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강원 양양)선명한 단청과 풍경소리! 양양 낙산사 일원(襄陽 洛山寺 一圓)

왕마구리 2016. 6. 21. 18:39

◀ 양양 낙산사 일원(襄陽 洛山寺 一圓) ▶

동해 바다를 끼고 있는 명승지!!!

관동팔경의 하나!!!

 

「 강원도 양양(江原道 襄陽) 소개 」

강원도 중부 동해안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해, 서쪽으로는 인제군과 홍천군, 남쪽으로는 강릉시, 북쪽으로는 속초시와 접하고 있다. 총 면적은 628.82㎢이고 동서의 거리는 약 31 km, 남북의 거리는 약 34 km에 달한다.

양양군의 행정 구역은 1읍 5면으로 법정리 124개, 436개 반이다.[14] 양양군의 면적은 629.32 km²이며, 인구는 2015년 12월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2만7479 명, 1만3374 가구이다. 이 중 42.6%가 양양읍에 거주한다. 양양군의 남녀 성비는 1.03 : 1이다.

동쪽은 동해안을 따라 2∼4㎞ 폭으로 좁고 긴 평야가 전개되고,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대부분의 지역이 험준한 산악지대로 되어 있다. 대표적인 산으로 서남부에 매복산, 약수산, 북부에 설악산, 점봉산등이 있어 인제군, 홍천군과의 경계를 이룬다. 이들 산지에서 남대천, 서림천, 물치천, 화상천, 오색천 등이 발원하여 흐르며 39.5㎞에 달하는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고 해안의 모래사장은 해수욕장으로 적합하다.

동해에 면하고 서쪽 태백산맥이 겨울에 북서 계절풍을 가로막아 푄 현상(Föhn)으로 기온을 높여 같은 위도의 서해안에 비해 연평균 2.5 °C 높고, 특히 1월 평균 기온은 3°C나 높다. 또 가을에 강수량이 비교적 많은 것도 특색이다. 연평균 기온은 11.8 °C, 1월 평균 기온은 -2.2 °C, 8월 평균 기온은 24.3°C이고, 역대 최고 기온은 39.2 °C(1939년 7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 °C(1944년 2월)였고, 연평균 강수량은 1,400 ㎜이다.

손양면 오산리에서는 한반도 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어 이 지역에서의 인간의 오랜 거주를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이전에 예(濊)나라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점령하면서 이문현(伊文縣) 또는 익현현(翼峴縣)이라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익령현(翼嶺縣)으로 개칭되어 수성군(守城郡 : 고성)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1018년(현종 9)에 5도양계제 실시에 따라 현령이 파견되고 동계(東界)에 속했다. 이때 동산현(洞山縣)을 속현으로 병합했다. 1221년(고종 8)에 양주(襄州)로 승격했으나 1254년에 양주현, 1257년에 덕령현(德寧縣)으로 강등되어 감무가 파견되었다.

1260년(원종 1)에 다시 양주로 복구되었다. 조선초인 1397년(태조 6)에 태조 이성계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부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양주(襄州)도호부로 바뀌었다. 1416년(태종 16)에 양양으로 개칭되어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잇고 있다. 1783~92년에는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양양의 별호는 양산(襄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강릉부 양양군, 1896년에 강원도 양양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서면·현북면·현남면은 그대로, 군내면·위산면·부남면이 군내면으로, 동면·남면이 손양면으로, 강선면·사현면이 강현면으로, 도문면·소천면이 도천면으로 통합되었다. 1917년 군내면이 양양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19년 간성군이 고성군으로 개칭되면서 토성면·죽왕면이 양양으로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국토가 양단되자 북위 38。선이 군의 중앙을 가르고 있는 양양군은 현북면의 일부 지역을 현남면에 이관하면서 현남면과 서면 일부를 강릉군에 넘겨주고, 나머지 지역은 북한에 속하게 되었다.

1951년에 군 전역이 수복되고,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현남면이 명주군에 이속되고 현북면과 서면은 양양군에 환속되었다. 1937년에 도천면에서 속초면으로 바뀌었다가 1942년에 읍으로 승격된 속초읍이 1963년에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면서, 죽왕면·토성면을 고성군으로 환원하고 명주군에서 현남면을 환속받았다. 1979년에 양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강현면 상복리 일부가 속초시로 편입되었고 1989년 손양면 가평리와 송현리 일부가 양양읍에 편입되었다.

 

 

*문화제

현산 문화제는 원래 1007년(목종10)부터 성내리에 성을 쌓고, 매년 서낭제를 올려 국태민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였으나 그 뒤 명맥만 유지하다가 3·1운동 당시 가장 치열했던 항쟁지이며 많은 열사가 순국한 점을 기려 '현산 문화제'로 확대·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주요 행사로 횃불제등행렬, 기미만세추모제 및 민속놀이, 문예행사 등이 있다.

*민속

-패다리 놓기

두 마을이 개울 하나를 사이에 놓고 함께 힘을 모아서 어느 편이 신속하게 다리를 놓는가를 겨루는, 이는 지형적으로 개울이 많아 다리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났다. 이 밖에도 '귀애파기 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고장의 산골짜기에서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하여 큰 통나무의 속을 파서 만든 수로를 '귀애'라 한다. 이 귀애를 만드는 일은 놀이 겸 마을의 큰 행사이다. 매년 한식을 전후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귀애를 파고 이를 산골 논에 설치하며 하늘에 제를 올려 풍년을 기원했다.

-동 제

임진왜란 후 매년 5월 5일 단오에 장군 서낭신을 주신(主神)으로 모시는 현산서낭제를 지냈다가 일제 강점기에 폐지되었으나 1968년 부활되었고 현재는 그 시기가 단오 5일 전후의 현산문화제 때 거행되고 있다.

*축제

문화관광부 지정 지역문화축제 “송이축제”는 청정한 양양의 울창한 소나무숲에서 자생하는 신비의 버섯인 “송이버섯”을 직접 채취할 수 있는 체험의 장을 마련, 세계 어느 곳에서도 경험 할 수 없는 송이채취의 신비한 체험이다. 또한 송이생산이 전국 생산량의 60∼80%를 차지하며, 10월초에 송이 축제가 열린다.

또한 남대천에서는 해마다 11월초가 되면 어머니의 강을 찾아 회귀하는 연어들을 맞이하는 연어축제가 열린다. 거친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의 몸부림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온가족이 참여하여 환경의 중요성과 인성교육의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다.

 

                      ▲ 해수관음상에서 원통보전가는 길(꿈이 이루어지는 길) 입구

 

『 탐방한 양양군의 문화재들 』

●양양 진전사지(襄陽 陳田寺址)

강원도 시도기념물 제52호 양양 진전사지(襄陽 陳田寺址)

국보 제122호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襄陽 陳田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439호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襄陽 陳田寺址 道義禪師塔)

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강원도 시도기념물 제53호 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보물 제444호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襄陽 禪林院址 三層石塔)

보물 제445호 양양 선림원지 석등(襄陽 禪林院址 石燈)

보물 제446호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襄陽 禪林院址 弘覺禪師塔碑)

보물 제447호 양양 선림원지 승탑(襄陽 禪林院址 僧塔)

양양 오색리

천연기념물 제529호 양양 오색리 오색약수(襄陽 오색리 오색약수)

보물 제497호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襄陽 五色里 三層石塔)

●양양 낙산사 일원(襄陽 洛山寺 一圓)

사적 제495호 양양 낙산사 일원(襄陽 洛山寺 一圓)

명승 제27호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襄陽 洛山寺 義湘臺와 紅蓮庵)

보물 제499호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襄陽 洛山寺 七層石塔)

보물 제1362호 양양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襄陽 洛山寺 乾漆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723호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일괄(襄陽 洛山寺 海水觀音空中舍利塔·碑 및 舍利莊嚴具 一括)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3호 낙산사 홍예문(洛山寺虹霓門)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4호 낙산사 원장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8호 의상대(義湘臺)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호 낙산사 홍련암(洛山寺 紅蓮庵)

 

【 일 정 표 】2016년 04월 26일(화)-2016년 04월 27일(수) 1박2일

                             ◈ 첫째날(04/26) : (양양)오색리<주전골·성국사 오색리 삼층석탑·오색약수>-낙산사 일원

                             ◈ 둘째날(04/27) : (양양)진전사지-선림원지-(강릉)강릉대도호부·임영관삼문-신복사지-굴산사지-보현사

 

 

강원도 양양군과 강릉시는 이미 여러 차례 방문을 한 지역으로 이번에 탐방한 오색 주전골과 오색리 삼층석탑은 201년 11월03일 고교동창 산악회 회원 19명과 함께 「(흘림골)흘림골지킴터~여심폭포~등선대~등선폭포~십이폭포~용소폭포갈림길~(주전골)금강굴~선녀탕~독조암~성국사/오색리 삼층석탑~약수터탐방지원센터」 코스로, 낙산사 일원은 화재 전과 후 수 차례 탐방을 하였었다.

이번 탐방에 상기의 관광명소 이외에 강릉지역의 경포대 일원(강릉 해운정, 선교장, 경포대), 오죽헌, 강릉향교, 대창리와 수문리 당간지주 등을 탐방 할 예정이었으나, 원거리 지역에 주전골 탐방과 낙산사 일원을 전부 둘러보게되어 시간적으로 부족하여 다음에 탐방을 하기로 하였다.

양양과 강릉에서의 탐방 명소 소개는  오색 주전골과 오색리 삼층석탑, 강릉대도호부·임영관삼문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영남&호남권'에,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양양의 낙산사 일원, 진전사지, 선림원지, 그리고 강릉의 신복사지, 굴산사지, 보현사의 문화재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양양군의 탐방지는 오색 주전골과 오색리 삼층석탑, 양양 낙산사 일원, 양양 진전사지 및 양양 선림원지 등 총 4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한다.

 

- 시원한 폭포와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곳! 오색 주전골과 오색리 삼층석탑(五色里 三層石塔)

- 선명한 단청과 풍경소리! 양양 낙산사 일원(襄陽 洛山寺 一圓)

-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이 출가한 사찰! 양양 진전사지(襄陽 陳田寺址)

- 900년 전 대홍수와 산사태로 매몰된 사찰! 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 양양 낙산사 소개 』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의상이 관음보살의 진신이 이 해변의 굴 안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굴 속에 들어가 예불하던 중 관음보살이 수정으로 만든 염주를 주면서 절을 지을 곳을 알려 주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고 낙산사라 하였다 한다.

헌안왕 2년(858) 범일대사가 중창하였으나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조선 세조 13년(1467) 왕명으로 크게 중창하였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화재를 겪었다. 다시 인조 원년(1624), 9년(1631)과 21년(1643) 재차 중건이 있었으나 정조 원년(1777) 화재를 당하여 다음해 다시 중건하였다.

 

                     ▲ 양양 낙산사 일원

 

♧ ♧ 양양 낙산사 일원(襄陽 洛山寺 一圓)

*사적 제495호(2008년12월18일 지정)

*면적:92,637㎡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일원(전진리)

양양 낙산사는 2005년 산불피해 이후 3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 건물지와 기와편들이 다량 출토되어, 신라 문무왕 11년(671)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이후 헌안왕 2년(858)에 범일국사, 조선 초기 세조연간에 중창되는 등 수차례의 중창불사를 거친 역사적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사찰 경내에는 조선전기의 7층 석탑과 원통보전의 담장, 홍예문, 사리탑, 홍련암과 의상대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주변 해변을 끼고 있는 명승지는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문사(文士)들에 의해 수많은 고전과 시문(詩文)이 전해지고 있다.

 

낙산사 일원은 크게 원통보전구역(원통보전, 7층석탑, 응향각, 빈일루, 범종루, 사천왕문 등), 해수관음상구역(해수관음상, 관음전, 해수관음공중사리탑, 종각 등), 보타전구역(보타전, 지장전, 보타각, 관음지 등), 및 홍련암구역(홍련암, 연화당, 의상대, 의상조사비 등)으로 구분되는데 탐방은 낙산사 후문-다래헌-의상대-의상조사비-홍련암-관음자-보타각&지장전-공중사리탑-해수관음전&관음상-원통보전, 칠층석탑&건칠관음보살좌상-응향각-빈일루&범종루-홍예문 순으로 이루어졌다.

 

 

                      ▲ 홍련암에서 바라본 의상대 일원(사진 上)

                         의상대에서 바라본 홍련암 일원(사진 下)

 

♧ ♧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襄陽 洛山寺 義湘臺와 紅蓮庵)

*명승 제27호(2007년12월07일 지정)

*면적 74,593㎡(지정구역)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산5-2번지 등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은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동해 일출경으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낙산사”와 낙산사 창건 당시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해안 암벽 위에 설치하였다는 “의상대”, 의상대사가 홍련 속의 관음보살을 친견하여 설치한 “홍련암” 등 낙산사의 곳곳에 의상대사와 관련한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의상대와 홍련암은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노송(老松)들이 자리하고 있어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떠오르는 일출 경관으로 유명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낙산사 주요 경관 요소이던 낙락장송이 2005년 강원지역의 큰 산불로 소실되어 경관이 크게 훼손되었으나, 의상대 및 홍련암 주변 해안에는 시스택(sea stack)이 발달하여 독특하고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낙산사는 <관동십경>에 옛 모습이 잘 남아있고, <삼국유사>, <동문선>, <동문여지승람> 등의 고문헌에 많은 시인묵객 등의 낙산사 창건 및 중수 기록과 유람기, 경관을 노래한 시문이 다수 전하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큰 명승지이다.

 

 

                     ▲ 홍련암

                     ▲ 법당 안 바닥의 조망구를 통해 홍련암 밑의 바다가 보이는 홍련암 내부 전경

                     ▲ 홍련암 밑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법당 내 바닥의 조망구

                     ▲ 2005년 화재 당시 참화 속에서도 불 타지 않은 홍련암

 

♧ 의상대(義湘臺)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8호(1974년09월09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산5-2번지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낙산사를 지은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의상이 낙산사를 창건할 때 좌선하였던 곳에 1925년에 만든 정자이다. 옛 부터 의상대라 불렸다고 한다.

6각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크기의 의상대는 강현면 전진리 동해안에 있는 정자로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길 해안 언덕에 있어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난간을 비스듬하게 세운 것은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 낙산사 원통보전구역 』

 

 

                     ▲ 송월루 앞에서 바라본 낙산사 원장 안의 원통보전

 

♧ ♧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襄陽 洛山寺 七層石塔)

*보물 제499호(1968년12월19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낙산사(전진리)

 

 

이 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念珠)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한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음으로써 천여년간 국교로 자리잡고 있었던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불교와 관련된 조형 미술의 분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조선 전기에는 불교미술 분야에서 조성 양식이나 수법이 고려적인 작품이 다소 조성되었다. 낙산사 7층석탑도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석탑 중 하나이다.

 

                     ▲ 칠층석탑 상륜부 원나라 라마탑 형식의 금속장식(사진 左)

                        옥개석과 별석 탑신 괴임(사진 右)

                     ▲ 칠층석탑 기단부의 복련문양들

 

탑의 받침이 되는 기단부(基壇部)는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밑돌을 놓았는데 윗면에 24잎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지붕돌과 몸돌을 1층으로 하여 7층을 이루고 있다. 각 층의 몸돌 아래로는 몸돌보다 넓고 두꺼운 괴임이 1단씩 있어 특징적이다. 지붕돌은 경사면이 평탄하며 네 귀퉁이의 들림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인 모양이 경쾌하다.

탑의 머리장식부에는 찰주를 중심으로 원나라의 라마탑(喇嘛塔)을 닮은 여러 장식들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어 또 다른 특징이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 받고 있으나 전체의 조형이 더욱 간략화 되었다. 강릉 신복사지삼층석탑·월정사팔각구층석탑 등의 탑신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 원통보전과 칠층석탑

 

♧ ♧ 양양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襄陽 洛山寺 乾漆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362호(2003년02월03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낙산사(전진리)

낙산사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건칠불상으로, 근처의 영혈사에서 모셔왔다고도 전해진다.

 

 

금속으로 만든 팔각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채 앉아 있는데, 적당한 크기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고개만을 앞으로 약간 숙여 마치 굽어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머리에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높은 보관을 썼으며, 네모꼴에 가까우면서도 각지지 않은 둥글고 탄력적인 얼굴에는 귀·눈·입·코 등이 단정하게 묘사되어 있다.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가슴 부분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가슴에 올리고 왼손은 배에 두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는데, 가냘픈 듯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양 어깨를 덮은 옷은 옷주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데, 내의 깃이 가슴 밑을 수평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온몸에는 화려한 구슬장식이 드리워져 있다.

이 관음보살상은 표현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반의 전통양식을 바탕으로 한 조선초기의 작품임을 짐작케 해준다. 전체적으로 각 부분의 비례가 좋고 특히 얼굴표정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은 고대 이래의 형식에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보관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낙산사 원장(洛山寺 垣墻)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1971년12월16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전진리)

 

 

 

낙산사 법당인 원통보전의 둘레를 사각으로 에워싸고 있는 담장이다.

조선 세조(재위 1455∼1468)가 낙산사를 고쳐 지을 때, 처음 이 담장을 지었는데 대부분 터만 남아 있어 최근에 연결·보수하였다.

안쪽의 담벽을 기와로 쌓고, 바깥쪽은 막돌로 쌓은 이 담벽은 높이 3.7m·길이 220m이다. 암키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으면서 위·아래로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으로 둥근 화강석을 배치하여 단조로운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법당을 향하고 있는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층의 길게 다듬은 돌기단을 깔고, 그 위에 다시 한층의 긴 받침돌을 놓았다. 담장 위에는 기와로 지붕을 이어 담벽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돌기와와 흙으로 높고 정연한 담장을 쌓고 넓은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한 이 담장은, 법당을 둘러싸 신성한 지역을 구분하면서 공간 조형물로서의 효과도 함께 나타내고 있다.

 

【 원통보전 구역의 전각들 】

 

                     ▲ 음향각

                     ▲ 근행당

 

                     ▲ 빈일루

                     ▲ 사천왕문

 

                     ▲ 홍예문을 통과하고 사천왕문으로 이어지는 길

                     ▲ 범종루

 

                     ▲ 범종루에 보관된 2005년 산불로 소실되어 복원된 동종

                     ▲ 사천왕문 좌측에 위치한 백화수각

 

『 해수관음상 구역 』

 

                     ▲ 해수관음상

                     ▲ 관음전

 

♧ ♧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일괄(襄陽 洛山寺 海水觀音空中舍利塔·碑 및 舍利莊嚴具 一括)

*보물 제1723호(2011년11월01일 지정)

*수량:사리탑1기, 사리비1기, 사리장엄구 일괄(7종 37점)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55번지

양양 낙산사 공중사리탑은 예술적인 측면으로만 보자면 일급의 석조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 해수관음공중사리탑

 

첫째, 건립의 절대연대가 1692년으로 밝혀져 비슷한 시기의 승탑을 비롯한 관련 석조물의 편년에 소중한 준거가 된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둘째, 매우 드물게 현존하는 이른바 승탑형 불사리탑의 새로운 예가 추가되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셋째, 양식적으로나 세부에 있어서나 조선시대 왕릉의 장명등과 유사성이 다분하여 양자 사이의 교류 관계, 나아가 절집 석조물과 그 밖의 석조물의 양식적인 영향 관계를 살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

 

                     ▲ 해수관음공중사리탑 기단부에 조각된 문양들

                     ▲ 해수관음공중사리탑위 상륜부

 

양양 낙산사 공중사리비는 그 자체만으로는 조선후기 석비의 일반적인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중사리탑과 그 안에서 수습된 사리장엄구와 아울러 생각한다면 이 비의 가치는 배가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불사리를 모시려는 목적 아래 만들어진 일관 유물일 뿐만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기능과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문의 내용이 사리장엄구의 일부를 이루는 문서 내용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공중사리탑, 공중사리비, 사리장엄구가 이런 관계 속에 존재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 홍련암 입구에 있는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공중사리탑에서 수습된 사리장엄구 일괄은 인위적인 손상 없이 처음 매납된 상태 그대로 수습되어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그리하여 조선후기에 접어들 무렵까지도 사리병―금합―은합―동합의 순으로 매납용 사리기를 제작하여 그 안에 사리를 안치하는 전통적인 사리 장엄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로써 주목에 값한다. 또한 사리장엄구의 일부로 수습된 비단 보자기 11점은 그 양호한 상태, 색채의 선명성, 무늬의 다양성 등을 통해 우리나라 직물사 연구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이들 세 가지 유물, 즉 공중사리탑과 공중사리비와 사리장엄구 일괄은 관련 유물 가운데 어느 하나 결실되지 않고 고스란히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렇게 관련 유물이 갖추어진 형태로 전해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그러하다. 따라서 이들은 낱낱의 유물이 지니는 가치도 적지 않지만 함께 보존되고 관리될 때 그 의미가 한층 강화될 것이다.

 

『 보타전 구역 』

 

                     ▲ 관음지 뒷편에 자리한 보타전 구역

 

 

                     ▲ 보타전 구역의 전각들 : 보타락(사진 上), 보타전(사진 中), 지장전(사진 下)

 

『 기타 볼거리들 』

 

♧ 낙산사 홍예문(洛山寺 虹霓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1971년12월16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전진리)

 

 

조선 세조 13년(1467)에 왕이 낙산사에 행차하여 절 입구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다. 당시 강원도는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을의 수령이 석재를 하나씩 내어 26개의 화강석으로 홍예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홍예문 위에는 1963년 세운 누각이 있는데, 앞면 3칸·옆면 1칸의 문루이다. 이 문루는 주변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홍예석 주위에 자연석을 쌓고 세워 특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홍예문을 통과하고 경내로 들어오면 대하게 되는 강원도 도내 최초로 재배된 낙산배 시조목