부터 부엌 1칸 반, 안방 1칸, 대청 1칸, 건넌방 1칸으로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4칸 '一'자 집이라고 볼 수 있으나 사랑방을 터놓아 구성에 변화를 주고 있다.

 

 

                  ▲ 작천댁 내외담과 안채 옆벽

 

눈여겨 볼 점은 작은 크기를 가진 집이면서 안채와 사랑방을 구분하도록 앞쪽에 담벽을 둔 점이다. 이것은 안채공간과 사랑방을 따로 두던 내외사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최소한의 설비로 큰 규모의 양반집 못지않게 지혜로운 변화를 보이는 예로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안채의 대청(건넌방과 사랑방 출입문)

 

3~4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대청 양쪽으로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건넌방에 사랑방이 이어졌다. 마루에 사랑방으로 출입하는 문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 당시 명칭은 '하회류시주가옥(河回柳時柱家屋)'이었으나, 현 소유주의 증조부 류도관이 문경 작천리에서 현재 마을로 이주한 가옥으로 '작천댁'이라 불러지고 있어, '하화 작천댁'으로 지정 명칭을 변경(2007년 1월 29일 고시)하였다.

 

♧♧ 하회 빈연정사(河回 賓淵精舍)

*중요민속문화재 제86호(1979년01월2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북촌길 17-22

 

 

 

 

퇴계 이황의 제자로 원주목사를 지낸 겸암 류운룡(1539~1601)이 서재로 사용하던 집이다.

조선 선조16년(1583) 경에 지었다고 하며, 하회마을 북촌의 서북편 경암정과 부용대를 바러볼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집 이름은 부용대 절벽 아래 깊은 곳을 '빈연'이라 부른데서 따 왔다고 한다.

 

 

                  ▲ 빈연정사 대청 내부(사진 左)와 상부 가구(사진 右)

 

                  ▲ 출입문인 일각문에서 들여다 본 빈연정사

                  ▲ 빈연정사 대청에서 내다 본 부용대와 만송정 숲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왼쪽에 정면 1칸, 측면 2칸 크기의 온돌방을 두고 나머지는 대청으로 꾸몄다. 대청 앞면 2칸은 문을 달지 않았으며 옆면과 뒷면에 골판문을 달았다.

주변 경치와 조경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넉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하회마을 만송정 숲(河回마을 萬松亭 숲)

*천연기념물 제473호(2006년11월27일 지정)

*면적:145,219㎡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뱃나루길 74 등

 

 

 

조선 선조 때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휘돌아 흐르며 만들어진 넓은 모래 퇴적층에 위치하는 만송정 숲은 문신 류운룡이 강 건너 바위 절벽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누르고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다.

 

 

                  ▲ 강 건너 부용대

 

하회마을 백사장, 낙동갈, 그리고 부용대 등과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난 마을숲으로, 경관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다.

 

                  ▲ 낙동강변

 

그의 동생인 류성룡과 함께 하회마을의 기틀을 잡은 인물인데, 소나무 1만그루를 심고 숲 속에 만송정이란 정자를 지었다.

 

 

                  ▲ 강 둑위의 이정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