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강원&충청권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큰 규모의 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중앙탑)

왕마구리 2014. 10. 16. 14:43

◀ 한반도의 중심 고을! 충북 충주(忠州)를 찾아서

 

충주지역 탐방은 2012년 8월 1일 탄금대, 2013년 6월 15일 미륵대원지와 하늘재 트레킹으로 이미 두 차례 방문하여, 이번 탐방은 세번째이다.

지난 두 차례의 탐방은 충주 지역을 목적지하여 방문한 것이 아니라, 괴산과 단양 지역 탐방을 하면서 가는 길에 한 장소씩을 정해 탐방을 실시한 것인데 반해, 이번 탐방은 1박2일 일정으로 충주지역만을 탐방할 목적으로 실시가 된 것이다.

이번 충주 방문에서 탐방한 관광지를 아래와 같이 소개를 하기로 하며, 충주 미륵대원지(사적 제317호) 탐방과 계립령로 하늘재(명승 제49호) 트레킹은 2013년도 탐방 때 소개를 하였으므로 다시 소개를 하지 않기로 한다.

 

【 충주(忠州) 소개 】

중원문화권의 중심지인 충주는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며 984.02㎢의 면적에 약 21만명의 인구를 가진 자연경관이 수려한 고장이다.

전국 제일의 수질을 자랑하는 수안부 온천과 앙성온천, 문강온천이 있으며, 자연경관이 뛰어난 충주호와 월악산국립공원, 선조들의 얼이 깃든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 중원 고구려비),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 일명 중앙탑), 탐금대, 충주 미륵대원지(중원미륵리사지, 사적 제317호) 등 역사유적과 골프장, 스키장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 고장이다.

특히 충주에서 단양까지 충주호의 130리 뱃길은 주변의 풍치관광과 더불어 역사 탐방관광 코스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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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정 표 】2014년 10월 9일(목)~10일(금) 1박2일

     ◈ 첫째날(10월09일) :

청룡사지(청룡사자 보각국사탑<국보 197호>, 보각국사탑 앞 석등<보물 656호>, 보각국사탑비<보물 658호>)-비내섬-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1401호)-장미산성(사적 400호)-충주 고구려비(국보 205호)-탑평리 칠층석탑(국보 6호, 중앙탑)

    ◈ 둘째날(10월10일) :

임충민공 충렬사(사적 189호)-단호사(철조여래좌상 보물 512호)-충주 미륵대원지(사적 317호)-계립령로 하늘재(명승 49호)

 

◀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큰 규모의 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우리나라 정중앙부에 위치하고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진 석탑

신라 유일의 7층석탑!!!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구조도

 

충주 탑평리 7층석탑은 남한강을 끼고 조성된 '중앙탑공원' 내에 위치해 있으며, 강변에는 충주조정경기장이 위치한 조정지댐과 충주댐 사이의 탐금호가 있다.

중앙탑공원 내에는 충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충주박물관이 자리를 하고 있다.

 

                  ▲ 중앙탑공원과 탄금호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국보 제6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네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른다.

신라 유일의 7층석탑으로 탑 전체 높이 12.95m인 이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 칠층석탑의 기단부(사진 左)와 상륜부(사진 右)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섬약해져 있어 당시의 경향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 칠층석탑의 탑신부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에서 훼손된 고서류 일부와 구리거울 2점, 목제 칠합과 은제 사리함,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인 청동합 등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이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있어, 일제강점기 당시 보수하면서 일부 변형되었다는 논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