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전북 완주)산사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사찰! 위봉사

왕마구리 2015. 5. 22. 21:14

◀ 전북 완주 위봉사(完州 威鳳寺)

위봉산 중턱에 자리한 비구니 사찰!!!

일제강점기에는 30본산 중 하나였던 대찰!!!

 

                      ▲ 완주 위봉사 경내 앞마당의 소나무 한 그루

 

「 전북 완주(全北 完州) 소개 」

산이 있어 아름답고 유서깊은 사찰이 역사의 정취를 더하는 고장!

전라북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전주시를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 거리 36km, 남북 거리 71km로 동은 진안군, 서는 김제시, 남은 임실군과 정읍시, 북은 익산시와 충남 논산시, 금산군과 각각 인접하고 있다.

고덕산과 모악산이 둘러 있으며, 서북방은 전북평야에 연결되어 소양천, 고산천, 삼천천은 모두가 서북을 관류하는 만경강에 이르고 있다. 도로는 전주를 중심으로 4통 5달, 군산, 서울, 부산, 대구, 목포, 광주, 여수로 통하는 국도와 지방도가 이고, 철도는 전북선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였으며 백제 위덕왕22년(555) 완산주가 설치되었으나 565년 폐지되었다. 의자왕20년(660) 신라에 병합되어 신문왕5년(685) 다시 완산주가 설치되었으며, 이때부터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경덕왕16년(757) 전주로 바뀌었고, 완산정이 설치되어 군사상의 중심지로 중요시되었다. 진성여왕6년(892) 견훤이 완산에 후백제를 건국하였으며 태조19년(936) 멸망할 때까지 45년간 후백제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 태조19년(936) 안남도호부로 바뀌었다가 태조23년(940) 다시 전주로 복구되었다. 993년 완산을 승화로 고치고 절도안무사를 두었으며, 995년 전국을 10도 12주로 개편할 때 강남도에 속한 순의군이라 칭하였다. 목종8년(1005) 전주 절도사가 파견되었고, 현종9년(1018) 전국 지방제도 개편 때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었으나, 1022년 다시 전주목으로 개칭되었다. 공민왕4년(1355) 전라도 안령사 정지상이 원의 사신인 야사불화를 감금시킨 사건 때문에 부고로 강등되었으나, 이듬해 완산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태조1년(1392) 이 지방은 태조의 고향으로 중시되어 완산유수부로 승격되었으며, 태종3년(1403) 전주부로 개칭되어 조선 말까지 변동이 없었으나 그 영역은 고려시대보다 축소되었다.

1914년 고산군이 통합되어 전주군이 설치되었으며,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됨에 따라 전주군이 완주군으로 개칭되어 15개 면을 관할하였다.

1956년 삼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57년 초포,우전면과 조촌,용진,상관면의 일부가 전주시로 편입되었다. 초포면 일부를 삼례읍과 용진면에, 우전면 일부는 구이면에 편입, 1966년 운주면에 경천출장소 설치, 1973년 봉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익산군 온수리 화산마을이 삼례읍 삼례리에 편입되고 용진면 산정리 일부가 전주시 우아동에 편입되었다.

1983년 상관면 대성리,색장리와 용진면 산정리 일부가 전주시로 편입되고, 김제시 백구면 도덕리 일부를 조촌면에 편입되었다. 1985년 좇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7년 전주시에 편입되었고, 1989년 운주면 경천출장소가 경천면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 이서면 중리,상림리가 전주시에 편입되었다. 1994년 김제군 용지면 금평리 일부가 이서면에 편입되었다.

 

【 일 정 표 】2015년 5월 10일(일)-11일(월) 1박2일

                             ◈ 첫째날(5/10) 완주 탐방 : 화암사-위봉사-위봉산성-송광사

                             ◈ 둘째날(5/11) 전주 탐방 : 풍남문-전동성당-경기전-전주객사(풍패지관)-전주향교-만고사&남고산성

 

이번 전라북도 완주군과 전주시 탐방은 1박2일 일정으로 이루어졌으며, 완주군에서의 일정은 호남의 금강산! 대둔산, 어머니의 품 같은 명산! 모악산 등은 이미 일반산행과 금남정맥 종주 산행 등으로 몇 차례 산행을 실시하였으므로, 완주의 3대 명찰인 화암사, 위봉사, 송광사와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다른 산성과는 달리 유사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축성하였다는 위봉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위봉산 고개에 자리한 위봉산성을 탐방하였다.

전주에서는 전주한옥마을 인근에 자리한 문화재들인 전주읍성의 남문인 풍남문, 호남지방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전주 전동성당,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 전주객사인 풍패지관, 고려시대에 세웠다고 전해지는 전주향교, 그리고 남고산성과 남고사를 탐방하는 여행이었다.

 

완주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화암사, 위봉사와 송광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상당산성은 '성곽돌기'에 아래와 같이 4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국내 유일한 하앙식 구조의 깊은 역사를 간직한 사찰! 화암사(花巖寺)

산사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사찰! 위봉사(威鳳寺)

천 년의 역사를 담은 사찰! 송광사(松廣寺)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축성한 성! 위봉산성(威鳳山城)

 

                      ▲ 완주 위봉사

 

『 완주 위봉사(完州 威鳳寺) 소개 』

*소재지: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산21번지

위봉사의 창건은 2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위봉사사법」 등 일제강점기 기록들에 의하면 백제 무왕5년(604) 서암대사가 위봉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한편 1799년에 저술된 「범우고」와 1868년 저술된 「극락전중건기」 등에는 최용각이 세 마리의 봉황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절을 창건하였다고 하며, 공민왕8년(1359) 나옹화상이 중창하고, 세조12년(1466)에 선석과 석잠 두 스님이 중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봉사의 연혁을 기록한 것 중에 가장 빠른 1718년 저술된 「추줄산위사사적사병서」에서는 나옹화산이 창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위봉사는 전사가 28동이 있었고 소속 암자도 10여 개에 달하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선조30년(1597) 정유재란으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숙종원년(1675)에는 전란에 대비하여 위봉산성이 축조되고 전주 경기전에 모신 태조 어진을 보호할 목적으로 행궁이 건립되었다. 이후 위봉사는 산성과 행궁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이 되었다.

고종5년(1868)에는 포련 스님이 60여 칸에 이르는 불전을 중수하였는데 이때 관음전(요사)이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30본산의 하나로 금산사, 송광사 등 52개 말사를 관장하기도 했으나 한국전쟁 때 황폐화되었다.

위봉사는 1986년부터 여러 건물들을 새로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위봉사 일주문 정면(사진 上左)와 후면(사진 上右)

                         사천왕문을 통해본 일주문(사진 下)

 

                      ▲ 위봉사 사천왕문 정면(사진 上左)과 후면(사진 上右)

                         위봉사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지장전인 봉서루(사진 下)

 

위봉사는 그리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사찰이다. 최근이 중창이 이루어지고 있어, 건물들은 지은 지 얼마되지 않는 것들이다. 다만 대웅전 격인 보광명전만이 17세기경에 지은 건물로 보물 제6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봉사는 특징적인 것을 찾기 힘든 사찰이나, 절 앞의 가로수 길은 아주 단정해서 사람의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길도 그리 길지는 않다.

위봉사로 가기 전에 고개 하나를 넘게 되는데 이 고개 위에 위봉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위봉산성은 전주의 경기전에 모시고 있는 태조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성이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석문만 하나 남아 그 흔적이 되고 있다.

또 위봉사를 지나 작은 언덕을 하나 넘으면 위봉폭포가 있다. 도로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있어 도로에 차를 세우고 볼 수 있다. 물이 많을 때는 장관을 이루지만 대개 수량이 부족해 그리 시원한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위봉산성 서문을 지나 위봉폭포로 가는 산 중턱에 넓게 터를 닦고 건물들을 배치하였다.

천왕문, 지장전(봉서루), 보광명전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보광명전 주변으로 관음전(요사), 나한전, 심검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보광명전 뒤쪽 언덕 위에는 삼성각과 선원, 요사체가 자리하고 있다.

1988년 법중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오늘까지 수 많은 불사를 거쳐 현재는 10여 동의 건물에 50~60명의 대중이 상주하는 대가람으로 변하였다. 특히 1990년 개원한 위봉선원은 동·하안거는 물론 봄·가을산철 결제까지 연중 쉬지 않고 정진할 수 있는 선원으로 제방의 비구니 스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창건 이래 수많은 도인들이 거쳐 가시고 걸출한 선승과 명강사 등 무수한 인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위봉사는 오늘 날 전북을 대표하는 비구니 선원이자 포교의 전당으로 그 역사의 장을 새롭게 열고 있다.

 

                      ▲ 완주 위봉사 경내의 약수터

 

◈ 위봉사의 문화재들

- 위봉사 보광명전(보물 제608호)

- 위봉사 요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

 

♧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完州 花巖寺 普光明殿)

*보물 제608호(1977년08월22일 지정)

 

 

위봉사의 주불전으로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암막새에 현종14년(1673)을 알리는 글씨가 있어 적어도 그 이전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헌종4년(1838) 중수하면서 '보광명전(普光明殿)'이라 쓴 현판을 걸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맞배집으로 자연석을 허튼층쌓기 한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그 위에 민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웠다.

창호는 정면의 경우 매 칸마다 3짝 띠살문을 설치하고 측면에서는 전퇴부분에만 외딱 띠살문을 냈다. 배면은 모든 칸에 2짝 관문을 달았다.

공포는 내외 3출목 형식이다.

첨차는 양쪽 끝을 경사지게 깎고 하부는 둥글게 처리한 교두형이다. 제공은 5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3제공은 살미가 앙서형인데 앙각이 짧고 힘이 있어 조선 초기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4제공은 연꽃과 봉황을 조각하였으며, 5제공은 운공으로 꾸몄다. 제공은 내부에서 판형으로 일체화시켰는데 연봉우리와 덩굴줄기를 초각하여 장식화되는 경향을 보여 준다.

가구구조는 1고주 5량 형식이다.

정면은 기둥간격을 모두 같게 하였고 측면은 가운데 칸만 넓게 하고 좌우 협칸은 가운데 칸의 1/2 정도로 좁게 설정하였다. 그리고 고주는 측면 뒤쪽 기둥옆에 맞추어 세웠는데 이러한 수법은 고주가 직접 종보와 중도리를 받을 수 있어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취할 수 있다. 또한 예불을 위한 공간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바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추녀 하부에는 활주를 세워 받쳤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이다. 천장은 2단의 우물천장으로 꾸몄는데 단청 채색이 잘 남아 있다.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의 외부 공포(사진 左)와 귀공포(사진 右) 

                      ▲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의 내부 닫집(사진 左)과 외부 전면(사진 右) 

 

내부 바닥에는 현재 마루가 깔려 있으나 마루 밑에는 전돌 조각이 발견되었음을 볼 때 본래는 전돌을 깔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단 위쪽으로 운룡과 여의주 모양의 구슬을 장식한 닫집을 만들어 놓아 불상에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안쪽 뒷벽에 그린 백의관음보살상을 비롯한 여러 불화와 비교적 채색이 잘 보존된 금단청은 차분하고 아늑한 법당 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불전 내부에는 아미타 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우수한 옛 채색기법과 조선시대 목조 불전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평면 구성과 가구 구조, 충량의 형태와 치목수법, 귀공포의 간략한 처리 방법, 공포의 형태와 동일한 내외 출목 수, 서까래의 치목 수법 등에서 조선 초기의 다포계 건축수법도 나타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 다포계 건축물의 수법을 따르면서 부분적으로 조선 초기 다포집의 건축 수법을 보여 주고 있는 등 조선시대 불전 연구에 있어 소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 완주 위봉사 요사(完州 花巖寺 寮舍)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1976년04월02일 지정)

 

 

요사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말하는데, 위봉사의 요사체는 보광명전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으며 요사라고 하지만 앞면 중앙은 대청마루를 둔 법당으로 '관음전'이라 이름 붙였다.

그 좌우에 실제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체를 두어 건물 평면이 Ⅰ자형을 이룬다.

 

 

고종5년(1868)에 절 확장을 위한 큰 공사가 있었는데, 건물의 짜임새를 볼 때 그 때 지은 듯하다. 조선시대의 주택구조를 취하면서도 일부는 법당 형식으로 장식하였다.

관음전과 승방, 부엌 등은 지붕의 높낮이가 서로 다른데 그 기능에 따라 차이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 완주 위봉사의 기타 건물들 」

                      ▲ 완주 위봉사 나한전

                      ▲ 완주 위봉사 종무소

                      ▲ 완주 위봉사 종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