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경북 구미 선산권의 명소들 Ⅵ편:도리사(桃李寺)

왕마구리 2014. 9. 15. 20:22

◀ 경북 구미(龜尾) 선산권의 명소들 ▶

구미는 금오산도립공원권, 천생산권, 선산권 등 세 곳의 관광권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번 탐방은 당일 관광으로 이 세 권역 중 '선산권'의 관광명소들을 집중 탐방하였으며, '경북 구미 선산권의 명소들'이란 명제로 관광명소별로 나누어 총 6편으로 작성을 한다.

 

【 구미(龜尾) 소개 】

경상북도 서남단에 위치하여 있으며,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산업단지(24.7㎢)를 보유하고 경상북도 전체 면적의 3.2%인 615㎢의 면적이다.

금오산도립공원, 천생산, 태조산 등이 도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낙동강이 도심 중앙을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로 인구 42만명의 선산읍, 고아읍을 비롯한 6개 면, 19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도시 구미는 정신문화의 산실로 닉동강 주변에 가야시대 고분군과 유적이 있어 역사적으로 고대문화가 발달했던 곳이며, 신라시대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불교가 전해진 곳으로 해동 최초의 가람인 도리사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을 꽃 피운 지역으로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 점필제 김종직 등 유학자와 사육신 하위지, 생육신 이맹전, 한말 의병대장 허위 등 우국지사를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근래에 와서는 과감한 수출 정책을 추진하고 새마을운동을 창시하여 국가경제의 초석을 다진 고 박정희 대통령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한 고장이다.

 

                  ▲ 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일대

  

구미는 신라 초기에 일선군으로 불렀으나 진평왕36년(614) 일선주로 승격되었고, 경덕왕16년(757) 승선군으로, 고려시대에 선주라 불리었다.

조선 태종13년(1413)부터 선산군으로 지속되어 오다가 1978년 2월 15일 선산군 구미읍이 구미시로 분리, 승격되었고 1995년 1월1일 국내 최초 내륙첨단공업도시 구미시와 선진 농업지역인 선산군이 통합되어 도농복합형 구미시가 되었다.

 

- 경북 구미 선산권의 명소들 Ⅰ편 : 모전석탑의 백미! 죽장리 오층석탑(竹杖里 五層石塔)

- 경북 구미 선산권의 명소들 Ⅱ편 : 민족역사의 1번지! 금오서원(金烏書院)과 선산향교(善山鄕校)

- 경북 구미 선산권의 명소들 Ⅲ편 : 구미의 천연기념물들! 독동리 반송과 농소리 은행나무

- 경북 구미 선산권의 명소들 Ⅳ편 : 임하댐 수몰지역의 문화재들! 일선리 문화재마을

- 경북 구미 선산권의 명소들 Ⅴ편 : 선산 낙산리의 문화재! 낙산리 고분군과 삼층석탑

- 경북 구미 선산권의 명소들 Ⅵ편 : 신라 최초의 절! 도리사(桃李寺)

 

【 일 정 표 】2014년 7월 5일(토) ◈ 죽장리 오층석탑-선산향교-선산 독동리 반송-금오서원-선산 농오리 은행나무-일선리 문화재마을-선산 낙산리 고분군-선산 낙산리 삼층석탑-도리사

 

제Ⅵ편 : 도리사(桃李寺)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 

 

 

                  ▲ 서대가는 데크토드

                  ▲ 서대의 전망데크

 

 

【 도리사(桃李寺)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해발 691m 태조산 산중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눌지왕(417~458)때 아도가 신라에 전법하며 진기승지를 찾아다니던 중 눈속에 오색의 도화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절을 지은 다음 도리사라 불렀다고 한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신라 최초의 절로 전해진다.

 

 

 

숙종3년(1677) 화재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영조5년(1729) 대인이 아미타불상을 도금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한 뒤 금당암을 도리사라고 고쳐불렀다. 순조7년(1807)과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극락전, 태조선원, 삼성각, 조사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0호 석탑, 후불탱화(1876), 신중탱화(1881), 판목 24매로 된 '묘법연화경' 등이 있다. 1976년 6월 아도화상 석상이 발견되었으며, 1977년 세존사리탑을 해체, 복원하던 중 금동육각탑형 사리구와 진신사리 1과가 발견되었다.

절 뒷산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축성하였다는 숭신산성 터가 남아 있고 인근에 낙산리 고분군, 일선리 전통마을 등이 있다. 

 

 

 

 

 

 

 

 

『 도리사와 아도화상 』

아도화상은 위나라 굴마와 고구려 여인 고도령의 이들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묵호자와 동일인인 것으로 나온다.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100여년 전 신라땅에 들어온 아도화상은 모례의 집에 머물며 불법을 전하고 있었다. 이때 중국에서 신라왕실에 향을 보내왔으나 무엇인지 모르던 차에 아도화상이 그 용도와 사용법을 알려주고 병을 앓고 있던 성곡공주의 병을 고쳐주었다.

그 후 아도화상은 모례의 집에 머물며 설법하고 소와 양 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겨울날 서라벌에 다녀오던 길에 복사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모례의 시주를 받아 세우게 된 절이 바로 '도리사'이다. 당시 아도화상이 살던 마을은 '도개마을'이라 한다.

소와 양을 길렀던 곳은 '야천골' 혹은 '우천골'이라 불리고 도개동 윗동네에는 외양간이 있었다하여 '우실'이라 한다.

 

 ◀ 아도화상

 

 

 

 

♧♧ 구미 도리사 석탑(龜尾 桃李寺 石塔)

*보물 제470호(1968년12월19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송곡리)

 

 

고려 중기의 석탑으로 추정되며, 극락전 앞뜰에 세워져 있는 높이 3.3m의 이형석탑(한국 석탑의 전형인 석가탑과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탑)이다.

전체적으로 높은 기단을 포함하여 5층을 이루고 있는데, 맨 아래층을 제외하고 몇 층까지를 탑신으로 보아야 할지 분명하지가 않다.

맨 아래층은 탑으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으로 여겨진다.

 

 

                  ▲ 석탑 기단부(사진 左)와 탑신부 및 상륜부(사진 右)

 

위의 2개층은 탑의 중심부분인 탑신부이다. 탑신부의 1층과 2층 몸돌은 자은 정사각형의 돌을 2~3단으로 쌓아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인다. 지붕돌 역시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처럼 층단을 이루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각각 한면에 문틀을 돋음새김한 널돌이 끼워져 있어 문짝 모양을 표현한 듯하다. 맨 위의 2개층은 탑의 머리장식받침인 노반이 포개진 것인지, 아니면 위층만 노반이고 아래층은 탑신부로 보아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 탑신부의 짜임새

 

일반적인 탑들과는 다른 특이한 형태로 몸돌과 지붕돌 윗부분의 층단구성이 모전석탑처럼 보인다. 이처럼 희귀한 모습을 한 탑은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들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 구미 도리사 극락전(龜尾 桃李寺 極樂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6호호(2013년04월08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403

 

 

도리사의 부속 암자인 금당암의 법당으로 19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내부에는 17세기에 향나무로 만든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벽면에는 벽화를 그려 놓았다.

극락전 앞뜰에는 보물 제470호인 모전석탑 모양의 화엄석탑이 자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